다비안님들께서는..
1.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온 '죄'를 '나의 죄'로 고백할 때
- 성령의 도움으로 은혜 가운데 이루어졌는지
- 오직 믿음으로 믿고 있는건지
- 개인의 지식과 경험을 통한 인식의 결정으로서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2, 구원의 확신가운데 있다면
- 그 구원의 최종 목적지는 과연 어떤 곳 혹은 어떤 상태인가요?
- 구약에서의 애굽에서의 삶, 광야에서의 삶, 가나안땅에서의 삶이
각각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삶에서는 어떤 의미로 계시 혹은 해석되는가요?
저는 가끔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내가 태어나자마자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현재의 삶속에서 구원의 실제적 의미가 무엇인가?
아니면 죽은 후에 구원의 완성을 보게 되는가?
죄의 고백과 구원의 확신으로 이루어진 신앙고백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일진데
저의 어리고 여린 믿음이 하나 하나 열매 맺으며 성숙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샬롬.
말씀해주신 여러 가지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다비안님들의 격려로 기쁨의 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새벽기도>님의 질문이 신학적 교리에 관한 것이라면 <닥터케이>님이 참조로 추천하신 신학단상의 글도 좋은 답변일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고통은 <죄와 벌>, <좁은 문> 등과 같은 소설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많은 분들이 당하고 있는 절박한 현실이지요. 이러한 현실적 문제는 신학적인 설명이나 심리학적 또는 정신의학적 치료에 의해서도 쉽게 없앨 수 없는 실체이지요. 저는 여기에서 <새벽기도>님의 각론적인 질문에 대한 개별적 답변대신, 죄와 구원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크리스천의 상식적인 차원에서 답해보겠습니다. 각론적인 질문은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어느 한 핵심만 해결되면 실타래처럼 모두 풀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분들도 많지요. 그러나 모든 인생의 실존적 참상이 비극이라는 관점은 기독교나 불교나 같지요. 기독교에서는 그러한 불행의 궁극적인 핵심 원인이 바로 <죄>이며, 이는 곧 참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하지요.
사람의 표면의식과 무의식의 저변에는 영이 존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생명을 갈망하지요. 이러한 영적 갈망은 생물학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을 포함하여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가 모두 충족되어도 결코 해결할 수 없지요. 영적 갈망에 따른 표면의식의 증상에는 치료할 수 없는 죄책감과 마음의 병일 수도 있고, 원인 모를 슬픔과 외로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으로 병자들, 특히 귀신들린 자, 문둥병 자, 귀머거리, 장님들을 치유하셨지요. 이처럼 치유사역을 통한 현실적 구원도 절실하고 중요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영적으로 갈급한 자들에게 참 생명을 주신다는 알레고리 이었지요. 사실상 우리는 신체적으로 건강하다고 자부하여도, 영적으로는 못 보고, 못 듣고, 문둥병 자처럼 감각이 없거나 심적 고통에 시달리는 병자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신체적인 병을 고쳐주신 후에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통하여 근원적인 심령까지 치유하여 주신 것이지요.
풍요로운 현재를 사는 우리는 표면의식 차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하여 매일 분주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 깊이 숨어있는 심령은 광야처럼 메마름이 더해갈 뿐이지요. 크리스천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록 영혼에 대하여 너무 쉽게 자주 거론하지만 영적인 갈급함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들의 열광적인 찬양과 반복되는 회개기도 그리고 구원의 확신조차도 영과는 무관한 표피적인 의식차원의 감성과 이성 영역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무의식과 내면의 영은 우리 마음대로 조종하고 관리할 수 없기에, 자칫 생명은 오히려 피폐하거나 파괴될 수 있지요. 그러기에 종교적 강박관념과 죄의식에 따른 정신분열 현상도 많다고 하여 안타까울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구원은 죄인 된 인생이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와 같이 교리를 단순히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라, 구원은 성령의 계시에 의한 영적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계시는 이성의 한계 너머에서 오지만 그렇다고 하여 영적 깨달음이 결코 비이성적이거나 반지성적인 이상한 현상은 아니지요. 또 다른 표현으로는 영적으로 갈급한 죄인이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구원사역에 마음을 집중할 때 어느 순간 생명의 빛이 심령에 비치는 것이지요. 이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생명의 빛은 의식의 창문과 무의식의 심연을 통과하여 더욱 깊은 내면의 영까지 도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구원의 빛이 영혼에 비칠 때 우리는 표면의식 차원의 얄팍한 죄의식을 너머 우리의 전 존재 자체가 완전한 죄인임과 함께 구원의 은총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벽기도님! 안녕하세요?
제가 이 질문에 답을 할 능력이 없어서 인사만 하렵니다.
님의 질문은 두 가진데
1.은 죄론(타락)
2.는 구원론 입니다.
이 둘은 기독교의 교리로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기독론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다른 다비안들의 의견보다는
이곳 다비아의 여러 곳을 다니보면 유익한 답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칼럼니스트의 글이나 정목사님의 신학단상등을 보면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있습니다.
어쩌면 정목사님이나 다른 분들이 답을 주실수도 있겠지만, 답글로 답을 주기에는 너무 거대한 질문 같아서 한 번 끼어들었습니다.
도움을 못드리면서도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모쪼록 다비아에서의 생활이 신앙안에서 매일 매일 성장해가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