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시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참고할만한 글이 있을까요
검색어를 이것저것 두드려 찾아봤지만.... 눈에 잘 띄지 않네요.
실은 요즘 사무엘상하를 읽고있는데 (오늘 다 읽었습니다)
다른 때와 달리, 다윗이라는 인물의 연약함과 잔인함, 우유부단한 성품들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우리아를 죽인 사건은 아무리 봐도 끔찍스럽고 커 보이네요.
그런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사무엘하 22장 21절 -25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또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흔히 목사님들이 '인과응보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실때 인용하시는 대목인데요
예전엔 이런 시편을 읽으면 막 은혜받고 막 감격하고 막 믿었습니다.
근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하나도 은혜가 되지 않았] 습니다. ㅡㅡ;;
아무리 성경말씀이지만 다윗같은 사람이 저런 고백을 한다는 게
좀 뻔뻔스러워보이기도 하고.....
어떤 의도로 저런 말씀이 기록돼 있는건지 궁금하기만 하더군요.
내가 요즘 좀 삐딱해져갖고 성경말씀조차 삐딱하게 보고... 영안이 열려도 너무 열렸나..... ㅜㅜ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인간이 다 저렇다. 내세울 의란 하나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은총만으로 얻은 것들을 마치 '자신의 의'를 따라 갚으신 줄
착각하며 산다. 그러니 의로운 것 하나 없는 인간인줄 알고 겸손해라....
이렇게 이해한 게 맞게 이해한건지 모르겠지만,
좀 있으면 순서에 입각해서 [시편]을 읽게 될텐데
다윗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으니
예전에 막 미친듯이 은혜받았던 시편이
어떻게 읽힐지 사뭇 두렵고 걱정스럽습니다.
다윗과 시편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다비아의 참고할만한 글, 아시는대로 소개해주시고
여러분들의 고견도 듣고 싶습니다.
재미 있으신 분이군요.
영안이 너무 열렸다구요? ㅎㅎ
다윗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면
이제 성서를 직면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전에는 그냥 풍월을 읊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윗은 그렇게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놈도 아닙니다.
그냥 인간일 뿐이에요.
밧세바 사건 때문에 엄청 열 받았지요?
성서기자는 그 사건을 통해서
뭔가 다른 걸 말하려고 합니다.
그쪽으로 들어가는 중요하겠지요.
시편은 다윗의 시가 아니니
너무 연결해서 생각하지 마세요.
시편은 대개 바벨론 포로 후기의 작품이라고 보면 좋아요.
모리 님은 아무래도 신학책을 좀 읽으셔야겠어요.
여기 <검색> 창을 통해서
'추천도서'를 찾아 보세요.
성서신학 부류에 아래의 책이 있을 겁니다.
<장일선, 생명나무와 가시덤불, 전망사>
이걸 한번 읽어보세요.
얇은 책인데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지금 모리 님은 영안이 너무 열려서
신학책을 조금 컨트롤을 해야 할 단계이군요.
좋은 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그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다윗의 죄가 아무리 극악 무도하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다윗의 죄는 결코 작지 않고 또 작게 여겨서도 안 되지만... ....자신이 범한 죄 문제에 계속 골몰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p.221)
"시편 51편이 그것을 보여준다. 죄를 명명하여 드러내는 데는 겨우 네 개의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죄의 전체 풍경을 묘사하는 데는 이 네 개의 단어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기원하고 선포하는 데는 무려 열아홉 개의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몇 해만 세상사를 관찰해 보면 죄란 대개 그 전 죄의 재연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용서와 구원은 어떠한가?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용서와 구원은 매번 일어날 때마다 항상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p.222)
시편의 일부는 "다윗의 시"라고 봐야 합니다. 고고학적 사료가 부족하다고 다윗의 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시편의 일부가 다윗의 시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건강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다윗의 지극히 인간적인 미숙함과 갈등을 인정해야만 그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인도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쓴 시가 아닌 시편들, 예를 들면 "고라자손의 시"등에서도 다윗의 영성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깊이, 깊게 묵상해봐야 합니다.
시편의 영성, 그 깊은 의미를 대하는 바른 태도는 신학적인 관점으로, 성서비평가로써 그 의미를 쪼개고 분석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 의지하여 기도드리는 겸손한 왕의 모습과 시인의 모습을 묵상을 통해서 발견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권요안 님이 권장하신 유진 피터슨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저 역시 좋아하는 책입니다. 이 외에도 동일한 작가의 <응답하는 기도>라는 책과 월터 부르그만의 책들도 매우 유익합니다.
특별히 예수전도단을 시작하시고 현재는 안디옥국제선교훈련원 원장으로 계시는 오대원David Ross 목사님의 <묵상하는 그리스도인>도 매우 좋은 책입니다.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시139편을 오 목사님께서 직접 한절 한절 묵상하시면서 경험하신 내용과 영성신학적인 관점으로 시편을 대하는 자세를 제시합니다. 유진 피터슨이 시편을 "한편 한편" 전체적으로 대하는 묵상법을 제시하는 반면에, 오대원 목사님은 전체적 맥락 안에서 시편을 "한절 한절" 구체적으로 대하는 묵상법을 제시합니다. 오 목사님께 직접 시편에 대한 질문을 해보시고 싶으시면 안디옥선교훈련원 게시판에 직접 질문하시면 궁금증이 많이 풀리시리라 여겨집니다.
시편의 전체적인 주제에 대한 간단한 해석서로는 C. S. 루이스의 <시편사색>과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편이해> 등이 있습니다. 두권 다, 평신도나 신학자 모두에게 통하는 영성신학의 맥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두께가 아주 얇고 적은 분량의 신학용어를 사용하면서도 문학적-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해석서입니다.
부분적인 강해를 하신 이재철 목사님의 <시편강해> 테이프 설교집도 괜찮습니다.
보충적으로, 혹시 시편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인격철학에 대한 관심이 있으시다면, 유대교 철학자 마틴 부버가 쓴 <나와 당신>을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이 외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되시면 저에게 소개해주세요. 제 이메일 주소는 mr.psalmist@gmail.com 입니다. (시편에 대한 제 私見은 적지 않겠습니다. 샬롬)
이런 쳐죽일놈을 봤나 우리아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통이 치밀어 두 잡것을 생매장 시켜도 분이 안풀릴 정도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건 너무 하시잖아요 억울하게 죽은 우리아에 관해선 아무 말씀도 없고 저 나쁜놈은 용서받아 희희낙낙
왕권을 누리고 거기다 솔로몬이라는 아들까지 주어서 바세바 못된?은 왕비와 대비마마로 살게하시다니요
장경동 목사님 표현대로 하나님 이럴순믄 없읍니다하고 고함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은 여기서도 참으로 공평하시다 하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1:6절에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울 낳고 ........
이말씀을 보면서 우리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즉 다윗은 지은죄로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한
성경을 읽는 사람이 존재하는한 더럽고 추한 자신의 치부가 더러나게 되었습니다
밧세바 역시 마찬가지죠
그러나 우리아는 인류가 존재하는한 성경을 읽는 사람이 존재 하는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흔적은 나를 아는 사람이 존재하는한 남는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당하는 부끄러움 역시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했습니다
반면 우리아 처름 의로운 삶을 살다간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한 위로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를 하나님 앞에서 사람앞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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