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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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동시에 일상생활을 충실하게 해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 성실하고 충실하되, 세상을 사랑하지는 말고, 하나님의 세계를 늘 생각하며 살자. 그러나, 살다 보면은 꼭 어느 쪽으론가 치우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과 속, 세상과 천국, 육과 영, 이런 이원론적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어느새인가 그런 생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 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사는 것, 말은 쉽죠.
그러다가, 어제 첫날처럼님이 올리신 사형수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정목사님의 작년 3월 2일자 설교 ‘구원의 현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설교에서 목사님은 구원이 가난한 자에게, 눈 먼 자에게 임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애타게 기다리듯이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구원이 임한다구요.
그러자, 낮에 읽은 사형수들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삶을 살아갑니다. 당장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을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바랄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습니다. 이들만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크리스챤이 또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그들의 매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도 형이 집행되지 않고,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심정, 그 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할까요? 우리들의 매일 반복되는 당연히 오는 하루와는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아! 이들이야 말로 생명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사랑치 않고, 세상에는 절망하고 좌절하였으면서도, 하루하루는 누구보다 귀하게 감사하게 사는 생활, 이게 바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현재를 생명으로 사는 삶이 아닐까.
이들에게 우리가 하는 내일의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사형집행을 제외한) 그들은 잠들기 전에 오늘 더 나누지 못한 것, 오늘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햇볕을, 오늘 만난 풀들을 더 진하게 느끼지 못한 게 후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거구나, 이렇게 살기를 하나님은 바라시는거구나. 이게 그거구나.
이제 왜 가난한자에게 눈 먼 자에게, 구원이 임하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고난들이, 저주가 아니고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실존인 죽음이라는 선물상자를 끌러보지 않고, 옆에다가 치워두고, 매일 죽음을 보류하며 삶만을 생각하면은 결국에는 삶을 잃어버리는 거구나. 죽음을 옆에 끼고 있어야, 그때에서야 우리는 삶을 왜곡 없이 제대로 바라 볼 수 있는거구나.
귀한 깨달음을 있게 하신 목사님과 첫날처럼님께 감사드립니다.
현생에서의 "나" 가 완전히 해체되는 경험... "김진영" 이라는 이름이 적힌 라벨도 떨어지고... 나와 친숙하던 주변환경, 일상과도 작별을 고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다시 만나자는 기약없는 약속만을 뒤로한채 헤어져야하고, 내 어깨에 들어갔던 힘도 다 빠지고, 삶을 지배하던 욕망도, 분노도 다 힘을 잃어버려서 무의미해져 버리고, 나의 오감, 지식 등등 모든 것들이 지워져버리고, 내가 완전히 사라져버릴것만 같은 그런... 그 이후가 어떨 것인지 솔직히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생각만으로도 너무도 견디기가 힘들더군요... 고통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졌습니다... 캄캄한 방 안에 살짝 빛이 비치면서 옆에서 곤히 자는 하윤이, 집사람, 아기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이불을 차고 자는 하윤이에게 이불을 살짝 덮어주었습니다... '항상 함께할 것만 같은 사랑하는 이 사람들도 나의 궁극적인 의미는 되어주지를 못하는구나...' 이 사실이 느껴지면서 언젠가는 우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갈라놓을 그 이별의 시간을 생각하니 살짝 슬퍼졌습니다... 그런데 문득 함께하는 이 순간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정말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자에 대한 집착도 아닌, 욕심도 아닌, 그렇다고 무관심도 아닌...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의 처자와 부모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하신 말씀이 확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자신의 처자와 부모와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예수를 통해서라야 새롭게 얻을 수 있는다는 의미와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해체되고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을 예수라는 그 궁극적인 축복, 의미에 잇대어 있어야만 내가 사랑해야할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이 축복이 되고, 십자가가 생명을 주는 의미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