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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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예배 시말서
드림 교회 이현주
이번에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무슨 말할 내용을 미리 준비하고 예배에 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 앞에 서자,
모든 말이 저한테서 사라지는 게 느껴졌어요.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말이 안 나온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서 슬퍼졌습니다. 아니, 슬픔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어떤 서러움(?) 같은 게,
아니 서러움도 아닙니다, 아픔? 아니 아픔도 아니에요......
그래서 좀 울었습니다. 이게 뭐야? 왜 이래? 그러면서, 참아보려 했지만, 절제가 잘 되지 않았어요.
그때, “여기는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신을 벗고, 아직 불기와 물기가 남아있는 검은 아스팔트를 밟고 서있는데,
그러니까 하느님께 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서남북상하좌우내외 모든 곳에 계시는 하느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땅바닥에 앉아계신 하느님들, 어이없는 하느님, 외로운 하느님,
무능하기 짝이 없는 하느님, 좌절하는 하느님, 답답한 하느님,
어디로 갈 것인지 망설이는 하느님, 가슴 아픈 하느님,
뚜렷한 상대도 없이 화가 나있는 하느님, 그리고 초라한 하느님.....
그분들께 일일이 절을 올리며 제 몸에서 한숨과 함께 어두운 기운이 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 목사님이 제 뒤를 따라서 절을 하는 것 같았는데 분명하게 보지는 못했어요.)
길 위에 서있는 사람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온 세상이 제 절을 받아야 할 하느님 같았어요.
절하기를 마치고 제 위치(?)로 돌아오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하나로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본디부터 어쩔 수 없이 하나임을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둥글게 일으켜 세워달라고, 일부 목사님께 부탁했지요.
한분 한분에게 안기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은 한분 한분을 안아드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포옹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 못난 사람을 안아주시고, 등도 두드려주시고, 함께 흐느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 다정하게 안부도 나누고 싶었는데,
여러분한테서 듣고 싶은 궁금한 일들도 많았는데,
그런데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어요.
어느 기자가 뭐라고 묻기도 했지만, 아무 답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고, 서운하고, 허전하고, 서럽고, 아프고.... 그랬는데,
그래서 마냥 걷고만 싶었는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좀더 울고 싶었는데,
주님은 문득 사람 가슴 깊은 데서 나는 심장소리를 들려주셨고....
툭근 툭근 툭근.... 하는 그 소리로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라. 세상 모든 들리는 소리들을 들리게 하는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태고의 고요한 움직임을 보아라.
여기 내가 있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다.... 툭근 툭근 툭근...
그러니 너도 네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라.
선전하지 말고, 광고하지 말고, 은밀하게, 소리 없이, 멈추지도 말고, 한발 한발 걸어라.
거기 내가 있다. 거기 길이 있다... 툭근 툭근 툭근.....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부 목사님을 통해서 예배 장소를 일러주시던 그 순간부터
저의 에고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꼭 그리로 가야 하는 거냐고, 자신이 없다고,
계속 발뺌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단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몇 번인가 말씀드렸지요.
그러면 저는 이번 예배에 빠지겠습니다, 주님이 좋으실대로 하십시오.
그것은 저의 진심이었고....
자초지종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제(2, 8) ‘용산참사현장’에서 드린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허락 받고 펀글입니다.)
첫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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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를 읽으면 욥기 자체가 "고전극(古典劇)" 이라는 틀로 그 틀이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느낌을 많이 줍니다... 그래서 욥, 그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잘못 읽으면 전형화 되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반 목사님들은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욥은 "의인" 이라서 입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 라는 단순논리에 빠지기가 쉽상인 거 같습니다...
욥이 단면적인 의인이 아닌 것처럼, 그 세 친구들도 거기서 묘사된대로 악인들이 아닌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게 바로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친구에게 위안을 줄려고 노력하면서도 전혀 공감을 얻지 못했던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또한 밀양에서 나오듯 주인공 신애를 위로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애썼지만 결국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던 집사님, 장로님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아무리 친한 사람, 아끼던 사람이라도 그 고통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저는 무기력한 절대 타자가 되어버리더군요...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고통을 주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