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관련링크 :  
최근에 제가 모이는 모임에서 성경 공부를 했었습니다. 3차례에 걸쳐서 한 분이 발제를 하고 같이 들으면서 질답하는 식으로 했는데, 첨예한 문제가 "인간에게 과연 영혼이, 더 정확히 말하면 '영'이 있다고 하는 것이 맞는가?" 그리고 "영혼불멸설이란 것이 도대체가 맞는 말인가?" 이런 저런 격론이 오갔습니다만, 말과 말이 도는 느낌만 받았습니다...

그냥 덮어놓고 생각하면 이게 무슨 뚱딴지냐 할 것입니다만, 그렇게 만만한 문제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이야기 하면, 그리고 그 영혼이 불멸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이건 인간 스스로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자처럼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성서에 도대체가 "영혼" 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이런 저런 자료를 보았습니다... 물론 히브리어야 원어를 모르니 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어서 그에 관한 자료 하나를 보았는데, 결론은 "영혼" 이란 것은 히브리어 "루아흐" 의 번역어일 뿐이더군요...  차라리 "영"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할 때 내 "영혼" 도 "루아흐" 로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할 때 호흡도 "루아흐" 였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깊은 물)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그 위를 운행하셨다 는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영이 "루아흐" 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라는 구절에서도 이 "생기" 또한 루아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루아흐는 신약성서의 언어인 헬라어로는 프뉴마(pneuma)로 번역이 되었는데, 루아흐의 뜻을 적절히 살린 대체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라는 구절에서도 바람은 "프뉴마" 로, 성령은 "프뉴마토스" 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의미를 차별화 하기 위해서 변형태를 쓴 것일 뿐 프뉴마나 프뉴마토스나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에 숨을 거두셨다고 할 때 이 숨도 "프뉴마" 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에 예수께서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아라고 할 때, 성령은 또 "프뉴마 하기온" 으로 거룩한 이라는 뜻의 형용사 "하기오스" 가 프뉴마 뒤에 붙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령을 그냥 프뉴마로만 쓰는 것과는 좀 다른 경우입니다...

바울 서신을 비롯해서 육과 영을 비교할 때 소마와 프뉴마가 서로 대비되어 표현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이 말이 "프뉴마" 입니다... (여기에서 사실 영혼이란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건 마치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에 프뉴마란 "생생하게 숨을 쉬며 살아있다" 는 의미로 이해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이래 저래 쭉 루아흐, 프뉴마에 대한 실례들을 쭉 찾아보았는데요... 원 뜻은 바람이라는 뜻에서, 숨이라는 뜻으로, 또한 영이라는 뜻으로 전이되었다는 느낌이 딱 들었습니다... 영어에도 이런 현상은 종종 보이는데, 예를 들어서 current 라는 단어가 '해류', '물의 흐름' 이라는 뜻에서, currency 로 가버리면 '통화', '화폐'라는 뜻으로 완전히 전이되어 버립니다... 이건 물이 흐른다는 유비적 특성에서 돈의 흐름이라는 뜻으로 완전히 옮아 온 것으로, "유비적 차용, 전이" 라고 스스로 이름붙여 보았습니다...

결국 루아흐, 프뉴마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바람 숨이라는 단어에서 "영" 이라는 실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 유비적 패턴을 차용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란 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불고 싶은대로 부는 무의지성을 나타낸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숨이라는유비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편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외기와의 끊임없는 소통이라는 것이 읽혀졌습니다... 또한 숨이라는 것은 내 속의 탁한 것을 비우는 순간에 다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서 순간 순간 나를 새롭게 만들어 가면서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영"의 현상은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넘어선 상태에서, 내 것을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나와는 이질적인 그 무언가가 그속을 채우고, 그리고 그 이질적인 그 무언가가 나를 점점 이질화 해가는 것... 그래서 생명의 충만함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에서도 보았듯이 성서적으로도 "영혼" 이란 것의 존재 근거가 그렇게 탄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마", "프쉬케" 로 표현되는 인간의 자의식, 목숨 등등의 것이 "혼" 으로 표현이 될 수 있다면 모를까...

잔느 귀용이 말하듯이 영이 혼을 변화시키고 "혼의 부활" 을 이끌어 내어서, 결국 이 땅에서 이미 "궁극적 부활" 의 서막이 시작된다는 것은 의미가 참으로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것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의 내용도 지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영" 이란 것... 또한 나와는 너무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숨 쉬는 것, 공기가 전혀 의식이 안되듯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차성훈

2009.03.06 00:36:27
*.227.18.128

영혼불멸설은 성서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헬레니즘의 해석이 '끼어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영혼불멸과 성서가 말하는 '부활'은 개념이 다르죠.) 그리고 적어도 구약성서에서의 인간관은 영혼+몸 이런 구도로 나누는 것보다는 영혼-몸을 하나로 보는 개념이 더 매끄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영육일원론이지요. (뭐, 지식이 짧아서 교정해주십사;)

요즘 제가 생각하는 것은 '영'이 단순히 인간의 구성요소'만'을 지칭하는 것이 맞는가? 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서에서의 표현을 본다면 육체와 대비되는 '무언가'보다는, 한 인간의 전인과 함께 생활양식이나, 활동같은 차원으로 확장해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첫날처럼

2009.03.06 00:47:55
*.54.79.126

보통 "육" 이라고 하면, 이 것이 그냥 "몸뚱아리" 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이미 인간의 자기 지향적인(self - oriented) 정신까지도 다 포함하는 유기체적인 표현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육" 이라는 표현 속에 물질과 정신이 통합된 일원론적인 개념이 담겨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반면에 영이란 것은 자기 지향적이지 않은  (not self - oriented) 생명 현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기가 울어서 내일 다시 적어야 겠습니다...   

첫날처럼

2009.03.06 13:10:38
*.54.79.126

영육이원론이니 영육일원론이니 하면 이게 차성훈 님 말씀마따나 "영" 이 인간의 구성요소'만'을 지칭하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육적인 삶이니 영적인 삶이니 할 때, 이게 마치 무슨 일상 속에서 필부 필부로 살아가는 것은 육적인 삶이고, 수도원에서 수도사로서 그리고 선교지에서 선교사로서 살아가는 것은 영적인 삶으로 나뉘는 것처럼 그런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청소하시는 분이 길 거리에 아이들이 뛰어 놀면서 다칠까봐 유리 조각이나 위험한 것을 자신의 손을 베어가면서라도 하나 남김없이 말끔이 없애시는 그 삶이 영적인 삶이라면, 선교지에서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일을 벌려나가면서 현지인들을 마치 무슨 부속품처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 삶이야말로 육적인 삶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영성" 이란 것은 인간이 절대적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과 교감을 이루면서 자연인으로서의 땅의 인간이 하늘의 인간으로 자화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또한 "영적인 삶" 이란 것은 그 하늘의 인간, 그 도상(완결되지 않은 진행형)의 인간이 드러내는 존재적 향기로서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첫날처럼

2009.03.06 13:39:05
*.54.79.126

인간이 죽어서 영혼이 천국에 간다... 영혼이 부활한다... 이건 아주 복음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차피 성서에서 말하는 "몸" 이 벌써 인간의 물질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통합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영혼이란 표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성서는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이 어찌 어찌 된다고 하지 않고, 그냥 "잔다" 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것은 어쩌면 시간성 속에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바로 일어나지 않으니 그렇게 말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잔다" 는 표현도 그냥 단일체로서의 영혼을 지지하고 있지 않는 느낌입니다...

족는다는 것은 "나" 라는 개체성이 사라지면서 전체성의 국면으로 들어가고, 내가 지배를 받던 시간성과 공간성의 제약도 사라지고, 어떻게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 것 같습니다... 이 지상에서의 한계성 속에서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영원성" 을 말하지만, 잠정적으로 영원성이라고 표현되는 그 상태가 어떤 패턴일이지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개체적 인간의 죽음은 그 것 하나로도 성서에 말하는 "종말" 과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부활" 이란 것... 그 것은 이미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을 통해서 영글어 가던 알맹이... 그 진짜 알맹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그 죽음이라는 그 종말에 완연히 드러나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썩지 않는 불멸의 옷을 입게되면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통의 기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3653 편집디자인 자원봉사를 맡았습니다. file [8] 바우로 Mar 12, 2009 1984
3652 가부장제의 '모가지' file [45] 시와그림 Mar 10, 2009 7934
3651 하란다고 진짜 한다 file [11] breeze Mar 09, 2009 1485
3650 자유의 복음 갈라디아서를 읽고... [10] 첫날처럼 Mar 09, 2009 1957
3649 온 몸이 찢기우신 예수님! file [5] 저별과 달 Mar 07, 2009 1702
3648 서양인이 부르는 한국 가요~ [1] 이길용 Mar 07, 2009 1368
3647 동영상 강의 접속시 에러 관련 문의 [2] 주원아빠 Mar 07, 2009 2777
3646 월요일 저녁에 시간 되세요? [1] 소풍 Mar 07, 2009 1437
3645 그냥 가벼운 유머입니다. [3] 새하늘 Mar 06, 2009 1893
3644 어린이 주일학교 예배에 관해 [6] 정용섭 Mar 05, 2009 2745
» "靈" 에 관한 떠오르는 생각들... [4] 첫날처럼 Mar 05, 2009 1884
3642 인생무상 그리고 갈등 [6] 눈사람 Mar 05, 2009 1275
3641 3월3일에 들은 '시일야 방성대곡' [12] 나이스윤 Mar 04, 2009 1509
3640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3] 첫날처럼 Mar 03, 2009 2583
3639 아들 첫 면회후 아쉬움.. [5] 하늘바람 Mar 02, 2009 2186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