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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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축제와 함께한 몰트만 교수님의 강연은
3년이라는 짧은 재학 기간의 가장 값진 수확일 듯 싶습니다.
5,6년 전에 들었던 강의를 통해선 신앙과 신학의 상관이 무엇인지 고민케 해주셨고,
금번 강의를 통해서는 '기다림(Warten)과 앞당김(Eilen)'의 관계에 대해서 들려주셨습니다.
'삶을 위한 신학 - 신학을 위한 삶'
'종말 안에서의 시작'
* 신앙이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사는 것이며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으로도" 오시는
그분의 나라를 향해 우리를 활짝 여는 것이다.
* 기다림이란, 기다릴 수 있음 - 희망의 기술(Kunst der Hoffnung)이다.
* 기다림이란, 성취의 시간이 올때까지 긴장감 속에서 깨어 살아가는 것이다.
"기다림과 앞당김, 그것은 저항하고 선취하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생명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의 미래를 확신하게된다"
과연 그러할까... 하나님의 나라가 땅으로 오신다는 말씀에 붙잡히는 하루네요.
인간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해 나갈수 있을지...
그렇게 달려온 희망의 소리는 여전히 '희망'으로 들려지고 있는지...
예수의 부활 사건에 달려있는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 하나님 존재는
그렇게 희망으로만 들려지는 것인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하나님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인간이 맞고 있는 역사의 긴장이 과연 그런 그렇게 이야기될 수 있을지...
음, 어느날보다 즐거운 축제의 첫날이네요...^^
3년이라는 짧은 재학 기간의 가장 값진 수확일 듯 싶습니다.
5,6년 전에 들었던 강의를 통해선 신앙과 신학의 상관이 무엇인지 고민케 해주셨고,
금번 강의를 통해서는 '기다림(Warten)과 앞당김(Eilen)'의 관계에 대해서 들려주셨습니다.
'삶을 위한 신학 - 신학을 위한 삶'
'종말 안에서의 시작'
* 신앙이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사는 것이며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으로도" 오시는
그분의 나라를 향해 우리를 활짝 여는 것이다.
* 기다림이란, 기다릴 수 있음 - 희망의 기술(Kunst der Hoffnung)이다.
* 기다림이란, 성취의 시간이 올때까지 긴장감 속에서 깨어 살아가는 것이다.
"기다림과 앞당김, 그것은 저항하고 선취하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생명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의 미래를 확신하게된다"
과연 그러할까... 하나님의 나라가 땅으로 오신다는 말씀에 붙잡히는 하루네요.
인간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해 나갈수 있을지...
그렇게 달려온 희망의 소리는 여전히 '희망'으로 들려지고 있는지...
예수의 부활 사건에 달려있는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 하나님 존재는
그렇게 희망으로만 들려지는 것인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하나님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인간이 맞고 있는 역사의 긴장이 과연 그런 그렇게 이야기될 수 있을지...
음, 어느날보다 즐거운 축제의 첫날이네요...^^
차성훈님, 처음으로 얼굴 봤네요.
차분히 말씀 잘하시던데, 완젼 부럽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질문에서 약간 벗어나긴 했지만,
기다림과 앞당김이란 것이 대립적인 개념은 아닌지,
두 사상의 연속된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좋은 질문이었는데, 답변이 아쉬웠죠.
어여 독어 공부해야겠어요. 직접 알아들을 수 있게요 ㅎㅎ
기다림은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오히려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그 능동적인 기다림이 생명의 영이 역동하는 공간, 마콤 의하나님의 공간에 참여하는
인간의 앞당김으로 인해.... 선취된다?
제가 의아했던 것은 과연 인간의 앞당김, 선취라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부활사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 계속되는 창조행위와 어떻게 연관되고 구분되는가 였는데요... 언제 이신건 교수님 찾아뵈면 여쭤봐야죠.^^
대학원생들은 좋겠습니다~ 재밌는 강의도 많고요.
어쨌든 얼굴 뵈서 홀로 반가웠습니다~^^
차분히 말씀 잘하시던데, 완젼 부럽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질문에서 약간 벗어나긴 했지만,
기다림과 앞당김이란 것이 대립적인 개념은 아닌지,
두 사상의 연속된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좋은 질문이었는데, 답변이 아쉬웠죠.
어여 독어 공부해야겠어요. 직접 알아들을 수 있게요 ㅎㅎ
기다림은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오히려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그 능동적인 기다림이 생명의 영이 역동하는 공간, 마콤 의하나님의 공간에 참여하는
인간의 앞당김으로 인해.... 선취된다?
제가 의아했던 것은 과연 인간의 앞당김, 선취라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부활사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 계속되는 창조행위와 어떻게 연관되고 구분되는가 였는데요... 언제 이신건 교수님 찾아뵈면 여쭤봐야죠.^^
대학원생들은 좋겠습니다~ 재밌는 강의도 많고요.
어쨌든 얼굴 뵈서 홀로 반가웠습니다~^^
실은 이신건 교수님한테 횡설수설했다고 타박맞았다능ㅠ.ㅠ
사실 대립이라는 말을 쓴 건 좀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묵시적 개념으로도, 기다림은 단순히 '입다물고 쥐죽은 듯'의 개념은 아니죠. 다만 적극적인 '혁명'의 동력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이해가 기다림과 앞당김을 구분하려고 하는 제 발상의 시작이거든요. 묵시 사상이 그랬듯, 기다림이 극단화되면 피안으로의 도피를 지향하게 되고(그러니까 현세의 무용론이나 내세의 천국론이 강조될 테고), 앞당김이 강조될 때는 (폭력이건, 유혈이건) 혁명의 프로파간다가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이 두 개념이 해석자들에 따라서 상당히 자의적으로 이해된 감도 있구요.(실제로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이 이후 정치 신학적 맥락으로 이해되었다고도 하구요.)
뭐랄까, <-> 이런 구도보다는 좀 더 각도가 좁혀진 V정도의 뉘앙스로 말하고 싶었는데 어휘력이 부족했습니다.ㅠ.ㅠ 시간만 넉넉했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는데 교수님이 워낙 눈치를 주셔서ㅠ.ㅠ
사실 대립이라는 말을 쓴 건 좀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묵시적 개념으로도, 기다림은 단순히 '입다물고 쥐죽은 듯'의 개념은 아니죠. 다만 적극적인 '혁명'의 동력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이해가 기다림과 앞당김을 구분하려고 하는 제 발상의 시작이거든요. 묵시 사상이 그랬듯, 기다림이 극단화되면 피안으로의 도피를 지향하게 되고(그러니까 현세의 무용론이나 내세의 천국론이 강조될 테고), 앞당김이 강조될 때는 (폭력이건, 유혈이건) 혁명의 프로파간다가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이 두 개념이 해석자들에 따라서 상당히 자의적으로 이해된 감도 있구요.(실제로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이 이후 정치 신학적 맥락으로 이해되었다고도 하구요.)
뭐랄까, <-> 이런 구도보다는 좀 더 각도가 좁혀진 V정도의 뉘앙스로 말하고 싶었는데 어휘력이 부족했습니다.ㅠ.ㅠ 시간만 넉넉했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는데 교수님이 워낙 눈치를 주셔서ㅠ.ㅠ
원래 질문하려고 했던 건 '기다림'과 '앞당김'의 줄타기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다소 윤리적 차원의) 문제 의식이었는데, 다른 분의 질문하고 믹스가 되어서 좀 두리뭉실하게 넘어간 감어 아쉽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질문을 만들기 위해 주말동안 원고를 미리 읽으면서 든 생각은, '기다림'이라는건 굉장히 묵시적인 용어이며, '앞당김'이라는건 반대로 굉장히 구약의 예언적 전통에 관련된 부분이라는 것이었지요. (과연 두 전통의 사상이 연속성을 가지는가도 질문하고 싶었지만...아쉽;) 아마 몰트만 교수님의 신학이 침멀리 같은 구약신학자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암튼, 이번 강연회는 제게도 참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