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스승의 날에..

Views 1435 Votes 0 2009.05.16 2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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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학교로 자리를 옮겨 여중에서 교사의 길을 가고 있는 요즘..

올해 처음으로 담임을 맡고 있는 제반의 수빈이가 얼마 전 사고를 쳤답니다. 수빈인 원래 노는 아이입니다.
학기초 수빈이의 1학년 담임쌤께서는 제게 살짝 수빈이에 대한 정보를 건네주셨습니다.

수빈이에겐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오빠가 있는데 인근 남중에서 이름을 꽤나 날렸었다고 합니다.
오빠 덕에 1학년 때부터 우리학교 윗 선배들도 수빈이를 주목하고 수빈이 일당은 소위 한두번 이상씩
이미 다 사고의 전적으로 학생부에 이름이 올라있고 경고조치를 받아 놓은 아이들이였습니다.

마치 활화산 같은 아이 하나를 떠안은 것 같은 심정이 된 저는 학기초부터 수빈이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수빈이는 다행히 활달하고 귀여운 구석도 많은 놈이었습니다.

제 담당과목 시간인 영어시간이건 학급에서건 수빈인 저의 관심을 제일 많이 받는 아이였고,
가장 많이 친근하게 불려지는 이름이었고,
가장 많이 눈을 마주쳐 웃어 주는 아이였습니다.

수빈이도 그런 저의 사랑이 느껴지는지 곰살맞게 저를 잘 따라 주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담임인 제가 반 아이들에게 하는 농담들이 수빈이를 통해 다른 반에 있는 수빈이 일당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이 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반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준비하며 반티를 맞추겠다고 수선을 피웠습니다.
담임인 저도 반티를 입어줘야 한다며 티셔츠 사이즈를 묻기에, “글쎄.. 쌤은 몇 사이즈로 할까” 하고 잠시 망설이는 순간..
 아이들은 제 대답은 듣지도 않고 “쌤도 90이면 충분해요”하고 지들끼리 결론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장난이 동한 저는 “아니야.. 3학년 선배들이 쌤보고 약간 글래머라고 했던 말이야. 더 큰 사이즈로 주문해줘“
하고 손시레를 쳤더니만 수빈이가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바로 수빈이 일당들에게 그 이야기가 퍼지고 말았습니다.

그후부터 수빈이 일당들은 지네들 중 제일 종례가 늦게 끝나는 우리반 교실 앞문에 대롱대롱 무말랭이처럼 매달려
수빈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종례가 끝나자 마자 우리 교실문을 열어젖히고 기다렸다는 듯,
“하이! 글래머 티이쳐”하고 고함에 가까운 합창의 인사를 해댑니다.

수빈이가 나를 따르니 지네들도 덩달아 어디서든 저만 보면 달려옵니다.
누가 있건 없건 글래머 티이쳐를 외쳐되며..(이놈들 때문에 무지 쪽팔리기도 하답니다.)

공부와 담을 쌓고 사는 이 애들에게 영어시간은 제일 기세가 등등해 지는 시간입니다.
이놈들도 함께 데리고 수업을 하고 싶은 욕심에 학기초부터 영어시간에 인사는 이 아이들이 도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 수빈이와 수빈이 일당들에 조금은 특별한 애정을 쏟아 왔었습니다. 

학기초 수빈이와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에 대한 약속도 했었습니다.
하나는 친구들 삥(표준말로 돈)뜯지 않는 것.
둘째는 친구들을 때리거나 왕따 시키지 않는 것.
세 번째는 성장에 해로운 담배피우지 않는 것.
(다행히 수빈인 어른이 되면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낳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에 담배는 안 피운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드디어 2학년부에 집단 폭력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수빈이 일당이 같은 학년 학우 하나를 집단으로 때렸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 속에 수빈이가 끼어있었고 주범 노릇을 한 녀석 다음으로 수빈이는 부상학생에게 제일 많이 가해를 입혔습니다.

피해학생의 얼굴을 때린 탓에 아이는 눈을 조금 다쳤고 자칫 잘못했으면 아이의 눈이 실명될 큰 사고가 될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빈이 일당이 한 아이를 손봐주게 된 내막을 알고 보니 기도 안 찰 만큼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첫날은 수빈이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많이 속이 상해 왜 그랬던 건지 아이에게 물어보지 조차 않았습니다.
둘째 날은 저의 방과후 수업을 듣는 수빈이에게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
“ 박수빈, 오늘은 똑바로 수업 좀 하지”
제 딴엔 몹시 불쾌한 심기를 담아 던진 짧은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열다섯 살의 나이가 아직 철없는 때라 해도 참 밉고 배신감마져 느껴져 예전처럼 수빈이에게 곱게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수빈이는 사고가 학교에 제보된 날부터 학생부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부모님도 학교에 불려오고 담임인 저도 같이 마음 고생이 시작 되었습니다.

다음 주 열릴 학교 징계위원회에서 수빈이가 받을 처벌을 염려하는 저나 수빈이 부모님은 속이 타 들어가고 있건만 아이는 그닥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학생부에서 교실로 돌아오면 예전그대로 반 아이들과 아무 일도 없는 듯 떠들고 먹고 노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기도 안 죽는지 다음 주에 있을 체육대회도 반애들보다 지가 되려 큰 소리를 치며 설레발을 쳐댑니다. 

저만 소심한 어른처럼 사고까지 치고 무사태평까지 한 이 아이를
이제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심정이 되어 망연하게 며칠을 지내 왔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스승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맘고생을 하고 나니 스승에 날을 맞는 저의 마음은 설레임보다 씁쓸함이 앞섰습니다.
내가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걸까.. 아이들을 만난 지난 3개월이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갈수록 회의적인 마음과 자신 없는 마음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어제는 학교에서 아침에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간단한 스승의 날 행사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강당 집합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교실로 내려가 보니 이상하게도 교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어라.. 스승의 날이라고 요놈들이 기특한 짓을 다하네. 지네들이 알아서 강당으로 집합 할 줄도 알고..‘

제멋대로 짐작을 한 저는 다시 교무실로 돌아가 간단한 용무를 보고 잠시 뒤 아이들이 있는 강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교무실 층계를 내려가 강당이 있는 옆 건물로 이동하기 위해 구름다리를 막 건너려는 순간,
구름다리 저편 30미터 전방에서 한무리의 우리 아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놈들 아직까지 강당으로 이동도 않하고 저기서 뭐하고 있는거지’

막 호통을 치려는 순간 아이들이 제게로 걸어오기 시작합니다.
맨 앞에는 수빈이와 그동안 또 한명의 잦은 말썽을 피웠던 윤지가 나란히 케익과 한아름의 꽃바구니를 들고 있고
이들의 양옆과 뒤로는 나머지 우리아이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구름다리를 건너 네게로 오고 있는 아이들의 입에서는
39명이 함께 부르는 스승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순간 뜻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행동 앞에서 눈앞이 잠시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이 황당한 감동을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고 주책없이 아이들 앞에서 눈물까지 비쳐질세라
전 함박 웃음을 지며 제게로 다가온 아이들의 등을 떠밀며 어서 속히 강당으로 가야한다고 재촉을 부렸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은 저에게 스승의 날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 주고자
아까부터 좁은 화장실에 모두 숨어서 제가 하는 짓을 숨죽여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식을 마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 보니
아이들이 2개의 커다란 4절지에 한마디씩을 적어놓은 대형 카드를 건네줍니다.
얼핏 내용을 보니 수빈1, 수빈2가 눈에 들어옵니다.
수빈이는 한번의 감사 인사로는 뭔가 모자랐나 봅니다.
혼자서 지 이름을 두 번씩이나 써대며 사과와 아부와 사랑이 넘치는 말들을 대문짝 만한 글씨로 잔뜩 써놓았습니다.

그리고도 모자란 마음이었는지 따로 노트(^^)를 뜯어 사과편지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온 수빈이를 전 결국 와락 안아주고 말았습니다. 

수빈이와 혼자서 냉전을 시작한지 삼일째 날에
 결국 저의 마음은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선생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더니 그말이 정말 맞는가 봅니다.

교사의 길로 접어들어 처음 맞은 스승의 날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profile

정용섭

2009.05.16 22:33:56
*.139.165.36

 겨우살이 님,
글을 읽다가 내 눈 앞도 흐려졌소이다.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없는 사람인데
수빈이를 향한 겨우살이 님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 탓인가 보오.
그 길을 잘 가보시구료.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소중한 일이 없소이다.
그나저나 징계위원회에서
수빈이가 버텨낼만한 징계가 나와야할 텐데....

겨우살이

2009.05.17 10:56:56
*.173.60.36

목사님,

저도 다른 분들처럼 목사님과
스승의 날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시간을 만들지 못해 너무 아쉬웠습니다.

지나온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전 감사하게도
참 잊지 못할 특별한 스승들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가르쳐 준 삶의 비젼과 가치
그리고 옛 스승들게 받았던 사랑은
뒤늦은 교사의 길에 서있는
제게 늘 큰 거울이 되어주는 듯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주님께 참 감사한데
이렇게 큰 신앙의 스승까지 만나게 해 주시다니...

목사님이 먼저 가고 계신 그 길을
저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걸음씩이라도
열심히 따라가 보기를 소망해 봅니다.^^

목사님.. 많이 많이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profile

희망봉

2009.05.17 08:55:54
*.109.68.16

겨우살이님!
한껀 하셨네요~^^*
같이 놀아만 줘도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이죠
수빈이와 일당은 먼 훗날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 하겠지요 
믿음의 대상도 아닌 것(아이)들을 믿어주고
인내하기가 그리 녹녹치는 않을 겁니다
축하드리고 파이팅을 외칩니다~^^* 

겨우살이

2009.05.17 10:58:34
*.173.60.36

희망봉님,

자세한 건  모르지만
희망봉님은 청년사역이나 지도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계실 듯한
포스가 느껴집니다.

정말 힘들어서 선생짓 못해먹겠다
싶을때..
희망봉님께 울면서 달려가겠습니다.^^

profile

새하늘

2009.05.17 19:34:20
*.126.124.163

겨우살이님!
저도 글을 읽는 순간부터 눈이 흐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무협 시리즈 영화"新사조영웅"를 연속 이틀동안 무리하게 컴퓨터로 봐서 그런지 글이 왔다갔다 하네요.

그렇지만 겨우살이님이 전해주시는 수빈이의 이야기를 보면서 건강한 학생으로 성장하리라 기대를 해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profile

웃겨

2009.05.17 21:40:13
*.162.16.144

글을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듯 했어요.
예쁜 선생님과 짖꿎은 아이들...그 속에서 피어나는
잔잔한 감동얘기.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네요.
구름다리를 건너는 선생님께  숨어있던 아이들이 꽃다발을 건네는...
저도 같이 가슴이 뭉클해요. 겨우살이님 힘들더라도 잘 벼텨내면서
그런 아이들 곁에 좋은 선생님으로 남아주세요. 화이팅~!!
profile

유니스

2009.05.17 22:12:17
*.238.225.87

오후라서 콘택트 렌즈가 건조해져서 까칠했는데
겨우살이님 글 덕에 안구에 습기가 차서 윤활이 좀 됩니다.
영화의 아름다운 한장면 같으나
글 전반에 흐르는 겨우살이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힘이 드실 것 같습니다.
가르침의 길을 걸어가시는 겨우살이님께
지혜로운 사랑과 사랑스러운 지혜가 충만하시기를...
근데 저는 홀로서기님과 겨우살이님이 헷갈려서
자꾸만 미슬토님이라고 불러집니다..^^


나이스윤

2009.05.17 22:40:30
*.99.205.175

겨우살이님~ 궁금한거 하나. 맞은 아이는 어찌 지내고 있나요??
수빈이에게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버텨낼 만한 징계로 마무리되고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람과
동시에 맞은 아이는 몸과 마음으로 입은 상처가 버텨낼 뿐만 아니라
완전히 잊어지기 까지 되도록 해결되기를 더 크게 바래봅니다.
profile

이방인

2009.05.18 10:44:33
*.118.129.226

"선생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네요. ㅎㅎ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 이런 속담만 알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도 올곧은 길을 걸으시기를...
겨우살이님의 사랑이 전달되어 수빈이가 맑고 순수한 아이로 거듭나기를....

겨우살이

2009.05.23 01:26:17
*.173.60.65

위 꼭지글을 읽고 수빈이의 학교 징계위 처벌 결과를 궁금해 하셨을 분들을 위해 늦은 댓글을 답니다.
수빈인 지난 월요일부터 2주간의 교내봉사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기간 동안은 수업도 들어오지 못하고 학생부에서 지도를 받게 됩니다.

그래도 참 다행이랄 수 있습니다.  애초 등교정지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말이 나왔었는데 수빈이가 1학년때 큰 사고를 친 전적이 없고 부모님과 담임인 저 모두 수빈이의 선처를 바라는 진술을 징계위에서 한 것이 고려되어  좀더 징계수준이 낮춰질 수 있었습니다.

1학년때 이미 사고를 친 전적이 있고 이번에 주도적으로 피해학생을 구타한 다른 수빈이 일당 중 몇 명은 2주동안 기관에 가서 사회봉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피해학생은 다행히 종합병원 검사 결과 큰 부상은 아니란 진단이 나왔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내 봉사 처벌을 받게 되었답니다. 피해 학생도 처벌을 받게 된 이유는 싸움의 발단이 피해학생이 수빈이 일당 중 한 명을 수학여행 중 툭툭 때려서  아이들의 집단폭력의 발단을 제공한 주범자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오늘은 학교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수빈이 일당도 오늘만큼은 학생부의 허락으로 반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체육대회를 하였습니다. 오늘 수빈이와 그 일당들 설치는 것을 보니 벌써 모든 일은 잊혀진 먼 과거의 일이 된 듯 보이더군요.

사고를 친 뒤 지난 얼마동안 입에서 글래머 티이쳐란 말이 쏙 들어가고 슬슬 내 눈치를 살폈던 요놈들이 오늘은 슬슬 기지개를 다시 펴는 듯 합니다. 그중 한놈은 어디서 녹아가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나타나 ‘선생님 드세요’하며 제앞에 불쑥 내밀어 줍니다. 또 한 놈은 어디서 바람처럼 달려와 채 피할 새가 없던 저를 우악스럽게 꼬옥 안아 주더니만 신이 난 듯 줄행랑을 칩니다.

미워할 수도 없게 만드는 요놈들..
아무리 생각해도 주께서 제게 애물단지를 대형 셋트로 선물해 주신 것이 틀림없는 듯 싶답니다.ㅎㅎ

까마귀

2009.06.11 05:59:11
*.199.105.133

월간다비안  잡지를 통해 귀한 글을 읽었습니다.
처리해야할 공문 더미 속에서도 교사로서의 이 초심
잊지 말고 잘 해 주세요.
저도 딸애를 키우면서, 겨우살이님 같은 선생님 만났으면 좋겠네요.
귀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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