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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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동들은 실내로 초대해 무릎까지 내주시며 사진촬영에 응하시고
초등학생들과 똑 같은 높이로 앉으셔서 자연학습도 경청하시고...
불쑥 뛰어든 소녀에게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어린 유치원생들에게도 머리숙여 인사를 나누시고...
마을을 방문하신 장애 노인에게 기꺼이 다가가 사진촬영을 함께 하시고...
마지막 가신 그 봉화산 뒷길을 등산하시다 식사 중인 부부의 김밥까지 뺏아드시고...
친환경 농작물 재배 교육에 농민들과 똑 같은 자리에 앉아 교육도 받으시고...
주민이 내민 음료수를 덥석받아 시원하게 들이키시고...
급조된 초라한 술상조차 감격해 하시며 받아드시고...
어린 여고생들에게도 허리를 깊숙히 숙여 인사하시고 ...
관광지 휴게소에서 시민이 내민 강냉이 튀김을 천진하게 받아드시고 ...
연로하신 할머니를 발견하시고 몸을 낮춰 안부를 물으셨고 ...
대통령 전용 버스조차 마을 사람들의 나들이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으시고 ...
초라한 시골 식당의 소박한 밥상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시고 ...
길건너다 마주친 군밤장수 아저씨에게도 해맑은 웃음을 선사하시고 ...
자신을 낮춰 얼굴이 가려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고...
사저를 지키는 어린경찰의 경례에도 머리숙여 인사를...
퇴임하자 마자 국가기록사본문제로 현재 대통령이라 불리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때도 이러하였는데 형은 구속되고 온가족이 검찰에 불려나가고
오랜친구와 동지들도 모두 구속된 상태에서 당신에게도 오랜 검찰의 수사가
어떠하였는지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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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우리 쪽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 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 번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6일
16대 대통령 노 무 현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잘 알고 계셨던 분이셨지만 가장 소중한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마지막 사랑을 실천하신 분으로 기억하렵니다.
이제 그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은 더 이상 그 분의 뜻이 아닐거라 생각하며, 오늘부터는 울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생각이 떠오르면 눈물이 나지만...... )
그분의 뜻대로 국민이 주인되는 세상이 되기를, 대한민국의 진보를 멀리서나마 기도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노대통령님, 이제 편히 쉬소서..할 바를 다한 당신, 이젠 그 곳에서 편하실거라 믿습니다
정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왜 이렇게 일찍 가셨나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고 참아보시지 그랬어요..
당신이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자전거에
태운 손녀가 클 때쯤이면 이루어 질 수도 있었을텐데요..
게시판에 이런거 올린다고 오늘만은 뭐라 하지 말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