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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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에 이번 주에 올라온 글이 있어 한번 옮겨 봅니다. <몰락의 에티카>라는 책으로 최근 문학계에 신선함을 던져준 신형철씨가 김경주의 시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한 글입니다. '시 읽어주는 남자'라는 꼭지의 글이지요. '박연차 게이트'의 수사 발표로 인한 허무함,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살하라'는 이 정부 지지자들에 대한 황당함.
그들에게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누군가의 말대로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그 이하인 그들에게 말이죠.


» 1990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3당 통합 연설 중 항의하고 있다.
  

한겨레21(09. 06. 12)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순결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이미 많아서 누추한 말 보태기가 버겁다. 그러나 아니 할 수가 없다. 고인을 ‘미화’하지 말라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있다. 미화는, 없는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일이지만, 고인은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마음들은 이해할 만한 마음들이다. 고인의 잘잘못을 냉철하게 따지지 않고서는 고인을 추모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일정 부분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잘못을 범했으니 무작정 감상에 젖지들 말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옳다. 그들은 늘 옳다. 그래서 싫다. 그저 내가 아는 바와 믿는 바를 쓰겠다.  

고졸 출신 변호사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정치판에 나가 자신을 내던져가며 지역구도와 싸웠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들과 싸웠고, 권력을 국민에게 넘겨주고 권위마저 잃어버려서는, 그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비판을 모조리 감내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자신이 지켜온 가치가 무너지자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그렇게 살았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야 하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어 그렇게 죽었다. 나는 늘 문학은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에 맞서 ‘몰락’의 의미를 사유하는 작업이라고 믿어왔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 노무현의 몰락이 내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문학적이다.

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개의 인간에게는 그의 삶을 떠받치는 척추 같은 것이 있다. 고인의 그것은 ‘깨끗함’이었을 것이다. 권력은, 한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 바로 그 척추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을 잡아들였고 가족들을 소환해 목을 졸랐다. 가족과 측근이 돈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그의 말을 나는 믿는다. 억울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목을 조였을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주변이 고통받는 것을 묵인해야만 했고, 죄책감을 덜려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진퇴양난이었을 것이다. 억울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해결하는 길은 자살뿐이라고, 5월23일 새벽에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밤이 나는 아프다.

“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느껴본 자들은 안다/ 자신이 지금 울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울음이라는 사실을/ 이 울음으로/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내 눈 속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밤을/ 마중 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시인 김경주가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발표한 추모시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의 전반부다. 이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 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아마 많이들 그러했으리라. 5월23일 저녁이 되어서야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누가 그를 죽였을까’로 생각이 바뀌면서였다. 비열한 권력과 그 하수인들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워서, 그들 밑에서 백성 노릇 하는 일이 수치스럽고 서러워서 울었다. 그날 내가 마음속으로 조문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욕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릅쓰고 말하거니와, 그날 죽은 것은 머리가 없는 이명박 정부와 영혼이 없는 검찰과 심장이 없는 언론이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그들을 내 안에 잔혹하게 장사 지냈고 조문하지 않았다. 역사가 그들을 부관하고 참시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하나씩의 정부, 하나씩의 검찰, 하나씩의 언론이 되어야만 하나.(신형철 문학평론가) 

09. 06. 13. 


진주

2009.06.14 22:26:31
*.226.188.131

그 날.... 오전에 무심코 켠 인터넷에서 문득 눈에 잡혔던 그 글자들, 공의를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몸바치셨던 그 분의 죽음에 차마 붙일 수 없는 야비한 그 단어들, 인터넷 사이트들을 순간적으로 돌려보며 확인해보며, 충격보다 더 큰 것들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손발이 떨렸던 그 기억들. 나도 그 날 하루종일 울지 못했습니다. 분노와 충격으로 심하게 떨리기만 했습니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폭포같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군요.

Transzendental

2009.06.15 09:46:50
*.67.83.72

진주님, 글을 읽으니 저 역시 그날이 생각나고, 진주님의 떨림도 전해오는 군요. 그날의 눈물과 애도는 신형철의 말 그대로, 그 분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의 싸움'이라는 말이 절실히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그 눈물과 밤을 기억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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