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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예수전"

Views 2368 Votes 0 2009.06.25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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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력 좋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가업을 이을 청년이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며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유다를 비롯하여 이름 없는 여동생들까지 하면 많았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빌라도를 총독으로 세운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방 땅 이두메아 출신의 헤롯이 분봉왕으로 임명받아 유대 땅을 다스리면서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내용적인 자치권을 부여하던 복합적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헤롯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아서 유대의 어용 종교인들로 구성된‘헤롯당’이라는 사조직을 운영하여 자신이 유대적 적통을 지닌 자라는 선전을 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 당시는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제정일치 사회였던 관계로 종교 지도자가 바로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유대의 “국회”라 할 수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의 구성은... 

본토 출신의 토호세력이자 사독 계보의 제사장들이었던 “사두개”파가 있었는데, 그 들은 정통파를 자처했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재산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 로마와 가장 협조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다음으로 평민적 종교 운동가들로서 야당 격인 바리새파가 있었는데, 니고데모와 아리마태아 요셉도 바리새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죠. 예수와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스펙트럼이 넓어서 젤롯과 마음을 같이 하는 부류에서 사두개화 된 바리새인들까지 존재했다고 하네요... 

산헤드린의 수장인 대제사장직은 서로 돌아가면서 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가 죽을 당시의 대제사장은 카이아파스 였는데, 직전까지 18년간 대제사장을 맡았던 안나스의 사위였던 것을 보면 이게 세습, 돌려막기도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산헤드린에서는 벗어나 있는 유대교 분파로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엣세네파는 이미 현실에서는 희망을 끊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은둔 수도원 운동을 이끌었고, 젤롯파는 A.D. 70년 로마의 추격에 결사 항전으로 맞서다 집단 자결을 했던 마사다 항전을 이끌었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실 이스라엘 국가 회복과 정치적 메시야 옹립을 지상 목적으로 했던 종교적 저항 단체였습니다... (마사다 항전의 저자인 로마의 역사가 유대인 요세푸스는 바리새파 사람으로 유대의 독립전쟁에 가담하였다가 패하자 투항하고 완전히 변신한 유대인입니다. 뭐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독립운동 하다가 친일파로 변신한 것과 비슷한데, 그는 변신의 댓가로 로마 황제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고 토지와 재물을 하사받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자서전에 소상하게 미화되어 있기도 하지요...)


예수의 부모들이 유월절 및 각종 절기에 예루살렘을 찾아서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렸던 것을 보면 유대교라는 것은 요즘처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종교라기보다는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활방식과 문화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도 그 영향권 안에 들어 있었구요...


그는 아주 평범한 출신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아주 영특하고 비범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의 부모는 예루살렘에 갔다가 어린 예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정신없이 찾던 중에 그가 성전에서 어른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것을 발견하자, 아이를 찾은 기쁨과 안도감에 소리치며 예수를 부르던 부모에게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모르셨어요?” 하며 어른스런 소리를 하던 것을 보면, 그는 생각이 깊었던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에게도 예수는 특별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누가 복음서 초입에 마리아의 고백을 읽어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 땅에서 쓰던 말이 고대 히브리 방언과 시리아어에 걸쳐 있었답니다. 마라나타, 탈리다 쿰,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이런 말들이 다 고대 시리아 어였다고 하네요... 예수를 문맹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제 심증에는 예수는 회당에 비치되어 있는 시리아어로 된 두루마리 구약 성서를 읽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회당에서 성서를 탐독하며 하나님과 그의 운명적인 연대감을 직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목수의 아들이었던 그가 어떤 부름을 받고 역사의 현장 속에 나타납니다... 공부 많이 했다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도 그의 지혜에 깜짝 깜짝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유식한 형식 논리에 비해서 예수의 이야기는 내용이 풍부했고, 궁극적이었으며,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 땅 곳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처럼 퍼뜨리며 다녔습니다... 그 당시는 질병이 죄의 결과라는 관념이 팽배해있던 시대인데다, “죄” 라는 관념은 종교 지도자, 즉 지배자들이 민중들을 쉽게 얽어매고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이었는데, 예수는 보란 듯이 죄 사함 사역을 행했고, 신성모독으로 걸어 넣으려던 종교인들 앞에서 그들을 낫게 하여 그들이 전혀 할 말이 없도록 만들어버렸죠... 왜냐하면 그들이 눈앞에서 나아버린 것은 바로 그들의 형식 논리적 언어로 이야기하면 죄가 없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젤롯파에서는 그를 탐냈을 것입니다... 가리옷 사람 유다가 젤롯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젤롯당 출신의 시몬이 예수를 따랐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는 그 당시에 죄인들로 낙인찍힌 약한 자들을 보듬으며 천연덕스럽게 어울리고  먹고 마시면서 율법의 경계선을 들락날락 했죠... 창녀들, 세리들, 천덕꾸러기들, 백부장, 자주 껄끄러웠지만 바리새인들까지... 그는 모든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만나 식사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와의 만남은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을, 어떤 이들에게는 마음이 비틀리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특히나 그는 악성 피부병 환자들과 잘 어울렸고, 그들을 치유해주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문둥병, 헬라어 “레프로시(leprosy)”는  현대 영어로는 “나병” 이라는 병명으로 전용되지만, 사실은 “dreadful skin disease" (악창)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 피부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식수나 용수가 현대와 같은 위생과 청결성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전염을 막고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서는 환자(죄인)들을 영문 밖으로 몰아내야 했으며, 그렇게 해서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혹여라도 나으면 제사장에게 보이고는 커뮤니티로 복귀되고 했었다고 합니다... 예수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희망 없는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대했고 손수 치유해주었던 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람 수를 헤아릴 때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을 빼는 습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권의 사각지대 있던 약자 중의 하나였던 여성들은 간통 사건이 일어나면 남자의 책임까지 다 덮어 쓰고 죽어야 했고, 어린 아이들은 그냥 봉지에 싸서 버려도 별 문제 없던 사회 분위기에서, 그들을 소중한 주체로서 받아들이면서 간통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여인을 구해주거나,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를 함부로 버리는 일이 흔했던 사회 분위기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막지마라고 하고 진심으로 안아주는 모습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의 제자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도 있었는데, 엄밀히는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는 막달라 마리아였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녀가 원래 창녀였느니 뭣이니 하는 이야기는 막달라 마리아를 깎아 내리기 위한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녀는 예수의 마지막을 지켜준  마리아 트리오 중의 한 명이었죠... 제자들이 다 도망간 상황에서... 그리고 그녀는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예수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고, 제자단이 형성되고, 세력 아닌 세력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세력화 되는 것을 경계하여 항상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깊이 깨우쳤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조차도 예수의 진심을 완전히 알지는 못합니다... 나중에 예수가 왕이 되면 누가 오른 편에 앉느냐의 문제로 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완전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의 자유는 모든 얽어매는 것들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인간을 부자유하게 하는 모든 금기의 울타리를 보란 듯이 넘었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침을 행하고, 힘든 사역으로 배가 고팠던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서 먹었으며, 또한 제단에서 동물의 피나 받아 마시는 박제된 신이 아닌 자신의 존재 속에서 존재를 넘어서 활동하시는 살아있는 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종교사를 보아도 제의적 신, 박제된 신의 금기를 깨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사람들은 예수의 전철을 밟았던 것 같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죽은 이후에 카톨릭에 의해서 이단으로 정죄당했다가 결국 복권되었고, 잔느 귀용은 죽을 때까지 카톨릭 당국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산상수훈을 비롯해서 그가 행했던 설교들과 비유들은 결코 선동적이지 않았으나, 선동보다도 인간의 영혼 속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강한 것이었고, 그의 입과 혀가 아닌 존재가 말하는 진실이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샬롬, 하나님의 평화를 원했지만 거짓과 위선에 대해서는 단호했고, 좋은 게 좋은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평화를 말했지만, 또한 자신은 세상에 칼을 주러 왔다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무죄한 피를 마신 헤롯을 향해서는 여우라고 했고, 그 당시의 눈먼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독사의 자식’이라는 거침없는 욕을 퍼부었습니다...


또한 그는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 그어져 있던 선을 넘었습니다... 유대는 다윗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끝까지 유지한 남 유다의 후예로서, 침략자 이민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잃어버리고 이방화 되었던 북 이스라엘의 후예인 사마리아 인들을 개 취급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었던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그녀에게 진정한 의미를 부여해주었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보이듯이 사마리아 인들을 이웃으로 인정했으며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단지 선행에 대한 예화로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 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 되기 위해서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었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하나님 통치를 선포하며 온 땅을 누비며 다녔습니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당국에게는 이런 행위들이 정치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위협으로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는 성전이 행하는 종교 장사 관행에 대해서 크게 의분을 가졌고, 급기야 성전 정화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는 기도하는 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외치면서 대제사장들과 결탁되어 종교 행위에 쓰이는 제물을 비싸게 팔아먹으며 일반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대던 장사 아치들의 상을 뒤집어엎는 난동 아닌 난동을 일으킵니다... 이 사건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일 결정적 빌미를 주게 됩니다.


이제 심기가 불편해진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유대의 유력가들에게 예수는 완전히 눈엣 가시가 됩니다... 예수가 있는 한 자신들의 종교 체제가 유지해오고 있는 기존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협감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 때문에 소란이 일어나거나 민란이 일어나기라도 해서 자치권을 준 로마가 그들을 믿지 못하게 되면 자신들의 기득권이고 뭐고 다 말짱 도루묵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를 죽일만한 구실을 찾기 시작하면서 바리새, 사두개, 헤롯당은 한 패가 됩니다. 성전 안뜰 난동 사건과 함께 예수가 말했던 “이 성전을 허물어라, 3일 만에 다시 짓겠다” 라는 말을 핑계로 잠재적 성전 파괴범으로, 또한 하나님의 아들 행세를 하면서 하나님과 동일시 한 신성 모독죄로, 그리고 가이사에게 바칠 세금을 바치지 못하도록 사람들에게 납세거부를 선동했다는 죄목이 만들어집니다... 말 꼬리를 잡기 위해서 예수를 여럿이서 직접 찾아가기도 합니다...


젤롯은 이번 일을 계기로 예수를 옹립하고 군중들을 결집하여 기존 체제를 뒤엎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은 예수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해서 정치권력을 잡은들 그 것은 또 다른 폭력적인 권력일 뿐, 하나님의 통치와는 전혀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예수는 깊이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젤롯은 예수에게 의사를 타전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를 따르던 가리옷 사람 유다는 예수를 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에게서는 현실적인 희망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젤롯 파 또한 예수를 버렸을 것입니다. 대대적인 봉기와 적들에 대한 피의 보복만이 이스라엘의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예수는 그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예수를 그렇게 환호하던 군중들의 희망은 절망으로, 기쁨은 분노로 바뀌어버립니다...


예수는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게 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 로마 병정들은 유다의 인도로 예수를 잡으러 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칼로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예수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고는 그들을 보호하면서 스스로 순순히 체포당합니다.


그렇게 끌려간 곳은 산헤드린의 종교 재판장... 그 곳에서 많은 거짓 증언들이 나오는데 증언도 일치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서에는 베드로나 가룟 유다가 예수를 버렸거나, 팔아넘겼다고 하지만 그 내용이 아주 불분명합니다. 예수의 사역은 항상 공개되어 있었고, 그를 언제라도 잡으려고 한다면 잡을 수 있었을 것인데도, 가룟 유다에게 단순히 예수의 위치 알려준 댓가로 은전 30 냥을 줬다는 건 너무 시시하거든요. 가룟 유다에게 더 큰 것을 주겠다고 이야기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를테면 한 자리를 준다든지... 그래서 제 심증으로는 재판정에서 예수에 대한 거짓 증언을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유도했다는 겁니다. 베드로는 그 거짓 증언으로 형벌에 대한 면책이 되었겠죠. (그 이후 양심의 가책으로 베드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가룟 유다 극적인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죄책감으로 목을 매 자살합니다.)         


구체적인 죄목은 성전 모독죄와 신성 모독죄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실제로는 죽은 신을 말해왔고,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그 신은 절대로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자신의 존재 속에 살아있는 신을 몸소 보여준 것이 죄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죠... 그 살아있는 신,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그이” 는 모든 억압과 부자유, 우상적 체제를 다 무너뜨리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성서의 정황상 예수를 만났던 니고데모, 그리고 예수의 시신을 장사지내도록 묘지를 제공했던 아리마태아 요셉 등등의 의회 의원들은 예수를 지지했을 것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무력합니다... 니고데모는 이전에 예수를 변호하면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예수는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다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일반적으로 종교 법정에서 판결을 받으면 스데반처럼 투석형을 당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투석형을 집행하지 않고, 그를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법정으로 데리고 갑니다. 종교법정에서 식민지 제국의 법정으로 옮아간 상황이 되는 거죠. 요한복음은 그들이 유월절을 앞두고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서 빌라도에게 떠넘긴 거라고 증언하지만, 썩 석연치는 않습니다. 종교적인 죄를 두고 빌라도가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왠만한 오지랖이 아니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결국 그 종교 지도자들이 제국 법정에 부합되도록 내세우게 되는 죄목은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란 것과, 황제에게 내야하는 세금을 거부하도록 선동한 것, 두 가지입니다. 요약하면 예수는 젤롯처럼 로마 제국에 대항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빌라도는 예수에게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하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는 ‘나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다’ 라고 결백을 주장해야 할텐데, 그는 침묵합니다. 결국 예수에게는 십자가 처형 판결이 내려집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주연이고, 빌라도는 조연인 것처럼 성서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판결이란 것을 그렇게 경솔하고 편의주의적으로 내린다는 것은 빌라도답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공정하고 신성한(?) 로마 제국의 법정을 더럽힌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도 예수를 죽인다는 것이 양심에 걸렸던지 유월절 관례를 들면서 혁명가 바라바와 예수를 두고 누구를 풀어줄 것인지 군중들에게 묻습니다.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예수를 풀어달라고 외치리라 순진한 생각을 가졌겠죠. 그러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예수에게 실망한 그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 속에는 왠지 젤롯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들의 함성 속에 묻혀있기는 하지만, 예수를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다수의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분명히 그랬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가 취한 스탠스는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는 아주 비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거대한 현실의 장벽은 망치로, 강한 쇳덩이로 부숴뜨려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맨 몸으로 뚫고 지나 가려고하는 시도처럼 무모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확연히 보았던 예수는 어쩌면 젤롯 보다도 더 철저히 가이사를 왕으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는 이 세상이 어떤 폭력적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통 하나님에 의해서 통치되는 세상... 그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감 속에서 사람 하나하나가 주체로 서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런 삶, 사랑과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신적 속성과 통하는 그의 완전한 사랑과 공의, 자유는 필시 시대와의 불화를 일으켰고, 그 시대는 그를 위험한 자, 불온한 자, 비현실적 낭만주의자로 낙인찍었던 것입니다... 그를 불편하게 여긴 인간들은 그가 없어졌으면 싶었던 것이구요...


치욕과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죽어서도 뼈 하나 추리기가 힘들다는 해골산에서 그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남은 사람은 어머니 마리아, 자신의 제자였던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


예수의 죽음은 사실 예수를 죽인 당사자들조차도 황당한 일이어야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죽어야할만한 혐의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말이죠. 그래도 그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걸었겠죠... 이건 우리 유대의 안녕을 위한 일이다... 이건 우리 로마 제국의 안녕을 위한 일이다... 한 명이 죽어서 안녕이 보장된다면 예수는 잘 죽은 거다... 그이후로 헤롯과 빌라도가 사이가 급격히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고 나서, 아리마태아 요셉은 예수를 자신의 묘실에 장사하면 안되겠느냐고 빌라도에게 청합니다. 사실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의 시체를 장사지내도록 순순히 내어주는  법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까마귀와 들짐승들이 그 시체를 뜯어 먹도록 내버려 두는 것까지가 형벌의 풀코스였으니까요. 그러나 마지막 양심이 발동했는지 그는 예수의 장례를 허락합니다. 참사람 예수의 무죄한 죽음, 그 엄숙함 속에서 그의 죽음을 방조했던 자들의 양심은 서서히 깨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장례를 극렬히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덤 앞을 큰 돌로 막아달라는 요청까지 합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들은 실제로 예수가 부활하지 않을까 겁이 났던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부활로 인해서 민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는 것이 더 두려웠던게죠.


실제로 그 돌문은 열렸고, 예수의 시체는 사라졌습니다... 실제 그 당시 역사서에도 “빈무덤”은 공공연한 사실로 나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가 진짜 살아난 게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는 그를 사랑하며 그리워하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숨을 내 뿜으면서 나타나 그들과 함께 합니다. 그러면서 그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존재의 급진적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눈꽃

2009.06.25 14:50:43
*.187.19.193

첫날처럼님!

전혀 어설프지 않은 "예수전"을 읽고...     emoticon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예수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나올 씨리즈 물 기대합니다 ^ ^*

보답으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시한편 올립니다

      [모든 존재는 신의 말씀이다]

모든 존재는 신의 예술이다
그의 음악, 그의 예술

신성한 책인 우리,
그 무한이 우리 영혼 속에서 머무는 동안

모든 행위는 신을 드러내고, 신의 존재를 확장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안다

모든 생물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신을 돕기위해

밤 동안 충분히 이야기하라
신은 내 안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고요할 필요가 있다
잠시 동안

첫날처럼

2009.06.25 17:13:19
*.54.79.126

한 가지 첨언을 하자면...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해방절이잖아요... 그 날 만큼은 유대로 하여금 해방감을 만끽하도록 허용을 했는데,  식민지 지배자들은 유월절에 굉장히 신경이 곤두섰다고 해요... 그냥 해방감 만끽 정도로 끝나야 하는데 이게 불처럼 번져버리면 굉장한 소요사태로 변해버릴 수 있는 거거든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유월절 전후(?)로 잡은 것도  빌라도로서는 "내부단속용" 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정치 논리란 것이 너무 비정하죠...    

신성, 그 초월과 내재의 역설적 진실 속으로 빠져들고 싶습니다...  
profile

유니스

2009.06.25 18:17:16
*.104.197.26

첫날님.....아...........덥습니다.
폭염의 날씨에 '어설픈 예수전'이 풍성함으로 다가오네요.
이성과 감성으로 골고루 전달이 됩니다.
예수님의 삶을 대할 때 첫날님의 '예수전' 덕분에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이래서 여러 사람들의 '예수전'을 읽은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군요.
김규항의 예수전도 구입해야하고,
집에 있는 슈바이처의 예수전( 이건 거의 제 나이만큼 오래된 책이라서 )도
열어봐야겠다는 동기가 생겼어요.
무더운 여름에 좋은 글 감사합니다.
profile

소풍

2009.06.25 21:37:24
*.79.237.40

첫날처럼님의 쉼 없는 열정은 늘 경탄스럽습니다.

유니스님도 언급하신 김규항의 <예수전> 표지 날개글에 보면 
"이 책이 수많은 '나의 예수전'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짐작컨대 첫날처럼님도 그 책을 읽고 동기 부여를 받으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가 누구이든, 
또한 어쩔 수 없는 내용의 편중성을 떠나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진지하게 들려주는 예수전을 접하는 일은 
언제나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한가지, 사소한 문제를 지적하자면 위에 올리신 내용중에
"젤롯파는 로마의 추격에 결사 항전으로 맞서다 집단 자결을 했던 마사다 항전의 정신을 이으며 현실 이스라엘 국가 회복과 정치적 메시야 옹립을 지상 목적으로 했던 종교적 저항 단체였습니다..." 라는 문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 합니다. 
이 설명만 놓고 보자면 마사다 항전이 마치 예수님이 활동하시기 이전의 역사인것처럼 읽히니까요.
잘 아시는 것처럼 마사다 항전은 AD 70년대를 전후로 한 유대 전쟁의 끝자리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한참 후의 일이지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젤롯당의 강고한 행동주의의 정신적 기원을 설명하시려 하셨다면 
오히려 BC 2세기에 셀류커스 제국에 대항하여 불꽃같이 타올랐던 마카베오 항전사를 거론하시는게 적절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늘 건강하세요~^^*

첫날처럼

2009.06.25 22:36:26
*.206.172.138

맞아요!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네요... 좋은 지적 감사해요!!!
 

콰미

2009.06.25 21:48:43
*.54.206.24

첫날처럼님을 수식하는 말로 저는 평신도 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평신도가 사유하는 평신도가 표현하는 평신도가

이해하는  . 다비아에서 공부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는 첫날처럼님은

평신도 신학자입니다. 아울러 첫날처럼님은 특별회원으로 등업되었습니다. 

늘오늘

2009.06.26 08:34:49
*.239.101.246

 

정말 신기하죠?

어쩜 이렇게 내 맘 같은 글인지!

감사합니다. ^^

제목을 바꿔야 해요. ‘깔끔한 “예수뎐”’ !!


첫날처럼

2009.06.26 14:31:56
*.54.79.126

어쩌면 예수에 대한 나의 고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고백이 늘오늘 님이랑 저랑 일치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profile

희망봉

2009.06.26 16:40:57
*.151.86.6

잘 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은
곧 하나님 경험의 표현이겠군요
감사~~^^* 
profile

바우로

2009.09.09 20:27:23
*.114.22.104

제 블로그( http://logosblf.egloos.com )에 발췌하겠습니다. 물론 그대로 배끼는 것이 아니라 코멘트도 달 것입니다..참 베드로가 산헤드린의회의 회유로 거짓증언을 했다는 견해는 일본의 천주교 문인인 엔도 슈사쿠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예수가 유대 민중들을 유대교 전통의 무게로부터 해방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반감을 가진 산헤드린 의회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을 회유함으로써 배신하게 했다는 것이지요.제자들과의 유대를 끊음으로써 쉽게 제거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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