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살아있는 것의 힘

Views 1515 Votes 0 2009.07.17 16: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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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그것도 조심스럽게 들어와봅니다.
아직도 그렇지만, 감리교 목사인 게 부끄러워 다비아를 잠시 떠났다가, 용기를 내어 다시 찾았습니다.
다비안님들 오랫만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보수란, 좋은 것을 지키자는 것이고, 진보란, 좋은 것을 살려나가자는 것입니다. 결국 보수와 진보는 다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수를 표방하며 교회를 피폐시키는 목사들, 진보라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권위주의에 물들어버린 목사들, 교회성장을 부르짖다가 결국 교회가 지쳐 쓰러지게 만드는 목사들이 너무나, 정말 너무나 많더군요. 게다가 감리교의 치부를 온 천하에 드러냈으니, 목사인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다비아를 찾아보니, 변화 속에 여전히 변함 없는 이곳이 참 좋습니다. 목마른 이들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찾은 신고식으로 제 '단상' 하나 올려봅니다.
다비안님들, 무더위와 장마 속에 안전하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살아있는 것의 힘

아마도 그것은 ‘부족함’의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게는 초록색이 모자랐고, 땀 흘리는 노동이 모자랐고, 무엇보다 익숙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채워야 함도 알았지만 그것이 머리로만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 소년부 아이들과 농사체험을 하러 갔을 때 마침 감자 수확기였습니다. 이미 수확을 마친 밭에도 제법 실한 감자가 숨어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이들과 함께 감자를 주웠지요. 채 5분도 안 되어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감자 줍는 재미가 쏠쏠했나 봅니다. 모두들 한 아름 의기양양했으니까요. 하지만 일을 시작한지 30분이 지나자 하나 둘씩 지쳐갔고, 드디어 일을 마칠 때가 되어 한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목사님, 나는 죽어도 농사는 안 지을 겁니다!” 아, 이러는 겁니다. 감자 줍는 일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농사도 지어야 하는 농부의 삶이 끔찍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우리교회 마당에도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제법 많은 것을 심어서 이제는 그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호박, 피망... 아주 실하지는 않았지만 풍성하게 달려있는 게 참 예쁩니다. 바라만 보아도 즐거움을 주는 녀석들이 참으로 신통해 보입니다. 마음 급한 누군가가 몇 개를 따먹어도 이내 채우고 또 채우는 그들의 솜씨가 신기할 정도니까요. 그 맹렬한 생명력으로 호박과 가지는 의기양양하게 작은 땅을 누비며 잎을 펄럭이고, 고춧잎을 들추면 햇빛을 피해 숨어있던 달팽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가고, 호미로 땅을 조금만 파헤치면 지렁이가 멋진 춤을 추어대고, 귀엽지만 화려한 무당벌레 한 쌍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나무 꼭대기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농사꾼들입니다. 그들에게 존귀한 생명이 있음을 나는 깊이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피망과 가지와 고추를 따면서 자꾸만 손이 떨립니다. ‘이걸 먹어도 되는 걸까. 이건 순전히 그들이 해낸 일인데...’ 정말로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시 부족함을 느낍니다. ‘나는 저 생명들처럼 날마다 자라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작은 잎사귀 하나라도 펼쳐 보이고 있는 걸까?...’

감자 줍는 게 너무 힘들다는 아이들의 얼굴이 다시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들도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빚진 자라는 것도 말입니다.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살아있는 것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겠지요.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그것이 참되고 생명력이 있다면, 우리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실 겁니다.


신완식

2009.07.17 16:16:18
*.112.187.161

반갑습니다~~~
제가 80년 대 초반 서울신대 학보사 취재부 기자로 감신대를 자주 갔었어요.
감신학보사 기자들과도 함께  어울릴 기회가 있었지요.
같은 인쇄소에서 신문을 냈으니까요.
생각해보니 기숙사에서 잠을 잔 일도 있었군요.
그때 저는 솔직히 감리교가 많이 부러웠어요.
뭔가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적잖게 실망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영국 감리교 제도와 너무 다른 모습으로 움직여지는 모습에 놀라고 있기도 하고요.
미국 감리교도 한국 감리교와는 그리 같지 않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소망이 있다고 봅니다.
이신일 목사님같이 몸부림치는 분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힘내십시오.
그리고 늘 건강하십시오.
좋은 글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질그릇

2009.07.17 18:28:01
*.250.221.10

목사님!
좋은 글을 올려 주셨군요.
 ‘나는 저 생명들처럼 날마다 자라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작은 잎사귀 하나라도 펼쳐 보이고 있는 걸까?...’
이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끄러운 것이 감리교 목사님 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목사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텃밭이 있는 교회를 그려봅니다.
장마철에 건강하세요.
profile

새하늘

2009.07.17 22:56:03
*.72.219.104

이신일 목사님!
저의 집안의 시작이 감리교회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한 웨슬리 선생님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감리교에 대한 긍지를 가졌는데,
감리교단에서 벌어지는 벌어지는 여러 형태와 지도자급의 여러 목사님들의 실망스러운 모습들,
 그리고 다니고 있던 감리 교회 목사님에 대한 불합리성과 전혀 소통되지 못하는 쓰라린 아픔으로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아직도 감리교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계속해서 보이고 들려 오는 감리교에 대한 억지스러운 모습들이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이신일 목사님같은 분들이 아직도 계시기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다비아에서 언제나 뵐 수있는 목사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늘 건강하세요.

profile

정용섭

2009.07.17 23:34:32
*.139.165.36

이신일 목사님, 오랜 만이군요.
방가워요.
살아있음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글, 잘 읽었어요.
위 글을 읽으면서 다비아에도
목회자들을 위한 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좋은 주말, 행복한 주일을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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