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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統과 正統사이

Views 1338 Votes 0 2009.07.27 16: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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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은 있을까?


정통신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여기서 정통을 正統으로 쓴다고 가정하고.

정통의 뜻을 찾아보니,

바른 계통, 사물의 중심이 되는 요긴한 부분 등으로 정의되어 있다.


1.

‘정통신학’이란 이름이 신학을 정통이 되도록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너도 나도 정통이라고 외치는 시대에, 모두 다 정통으로 인정해 줄 수는 없는 사실.

‘정통신학’이라고 자처하는 신학은, ‘정통신학’이 아닐 경우가 크다.

문제는 내용이다.


2.

또 하나, ‘전통(傳統)이 신학을 정통(正統)으로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전통의 뜻을 찾아보니,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관습·행동 따위의 양식.”으로 되어 있다.


전통은 말 그대로 전통이다. 이 말 자체에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렇기에 전통은 바로 정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를 살펴보면 잘못된 관습, 행동 양식도 전통으로 내려온 경우가 많다.


3.

이천년 기독교 역사.

역사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큼직큼직한 사건들의 총체로 이해를 해야 하나. 관습, 문화, 사람들의 삶의 모습으로 이해를 해야 하나. 나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실체적으로’(자명한) 메인 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흐름은 없다는 것.

단지 ‘인식론적으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꿰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2000년 역사에 어떤 흐름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그 전에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꿰었는지를 얘기해야 한다. 그 관점이 적합한지 또한 판단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들쑥날쑥한 역사를 과연 한 두가지 흐름으로 꿰는 것이 가능한 작업인가?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 식의 역사의 교훈들이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말도 생각해보라. 이 말은 '현재 칼로 일어서려고 하는 사람한테 칼로 일어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칼로 일어선 자가 칼로 망하지 않는 경우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 존재할지도. 

.
이 시대의 메인 스트림은 무엇인가? 보이는가?

우리는 몇 십년을 살 수 밖에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이천년은 긴 시간이니까 어떤 흐름이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단지 시간의 나열이 아닌 것처럼.

2000년 또한 200000000000년에 비하면 보이지 않는 시간인 것은 마찬가지지 않을까?

어떤 흐름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 흐름이 정통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4.

사실 이천년이란 말은 인간에겐 ‘인식 불가’한 시간이다.

이천년을 고작 몇 십년을 산 인간이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것이 이천년 기독교 역사입니다’라는 말에 우리는 바로 백기를 든다.

세월의 장구함에 할말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이것이 이천년 기독교 역사의 흐름입니다’라고 해서 그것이 ‘이천년 기독교 역사의 흐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백히 보이는 자명한 흐름이 있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 흐름이 바로 정통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5.     

하지만 삼위일체는 정통이지 않는가? 66권의 정경은 정통이지 않는가? 초대 교부들은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적자(嫡子)와 서자(庶子)

정통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적자신학이 있고, 비주류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서자신학이 따로 있을까?

개혁신학, 사도신경신학, 이천년 기독교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신학이 적자신학이고, 여성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해방신학, 생태신학 등이 바로 서자신학이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적자와 서자는 어떻게 구분을 할까?

법률혼의 자식은 적자이고, 사실혼의 자식은 서자..이런 식으로?

아니면 첫째부인의 자식은 적자이고, 둘째부인이후의 부인들의 자식은 서자 식으로?

이런 전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전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적자이고 서자이고 모두 아들이다. 서자라는 이름으로 차별받을 수는 없다.

차별하고 싶으면 차별할 수 있지만 서자는 원래 차별받으려고 태어난 아들은 아니다.

어떤 전제, 어떤 틀로 인해 서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그 틀이 잘못되기도

한다는 것.


6.

삼위일체교리, 성경66권. 모두 어떤 전제 가운데 정통이란 이름을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니케아 공의회, 칼케돈의회가 그 전제일 것이다.

삼위일체와 사도신경, canon은 결코 자명한 정통은 아니다.

그런데 그 전제는 얼마만큼 옳을까?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실체적으로 자명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성경66권을, 사도신경을 이천년동안 옳다고 믿어왔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지금까지 그 긴 이천년동안 잘못된 것을 믿어 오도록 하셨을까? 그럴 리가 없어.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2000년동안 삼위일체를, 성경66권을 정경으로, 사도신경을 옳다고 믿어온 것은 전통이지 정통이 아니다. 정통이냐 아니냐는 그 다음 작업이다. 역사가, 후대 역사가 이천년동안 기독교인들은 잘못된 것을 믿어오다가 2010년부터 200080808년까지는 올바른 것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한다면?


7.

정통신학이라고 자처한다고 정통신학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천년 기독교의 메인흐름이 있다고 해서 메인흐름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메인흐름이 정통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정통은 역사가 판단할 문제이기에 어떤 신학에도 정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도 역사 전체로 봤을 때는 눈 깜짝할 순간이다.

이제는 내용으로 승부할 때다.

하지만 내용으로서의 정통성 확보는 종말에나 확인해 볼 수 있는 그 무엇.

자신의 신학을 매일 버리는 反我신학만이 유일한 정직이다.

정통은 없다.


signature

2009.07.28 03:30:29
*.223.27.18

글을 읽고나니, "신학"이라는 말(단어)에 대해 무심코 지내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신학과 종교는 같은 것인가요?

박찬선

2009.07.28 08:44:32
*.109.153.228

 

 같다와 다르다는 자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도 살면서 ‘이건 같아’ ‘우리는 달라’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주류라고 할까요. 대세라고 할까요. 아니면 문화라고 할까요.

 그런 기준이 이미 우리 안에서 자동적으로 작동을 하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전제들이 적절한가를 살피는 것은 사물이나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 작업이겠지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흔히 하는 말 또한

 ‘~이다(같다), ~아니다(다르다)’의 “정의언술”이라기보다 기독교의 어떤 특성을 부각시키거나 강조하기위해 종교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또는 종교에 대한 그간의 생각을 차용하는 “상황언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신학과 종교는 학습된 사고방식에 의하면 ‘다르다’라고 판단내릴 공산(公算)이 크지만, 

어떤 기준(전제)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학과 종교의 내용에 대해서는 능력 밖의 이야기여서 드릴 말씀은 없네요.

signature

2009.07.28 11:07:40
*.223.27.18

신학에서의 "정통"의 문제를 종교에서도 같거나 유사한 프레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요..
물론 단순한 호기심 수준의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본문 글에서
"신학"을 "종교"로 바꾸어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잠깐 가져보았습니다.

..우문임에도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



 

라크리매

2009.08.01 00:51:56
*.41.16.153

이런 생각을 해보는건 참 중요한 일 같아요
니케아 공의회 ,사도신경...  유럽서구 기독교의 전통이죠
신사참배의 전통을 가진 일본의 문화처럼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모두 그들의 문화적 전통이란 생각이 저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2000년의 기독교전통이 중요하다면 무려3000년의 세월을 더한 한반도와 아시아의 문화와 전통또한
중요한 것 일테고 오히려 역사의 흐름과 정통을 통찰하려면 더 기나긴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 정석같네요
우리 언어와 사고, 생활에는 무의식적로 이5000년의 시간이 함축되어 있고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역사에도 관여하셨으니깐요....^^
기독교 성경해석의 역사를 일년녀동안 대한 성서공회에서 청강하였는데...
중국엔 한국과 아시아의 신화적  전통과 역사쪽으로 관점이 전환되버렸어요
그사이 과정에 찬선씨가 올린 글의 생각중 많은 부분이 내게도 들었어서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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