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우리 동네 목사님"

Views 5068 Votes 0 2009.08.09 02: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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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목사님/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서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폐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얼마 전 구입한 책 "한국 현대시와 신학의 풍경"(차정식/ 이레서원/2008)에서 마주친 기형도 님의 시입니다. 
지은이 차정식 교수는 한일 장신대학교 신학부 교수라고 하는군요.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아래 시를 올려 주신 목사님이 계시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이 시를 옮깁니다. 
기형도 시인의 눈으로 본 동네 목사님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집니다.

책 속에 있는 지은이의 서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한 태초의 말씀이 오염되지 않은 언어의 뿌리라면 그것은 분명히 시의 원시적인 고향일 테다.
또 그 말씀이 육신을 입은 일이 정녕 우주적인 구원사건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시의 순정한 원형일 테다.  .......  시학과 신학의 거리가 이다지도 가깝건만, 오호통재라, 오늘날 시인들은 신의 학문을 저버리고, 신학자들은 시인의 감수성을 외면한다."

IMG_9364.jpg 

얼마전 우리 동네 가까운 바닷가에서 찍은 노을입니다. 
이 곳에서 지는 해가 한국에서는 뜨고 있나요?  재밌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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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아

2009.08.09 09:02:49
*.161.47.121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이 싯귀에 밑줄을 좌악 긋습니다.
시학과 신학이 한 몸임을 이야기하는 지은이의 서문 또한 밑줄좌악입니다.
신학에 시의 감수성이 녹아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좋은 그림,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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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09.08.10 08:59:21
*.116.154.149

밑줄 긋기 안 한지 참 오래 됐는데
저도 진하게 밑줄 긋습니다. ㅎㅎ

안희철

2009.08.10 07:31:18
*.1.31.167

저도 그게 신기합니다.
정말 이 해가 한국에도 뜰까? 같은 해일까?
아닐겁니다.
한국의 해로부터 쏟아지던 햇살은
이렇게 따갑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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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09.08.10 09:02:14
*.116.154.149

아닐까요? ^^
하이델베르그 여름 날씨는 어떤가요?
뉴욕의 금년 여름은 너무 시원해서 벌써 가을인가 착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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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09.08.10 12:54:41
*.234.35.112

시도 글도 사진도 어쩜 이리 다 멋질까요?
어우러짐... 바로 그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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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09.08.10 21:53:50
*.116.154.149

어우러짐으로 읽으시는 라라 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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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09.08.10 17:24:33
*.104.194.153

모래알님~
저게 뭔 브릿지인가요?   멋집니다.
기형도의 서문을 보니 어느 경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하는군요.
저같은 평민들은 그 곳에 무엇이 있다는 소식만 듣는다는.....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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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09.08.10 21:56:47
*.116.154.149

유니스 님! 

서문은 책의 지은이 차정식 교수의 서문입니다. ㅎㅎ
신학하시는 분이니까 평민(? ㅋㅋ) 들과는 소견이 다르시겠죠.

다리는 Queens에서  Bronx를 연결하는 Throgs Neck Bridge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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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09.08.10 23:40:21
*.120.170.243

모래알 님은 왜 이리도 시를 많이 아시나요?
아직도 책을 돈을 주고 사고, 읽으시네요.
그렇게 팽팽한 의식으로 살아가시는 게 보기 좋아서 하는 소리에요.
차정식 교수의 글은 전문 문필가 저리 가라입니다.
문학비평으로 아마 문단에 등단까지 했을 걸요?
기독교 사상에 저런 시 감상, 또는 시 비평의 글을 많이 썼어요.
한국 신학계에 귀한 분이죠.
좋은 한 주일을 행복하게 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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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09.08.11 00:00:28
*.116.154.149

정 목사님!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못 쫓아가서 걱정입니다.
제가 아는 세상이 하도 적어 책이라도 많이 읽으려구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밤 되시기를..

평민

2009.08.12 13:34:12
*.90.57.47

아마도 "우리동네 목사님"은  기형도의 시 속이나, 혹은 차정식의 신학적 해설 속에서나 존재하지
현실-특히 한국 현실- 에서는 존재 할 수 없는 목사님 입니다.
우선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는 식의 방법으로는
그야말로 "밥먹기 힘들고,  시에서 처럼 교인들의 환영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또한  거꾸로 "평신도"가 그런다 해도 "목사"가  용납을 안하고  나가 달라고 하지요
이 땅에 언제나 "우리동네 목사님" 같은 분이  환영받고 성공(?) 하는 시대가 올런지요....

작금의 한국의 어느 대형교단(?) 사태와  어느 작은교회 사건을 접하면서
정말 "우리동네  목사님' 이 그리워 집니다
profile

모래알

2009.08.12 20:59:06
*.116.154.149

평민 장로 님.
시에서 언급한 목사님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환영 받을 날은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그런 목사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테지요.

예수님을 가까이서 모시던 제자들도 그 분이 누구신지 정확히 이해 못 했는데
저희들이라고 뭐 나아진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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