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14:62)


“내가 그니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앞의 것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뒤의 것은 그 대답에 대한 설명, 또는 해석입니다.

인자(人子)는 앞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세상 마지막 때 심판자로 올 어떤 이를 가리킵니다. 낱말 뜻으로는 단순히 ‘사람의 아들’이지만 유대교의 묵사사상과 연결되어서 종교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인자가 바로 예수님을 가리켰습니다. 그렇게 해석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들은 예수님을 부활체로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창조와 종말의 근원입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은 마지막에 심판으로 완성됩니다. 그 심판의 주인이 곧 유대교의 묵시문학이 말하는 인자인 예수님입니다.

위의 내용이 바로 본문 62절에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이십니다. 그는 종말에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십니다. 심판자로 오십니다. 그는 지금 권능자인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종말에 올 예수님이 오늘 인간과 역사를 은폐의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설명이 손에 잡히나요? 당장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제가 설명할 자신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전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 역사를 표면적으로가 아니라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심층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한 가지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죽음의 순간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살아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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