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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 517
도움을 주실 분 찾습니다.
아무래도 신약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대답해 주셔야 할텐데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제가 요청하는 도움은 아래와 같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는데
왜 사도들은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와 좀 다른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 선포자였는데
어떻게 사도들과 제자들에 의해서 예수가 선포의 대상자가 되었는가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풀고 싶어서요.
좀 체계적으로 말입니다.
이 문제는 우선 정목사님께서 대답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질문의 주제가 너무 방대한 것 같아 한 두 마디로 정리가 될 것 같지 않네요.
간혹 정목사님의 글에서 단편적으로 언급하신 것 같은데
그 주제만 집중적으로 다룬 글은 없는것 같더군요.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당장 가르쳐 주세요.
읽어 보겠습니다.
어쨌든 처음부터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방면에 출중한 분 계시면 저를 좀 도와 주세요.
목사님도 좋고, 신학생도 평신도도 좋습니다.
이 분야에 잘 정리된 책 한 권 추천해 주시면 됩니다.
세계신약학회에서 왕성하게 신학활동을 하시는
김세윤 박사님의 글을 혹시나 해서 읽어 보긴 했는데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서 가슴과 머리에 와닿지는 않더군요.
이를테면 성서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친언으로 전제하고 쓰신 것 같더군요.
저는 복음서의 어떤 대목에서 이 부분이 예수의 친언인가 의문이 드는데
김세윤 박사님은 아예 그걸 예수의 친언이라는 전제하에
신학적 논리를 펴 나가시는 바람에 저와는 영 핀트가 안 맞더군요.
그러다보니 글을 읽는 내내 의문이 수 없이 일어나더군요.
그래도 어떤 대목에서는 제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나는 지금 내면적으로 어떤 지점을 뛰어넘고 싶은데,
중요한 대목에서는 공식처럼 주장하는 것 같아서 답답함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누구 좀 도와 주세여 ^ ^
다비안들 중에 똑똑한 분들이 많다는 걸 믿습니다.
아무래도 신약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대답해 주셔야 할텐데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제가 요청하는 도움은 아래와 같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는데
왜 사도들은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와 좀 다른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 선포자였는데
어떻게 사도들과 제자들에 의해서 예수가 선포의 대상자가 되었는가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풀고 싶어서요.
좀 체계적으로 말입니다.
이 문제는 우선 정목사님께서 대답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질문의 주제가 너무 방대한 것 같아 한 두 마디로 정리가 될 것 같지 않네요.
간혹 정목사님의 글에서 단편적으로 언급하신 것 같은데
그 주제만 집중적으로 다룬 글은 없는것 같더군요.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당장 가르쳐 주세요.
읽어 보겠습니다.
어쨌든 처음부터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방면에 출중한 분 계시면 저를 좀 도와 주세요.
목사님도 좋고, 신학생도 평신도도 좋습니다.
이 분야에 잘 정리된 책 한 권 추천해 주시면 됩니다.
세계신약학회에서 왕성하게 신학활동을 하시는
김세윤 박사님의 글을 혹시나 해서 읽어 보긴 했는데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서 가슴과 머리에 와닿지는 않더군요.
이를테면 성서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친언으로 전제하고 쓰신 것 같더군요.
저는 복음서의 어떤 대목에서 이 부분이 예수의 친언인가 의문이 드는데
김세윤 박사님은 아예 그걸 예수의 친언이라는 전제하에
신학적 논리를 펴 나가시는 바람에 저와는 영 핀트가 안 맞더군요.
그러다보니 글을 읽는 내내 의문이 수 없이 일어나더군요.
그래도 어떤 대목에서는 제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나는 지금 내면적으로 어떤 지점을 뛰어넘고 싶은데,
중요한 대목에서는 공식처럼 주장하는 것 같아서 답답함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누구 좀 도와 주세여 ^ ^
다비안들 중에 똑똑한 분들이 많다는 걸 믿습니다.
2008.02.27 00:49:22
감기기운 탓에 모든 게 귀찮아, 그저 시름시름하면서
눈을 감고 있자니, 보이느니 어둠인데, 혹시,,
멀리 지구 밖 우주의 어둠도 이런 색깔일려나? ㅋㅋ
홍시님의 질문이 아른거리는데도 별로 의욕이 안 생기데요.
제가 보고 있는 이 어둠 속에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 기독교, 이런 말들이 안 보이네요.
저는 그저 내 몸뚱이를 드나드는 음식물, 잡념, 벗들과의 대화, 기분,
이런 것들이 두서없이 스쳐가고,
그것들을 그저 약간 귀찮은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보는 예수님 이야기와
이렇듯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저의 어둠을 향한 응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도, 가까이서 함께 달리는 평행선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수를 말할 때, 저는 사실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있는 것일 거예요.
예수를 말하지 않을 때가 오히려, 신의 마음에 가까워진 상태는 아닐는지.
ㅋㅋ 횡설수설은 여기까지,, ㅋㅋ^^ 좋은 밤 되세요.^^
눈을 감고 있자니, 보이느니 어둠인데, 혹시,,
멀리 지구 밖 우주의 어둠도 이런 색깔일려나? ㅋㅋ
홍시님의 질문이 아른거리는데도 별로 의욕이 안 생기데요.
제가 보고 있는 이 어둠 속에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 기독교, 이런 말들이 안 보이네요.
저는 그저 내 몸뚱이를 드나드는 음식물, 잡념, 벗들과의 대화, 기분,
이런 것들이 두서없이 스쳐가고,
그것들을 그저 약간 귀찮은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보는 예수님 이야기와
이렇듯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저의 어둠을 향한 응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도, 가까이서 함께 달리는 평행선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수를 말할 때, 저는 사실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있는 것일 거예요.
예수를 말하지 않을 때가 오히려, 신의 마음에 가까워진 상태는 아닐는지.
ㅋㅋ 횡설수설은 여기까지,, ㅋㅋ^^ 좋은 밤 되세요.^^
2008.02.27 20:30:57
기어들기 거시기(?) 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한 사람으로 드려 보려고 합니다. 이른바 "선포자에서 선포되어지는 자 " 의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문제로 2000년 가까이 씨름해 오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위 "믿음" 이란 방법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겟지만, 솔직하게 신학적인 접근을 한다면 그렇게 간단 명료해 지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명확한 대답은 못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전" 이라는 이름의 예수에 대한 연구책 종류가 수 만권에 도달하고 지금도 계속 연구 되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연구서들이 결국은 동일한 "예수" 가 아니라 각자의 "다른 예수(?) " 를 묘사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좀 더 깊은 고민의 길로 들어 서려면 "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고 각자가 답을 얻어야 하지 않을가 ? 생각해 봅니다.
제가 근간에 읽은 책을 소개 합니다
"예수에게 솔직히" 로버트 펑크 지음 김준우역
"예수" 존 도미니크 크로산 지음 김기철역
여기에 어떤 대답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더 문제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길을 계속 가야겟지요 .... 호랑이 꼬리를 잡으신 것 같습니다 ... 그럼 수고 하세요 ...똑똑한(?) 사람 한번 되어 봅니다. 덕택에 ...
아마도 좀 더 깊은 고민의 길로 들어 서려면 "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고 각자가 답을 얻어야 하지 않을가 ? 생각해 봅니다.
제가 근간에 읽은 책을 소개 합니다
"예수에게 솔직히" 로버트 펑크 지음 김준우역
"예수" 존 도미니크 크로산 지음 김기철역
여기에 어떤 대답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더 문제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길을 계속 가야겟지요 .... 호랑이 꼬리를 잡으신 것 같습니다 ... 그럼 수고 하세요 ...똑똑한(?) 사람 한번 되어 봅니다. 덕택에 ...
2008.02.28 11:23:25
참.... 홍시님도 골치아픈 길에 들어서려고 하시는군요.... 저 역시 골치아파하는 처지라서 시원한 답은 못 드리겠고.... 슈바이처의 고전적인 견해부터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물들까지 두루 살펴보기는 해야 하겠는데, 그런들 속시원한 답이 나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2008.02.28 12:12:15
홍시 님,
대답을 기다리다가 홍시가 물러 터지겠군요.
요즘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내기 힘들었어요.
글쓰기도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했습니다.
오늘도 뭐 시원한 대답을 드릴 수는 없네요.
선포자가 선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맥락 안으로 들어가야만
기독교의 핵심에 도달하겠지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하나님 나라, 역사적 예수, 부활,
그와 연관된 구약의 여러 개념들을 복합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맥락에는 어떤 논리의 비약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예컨대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예수의 사건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결국은 삼위일체적 신론으로 발전되었는데요,
그 안에 무엇이 작동했을까요?
통일교 신자들은 문성명을 재림주 비슷하게 생각하지요?
그들도 나름으로 근거를 대잖아요.
여호와의 증인도 하나님의 나라가 1914년(?)에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들이야말로 그것과 일치한다고 주장하지요.
그들도 나름으로 근거를 댑니다.
초기 기독교도 나름으로 근거를 갖고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를 일치시킨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기독교의 미래가 결정되겠지요.
우리는 물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구요.
결정적으로는 예수의 부활이 바로 그것의 근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에게 일어난 부활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필요하겠군요.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생각을 해야합니다.
부활과 생명,
부활과 종말,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
부활과 역사 등등...
오늘은 여기까지만요.
좋은 하루.
대답을 기다리다가 홍시가 물러 터지겠군요.
요즘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내기 힘들었어요.
글쓰기도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했습니다.
오늘도 뭐 시원한 대답을 드릴 수는 없네요.
선포자가 선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맥락 안으로 들어가야만
기독교의 핵심에 도달하겠지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하나님 나라, 역사적 예수, 부활,
그와 연관된 구약의 여러 개념들을 복합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맥락에는 어떤 논리의 비약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예컨대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예수의 사건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결국은 삼위일체적 신론으로 발전되었는데요,
그 안에 무엇이 작동했을까요?
통일교 신자들은 문성명을 재림주 비슷하게 생각하지요?
그들도 나름으로 근거를 대잖아요.
여호와의 증인도 하나님의 나라가 1914년(?)에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들이야말로 그것과 일치한다고 주장하지요.
그들도 나름으로 근거를 댑니다.
초기 기독교도 나름으로 근거를 갖고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를 일치시킨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기독교의 미래가 결정되겠지요.
우리는 물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구요.
결정적으로는 예수의 부활이 바로 그것의 근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에게 일어난 부활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필요하겠군요.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생각을 해야합니다.
부활과 생명,
부활과 종말,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
부활과 역사 등등...
오늘은 여기까지만요.
좋은 하루.
2008.03.02 21:59:19
김세윤 교수님 글을 이미 읽으셨다 하셔서 이미 파악하고 계시리라 생각되지만,
제가 김 교수님 글을 읽고 현재까지 정리하고 있는 바를 나눠 볼까 합니다.
(강의시간에 어떤 학생이 교수님께 질문하면,
교수님께서 토론을 활성화 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 할 사람은 없느냐?'고
되물으시는 경우도 있지요.
저도 강의실에 '홍시'님과 함께 앉아 있는 학생의 기분으로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나누고자 합니다.)
'홍시'님의 질문에 대해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는
김세윤 교수님께서 쓰신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기초한 생각입니다.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괜히 반복하는게 아닌지 조심스럽네요...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서
1부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2부는 "사도들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는데,
그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제시합니다 (24페이지).
(김 교수님도 '홍시'님과 같은 문제을 의식하고 이 책을 쓰신것 같네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통해 이미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하셨는데,
(3월 2일, 정목사님의 누가복음 4장 설교와 같이),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저주 받은 죽음으로 이해했다고 하지요.
특히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 받은자'라고 생각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 까지도,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서 선포하신 말들은 모두 거짓말이 되어버린 상황이 된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시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주장이 옳았다고 선언하신것(vindicate, 145페이지)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이나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죽이려고 살기 등등했던 바울이나
모두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서야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겠지요.
특히 바울의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고 핍박했던 예수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라고 이해하게 된 것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분명한 사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가 사실이구나 하는 인식에 기초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울로서는 그전까지의 자신을 쏭두리채 부정하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힘을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경험했고,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의미하는바,
하나님께서 그를 the Christ로 vindicate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그의 메시지의 핵심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부터 40일간 '
'하나님 나라'의 일을 다시 듣고 (사도행전1장)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을 다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부활의 빛 아래에서 예수님의 삶을 복음서에 정리해준 것이겠지요.
그렇게 복음서와 사도행전-서신서를 연결해서 보면서
전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로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던 예수를
세상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의 모양으로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키심으로써
예수가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했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라는 것을 vindicate하썼다."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주제가, 이렇게 짧은 생각으로 해결되는 않을테니
강의실에 함께 앉아있는 여러분과
교수님의 comment를 기다립니다.
제가 김 교수님 글을 읽고 현재까지 정리하고 있는 바를 나눠 볼까 합니다.
(강의시간에 어떤 학생이 교수님께 질문하면,
교수님께서 토론을 활성화 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 할 사람은 없느냐?'고
되물으시는 경우도 있지요.
저도 강의실에 '홍시'님과 함께 앉아 있는 학생의 기분으로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나누고자 합니다.)
'홍시'님의 질문에 대해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는
김세윤 교수님께서 쓰신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기초한 생각입니다.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괜히 반복하는게 아닌지 조심스럽네요...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서
1부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2부는 "사도들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는데,
그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제시합니다 (24페이지).
(김 교수님도 '홍시'님과 같은 문제을 의식하고 이 책을 쓰신것 같네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통해 이미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하셨는데,
(3월 2일, 정목사님의 누가복음 4장 설교와 같이),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저주 받은 죽음으로 이해했다고 하지요.
특히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 받은자'라고 생각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 까지도,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서 선포하신 말들은 모두 거짓말이 되어버린 상황이 된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시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주장이 옳았다고 선언하신것(vindicate, 145페이지)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이나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죽이려고 살기 등등했던 바울이나
모두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서야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겠지요.
특히 바울의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고 핍박했던 예수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라고 이해하게 된 것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분명한 사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가 사실이구나 하는 인식에 기초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울로서는 그전까지의 자신을 쏭두리채 부정하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힘을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경험했고,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의미하는바,
하나님께서 그를 the Christ로 vindicate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그의 메시지의 핵심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부터 40일간 '
'하나님 나라'의 일을 다시 듣고 (사도행전1장)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을 다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부활의 빛 아래에서 예수님의 삶을 복음서에 정리해준 것이겠지요.
그렇게 복음서와 사도행전-서신서를 연결해서 보면서
전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로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던 예수를
세상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의 모양으로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키심으로써
예수가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했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라는 것을 vindicate하썼다."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주제가, 이렇게 짧은 생각으로 해결되는 않을테니
강의실에 함께 앉아있는 여러분과
교수님의 comment를 기다립니다.
할 수 없이 나도 똑똑하신 분이 나설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