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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에 "헨리 나웬의 영성"을 소개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중의 한 분이 헨리 나웬은 말년에 가서 여러 가지 추문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 보았더니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그 전도사님 왈 "동성애자였고 만인구원설을 주장한 헨리 나우웬을 영성의 거인으로만 보는 편협함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어는 정도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여러분들의 지혜로운 답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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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이 인터넷에서 찾은 김삼(ssvc02@gmail.com)이라는 분의 글입니다.
"지난 90년대부터 카톨릭은 물론, 한국 개신교계마저 헨리 나우웬의 영성적 가르침에 깊이 천착해왔다. 바로 이 시간에도 수많은 개신교인들과 교계언론이 나우웬을 대단한 영성신학자로 부각시키거나 존중하고들 있다. 그의 서적과 글에 감동 받아 펑펑 울기까지 한다.
일찍이 나우웬의 영성에 감화 받아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런 현상이 퍽 우려스럽다. 대부분 겉으로 나타난 그만 알고 있지, 숨겨진 그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나우웬의 영향력을 기독교작가 C.S. 루이스나 카톨릭의 저명 신학자 토머스 멀튼에 비견하는 데, 멀튼은 모를까, 루이스에 견주려 들다니 말도 안된다. 여태 개신교의 영성이 카톨릭의 나우웬보다 못하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현 교계 서점들이 나우웬의 책을 팔아 남기는 이익이 그 영성보단 비중이 더 크지 않나 싶다.
알고보면, 나우웬은 어릴적부터 죽기까지 동성애자, 동성애 옹호론자였고, 말년에는 보편구원론 내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며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그의 '안식여정-최종일기'(Sabbatical Journey, The Diary of His Final Year)를 보면, 그가 중심 삼는 여섯 주제중 보편론적 구원사상이 나타난다. 즉 "(로마)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 신념으로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의 문을 열려고 오실 때,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썼다.
카톨릭 밖엔 구원이 없다는 믿음도 우리가 볼 때 문제지만,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누구나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 사상도 가히 이단적이다. 바로 다름아닌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신이 2000년 12월 6일 성 페트로 광장에서 한 말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그즈음 나우웬은 자신이 봉사하던 라르슈 공동체에서 신자든 아니든 누구나와 성만찬을 나눈 까닭도 이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란 사실을 우린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또 일기 속에서 자신의 깊은 속 비밀에 대한 동성애공포증(homophobia)으로부터 모든 '선천적' 동성애자들과의 강한 결속에 대한 확신으로 전이돼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석학이자 명문대학교 교수, 카톨릭 사제였던 나우웬은 명석한 사고의 작가이자 탁월한 연사였다. 흔히 '상처 입은 예언자'로 불린 그는 훗날로 갈수록 이성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었다. 그의 글을 보면 자신의 정서적인 말들이, 깊이 있는 성경 인용과 성경 풀이를 능가하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웨인 홀스트가 지적한 대로, 그는 창의적이기보다 기존개념을 대중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솔직히 노출시키는 감정이입 내지 공감대 형성에 뛰어났다. 자신은 해답을 모르지만, 체험과 규명을 통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제언가였다.
나우웬은 1932년 화란에서 태어나 1957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심리학 연구에 몰두한다. 1964년부터 81년까지는 메닌저 클리닉, 노틀데임, 니메건, 예일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50세를 지나서는 '그리스도의 내리막길'을 좇아 6개월간 볼리비아, 페루 빈민선교를 거쳐 멕시코, 니카라과, 온두라스에서 사역을 한뒤 잠시 교수생활로 되돌아왔다가 말년까지 정신장애우들을 위한 카나다 라르슈 공동체에서 일했다.
나우웬은 자타가 시인하는 소극적/비공개적 동성애자였다. 단적으로 마이클 포드가 쓴 전기 '헨리 나우웬의 초상'에 명기돼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평생 동성애적 애욕에 내적인 갈등을 겪었지만, 외적인 선행과 인고로써 극복해나갔다. 그래서 더욱 반사적으로 사목생활에 침잠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믿어야할지는 모르나, 1996년 9월 21일 그가 숨지고 난 뒤, 동성애 옹호단체 '의식있는 복음주의자들'의 뉴스레터인 '레코드' 96년 가을호는 "지난 4반세기 동안 나우웬은 '두 남성들, 또는 두 여성들 사이의 강한 상호애착에 바탕을 둔 깊은 대인관계에 대해 옹호적이었다"면서 1971년 나우웬이 "동성애 감정을 지니지 않은 척 하는 사람은 심장이 잆이도 살 수 있는 척 하는 사람과 같다"고 썼다는 글을 인용했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타고난 동성애자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란 누구나 강한 의지로써 크리스토 앞에 마음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고침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못말리는 동성애자라고 믿게끔 만드는 것은 성경이나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과 악령들이다. 바로 사탄의 졸개인 '동성애의 영'(spirit of homosexuality)이 그렇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나우웬이 자신은 동성애자로 태어났다고 믿기 시작한 시기는 그가 사제가 되고싶다는 '소명'을 받은 시기와 엇비슷한 때였다. 그는 고미다락방을 어린이 채플로 개조하기까지 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곳곳에서 우후죽순격으로 터지고있는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배상소송들의 배경을 보면, 전통적으로 다수의 사제들에겐 동성애/남색의 악령과 악습 및 그 저주가 맥맥히 이어지고 있음을 간파한다.
말하자면, 나우웬은 이 점에서 평생을 악령에게 속아 산 셈이다. 동성애는 (비록 어릴 적부터라고 해도) 동기를 막론하고 악령의 장난과 자신의 욕정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며 거기 마음을 두는 한은 악령에게 조종받는다. "남자들도..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롬 1:27).
이 점에서 그가 '상처' 받은 것이 있다면, 사탄과 그의 졸개들에게 상처받은 것이다. 그것은 크리스토의 구속과 해방사역에 의해 치유받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일생을 두고 끼고 있을 필요가 없는 상처다.
거듭난 이는 모든 것에 변화받은 새 피조물이다.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가 중생인이다. 다른 모든 죄와 욕정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버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동성애 애욕 하나를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서야 무슨 깊은 영성이 나오겠는가? 아니 '영성'이란 말 자체가 카톨릭에서 나오지 않았나? 거기 개신교인들이 목을 맬 필요가 뭣인가?
포드에 따르면, 나우웬은 생애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욱 모종의 애욕을 느낀다. 독신자인 사제여서인지 동성애자여선지, 정서적 아픔과 애정과 개인적 관심, 우정을 향한 갈구를 토로하곤 했다. 그는 늘 대중의 관심에 굶주렸다. 관심과 주목의 주 대상이길 원했다. 전세계에 친구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고 한밤에도 전화를 걸어 외로움을 호소하곤했다.
신체적인 접촉도 자주 갈망했다. 한번은 연설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친구에게 포옹해달라고 황급히 간청했다. 그 친구는 훗날, "그가 격렬하게 내게 매달려왔고 나도 꼭 껴안아줬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인정이 그리웠던 그에게 일말의 연민이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그를 두고 포드는 나우웬의 동성애적 바탕을 염두에 두지않고는 "그의 인간됨의 복잡미묘함과 고뇌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썼다. 메닌저 클리닉에서도 그는 자신의 '장애'이자 이겨내야 할 '십자가'인 동성애적 성향과 씨름해야 했다. 반면, 하버드에서는 동성애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면서 "동성애는 악의 존재상태"라고 일러줬다.
그는 수많은 동성애자 친구들과 사귀면서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공개하고픈 유혹과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카톨릭 작가와 신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에 치명적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말렸다. 생애 말기로 다가갈수록 그는 남녀 동성애자들에 대한 옹호의 목청을 더욱 높여갔다. "그들은 기독교공동체에 고유한 소명을 갖고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그가 더 살았다면 동성애 연구에 관한 중요한 저술을 했을 것이라고 포드는 미뤄말했다.
나우웬은 그의 성적인 오리엔테이션을 사람들이 알고 그를 배척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포드는 말한다. "그 엄청난 정서적, 영적, 신체적 부담이 그의 조기사망에 기여했을지 모른다."
나우웬은 지나칠 정도로 손이 넓어 수많은 친구들에게 여러가지 이유를 달아 돈과 꽃, 선물을 자주 보내곤 했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나우웬의 강요성 때문에 부담이 커서 선물을 돌려보내곤 했다. 친한 친구 네이턴 볼('라르슈 데이브레이크' 대표)도 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둘의 '플라토닉 러브' 관계로부터 슬슬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나우웬은 한동안 의기소침에 빠져 정서불안증 치료를 받아야했다.
나우웬의 글과 말이 호소력이 있던 주된 까닭은 이런 깊은 내면적 정서와 고통을 드러내어 말했기 때문이다. 책 '사랑의 내적 음성'에서 그는 이렇게 내리읊는다.
"우정은 당신의 큰 고통의 바탕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도 바라기에 때로는 참된 친구를 찾아 자주 자신을 잃곤 합니다. 당신이 바라던 우정이 구체화되지 못했을 때 또는 큰 기대를 걸었던 우정이 지속되지 못했을 때, 많은 경우 절망적이 돼버립니다."
나우웬의 경우 위 방정식의 '우정'은 '동성애'로 대입될 수 있다고 봐진다. 우정으로 포장된, 우정의 얼굴을 가진 동성애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가 정신장애우들을 그처럼 피부에 닿게, 살갑게 돌봐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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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이 인터넷에서 찾은 김삼(ssvc02@gmail.com)이라는 분의 글입니다.
"지난 90년대부터 카톨릭은 물론, 한국 개신교계마저 헨리 나우웬의 영성적 가르침에 깊이 천착해왔다. 바로 이 시간에도 수많은 개신교인들과 교계언론이 나우웬을 대단한 영성신학자로 부각시키거나 존중하고들 있다. 그의 서적과 글에 감동 받아 펑펑 울기까지 한다.
일찍이 나우웬의 영성에 감화 받아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런 현상이 퍽 우려스럽다. 대부분 겉으로 나타난 그만 알고 있지, 숨겨진 그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나우웬의 영향력을 기독교작가 C.S. 루이스나 카톨릭의 저명 신학자 토머스 멀튼에 비견하는 데, 멀튼은 모를까, 루이스에 견주려 들다니 말도 안된다. 여태 개신교의 영성이 카톨릭의 나우웬보다 못하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현 교계 서점들이 나우웬의 책을 팔아 남기는 이익이 그 영성보단 비중이 더 크지 않나 싶다.
알고보면, 나우웬은 어릴적부터 죽기까지 동성애자, 동성애 옹호론자였고, 말년에는 보편구원론 내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며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그의 '안식여정-최종일기'(Sabbatical Journey, The Diary of His Final Year)를 보면, 그가 중심 삼는 여섯 주제중 보편론적 구원사상이 나타난다. 즉 "(로마)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 신념으로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의 문을 열려고 오실 때,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썼다.
카톨릭 밖엔 구원이 없다는 믿음도 우리가 볼 때 문제지만,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누구나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 사상도 가히 이단적이다. 바로 다름아닌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신이 2000년 12월 6일 성 페트로 광장에서 한 말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그즈음 나우웬은 자신이 봉사하던 라르슈 공동체에서 신자든 아니든 누구나와 성만찬을 나눈 까닭도 이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란 사실을 우린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또 일기 속에서 자신의 깊은 속 비밀에 대한 동성애공포증(homophobia)으로부터 모든 '선천적' 동성애자들과의 강한 결속에 대한 확신으로 전이돼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석학이자 명문대학교 교수, 카톨릭 사제였던 나우웬은 명석한 사고의 작가이자 탁월한 연사였다. 흔히 '상처 입은 예언자'로 불린 그는 훗날로 갈수록 이성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었다. 그의 글을 보면 자신의 정서적인 말들이, 깊이 있는 성경 인용과 성경 풀이를 능가하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웨인 홀스트가 지적한 대로, 그는 창의적이기보다 기존개념을 대중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솔직히 노출시키는 감정이입 내지 공감대 형성에 뛰어났다. 자신은 해답을 모르지만, 체험과 규명을 통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제언가였다.
나우웬은 1932년 화란에서 태어나 1957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심리학 연구에 몰두한다. 1964년부터 81년까지는 메닌저 클리닉, 노틀데임, 니메건, 예일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50세를 지나서는 '그리스도의 내리막길'을 좇아 6개월간 볼리비아, 페루 빈민선교를 거쳐 멕시코, 니카라과, 온두라스에서 사역을 한뒤 잠시 교수생활로 되돌아왔다가 말년까지 정신장애우들을 위한 카나다 라르슈 공동체에서 일했다.
나우웬은 자타가 시인하는 소극적/비공개적 동성애자였다. 단적으로 마이클 포드가 쓴 전기 '헨리 나우웬의 초상'에 명기돼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평생 동성애적 애욕에 내적인 갈등을 겪었지만, 외적인 선행과 인고로써 극복해나갔다. 그래서 더욱 반사적으로 사목생활에 침잠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믿어야할지는 모르나, 1996년 9월 21일 그가 숨지고 난 뒤, 동성애 옹호단체 '의식있는 복음주의자들'의 뉴스레터인 '레코드' 96년 가을호는 "지난 4반세기 동안 나우웬은 '두 남성들, 또는 두 여성들 사이의 강한 상호애착에 바탕을 둔 깊은 대인관계에 대해 옹호적이었다"면서 1971년 나우웬이 "동성애 감정을 지니지 않은 척 하는 사람은 심장이 잆이도 살 수 있는 척 하는 사람과 같다"고 썼다는 글을 인용했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타고난 동성애자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란 누구나 강한 의지로써 크리스토 앞에 마음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고침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못말리는 동성애자라고 믿게끔 만드는 것은 성경이나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과 악령들이다. 바로 사탄의 졸개인 '동성애의 영'(spirit of homosexuality)이 그렇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나우웬이 자신은 동성애자로 태어났다고 믿기 시작한 시기는 그가 사제가 되고싶다는 '소명'을 받은 시기와 엇비슷한 때였다. 그는 고미다락방을 어린이 채플로 개조하기까지 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곳곳에서 우후죽순격으로 터지고있는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배상소송들의 배경을 보면, 전통적으로 다수의 사제들에겐 동성애/남색의 악령과 악습 및 그 저주가 맥맥히 이어지고 있음을 간파한다.
말하자면, 나우웬은 이 점에서 평생을 악령에게 속아 산 셈이다. 동성애는 (비록 어릴 적부터라고 해도) 동기를 막론하고 악령의 장난과 자신의 욕정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며 거기 마음을 두는 한은 악령에게 조종받는다. "남자들도..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롬 1:27).
이 점에서 그가 '상처' 받은 것이 있다면, 사탄과 그의 졸개들에게 상처받은 것이다. 그것은 크리스토의 구속과 해방사역에 의해 치유받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일생을 두고 끼고 있을 필요가 없는 상처다.
거듭난 이는 모든 것에 변화받은 새 피조물이다.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가 중생인이다. 다른 모든 죄와 욕정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버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동성애 애욕 하나를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서야 무슨 깊은 영성이 나오겠는가? 아니 '영성'이란 말 자체가 카톨릭에서 나오지 않았나? 거기 개신교인들이 목을 맬 필요가 뭣인가?
포드에 따르면, 나우웬은 생애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욱 모종의 애욕을 느낀다. 독신자인 사제여서인지 동성애자여선지, 정서적 아픔과 애정과 개인적 관심, 우정을 향한 갈구를 토로하곤 했다. 그는 늘 대중의 관심에 굶주렸다. 관심과 주목의 주 대상이길 원했다. 전세계에 친구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고 한밤에도 전화를 걸어 외로움을 호소하곤했다.
신체적인 접촉도 자주 갈망했다. 한번은 연설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친구에게 포옹해달라고 황급히 간청했다. 그 친구는 훗날, "그가 격렬하게 내게 매달려왔고 나도 꼭 껴안아줬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인정이 그리웠던 그에게 일말의 연민이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그를 두고 포드는 나우웬의 동성애적 바탕을 염두에 두지않고는 "그의 인간됨의 복잡미묘함과 고뇌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썼다. 메닌저 클리닉에서도 그는 자신의 '장애'이자 이겨내야 할 '십자가'인 동성애적 성향과 씨름해야 했다. 반면, 하버드에서는 동성애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면서 "동성애는 악의 존재상태"라고 일러줬다.
그는 수많은 동성애자 친구들과 사귀면서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공개하고픈 유혹과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카톨릭 작가와 신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에 치명적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말렸다. 생애 말기로 다가갈수록 그는 남녀 동성애자들에 대한 옹호의 목청을 더욱 높여갔다. "그들은 기독교공동체에 고유한 소명을 갖고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그가 더 살았다면 동성애 연구에 관한 중요한 저술을 했을 것이라고 포드는 미뤄말했다.
나우웬은 그의 성적인 오리엔테이션을 사람들이 알고 그를 배척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포드는 말한다. "그 엄청난 정서적, 영적, 신체적 부담이 그의 조기사망에 기여했을지 모른다."
나우웬은 지나칠 정도로 손이 넓어 수많은 친구들에게 여러가지 이유를 달아 돈과 꽃, 선물을 자주 보내곤 했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나우웬의 강요성 때문에 부담이 커서 선물을 돌려보내곤 했다. 친한 친구 네이턴 볼('라르슈 데이브레이크' 대표)도 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둘의 '플라토닉 러브' 관계로부터 슬슬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나우웬은 한동안 의기소침에 빠져 정서불안증 치료를 받아야했다.
나우웬의 글과 말이 호소력이 있던 주된 까닭은 이런 깊은 내면적 정서와 고통을 드러내어 말했기 때문이다. 책 '사랑의 내적 음성'에서 그는 이렇게 내리읊는다.
"우정은 당신의 큰 고통의 바탕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도 바라기에 때로는 참된 친구를 찾아 자주 자신을 잃곤 합니다. 당신이 바라던 우정이 구체화되지 못했을 때 또는 큰 기대를 걸었던 우정이 지속되지 못했을 때, 많은 경우 절망적이 돼버립니다."
나우웬의 경우 위 방정식의 '우정'은 '동성애'로 대입될 수 있다고 봐진다. 우정으로 포장된, 우정의 얼굴을 가진 동성애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가 정신장애우들을 그처럼 피부에 닿게, 살갑게 돌봐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 같다."
2008.03.10 04:21:54
이런 수준낮은 글이 한국교회 (특히 보수적인 교회)에서 주목을 받고 진실인양 받아들여진다는 자체가 한국교회의 수준 역시 그만큼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2008.03.10 15:51:46
ㅎㅎ 이 분은 뉴욕 근처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정확치는 않습니다.
usaamen.net이란 웹사이트에 컬럼방이 있습니다.
엄청 싸움질 합니다. 거기서..
usaamen.net이란 웹사이트에 컬럼방이 있습니다.
엄청 싸움질 합니다. 거기서..
2008.03.10 13:10:10
애정과 관심에 대한 목마름... 이건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가장 인간적인 목마름이겠죠... 저는 오히려 위대한 영성가의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에 애틋한 연민이 느껴지는데... 이 것마저도 부정해버리고 싶은지... 그리고 "김삼" 이라는 사람은 헨리 나우웬 신부님을 무슨 신인줄 생각하나봐요... 그리고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동성애적인 성향을 "죄" 라고 하는데서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군요... 마치 정치적으로 우파인 노무현이 성향으로는 왼 쪽으로 기운 느낌이 있기 때문에 "빨갱이" 라고 이야기해버리는 그런 느낌이 드네요...
2008.04.02 08:05:33
모래알님, 컬럼방 맞지요? 컬럼방의 '김삼'
문제의 칼럼링크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동성애자로서의-헨리-나웬
문제의 칼럼링크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동성애자로서의-헨리-나웬
2008.04.02 01:22:47
복음과 상황 197호(책벌레 카페) '헨리 나웬과 복음주의 영성'이란 글이 좋은 대답이 될거같네요. 헨리 나웬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절제하면서도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준 글입니다. 다만... 전 종이책으로 봤는데, 인터넷에서 보려면 결제를 해야 한다는... ^^;;
2008.04.02 11:51:21
스파크님! 안녕하세요?
이 글을 올리신 이유가 정확하게는 와닿지가 않습니다만, 부정적인 의도가 아니라는 생각에 댓글을 달아봅니다.
아마도 그 전도사님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목사들도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미국보수근본주의자들의 시각이 그렇거든요.
그러니 그 신봉자들인 한국의 교계도 거의 동성애에 대한 단죄와 만인구원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동성애 특별법인가 뭔가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헨리나우엔님이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면 그가 삶과 신앙이 어느정도 일치했는가가 중요하지 동성애냐 아니냐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바울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구절이 도덕적 기준이 될 수도 없고, 절대 진리가 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만인구원설이냐 아님 선택구원설이냐를 떠나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내고자 했는가를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만약 제 개인적으로 묻는다면 저는 헨리나우엔님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입니다.
제 친구 들 중에서는 저를 이단이라는 판정을 내린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단이라는 의미는 정통성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지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라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며,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다만 교리상으로 정통교리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라구요.
카톨릭의 영성이든, 개신교의 영성이든, 타종교의 영성이든 그것을 통해서 나의 신앙이 더 깊어지고, 더 그 분과 소통이 원할해 진다면 그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님께서 읽고 느끼시는 대로 느끼시고 더욱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는 삶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을 올리신 이유가 정확하게는 와닿지가 않습니다만, 부정적인 의도가 아니라는 생각에 댓글을 달아봅니다.
아마도 그 전도사님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목사들도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미국보수근본주의자들의 시각이 그렇거든요.
그러니 그 신봉자들인 한국의 교계도 거의 동성애에 대한 단죄와 만인구원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동성애 특별법인가 뭔가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헨리나우엔님이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면 그가 삶과 신앙이 어느정도 일치했는가가 중요하지 동성애냐 아니냐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바울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구절이 도덕적 기준이 될 수도 없고, 절대 진리가 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만인구원설이냐 아님 선택구원설이냐를 떠나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내고자 했는가를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만약 제 개인적으로 묻는다면 저는 헨리나우엔님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입니다.
제 친구 들 중에서는 저를 이단이라는 판정을 내린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단이라는 의미는 정통성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지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라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며,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다만 교리상으로 정통교리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라구요.
카톨릭의 영성이든, 개신교의 영성이든, 타종교의 영성이든 그것을 통해서 나의 신앙이 더 깊어지고, 더 그 분과 소통이 원할해 진다면 그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님께서 읽고 느끼시는 대로 느끼시고 더욱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는 삶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04.16 16:01:12
헨리 나우엔이 쓴 책 한두권 읽어본 경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위에 올려주신 글을 잘 봤고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는데..
밑에 댓글을 훑어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수준 낮은 글.. 운운..
-사탄적인 글.. 운운..
제가 보기에 위 글이 없는 사실을 날조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 건전한 신앙관에 기초하고 논리적으로 잘 씌여진 글로 보이는데
이런 막말에 가까운 험담을 들어야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동성애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글이라서
-타 종교를 믿는 사람이 내 종교를 의 글이라서
대충 짐작은 가는데.. 댓글에 악평을 다는 이유는 정작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재고할 가치도 없는 글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악플 달아주신 여러분들께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1.동성애가 정말로 성도의 성결한 생활 태도로써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2.아니면, 동성애는 개인적인 성적 취향의 하나로써 구원과는 전혀 무관하다..그겁니까..?
여기 다비안들 중에는 가끔 동성애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매우 신경질적으로
댓글 다시는 분들이 많던데.. 그런 분들은 도대체 동성애에 대해서
어떤 신앙적인 견해를 갖고 계시길래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저는 성경에 대해서 많은 지식은 없고 그저.. 사도 바울이 말씀하셨으면..그러려니..
그렇게 살아야하겠거니..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구약을 보나 신약을 보나..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동성애는 분명코 죄이고..
성도로서 성결한 생활을 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당연코 배척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동성애에 대한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위에서 제시한 두가지 질문에 대해서 위에 악플 다신 분들께
자신의 생각을 밝혀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반드시 자신의 견해를 짧게 답해주셨으면 감사하겠고요..
남들이 장황하게 늘어놓은 장문의 기사에 링크하는 것은 절대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위에 올려주신 글을 잘 봤고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는데..
밑에 댓글을 훑어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수준 낮은 글.. 운운..
-사탄적인 글.. 운운..
제가 보기에 위 글이 없는 사실을 날조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 건전한 신앙관에 기초하고 논리적으로 잘 씌여진 글로 보이는데
이런 막말에 가까운 험담을 들어야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동성애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글이라서
-타 종교를 믿는 사람이 내 종교를 의 글이라서
대충 짐작은 가는데.. 댓글에 악평을 다는 이유는 정작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재고할 가치도 없는 글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악플 달아주신 여러분들께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1.동성애가 정말로 성도의 성결한 생활 태도로써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2.아니면, 동성애는 개인적인 성적 취향의 하나로써 구원과는 전혀 무관하다..그겁니까..?
여기 다비안들 중에는 가끔 동성애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매우 신경질적으로
댓글 다시는 분들이 많던데.. 그런 분들은 도대체 동성애에 대해서
어떤 신앙적인 견해를 갖고 계시길래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저는 성경에 대해서 많은 지식은 없고 그저.. 사도 바울이 말씀하셨으면..그러려니..
그렇게 살아야하겠거니..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구약을 보나 신약을 보나..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동성애는 분명코 죄이고..
성도로서 성결한 생활을 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당연코 배척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동성애에 대한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위에서 제시한 두가지 질문에 대해서 위에 악플 다신 분들께
자신의 생각을 밝혀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반드시 자신의 견해를 짧게 답해주셨으면 감사하겠고요..
남들이 장황하게 늘어놓은 장문의 기사에 링크하는 것은 절대 사양하겠습니다..^^
2008.04.18 10:55:23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예를 들어서 동성애라는 것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남자인데 남자를 보면 마음이 두근 두근 거리고 이성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윗 글은 악의적으로 헨리 나우웬을 빨간 뺑끼칠하는 글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래도 그 자신의 동성애적인 성향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악전고투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저런 식으로 매도하는 글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든, 그 누구든 똑같은 기준에서 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은 동성애적인 성향이 이해는 안됩니다... 그렇더라도 억지로라도 그 사람들을 이해해주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요?
저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든, 그 누구든 똑같은 기준에서 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은 동성애적인 성향이 이해는 안됩니다... 그렇더라도 억지로라도 그 사람들을 이해해주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요?
2008.04.18 15:00:59
결국은 동성애의 뿌리(원인)에 대한 해석에서 갈라지네요..
본문에서는 "타고난 동성애자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성경 말씀에 따라 동성애는 죄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래 댓글들에서는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동성애자로 타고난다"면서
그런데 그걸 가리켜 죄라고 정죄하면 안된다..고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동성애를 타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봅시다..(동의하지는 않지만 가정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것이라고해서 다 선한 것은 아니고..
또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동성애를 설사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성경 말씀에 죄라고 한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죄라면 신앙의 힘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이 옳지..
타고난건데 어쩌란 말이냐..면서 자신의 죄악에 빠진 모습을 변호하는데
열심을 내는 것은 신앙적인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말씀에서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질문답변 게시판이 반드시 신앙인들만 참여하는 공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답변하신 분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시는 분들이 아니라면 이런 논의는 애당초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세상 지식이나 많은 사람들의 경향을 제 판단의 근거로 삼지 않기때문에..
혹시 댓글 다신 분들이 그런 분들이시라면..그냥 여기서 논쟁을 끝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각자 믿는 것이 다르기 때문인데..
믿음이라는 것이 인터넷 댓글 토론으로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할 성질이 아니잖습니까..?
그저 각자 믿음대로 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댓글 다신 분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시는 분들이라면..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동성애에 대한 본문의 견해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댓글에서 주장하시는 생각들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물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말씀에 근거하여 죄로 규정하는 것과
사회적 제도적으로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별도로 구분해야 마땅합니다..
본문에서는 "타고난 동성애자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성경 말씀에 따라 동성애는 죄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래 댓글들에서는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동성애자로 타고난다"면서
그런데 그걸 가리켜 죄라고 정죄하면 안된다..고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동성애를 타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봅시다..(동의하지는 않지만 가정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것이라고해서 다 선한 것은 아니고..
또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동성애를 설사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성경 말씀에 죄라고 한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죄라면 신앙의 힘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이 옳지..
타고난건데 어쩌란 말이냐..면서 자신의 죄악에 빠진 모습을 변호하는데
열심을 내는 것은 신앙적인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말씀에서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질문답변 게시판이 반드시 신앙인들만 참여하는 공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답변하신 분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시는 분들이 아니라면 이런 논의는 애당초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세상 지식이나 많은 사람들의 경향을 제 판단의 근거로 삼지 않기때문에..
혹시 댓글 다신 분들이 그런 분들이시라면..그냥 여기서 논쟁을 끝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각자 믿는 것이 다르기 때문인데..
믿음이라는 것이 인터넷 댓글 토론으로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할 성질이 아니잖습니까..?
그저 각자 믿음대로 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댓글 다신 분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시는 분들이라면..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동성애에 대한 본문의 견해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댓글에서 주장하시는 생각들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물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말씀에 근거하여 죄로 규정하는 것과
사회적 제도적으로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별도로 구분해야 마땅합니다..
2008.04.18 19:08:56
초점이 흐려졌네요... 원 글은 동성애가 가타 부타는 것을 떠나서 동성애 문제를 통해서 헨리 나우웬의 인격 자체를 모독하려는 음모 짙은 글입니다... 그게 문젭니다... 동성애는 둘째 문제구요... 헨리 나우웬이 동성애자라고 칩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뭔 사고를 치거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일이라도 있나요?
2008.04.18 23:48:19
싸이먼 님은 동성애가 죄라고 확신하시는가 보군요.
그 증거는 로마서겠구요.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거나
머리에 뭐를 쓰라고 가르쳤는데요.
그것도 그대로 따르시나요?
제가 조금 시비 조로 말씀드려서 미안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문자 그대로 모든 진리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랍니다.
성경의 내용은 해석되어야 하니까요.
검색창을 통해서 <동성애>를 치시면
동성애에 관해서 제가 쓴 글이 나올 텐데요.
그것을 잃어보시고,
그곳에 대글을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생각에
헨리 나우엔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그의 영성을 말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주말을!
그 증거는 로마서겠구요.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거나
머리에 뭐를 쓰라고 가르쳤는데요.
그것도 그대로 따르시나요?
제가 조금 시비 조로 말씀드려서 미안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문자 그대로 모든 진리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랍니다.
성경의 내용은 해석되어야 하니까요.
검색창을 통해서 <동성애>를 치시면
동성애에 관해서 제가 쓴 글이 나올 텐데요.
그것을 잃어보시고,
그곳에 대글을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생각에
헨리 나우엔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그의 영성을 말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주말을!
2008.04.19 13:09:48
또한 글 제목에 "... 추문" 이란 말이 너무 선정적이지 않습니까? 실제 글 내용 속에는 헨리 나우웬이 어떤 스캔달을 일으켰는지 내용 조차 찾기가 힘드네요...
2008.04.21 10:30:47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신구약을 통해서 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까지
죄 아닌 것으로 확대 해석(?)해야 합니까..?
그러다 보면.. 이것 저것 나름대로 해석한답시고..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게 될텐데..
차라리 지나친 성경 해석은 해석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믿는 것보다 더 위태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머리에 무얼 쓰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쓰건 안쓰건 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죄에 관한 문제는 아니니까요..
추문이라는 제목이 거슬린다고 하셨는데.. 다소 그런 면이 있네요..
하지만 여기서 추문은 남녀간의 스캔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성의 대가라고 자타가 공인하시는 분이 동성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의 영성이 동성애에
근거한 혐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추문"이라고 주장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신구약을 통해서 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까지
죄 아닌 것으로 확대 해석(?)해야 합니까..?
그러다 보면.. 이것 저것 나름대로 해석한답시고..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게 될텐데..
차라리 지나친 성경 해석은 해석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믿는 것보다 더 위태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머리에 무얼 쓰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쓰건 안쓰건 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죄에 관한 문제는 아니니까요..
추문이라는 제목이 거슬린다고 하셨는데.. 다소 그런 면이 있네요..
하지만 여기서 추문은 남녀간의 스캔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성의 대가라고 자타가 공인하시는 분이 동성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의 영성이 동성애에
근거한 혐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추문"이라고 주장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2008.04.22 11:07:24
제가 "추문"을 남녀 간의 스캔들 수준으로 이해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에요... 헨리 나우웬의 인격과 진정성에 대한 모독을 문제삼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글 쓴이가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보이네요...
2008.04.22 01:30:41
헨리 나웬이 동성애와 만인구원설로 인해 말년에 좋지 않은 소문(추문)들을 일으켰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헨리 나웬의 영성과 추문들이라고 했는데, 제목때문에 불편하신 분이 많은 것 같아서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저 역시 헨리 나웬의 영성과, 그가 가졌던 동성애와 만인구원설에 대한 문제들을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영성에 대한 글들은 저의 신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단지 그의 동성애와 만인구원설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하는 물음을 가지고 다비아 여러분들께 의견을 구했던 것이지요.
저 역시 헨리 나웬의 영성과, 그가 가졌던 동성애와 만인구원설에 대한 문제들을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영성에 대한 글들은 저의 신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단지 그의 동성애와 만인구원설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하는 물음을 가지고 다비아 여러분들께 의견을 구했던 것이지요.
2008.04.22 17:13:06
싸이먼님이 "악플"이라고 폄하한 댓글을 단 사람입니다. 싸이먼님의 글을 읽다가 기분이 나빠져 한말씀 드려야겠군요. 위의 꼭지글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글이 고작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지껄인 악플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지나가다 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받다니... 이거 참... 어이가 없군요...
제가 굳이 위 꼭지글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들지 않았던 것은 다비안에 가입한 분들 정도의 이해력이라면 이런 류의 비논리적인 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정도는 쉽게 파악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회원들이 그렇지는 못한 것 같군요. 싸이먼님은 꼭지글의 내용중에 뭐가 문제인지 정말로 이해가 안 됩니까?
지금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 이런 문제로 꼭지글을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이 글이 지닌 문제의 핵심은 "나우웬이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가 행한 선행의 가치는 물론 그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비록 구원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그가 육신에 있는한 육체의 정욕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토로했던 내용 아닙니까? 그러나 비록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의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거부하고 이겨내는 힘을 주시기에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유혹과 그에 대한 번민이 내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비판을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꼭지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동성애는 죄다. 죄는 그리스도안에서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나우웬은 죽을때까지 동성애 성향을 고민했기 때문에 변화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것 같다. 장애인에 대한 봉사조차도 동성애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게 올바른 논리입니까? 나우웬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두고 계속 고민하고 힘들어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필자는 교묘하게도 그가 마치 동성애 행위를 평생 저지른 사람인 것처럼 (나우웬이 동성연애를 직접 한 적이 있습니까?) 독자들이 오해하도록 그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유혹때문에 고민하는 것과 죄를 저지른 것이 같은 것입니까? 자신의 내면에서 계속적으로 동성애적 유혹이 다가오는것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모든 노력들과 선행들이 "동성애적 성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다 폄하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특히, 마지막 문단에서 장애인에 대한 봉사조차 동성애적인 측면에서 평가해야 된다는 상식이하의 발언에서는 필자에 대해 지극한 분노를 느낍니다)
결국, 꼭지글을 쓴 사람의 논리의 문제점은 "죄의 유혹이 다가오는 사람은 변화받지 못한 사람이다" 고 단정짓는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그 누구도 정죄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말씀과도 정면으로 대치되는 주장이기도 하지요. 바울도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라고 고백하였으니까요. 그러면,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롬7:21)"라고 탄식한 사도 바울도 성령안에서 변화받지 못한 사람입니까?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정욕이 느껴져서 고민입니다" 라면서 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민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여자에 대한 정욕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이 아니군요. 당신은 정죄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까?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힘듭니다" 라면서 자신의 탐심에 대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돈을 그리스도보다 더 섬기는 마음이 있으니 구원받지 못했군요" 이렇게 말합니까?
"나는 아무개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요. 무조건적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지만 나는 그를 용서하려고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으려 해도 안되요" 라면서 자신의 한계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것으로 보아 당신은 구원받고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죄합니까?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병원에서 치료받고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그래도 이 우울증이 없어지지 않아요" 라는 사람에게 "당신은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하나님의 구원과 평안이 당신 속에 없는 것 같군요. 진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맞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올바릅니까?
다시 말하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육신을 입고 사는 한 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꼭지글을 쓴 필자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죄를 극복한다는 것은 죄의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죄의 유혹자체가 없는 상태라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죄의 유혹이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마치 죄인인양 심판하고 정죄한다면 어느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잘도 발견하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나우웬이 마치 범죄자라도 된듯 그의 흠을 잡으려고 안달인 인신공격에 가까운 윗글을 읽고 있으면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몹시 안타깝습니다. 이런 글을 쓸 열정으로 한국교회의 개혁에 매진하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제가 굳이 위 꼭지글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들지 않았던 것은 다비안에 가입한 분들 정도의 이해력이라면 이런 류의 비논리적인 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정도는 쉽게 파악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회원들이 그렇지는 못한 것 같군요. 싸이먼님은 꼭지글의 내용중에 뭐가 문제인지 정말로 이해가 안 됩니까?
지금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 이런 문제로 꼭지글을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이 글이 지닌 문제의 핵심은 "나우웬이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가 행한 선행의 가치는 물론 그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비록 구원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그가 육신에 있는한 육체의 정욕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토로했던 내용 아닙니까? 그러나 비록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의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거부하고 이겨내는 힘을 주시기에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유혹과 그에 대한 번민이 내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비판을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꼭지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동성애는 죄다. 죄는 그리스도안에서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나우웬은 죽을때까지 동성애 성향을 고민했기 때문에 변화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것 같다. 장애인에 대한 봉사조차도 동성애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게 올바른 논리입니까? 나우웬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두고 계속 고민하고 힘들어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필자는 교묘하게도 그가 마치 동성애 행위를 평생 저지른 사람인 것처럼 (나우웬이 동성연애를 직접 한 적이 있습니까?) 독자들이 오해하도록 그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유혹때문에 고민하는 것과 죄를 저지른 것이 같은 것입니까? 자신의 내면에서 계속적으로 동성애적 유혹이 다가오는것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모든 노력들과 선행들이 "동성애적 성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다 폄하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특히, 마지막 문단에서 장애인에 대한 봉사조차 동성애적인 측면에서 평가해야 된다는 상식이하의 발언에서는 필자에 대해 지극한 분노를 느낍니다)
결국, 꼭지글을 쓴 사람의 논리의 문제점은 "죄의 유혹이 다가오는 사람은 변화받지 못한 사람이다" 고 단정짓는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그 누구도 정죄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말씀과도 정면으로 대치되는 주장이기도 하지요. 바울도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라고 고백하였으니까요. 그러면,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롬7:21)"라고 탄식한 사도 바울도 성령안에서 변화받지 못한 사람입니까?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정욕이 느껴져서 고민입니다" 라면서 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민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여자에 대한 정욕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이 아니군요. 당신은 정죄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까?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힘듭니다" 라면서 자신의 탐심에 대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돈을 그리스도보다 더 섬기는 마음이 있으니 구원받지 못했군요" 이렇게 말합니까?
"나는 아무개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요. 무조건적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지만 나는 그를 용서하려고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으려 해도 안되요" 라면서 자신의 한계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것으로 보아 당신은 구원받고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죄합니까?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병원에서 치료받고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그래도 이 우울증이 없어지지 않아요" 라는 사람에게 "당신은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하나님의 구원과 평안이 당신 속에 없는 것 같군요. 진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맞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올바릅니까?
다시 말하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육신을 입고 사는 한 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꼭지글을 쓴 필자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죄를 극복한다는 것은 죄의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죄의 유혹자체가 없는 상태라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죄의 유혹이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마치 죄인인양 심판하고 정죄한다면 어느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잘도 발견하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나우웬이 마치 범죄자라도 된듯 그의 흠을 잡으려고 안달인 인신공격에 가까운 윗글을 읽고 있으면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몹시 안타깝습니다. 이런 글을 쓸 열정으로 한국교회의 개혁에 매진하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2008.04.23 10:20:23
닥터케이님..
1.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로 댓글다신게 아니라고요..?
애당초 그런 정도의 설명을 추가하셨다면 좋았을 것을.. 제가 다비아에 낯설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2. 결국, 꼭지글을 쓴 사람의 논리의 문제점은 "죄의 유혹이 다가오는 사람은 변화받지 못한 사람이다" 고 단정짓는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본문에 없는 것인데요.. 닥터케이님이 유추하신거죠..?
그렇다면 이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고 있고요..
저라도 그런 주장이라면 반대하겠습니다..
댓글 말미에 아름다운 여인, 돈, 우울증.. 여러가지 예를 드셨는데.. 너무 멀리 가셨네요..
근거도 없는 자기 주장을 가지고 이렇게 까지 확대하시면 어쩝니까..?
1.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로 댓글다신게 아니라고요..?
애당초 그런 정도의 설명을 추가하셨다면 좋았을 것을.. 제가 다비아에 낯설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2. 결국, 꼭지글을 쓴 사람의 논리의 문제점은 "죄의 유혹이 다가오는 사람은 변화받지 못한 사람이다" 고 단정짓는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본문에 없는 것인데요.. 닥터케이님이 유추하신거죠..?
그렇다면 이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고 있고요..
저라도 그런 주장이라면 반대하겠습니다..
댓글 말미에 아름다운 여인, 돈, 우울증.. 여러가지 예를 드셨는데.. 너무 멀리 가셨네요..
근거도 없는 자기 주장을 가지고 이렇게 까지 확대하시면 어쩝니까..?
2008.04.23 11:49:58
제가 "유추한" 내용일 뿐 본문에서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고 있다고 단정하셨는데, 그렇다면 아래의 문장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문제많은 여러 문장들 중에서 하나만 먼저 뽑아보았습니다)
============================================================
거듭난 이는 모든 것에 변화받은 새 피조물이다.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가 중생인이다.
다른 모든 죄와 욕정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버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
"동성애도 버려야 한다" 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1)동성애 행위를 그만두라는 뜻인가요, 아니면 (2)동성애의 유혹(성향)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말인가요?
이 문장이 "거듭난 사람은 더이상 동성애 행위를 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만 합니다. 그러나, 다들 잘 아시다시피 나우웬은 동성애 성향으로 고민하였을뿐 동성애 행위를 해온 사람은 아니므로 이 말과는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비판하는 필자의 논리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결국, 나우웬이 평생 동성애의 성향때문에 고통받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그를 비판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유혹에 이기는 것은 의지로서 가능하지만 죄의 유혹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온다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앞의 글에서 밝혔습니다. 따라서, 첫번째 주장은 말이 되지만 두번째 주장이라면 처음부터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우웬은 동성연애를 한적이 없으므로 필자가 동성애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으로 적은 글은 아닐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필자는 "거듭난 사람이면 죄의 유혹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결과에 자연스럽게 귀착되는 것입니다.
이래도 제가 "근거없는 유추"를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 제 논리에 부족한 점이 있거나 또 다른 논리가 있으시다면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ps) 김삼 이라는 분의 다른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이 분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이나 사상의 패턴이 어떤지 잘 아실수 있을 겁니다. 이 분이 주장하시는 내용들중에 문제 있는 것들이 좀 많습니다. 그럴듯한 문장들속에 독선적인 주장들을 섞으면서 아주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듯이 사람들을 현혹하므로 성경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의 말이 진리인양 속아넘어가기 쉽습니다. 이 분이 쓴 글들중에 특히 나우웬 비판이나 관상기도 비판의 글들이 매우 독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고 다분히 감정적이며 인신공격적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못마땅합니다. 특히, 꼭지글 마지막 부분에서 장애인에 대한 봉사마저도 동성애적 성향으로 해석하는 악의적인 태도에는 혐오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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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이는 모든 것에 변화받은 새 피조물이다.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가 중생인이다.
다른 모든 죄와 욕정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버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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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도 버려야 한다" 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1)동성애 행위를 그만두라는 뜻인가요, 아니면 (2)동성애의 유혹(성향)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말인가요?
이 문장이 "거듭난 사람은 더이상 동성애 행위를 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만 합니다. 그러나, 다들 잘 아시다시피 나우웬은 동성애 성향으로 고민하였을뿐 동성애 행위를 해온 사람은 아니므로 이 말과는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비판하는 필자의 논리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결국, 나우웬이 평생 동성애의 성향때문에 고통받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그를 비판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유혹에 이기는 것은 의지로서 가능하지만 죄의 유혹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온다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앞의 글에서 밝혔습니다. 따라서, 첫번째 주장은 말이 되지만 두번째 주장이라면 처음부터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우웬은 동성연애를 한적이 없으므로 필자가 동성애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으로 적은 글은 아닐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필자는 "거듭난 사람이면 죄의 유혹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결과에 자연스럽게 귀착되는 것입니다.
이래도 제가 "근거없는 유추"를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 제 논리에 부족한 점이 있거나 또 다른 논리가 있으시다면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ps) 김삼 이라는 분의 다른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이 분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이나 사상의 패턴이 어떤지 잘 아실수 있을 겁니다. 이 분이 주장하시는 내용들중에 문제 있는 것들이 좀 많습니다. 그럴듯한 문장들속에 독선적인 주장들을 섞으면서 아주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듯이 사람들을 현혹하므로 성경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의 말이 진리인양 속아넘어가기 쉽습니다. 이 분이 쓴 글들중에 특히 나우웬 비판이나 관상기도 비판의 글들이 매우 독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고 다분히 감정적이며 인신공격적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못마땅합니다. 특히, 꼭지글 마지막 부분에서 장애인에 대한 봉사마저도 동성애적 성향으로 해석하는 악의적인 태도에는 혐오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2008.04.23 14:11:56
위 댓글에서
"필자는 "거듭난 사람이면 죄의 유혹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결과에
자연스럽게 귀착되는 것입니다. " 라고 주장하시는데..
저는 위 본문을 읽고서 그런 무리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귀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도 "죄의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받을 수 있습니다.." 됐습니까..?
하지만 위 글은 분명코 동성애가 죄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위 본문글에서 동성애가 죄라는 주장을 논외로 치면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저는 사실..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주장에만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김 목사가 어떤 주장을 펴왔는지 나우엔이 동성애를 하지는 않았고 그저 고민만했는지 관심 없습니다..
"필자는 "거듭난 사람이면 죄의 유혹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결과에
자연스럽게 귀착되는 것입니다. " 라고 주장하시는데..
저는 위 본문을 읽고서 그런 무리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귀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도 "죄의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받을 수 있습니다.." 됐습니까..?
하지만 위 글은 분명코 동성애가 죄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위 본문글에서 동성애가 죄라는 주장을 논외로 치면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저는 사실..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주장에만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김 목사가 어떤 주장을 펴왔는지 나우엔이 동성애를 하지는 않았고 그저 고민만했는지 관심 없습니다..
2008.04.23 14:51:49
"본문글에서 동성애가 죄라는 주장을 논외로 치면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글에서 주장하는 중심내용은 동성애를 소재로 하여 나우웬의 인격과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성가 중의 한명인 그가 다른 크리스쳔들에게 미친 훌륭한 업적들은 온데간데 없고 이런 지엽적인 것을 크게 부풀려서 그가 몹쓸 사람인 것처럼 주장하려는 것이지요. 김삼 이분이 쓴 다른 글에서는 아예 대놓고 "나우웬이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다" 라고 비판하더군요. 그럼으로써 복음의 순수성을 고수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그 점이 저는 매우 못마땅한 것입니다.
(ps) 이 꼭지글을 두고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 논하는건 핵심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동성애 행위 = 죄 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봐도 꼭지글 본문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글에서 주장하는 중심내용은 동성애를 소재로 하여 나우웬의 인격과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성가 중의 한명인 그가 다른 크리스쳔들에게 미친 훌륭한 업적들은 온데간데 없고 이런 지엽적인 것을 크게 부풀려서 그가 몹쓸 사람인 것처럼 주장하려는 것이지요. 김삼 이분이 쓴 다른 글에서는 아예 대놓고 "나우웬이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다" 라고 비판하더군요. 그럼으로써 복음의 순수성을 고수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그 점이 저는 매우 못마땅한 것입니다.
(ps) 이 꼭지글을 두고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 논하는건 핵심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동성애 행위 = 죄 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봐도 꼭지글 본문은 문제가 많습니다.)
2008.04.23 15:09:09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가 아니고,
거듭난 사람(중생인)은 어떤 사람이냐라는것이 핵심이라고 볼때
글쓴이의 주장을 다시 풀어보면
=========================================================
거듭난 이= 모든 것에 변화받은 새 피조물=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 중생인
= 다른 모든 죄도 버린사람 = 욕정도 버린 사람 = 동성애도 버린 사람 = 거듭난 사람
=========================================================
이와같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고 중생인이라면..
제가 아는한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있다면 그 사람은 성경속 어떤 인물보다 대단한 사람이 되던가,
아니면 인간이 아니던가 둘중의 하나겠죠.
죄를 범하느냐 아니냐로 중생의 여부를 판가름한다는것 자체가 문제라고봅니다.
거듭난 사람(중생인)은 어떤 사람이냐라는것이 핵심이라고 볼때
글쓴이의 주장을 다시 풀어보면
=========================================================
거듭난 이= 모든 것에 변화받은 새 피조물=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 중생인
= 다른 모든 죄도 버린사람 = 욕정도 버린 사람 = 동성애도 버린 사람 = 거듭난 사람
=========================================================
이와같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고 중생인이라면..
제가 아는한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있다면 그 사람은 성경속 어떤 인물보다 대단한 사람이 되던가,
아니면 인간이 아니던가 둘중의 하나겠죠.
죄를 범하느냐 아니냐로 중생의 여부를 판가름한다는것 자체가 문제라고봅니다.
2008.04.24 09:58:56
물론.. 중생한 사람도 죄의 유혹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중생한 사람이라면 죄에 대한 확실한 죄 의식이 있기때문에..
실제로 그것을 행하지는 못합니다..
나우엔이 영성의 대가라면, 필시 거듭난 사람일텐데..
죽을 때까지 동성애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했다는 것은
분명히 그의 영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중생한 사람이라면 죄에 대한 확실한 죄 의식이 있기때문에..
실제로 그것을 행하지는 못합니다..
나우엔이 영성의 대가라면, 필시 거듭난 사람일텐데..
죽을 때까지 동성애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했다는 것은
분명히 그의 영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2008.04.24 10:10:02
라이프님.. 이런 식이라면(거듭난 사람은 동성애도 버려야한다)
"세상에 거듭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셨네요.. 한마디로 지나친 논리의 비약입니다..
일단.. 세상에 거듭난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죠..? 그렇다면 이런 식이라고 전제한 그 전제가 너무
무리한 논리적 비약입니다.. 저는 위 본문이 그런 식의 억지를 부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라이프님의 이상한 8단 논법.. 어딘가에
논리의 비약이 숨어있습니다.. 함 직접 찾아보시지요..^^
"세상에 거듭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셨네요.. 한마디로 지나친 논리의 비약입니다..
일단.. 세상에 거듭난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죠..? 그렇다면 이런 식이라고 전제한 그 전제가 너무
무리한 논리적 비약입니다.. 저는 위 본문이 그런 식의 억지를 부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라이프님의 이상한 8단 논법.. 어딘가에
논리의 비약이 숨어있습니다.. 함 직접 찾아보시지요..^^
2008.04.24 12:01:25
싸이먼님, 저도 거듭난 사람이 많이 있다는것은 압니다.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중생이란 의미가 위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죄를 버린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없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즉 중생에 대한 의미가 잘못 되어있다는 겁니다.
똑같이 싸이먼님이 생각하시는 거듭난 사람도
" 중생한 사람이라면 죄에 대한 확실한 죄 의식이 있기때문에..
실제로 그것을 행하지는 못"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의식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죄를 행하지는 못한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죄가 무엇이냐" 라는 문제도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하지만..이건 넘기더라도..
아예 "죄를 행하지 못한다"고 무슨 근거로 그리 단정하시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중생이란 의미가 위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죄를 버린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없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즉 중생에 대한 의미가 잘못 되어있다는 겁니다.
똑같이 싸이먼님이 생각하시는 거듭난 사람도
" 중생한 사람이라면 죄에 대한 확실한 죄 의식이 있기때문에..
실제로 그것을 행하지는 못"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의식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죄를 행하지는 못한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죄가 무엇이냐" 라는 문제도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하지만..이건 넘기더라도..
아예 "죄를 행하지 못한다"고 무슨 근거로 그리 단정하시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2008.05.01 23:52:41
나우웬의 영성을 비판하려면 그가 남긴 책들의 내용을 비판해야지, 얼토당토않는 지엽적인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침소봉대함으로서 그의 영성 전체를 모독하는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나우웬과 같은 훌륭한 영성의 소유자에게서 뭐 하나라도 배울 생각보다는 그가 가톨릭에 속했다는 이유로 (사실, 김삼님의 나우웬 비판의 솔직한 근본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어떻게든지 그의 인격과 신앙을 깎아내리려 하는 꼭지글을 보면 참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2008.04.25 12:38:42
라이프님.. 중생해도 동성애 같은 죄 계속 지을 수 있고 죽을 때까지 그것으로 고민하고
괴로워 할 수 있다.. 결국 그 말씀이시네요..
그런 식으로 살면서도 .. 중생했다고 믿는다는게.. 이율배반처럼 느껴집니다..
둘 중 하나는 버리셔야죠.. 죄를 버리거나.. 중생했다고 착각하지 말거나..
이런 어영부영 신앙생활은..중생했다고 믿으면서 정작 죄는 버리기 싫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딱이겟네요.. ㅠ.ㅠ 잘 알겠습니다.. 각자 믿음대로 사시기로 하시죠..
저는 이만 퇴장하겠습니다..
괴로워 할 수 있다.. 결국 그 말씀이시네요..
그런 식으로 살면서도 .. 중생했다고 믿는다는게.. 이율배반처럼 느껴집니다..
둘 중 하나는 버리셔야죠.. 죄를 버리거나.. 중생했다고 착각하지 말거나..
이런 어영부영 신앙생활은..중생했다고 믿으면서 정작 죄는 버리기 싫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딱이겟네요.. ㅠ.ㅠ 잘 알겠습니다.. 각자 믿음대로 사시기로 하시죠..
저는 이만 퇴장하겠습니다..
2008.04.25 18:06:47
싸이먼님, 사도 바울이 고민한게 바로 그런 내용 아닙니까?
로마서 7장의 사도 바울의 고백은 이미 읽어보셨지 않습니까?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혹시 사도 바울의 이 탄식이 구원받기 전의 상황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로마서 7장의 사도 바울의 고백은 이미 읽어보셨지 않습니까?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혹시 사도 바울의 이 탄식이 구원받기 전의 상황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2008.04.26 23:36:21
싸이먼 님,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을 때까지 거듭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듯이
인간은 죽어야만 죄에서 벗어난답니다.
싸이먼 님이 어디서 신앙생활을 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제 추측에 구원파의 성격이 짙어보이는군요.
제가 박옥수 목사님의 구원파 신앙을 무조건 폄훼하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닌데요.
그런 구원파적인 신앙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해와 하나님 이해가 아주 단조로워서
기독교의 깊은 신앙을 담아내지 못한답니다.
제가 오해했으면 구원파 운운한 위의 말씀을 취소하겠습니다.
주의 은총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을 때까지 거듭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듯이
인간은 죽어야만 죄에서 벗어난답니다.
싸이먼 님이 어디서 신앙생활을 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제 추측에 구원파의 성격이 짙어보이는군요.
제가 박옥수 목사님의 구원파 신앙을 무조건 폄훼하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닌데요.
그런 구원파적인 신앙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해와 하나님 이해가 아주 단조로워서
기독교의 깊은 신앙을 담아내지 못한답니다.
제가 오해했으면 구원파 운운한 위의 말씀을 취소하겠습니다.
주의 은총이.
2008.04.27 00:23:12
라이프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중생했다고 믿으면서도 죄는 버리기 싫다"는 양다리 걸친 얍삽한 의미가 아니라 "중생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살다보면 완벽하게 죄짓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는 뜻인것 같은데, 제가 볼때는 싸이먼님이 라이프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신것 같습니다.
싸이먼님은 중생하고 나서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100% 깨끗하고 순결하게 살아오셨나요? 단언컨데 싸이먼님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는 100% 순결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조차 거듭나고 난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죄들 때문에 고민하였던 같습니다. 그에 대한 힌트는 로마서 7장인데, 이는 신자들이 거듭나기 전의 상황만을 묘사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한 100% 완벽한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에서는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지만 가톨릭이나 성공회에서 고백성사를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도 신자들이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아닙니까? 그렇지만, 인간의 이런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해주시는 신비한 은총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1)
하지만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그리워 하듯 죄가 그리워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입니다. 싸이먼님이 걱정하신건 바로 이런 극단적인 부분인듯 한데, 라이프님이 언급한 것은 이런 차원이 아니라 분명히 바로 앞 문단에서 제가 이야기한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니 더 이상의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또한, 나우웬 역시 싸이먼님의 우려와는 거리가 먼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비록 동성애의 유혹때문에 괴로와 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그런 유혹에 쓰러진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동성애를 옹호한 적 조차 없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신앙은 대단히 깊고 굳세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 깊은 영성의 샘물이 더해져 수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목마름을 해소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구요. 그에게서 영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나우웬에 대해서 조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싸이먼님은 중생하고 나서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100% 깨끗하고 순결하게 살아오셨나요? 단언컨데 싸이먼님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는 100% 순결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조차 거듭나고 난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죄들 때문에 고민하였던 같습니다. 그에 대한 힌트는 로마서 7장인데, 이는 신자들이 거듭나기 전의 상황만을 묘사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한 100% 완벽한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에서는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지만 가톨릭이나 성공회에서 고백성사를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도 신자들이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아닙니까? 그렇지만, 인간의 이런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해주시는 신비한 은총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1)
하지만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그리워 하듯 죄가 그리워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입니다. 싸이먼님이 걱정하신건 바로 이런 극단적인 부분인듯 한데, 라이프님이 언급한 것은 이런 차원이 아니라 분명히 바로 앞 문단에서 제가 이야기한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니 더 이상의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또한, 나우웬 역시 싸이먼님의 우려와는 거리가 먼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비록 동성애의 유혹때문에 괴로와 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그런 유혹에 쓰러진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동성애를 옹호한 적 조차 없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신앙은 대단히 깊고 굳세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 깊은 영성의 샘물이 더해져 수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목마름을 해소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구요. 그에게서 영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나우웬에 대해서 조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08.04.27 01:53:51
(제가 무슨 의도로 글을 썼는지는 닥터케이님이 설명을 해주셨고요.
혹시나 어느 교파이신지도 묻고 싶었는데 정 목사님이 대신해주셨네요.)
아래 글은 사이먼님께 드리는 글입니다.
다윗은 중생한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중생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이 어떻게 그리 큰 죄를 저질렀나요?
중생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다면.
다윗은 지옥에 가겠군요. 거듭난 사람이라면 죄를 못 지을 테니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다윗은 구원받기 위해서 반드시 거듭나야 할 텐데.
대체 언제 거듭난 건지 설명좀 해주시겠습니까?
또 하나
주기도문을 매 주일마다 하실 겁니다. 아마 믿는 자들은 죽을때까지하겠죠.
그렇다면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가 대체 무슨 말인지
설명좀 부탁드리구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죄라는건 싸이먼님이 조목조목 나열하실 수 있는 만큼만
즉 싸이먼님이 알고 계시는 것만이 죄가 아니란 겁니다.
그런 죄는 율법주의자들이 더 전문가죠.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죄를 안 짖기 위해 철두철미했는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당시에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을까요.
죄가 무엇인지는 인간이 기준이 아닙니다.
(굳이 답변 안해주셔도 됩니다.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쓴 글이니까요..)
혹시나 어느 교파이신지도 묻고 싶었는데 정 목사님이 대신해주셨네요.)
아래 글은 사이먼님께 드리는 글입니다.
다윗은 중생한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중생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이 어떻게 그리 큰 죄를 저질렀나요?
중생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다면.
다윗은 지옥에 가겠군요. 거듭난 사람이라면 죄를 못 지을 테니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다윗은 구원받기 위해서 반드시 거듭나야 할 텐데.
대체 언제 거듭난 건지 설명좀 해주시겠습니까?
또 하나
주기도문을 매 주일마다 하실 겁니다. 아마 믿는 자들은 죽을때까지하겠죠.
그렇다면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가 대체 무슨 말인지
설명좀 부탁드리구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죄라는건 싸이먼님이 조목조목 나열하실 수 있는 만큼만
즉 싸이먼님이 알고 계시는 것만이 죄가 아니란 겁니다.
그런 죄는 율법주의자들이 더 전문가죠.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죄를 안 짖기 위해 철두철미했는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당시에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을까요.
죄가 무엇인지는 인간이 기준이 아닙니다.
(굳이 답변 안해주셔도 됩니다.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쓴 글이니까요..)
2008.04.29 20:18:17
엉뚱하게 구원파로까지 몰리네요.. ㅠ.ㅠ
결국 여기 계신분들은 정목사님의 영향력을 많이 받으신 분들 같습니다...
저는 분명히 거듭나도 죄에 대한 유혹은 받을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우엔의 경우같은 지나친 행태가 본문의 주제인데..
매우 특수한 사건을 두고.. 너무 일반화하시는 것 아닙니까..?
영성의 대가라면 극복했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더니.. 사도바울 같은 대가도 그랬다고 하시네요..
사도바울이 죽을 때까지 동성애 같은 죄를 끼고 살았다는 근거가 성경에 있나요..?
죄에 대한 유혹 같은거 말고 동성애 같은 확실한 죄를 말합니다..
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셨는데.. 죄에 대한 유혹은 있으나.. 쉽게 극복이 되더군요..
성결에 대해서들 잘 아시죠.. 구원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성결한 삶을 목표로 삼아야하고..
그렇게 살게되면.. 죄의 유혹은 자연스레..(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는 모양이라도 버리는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해야 옳지..
어떻게 동성애 같은 현저한 죄에 대해서도 그렇게들 우호적이신지.. 이해가 안갑니다..
정 목사님.. 특히 이해가 안가네요.. 샘터교회 성도들에게도 성결에 대해서 강조하시나요..?
결국 여기 계신분들은 정목사님의 영향력을 많이 받으신 분들 같습니다...
저는 분명히 거듭나도 죄에 대한 유혹은 받을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우엔의 경우같은 지나친 행태가 본문의 주제인데..
매우 특수한 사건을 두고.. 너무 일반화하시는 것 아닙니까..?
영성의 대가라면 극복했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더니.. 사도바울 같은 대가도 그랬다고 하시네요..
사도바울이 죽을 때까지 동성애 같은 죄를 끼고 살았다는 근거가 성경에 있나요..?
죄에 대한 유혹 같은거 말고 동성애 같은 확실한 죄를 말합니다..
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셨는데.. 죄에 대한 유혹은 있으나.. 쉽게 극복이 되더군요..
성결에 대해서들 잘 아시죠.. 구원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성결한 삶을 목표로 삼아야하고..
그렇게 살게되면.. 죄의 유혹은 자연스레..(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는 모양이라도 버리는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해야 옳지..
어떻게 동성애 같은 현저한 죄에 대해서도 그렇게들 우호적이신지.. 이해가 안갑니다..
정 목사님.. 특히 이해가 안가네요.. 샘터교회 성도들에게도 성결에 대해서 강조하시나요..?
2008.04.29 20:22:04
정목사님의 주장을 보면.. 이단이 바로 그렇게 주장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얼마나 이단에게 호되게 당하셨으면.. 그럴까 싶기도 한데요..
이단이 진리를 가장하는 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이단이 그런다고 진리가 진리아닌 것이 되나요..?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 버리셔야겠습니까..?
얼마나 이단에게 호되게 당하셨으면.. 그럴까 싶기도 한데요..
이단이 진리를 가장하는 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이단이 그런다고 진리가 진리아닌 것이 되나요..?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 버리셔야겠습니까..?
2008.04.30 10:25:14
싸이먼님은 왜 자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지...
나우웬이 언제 동성애를 끼고 살았습니까? 단지 동성애의 성향이 느껴져 그것을 극복하려고 고민했을 뿐입니다. 동성애를 끼고 살다니, 무슨 그런 참람한 표현을 하십니까? 마치 나우웬이 평생 동성간 섹스를 반복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수도사 혹은 수녀가 가끔씩 성욕을 느끼지만 그런 유혹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게 죄라고 판단합니까? 거듭난 성도라도 유혹은 받을 수 있다고 싸이먼님 본인이 말씀해놓고서는 정작 유혹만 받고 실천하지 않은 나우웬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정죄하시는군요. 남녀간의 성적유혹은 실행하지만 않으면 괜찮고, 동성애적 유혹은 실천하지 않고 생각만해도 죄가 됩니까? 하나님 보시기에는 둘다 똑같은 것 아닙니까?
나우웬 스스로도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무척이나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면 스스로가 죄인으로 여겨져 괴로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의 소유자라는 증거 아닙니까? 그가 자신의 약점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죄인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처사입니다. 그것도 마치 동성애행위(동성섹스)를 반복해 온 사람인양 인격을 매도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입니다.
싸이먼님이 나우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아시길래 그를 함부로 비난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를 비판하려면 그의 책들을 읽어보시고 그 내용을 비판하십시오. 김삼씨의 어설픈 글 한편 읽고 그의 인격과 내면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저에게는 김삼씨의 글보다는 나우웬의 글에서 얻는 영적인 도움이 훨씬 큽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나우웬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의 글에도 약점이 있고 오류가 있습니다.)
나우웬이 언제 동성애를 끼고 살았습니까? 단지 동성애의 성향이 느껴져 그것을 극복하려고 고민했을 뿐입니다. 동성애를 끼고 살다니, 무슨 그런 참람한 표현을 하십니까? 마치 나우웬이 평생 동성간 섹스를 반복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수도사 혹은 수녀가 가끔씩 성욕을 느끼지만 그런 유혹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게 죄라고 판단합니까? 거듭난 성도라도 유혹은 받을 수 있다고 싸이먼님 본인이 말씀해놓고서는 정작 유혹만 받고 실천하지 않은 나우웬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정죄하시는군요. 남녀간의 성적유혹은 실행하지만 않으면 괜찮고, 동성애적 유혹은 실천하지 않고 생각만해도 죄가 됩니까? 하나님 보시기에는 둘다 똑같은 것 아닙니까?
나우웬 스스로도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무척이나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면 스스로가 죄인으로 여겨져 괴로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의 소유자라는 증거 아닙니까? 그가 자신의 약점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죄인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처사입니다. 그것도 마치 동성애행위(동성섹스)를 반복해 온 사람인양 인격을 매도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입니다.
싸이먼님이 나우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아시길래 그를 함부로 비난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를 비판하려면 그의 책들을 읽어보시고 그 내용을 비판하십시오. 김삼씨의 어설픈 글 한편 읽고 그의 인격과 내면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저에게는 김삼씨의 글보다는 나우웬의 글에서 얻는 영적인 도움이 훨씬 큽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나우웬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의 글에도 약점이 있고 오류가 있습니다.)
2008.04.30 09:41:29
끼고 살았다는 표현이 과격하네요.. 수정하겠습니다..
말씀대로 나우엔이 실제로는 동성애를 하지 않았으면서..
평생 그 유혹으로 괴로워했다.. 그 말씀이시죠..?
솔직히 나우엔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저는 첨에 윗 본문에 대한 댓글들이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하시는 줄 알고 토론에 뛰어들었습니다..
나중에 토론을 이어가다 보니.. 동성애가 죄라는 데에는 동의하시더군요.. 정 목사님 한분을 빼고는요..
그렇다면.. 닥터케이님께 사과드립니다..
나우엔이 동성애를 일평생 실제로는 한적이 없으면서 괴로워만했다는
그 말씀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요.. 실제로 그럴 수 있을까 의심도 가고..
그러려면 차라리 영성의 대가답게 그걸 극복할 것이지..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 역시 제 관심사는 아닙니다.. 저는 동성애자들을 정죄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성경말씀에 비추어 동성애는 죄라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분의 영성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주위에서 칭송하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 받는 사람들을 쉽게 가려낼 수 있는 시금석으로
동성애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주신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나우엔이 실제로는 동성애를 하지 않았으면서..
평생 그 유혹으로 괴로워했다.. 그 말씀이시죠..?
솔직히 나우엔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저는 첨에 윗 본문에 대한 댓글들이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하시는 줄 알고 토론에 뛰어들었습니다..
나중에 토론을 이어가다 보니.. 동성애가 죄라는 데에는 동의하시더군요.. 정 목사님 한분을 빼고는요..
그렇다면.. 닥터케이님께 사과드립니다..
나우엔이 동성애를 일평생 실제로는 한적이 없으면서 괴로워만했다는
그 말씀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요.. 실제로 그럴 수 있을까 의심도 가고..
그러려면 차라리 영성의 대가답게 그걸 극복할 것이지..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 역시 제 관심사는 아닙니다.. 저는 동성애자들을 정죄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성경말씀에 비추어 동성애는 죄라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분의 영성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주위에서 칭송하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 받는 사람들을 쉽게 가려낼 수 있는 시금석으로
동성애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주신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8.04.30 12:42:23
싸이먼 님의 말씀을 듣자면, 동성애라는 사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으로 갈라지는 거네요...
저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동성애는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목사님도 그런 입장에 서계시는 것 같구요...
싸이먼 님의 입장은 물리학으로 말하면 고전물리학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든 변수들을 다 제외하고 가장 이상적인 경우를 가정하여 이론화한 고전물리확 자연계에 일어나는 실제적 물리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이 나온 것이구요...
정형화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인 현상들이 이 세상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경우가 비단 동성애 뿐이겠습니까? 왜 첨부터 육손이로 태어나는 아기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아기가 육손이로 태어나고자 한 그런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동성애가 타고난 그 무엇이 아니라고 단정지으실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님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타고난 성정이 그냥 싹 고쳐지던가요? 저는 평생가도 제가 물려받은 고치고 싶은 성정은 안고쳐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얼이 성화, 신화(Deification)되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다시 또 쓸게요..
저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동성애는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목사님도 그런 입장에 서계시는 것 같구요...
싸이먼 님의 입장은 물리학으로 말하면 고전물리학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든 변수들을 다 제외하고 가장 이상적인 경우를 가정하여 이론화한 고전물리확 자연계에 일어나는 실제적 물리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이 나온 것이구요...
정형화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인 현상들이 이 세상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경우가 비단 동성애 뿐이겠습니까? 왜 첨부터 육손이로 태어나는 아기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아기가 육손이로 태어나고자 한 그런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동성애가 타고난 그 무엇이 아니라고 단정지으실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님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타고난 성정이 그냥 싹 고쳐지던가요? 저는 평생가도 제가 물려받은 고치고 싶은 성정은 안고쳐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얼이 성화, 신화(Deification)되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다시 또 쓸게요..
2008.04.30 13:15:13
결국 제 이야기는 동성애라는 현상에 있어서도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죄다, 아니다 라는 구도로 이야기 하는 것이 오히려 "실상"(reality)을 놓치게 하는 결과를 발생시킨다면요?
2008.05.01 20:57:25
신중한 거 좋죠.. 하지만 예수님도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셨고 사도바울이나 다른 사도들도
죄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했습니다.. 말세지말에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니까..
사람들 귀에 듣기 좋아라고.. 성경에서 분명하게 죄라고 규정한 것도 아니라고 하고..
구원받아도 평생 죄지을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무슨 의도로 저러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도 성경에서 찾으려대는게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가지고 설득하려고 하는데.. 사도바울은 이런 것들을 한마디로 배설물이라고
물리쳤습니다...
또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논리로 입증하는 것이 무리한 줄 압니다..분명코 영적인 사안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성도의 분명한 한가지 경향은 죄에 대해서 의식이 분명해 지고 자연히
죄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나우엔이 구원받은 성도이면서도 죽을때까지 동성애로 괴로워할 수 있다고 강변하시는데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성입니다..과연 동성애로 괴로워하면서도 성령님과 교통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간단한 사례 하나로 설명해보겠습니다..
간밤에 신나게 음란물 동영상 보고.. 다음날 새벽기도 나가보세요... 기도가 됩니까..?
동성애와 같은 음란 죄는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인 죄에 해당합니다..
매우 희귀한 만의 하나를 가정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면서 동성애같은 현저한 죄에 대해서도
관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영적인 타락은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이런 주장을 펴시는 분들은 이런 심리 아닐까.. 싶어요..
연예인들이 텔리비젼 프로에 나와서 그러더군요.."다들.. 그러지 않나요..?"
죄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했습니다.. 말세지말에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니까..
사람들 귀에 듣기 좋아라고.. 성경에서 분명하게 죄라고 규정한 것도 아니라고 하고..
구원받아도 평생 죄지을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무슨 의도로 저러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도 성경에서 찾으려대는게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가지고 설득하려고 하는데.. 사도바울은 이런 것들을 한마디로 배설물이라고
물리쳤습니다...
또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논리로 입증하는 것이 무리한 줄 압니다..분명코 영적인 사안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성도의 분명한 한가지 경향은 죄에 대해서 의식이 분명해 지고 자연히
죄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나우엔이 구원받은 성도이면서도 죽을때까지 동성애로 괴로워할 수 있다고 강변하시는데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성입니다..과연 동성애로 괴로워하면서도 성령님과 교통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간단한 사례 하나로 설명해보겠습니다..
간밤에 신나게 음란물 동영상 보고.. 다음날 새벽기도 나가보세요... 기도가 됩니까..?
동성애와 같은 음란 죄는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인 죄에 해당합니다..
매우 희귀한 만의 하나를 가정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면서 동성애같은 현저한 죄에 대해서도
관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영적인 타락은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이런 주장을 펴시는 분들은 이런 심리 아닐까.. 싶어요..
연예인들이 텔리비젼 프로에 나와서 그러더군요.."다들.. 그러지 않나요..?"
2008.05.02 08:05:48
싸이먼님 글을 읽으면서 참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점은, 자신의 선입관으로 남들을 함부로 재단하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꼭지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고 하더니 (아주 기분 나빴습니다. 글 한줄 읽으시고 동성애 옹호론자로 낙인찍으시다니요.) 그 다음글에서는 아예 신앙인이 아닌 일반인이 지나가면서 쓴 글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시고...(이건 더 기분 나빴구요)
저 어디 글에서는 정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성결을 강조하지 않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엉터리 목회자인양 우회적으로 비난하시질 않나...
죄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는 사람들을 마치 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있는 사람들로 폄하하시질 않나...
이제는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고작 TV 연예인 수준의 발언으로 끌어내리시는군요.
싸이먼님 보시기에 여기 글 올린 분들이 그렇게 우습고 한심하게 보입니까? 연예인요? 나 원, 참...
그게 지금 하셔도 되는 말씀입니까? 자기 주장을 펼치는건 좋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맘대로 판단하고 희화화까지 하는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서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공간이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을 이렇게 우습게 알고 자기 맘대로 판단하면서 상처를 주는 분과는 더 이상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참을것 같아서 쓴소리 한마디 올리니 남들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차분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꼭지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고 하더니 (아주 기분 나빴습니다. 글 한줄 읽으시고 동성애 옹호론자로 낙인찍으시다니요.) 그 다음글에서는 아예 신앙인이 아닌 일반인이 지나가면서 쓴 글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시고...(이건 더 기분 나빴구요)
저 어디 글에서는 정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성결을 강조하지 않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엉터리 목회자인양 우회적으로 비난하시질 않나...
죄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는 사람들을 마치 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있는 사람들로 폄하하시질 않나...
이제는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고작 TV 연예인 수준의 발언으로 끌어내리시는군요.
싸이먼님 보시기에 여기 글 올린 분들이 그렇게 우습고 한심하게 보입니까? 연예인요? 나 원, 참...
그게 지금 하셔도 되는 말씀입니까? 자기 주장을 펼치는건 좋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맘대로 판단하고 희화화까지 하는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서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공간이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을 이렇게 우습게 알고 자기 맘대로 판단하면서 상처를 주는 분과는 더 이상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참을것 같아서 쓴소리 한마디 올리니 남들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차분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008.05.02 04:08:20
제가 이 자리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만
아주 흥미롭게 댓글들을 읽었습니다 ^^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주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싸이먼님께서 자기 생각을 쓰셨다가 일방적으로 혼쭐이 나셨다는 모양새가 듭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 이곳은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각각의 의견을 나누고 동의할 것은 동의 하고 아닌것은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먼저 위에 글을 올리신 스파크님께서 김삼이라는 분의 글을 읽고서 판단이 서질 않아서 이곳에 올리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김삼의 글을 읽고서 동의할 부분도 있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다는 의미이고 해서 다양한 견해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읽혀 졌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의견을 올리신 것입니다.
댓글을 다실 때
제가 느끼기에는 각자의 성향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글을 읽어가면서 나름 판단을 하고서 즉시 댓글로 달아집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바로 결론으로 나오니까 글쓴이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오해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이먼님께서 아마도 닥터 케이 님의 댓글을 그렇게 읽으신것으로 보여집니다.
글쓴이의 의도나 동기를 해아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라보고 읽는이의 태도와 성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렇습니다.
닥터 케이님이나 다른 분들의 생각도 틀린것이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
그러나 싸이먼님의 의견이 꼭 틀리다고도 볼수 없습니다.
이미 중생에 관하여는 서로 댓글 상으로 오해를 푸셨고 다행히도 적절하게 사과도 하셨으니까
넘어가기로 하고요 ^^
구경꾼으로서 저의 사견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김삼님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헨리 나우엔도 잘 모릅니다
누구의 편을 들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닥터 케이님께서 김삼씨의 글을 나우엔을 헐뜯고 비하하려고 주장 한다고 이해를 하신 것이고
그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충분히 공감 합니다.
그렇지만 김삼의 글에서 닥터 케이님이 생각하시는 쪽으로만 볼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부족한 제가 닥터 케이님의 독해력을 따라갈 수 없지만
제가 읽히기에는 나우웬을 깍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 내에서 특히 신자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시각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다 보니까 그렇게 글이 흘렀다고도 이해가 됩니다.
그것을 싸이먼 님께서는 보시고서 옹호하신 것이구요
그것은 싸이먼님이나 김삼님이 신자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대한 분명함과 단호함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혀 집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정목사님이나 첫날처럼님 닥터 케이님과
다비안들중에서도 약간 세심하게 이해하시는 분들과 충돌이 되는것 같습니다.
싸이먼님이나 저같이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하시는 분들이 사실 좀 그런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그렇게 막혀있지 않다고 하고 싶습니다.
같은 공동체안에서 신앙한다고 모든사안에 대하여 일치하지는 않지요?
일치하는 사안도 있지만 다를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바나바와 바울이 훌륭한 동역자였지요^^
그러나 마가의 일을 놓고서 첨예하게 대립되었지요^^
성경은 심각하게 의견 대립이 되어서 결국은 사역지를 다른곳으로까지 옮겨 버렸답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바나바가 평생을 그 문제로 다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후에 바울서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가를 훌륭한 동역자로 바울이 인정햇거든요
베드로의 외식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이 면전에서 창피를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바울과 베드로가 그 후에 다투었거나 원수가 되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실수 있습니다만 우리도 주님처럼
무엇이든지 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들이나 부모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나 미성년자들이 모든것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런것입니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표현을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단호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쳐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롬7장에서 곤고한 자요 죄에 대하여 고통을 호소했지만
바울의 삶의 목표와 목적과 소망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의 누림이었습니다.
바울이 거듭난후에도 속에서 나오는 죄의 강열함에 탄식했지만
그는 그것때문에 좌절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더욱 주를 바라 보았고
그것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삼씨나 싸이먼님께서 정작 의도하는 것은
동성애적인 성향을 고민하거나 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에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야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만일 죄를 묵상하게 되면 소망이 없습니다.
죄가 아무리 우리를 속이고 유혹해도
그때마다 의식적으로 주의 뜻을 생각하고 주께 소망을 두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난 어쩔수 없어라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주님과 십자가와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성경의 인물들가운데 죄없는 사람 없습니다.
전부 넘어지고 자빠지고 실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누웬이 영성의 대가라고 한다면 그의 목표와 묵상이 자기의 동성애적인 것으로
고민하지말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여주신 하나님께만
감사하며 긍휼을 구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우웬 뿐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라야 하고 소망해야할 것이 그리스도 아닌가요?
우리는 죄를 이길수 있는것이 아니라
죄를 버릴수 있는것이 아니라
주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해도 그는 불완전합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우웬을 비판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해야하고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것이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동기를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가 비록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이고 극단적인 경향의 사람이라해서
그가 하는 주장을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보는것도 저는 폐쇄적이라고 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옳다 아니다를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죄를 말할때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가 어떻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아무렴 우리보다 부족하시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우리의 생각보다 성령께서 못하시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좀더 강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셨겠지만 진리와 죄와 복음의 본질에 대하여서 단호합니다.
그런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무조건 단호함이 무자비하고 인간 이해에 대하여
무식하다고 판단하시는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다비안들중에서도 스스로 열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많은 부분에서 동의 합니다. 의식있으시고 열려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려 있다고 자부(?) 하시는 분들의 댓글을 읽어 보면 제 입장에서는 열려있다고 인정이 안되는 것을 어찌합니까^^
싸이먼님의 의견을 대하시는 태도가 그렇게 보입니다.
어떻게 글 한줄로 그사람을 다 이해할수 있을까요?
말이 나온김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순전히 제가 느낀 것입니다 오해없기를 부탁합니다.
이런 수준낮은 글이 한국교회 (특히 보수적인 교회)에서 주목을 받고 진실인양 받아들여진다는 자체가 한국교회의 수준 역시 그만큼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사탄적인 글이네요...
이렇게 간단하게 달은 댓글을 읽고서 저도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나우엔이나 김삼이라는 분을 잘 모르거든요 ^^
원글의 동기와 의도도 미쳐 해아리질 못했구요
댓글의 의도역시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싸이먼님이 등장하셨고 이어지는 댓글을 통해서 아하~
그런의미로 댓글을 달았구나 하고 이해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아마도 앞서서 제가 의도와 동기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장황하게 적었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고서 상대방의 글을 읽어간다면 덜 오해하지 않을까요^^
계속 이어가자면은
저 같이 막힌 사람이 보기에는 열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별로 안열렸다고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시비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안타까워 하는 모양이라는 거지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때로는 단호함이 다른이들의 유익함에 좋을수 있습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보일수도 있고
위험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기준은 성경이고 주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사도들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이먼님이 아마 그런 의도로 댓글을 이어가신 것이고 그 부분에 저는 동의를 합니다.
물론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닥터 케이님께서 나우엔의 무조건 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그의 글에서 영적인 도움을 얻는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동의하는 부분은 동의를 하지만 아닌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주장과 맞지 않는다고 원수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싸이먼님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장로님이시면서 성도님들의 신앙과 교회에 대한 염려가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것은 다비아와 정목사님의 설교비평에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께 다비아를 찾아보라고 권면까지했더군요^^
적어도 다비아를 들어오는 분들이라면 열린 분들 아닌가요^^
다만 좀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강조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목사님께서 구원파 운운 하신것은 물론 아니면 사과하신다고 하셨지만 좀은 그렇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비평을 하신 분이라서 상당히 사려 깊으시고 세심한 분이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글 몇개로 싸이먼님을 구원파로까지 단정 비슷하게 하신것이 좀 이해가 안가네요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이렇게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위에 댓글 달으신 분들과 시비하자거나 논쟁하자고 절대로 그런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단상을 여과 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혹시라도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특히 위에 닉을 거론하신 분들께 미리 용서를 구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싸이먼님께서도 계속 좋은 생각을 남겨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샬롬~
아주 흥미롭게 댓글들을 읽었습니다 ^^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주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싸이먼님께서 자기 생각을 쓰셨다가 일방적으로 혼쭐이 나셨다는 모양새가 듭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 이곳은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각각의 의견을 나누고 동의할 것은 동의 하고 아닌것은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먼저 위에 글을 올리신 스파크님께서 김삼이라는 분의 글을 읽고서 판단이 서질 않아서 이곳에 올리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김삼의 글을 읽고서 동의할 부분도 있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다는 의미이고 해서 다양한 견해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읽혀 졌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의견을 올리신 것입니다.
댓글을 다실 때
제가 느끼기에는 각자의 성향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글을 읽어가면서 나름 판단을 하고서 즉시 댓글로 달아집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바로 결론으로 나오니까 글쓴이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오해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이먼님께서 아마도 닥터 케이 님의 댓글을 그렇게 읽으신것으로 보여집니다.
글쓴이의 의도나 동기를 해아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라보고 읽는이의 태도와 성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렇습니다.
닥터 케이님이나 다른 분들의 생각도 틀린것이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
그러나 싸이먼님의 의견이 꼭 틀리다고도 볼수 없습니다.
이미 중생에 관하여는 서로 댓글 상으로 오해를 푸셨고 다행히도 적절하게 사과도 하셨으니까
넘어가기로 하고요 ^^
구경꾼으로서 저의 사견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김삼님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헨리 나우엔도 잘 모릅니다
누구의 편을 들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닥터 케이님께서 김삼씨의 글을 나우엔을 헐뜯고 비하하려고 주장 한다고 이해를 하신 것이고
그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충분히 공감 합니다.
그렇지만 김삼의 글에서 닥터 케이님이 생각하시는 쪽으로만 볼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부족한 제가 닥터 케이님의 독해력을 따라갈 수 없지만
제가 읽히기에는 나우웬을 깍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 내에서 특히 신자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시각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다 보니까 그렇게 글이 흘렀다고도 이해가 됩니다.
그것을 싸이먼 님께서는 보시고서 옹호하신 것이구요
그것은 싸이먼님이나 김삼님이 신자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대한 분명함과 단호함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혀 집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정목사님이나 첫날처럼님 닥터 케이님과
다비안들중에서도 약간 세심하게 이해하시는 분들과 충돌이 되는것 같습니다.
싸이먼님이나 저같이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하시는 분들이 사실 좀 그런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그렇게 막혀있지 않다고 하고 싶습니다.
같은 공동체안에서 신앙한다고 모든사안에 대하여 일치하지는 않지요?
일치하는 사안도 있지만 다를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바나바와 바울이 훌륭한 동역자였지요^^
그러나 마가의 일을 놓고서 첨예하게 대립되었지요^^
성경은 심각하게 의견 대립이 되어서 결국은 사역지를 다른곳으로까지 옮겨 버렸답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바나바가 평생을 그 문제로 다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후에 바울서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가를 훌륭한 동역자로 바울이 인정햇거든요
베드로의 외식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이 면전에서 창피를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바울과 베드로가 그 후에 다투었거나 원수가 되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실수 있습니다만 우리도 주님처럼
무엇이든지 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들이나 부모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나 미성년자들이 모든것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런것입니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표현을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단호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쳐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롬7장에서 곤고한 자요 죄에 대하여 고통을 호소했지만
바울의 삶의 목표와 목적과 소망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의 누림이었습니다.
바울이 거듭난후에도 속에서 나오는 죄의 강열함에 탄식했지만
그는 그것때문에 좌절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더욱 주를 바라 보았고
그것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삼씨나 싸이먼님께서 정작 의도하는 것은
동성애적인 성향을 고민하거나 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에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야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만일 죄를 묵상하게 되면 소망이 없습니다.
죄가 아무리 우리를 속이고 유혹해도
그때마다 의식적으로 주의 뜻을 생각하고 주께 소망을 두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난 어쩔수 없어라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주님과 십자가와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성경의 인물들가운데 죄없는 사람 없습니다.
전부 넘어지고 자빠지고 실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누웬이 영성의 대가라고 한다면 그의 목표와 묵상이 자기의 동성애적인 것으로
고민하지말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여주신 하나님께만
감사하며 긍휼을 구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우웬 뿐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라야 하고 소망해야할 것이 그리스도 아닌가요?
우리는 죄를 이길수 있는것이 아니라
죄를 버릴수 있는것이 아니라
주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해도 그는 불완전합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우웬을 비판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해야하고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것이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동기를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가 비록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이고 극단적인 경향의 사람이라해서
그가 하는 주장을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보는것도 저는 폐쇄적이라고 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옳다 아니다를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죄를 말할때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가 어떻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아무렴 우리보다 부족하시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우리의 생각보다 성령께서 못하시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좀더 강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셨겠지만 진리와 죄와 복음의 본질에 대하여서 단호합니다.
그런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무조건 단호함이 무자비하고 인간 이해에 대하여
무식하다고 판단하시는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다비안들중에서도 스스로 열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많은 부분에서 동의 합니다. 의식있으시고 열려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려 있다고 자부(?) 하시는 분들의 댓글을 읽어 보면 제 입장에서는 열려있다고 인정이 안되는 것을 어찌합니까^^
싸이먼님의 의견을 대하시는 태도가 그렇게 보입니다.
어떻게 글 한줄로 그사람을 다 이해할수 있을까요?
말이 나온김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순전히 제가 느낀 것입니다 오해없기를 부탁합니다.
이런 수준낮은 글이 한국교회 (특히 보수적인 교회)에서 주목을 받고 진실인양 받아들여진다는 자체가 한국교회의 수준 역시 그만큼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사탄적인 글이네요...
이렇게 간단하게 달은 댓글을 읽고서 저도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나우엔이나 김삼이라는 분을 잘 모르거든요 ^^
원글의 동기와 의도도 미쳐 해아리질 못했구요
댓글의 의도역시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싸이먼님이 등장하셨고 이어지는 댓글을 통해서 아하~
그런의미로 댓글을 달았구나 하고 이해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아마도 앞서서 제가 의도와 동기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장황하게 적었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고서 상대방의 글을 읽어간다면 덜 오해하지 않을까요^^
계속 이어가자면은
저 같이 막힌 사람이 보기에는 열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별로 안열렸다고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시비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안타까워 하는 모양이라는 거지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때로는 단호함이 다른이들의 유익함에 좋을수 있습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보일수도 있고
위험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기준은 성경이고 주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사도들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이먼님이 아마 그런 의도로 댓글을 이어가신 것이고 그 부분에 저는 동의를 합니다.
물론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닥터 케이님께서 나우엔의 무조건 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그의 글에서 영적인 도움을 얻는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동의하는 부분은 동의를 하지만 아닌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주장과 맞지 않는다고 원수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싸이먼님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장로님이시면서 성도님들의 신앙과 교회에 대한 염려가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것은 다비아와 정목사님의 설교비평에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께 다비아를 찾아보라고 권면까지했더군요^^
적어도 다비아를 들어오는 분들이라면 열린 분들 아닌가요^^
다만 좀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강조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목사님께서 구원파 운운 하신것은 물론 아니면 사과하신다고 하셨지만 좀은 그렇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비평을 하신 분이라서 상당히 사려 깊으시고 세심한 분이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글 몇개로 싸이먼님을 구원파로까지 단정 비슷하게 하신것이 좀 이해가 안가네요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이렇게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위에 댓글 달으신 분들과 시비하자거나 논쟁하자고 절대로 그런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단상을 여과 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혹시라도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특히 위에 닉을 거론하신 분들께 미리 용서를 구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싸이먼님께서도 계속 좋은 생각을 남겨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샬롬~
2008.05.02 11:33:16
작은자님
양시론으로 회원들간의 화해(?)를 이끌어내시려는 뜻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견이 있고, 또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게 더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런 의견의 차이를 대화를 통해 좁혀나가는게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겠지요.
싸이먼님이 일방적으로 혼쫄이 나신것 같다고 표현하셨는데, 제가 볼때는 그런 부분은 없습니다.
혹시나 제가 마지막으로 올렸던 글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그건 좀 아니군요.
왜냐하면, 저는 싸이먼님의 견해에 대해 비판한게 아니라 싸이먼님의 말투가 무례하다고 생각되어
이를 비판하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원수가 된다는 건 신구교분열이나 장로교 분열같은 옛이야기고 (요즘은
많이 좋아졌더군요 ) 다비아에서는 그런 일이야 없을듯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자님의 권고를 따라 제 글의 일부 표현을 완곡하게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양시론으로 회원들간의 화해(?)를 이끌어내시려는 뜻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견이 있고, 또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게 더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런 의견의 차이를 대화를 통해 좁혀나가는게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겠지요.
싸이먼님이 일방적으로 혼쫄이 나신것 같다고 표현하셨는데, 제가 볼때는 그런 부분은 없습니다.
혹시나 제가 마지막으로 올렸던 글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그건 좀 아니군요.
왜냐하면, 저는 싸이먼님의 견해에 대해 비판한게 아니라 싸이먼님의 말투가 무례하다고 생각되어
이를 비판하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원수가 된다는 건 신구교분열이나 장로교 분열같은 옛이야기고 (요즘은
많이 좋아졌더군요 ) 다비아에서는 그런 일이야 없을듯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자님의 권고를 따라 제 글의 일부 표현을 완곡하게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2008.05.02 14:46:07
싸이먼 님의 글을 읽으니 꼭 제가 동성애를 용납하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동성애는 제가 타고난 천성이 거부합니다... 그렇지만 제 주위에 맘을 나눌 수 있는 동성애자 친구가 있다면, 저는 그 친구의 삶의 깊이와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애쓸 것이고, 그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울 것입니다... 또한 예를 들어서 여호와의 증인에 속한 친구가 있다면, 그가 집총거부 때문에 구속을 당하는 현실을 용납하지는 않을 겁니다...
싸이먼 님께 여쭙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동성애자는 그저 벌레처럼 쳐다보고 그가 사회에서 당하는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또한 여호와의 증인 같은 사람들이 집총거부로 구속당하고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싸이먼 님께 여쭙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동성애자는 그저 벌레처럼 쳐다보고 그가 사회에서 당하는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또한 여호와의 증인 같은 사람들이 집총거부로 구속당하고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2008.05.03 02:03:01
제가 공연히 나서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나 걱정했었는데
닥터 케이님께서 너그럽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
첫날처럼님께도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문제를 제기한것이 아니라 예를 든 것이데 그렇게 보였네요^^
닥터 케이님께서 너그럽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
첫날처럼님께도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문제를 제기한것이 아니라 예를 든 것이데 그렇게 보였네요^^
2008.05.22 03:02:02
모든 인식의 단계에는 수준이 있습니다.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운동의 원리 역시 단계별 수준 차이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결국은 나만을 바라본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헨리 나우엔이나 바울은 가만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그들을 판단합니다.
헨리 나우엔에게 직접 '인터뷰'를 따서 들어보면 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저 서로을 이해하자는 선상에서 나누는 대화는 서로를 향상시키겠지요.
당사자는 침묵하고 있는데 주변의 객들이 '감'이다 '배'다 하고 있으니 답답하네요.
죄송하지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누가 하룻강아지 인지 누가 호랑이 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네요.
무조건 하룻강아지는 입다물고 조용히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폼잡으면...호랑이가 뭔지 봐야만...
제가 당구를 좀 칩니다.
아니 당구의 이해가 어느정도 있습니다.
남도 조금 가르칠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답니다.
당구의 당짜도 모르는 선수가 등장하여서 폼을 잡고서 한수 하자고 하면 누군가 답답하겠지요.
당구를 대하는 자세가 엉타리인 초보자에게 한수 훈수를 두면 굉장히 싫어 합니다.
자기가 돈내고 자기 혼자 노는데...왠 참견이냐고...뭐 할말은 없습니다.
당구는 그런것이 아닌데도 폼만 열심히 잡고 개인큐들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코메디입니다.
정말 당구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가면 길이 보이기 시작하겠지요.
이론과 실기가 하나가 되어질때 일어나는 길이 말입니다.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너무 돌려서 이야기를 하니 누구라도 답답하고 속터지겠습니다마는
그러니 인격에 손상가는 말들은 조금 삼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남들 가르칠려고 하지 마시고
조금 수가 낮으면 진지하게 듣고 질문도하고 대답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소리는 전혀 듣지 않고서 자기 소리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주님도 학을 띠겠지요.
죄송합니다.
열린공간에서 여러가지를 설명하고자 해도 이해의 전달이나 개인적 이해가 짧아서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마도 주님 역시 "들을 귀 있는자는 들을 찌어다"라고 말씀을 하셨나 봅니다.
모두에게 귀가 있습니다. 귀먹어리가 아니고서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겠지요.
청력으로서의 들음이 아닌 한두마디 하면 좀 알아 먹으라는 말씀이겠지요.
참 뚝심들도 좋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길게...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운동의 원리 역시 단계별 수준 차이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결국은 나만을 바라본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헨리 나우엔이나 바울은 가만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그들을 판단합니다.
헨리 나우엔에게 직접 '인터뷰'를 따서 들어보면 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저 서로을 이해하자는 선상에서 나누는 대화는 서로를 향상시키겠지요.
당사자는 침묵하고 있는데 주변의 객들이 '감'이다 '배'다 하고 있으니 답답하네요.
죄송하지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누가 하룻강아지 인지 누가 호랑이 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네요.
무조건 하룻강아지는 입다물고 조용히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폼잡으면...호랑이가 뭔지 봐야만...
제가 당구를 좀 칩니다.
아니 당구의 이해가 어느정도 있습니다.
남도 조금 가르칠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답니다.
당구의 당짜도 모르는 선수가 등장하여서 폼을 잡고서 한수 하자고 하면 누군가 답답하겠지요.
당구를 대하는 자세가 엉타리인 초보자에게 한수 훈수를 두면 굉장히 싫어 합니다.
자기가 돈내고 자기 혼자 노는데...왠 참견이냐고...뭐 할말은 없습니다.
당구는 그런것이 아닌데도 폼만 열심히 잡고 개인큐들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코메디입니다.
정말 당구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가면 길이 보이기 시작하겠지요.
이론과 실기가 하나가 되어질때 일어나는 길이 말입니다.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너무 돌려서 이야기를 하니 누구라도 답답하고 속터지겠습니다마는
그러니 인격에 손상가는 말들은 조금 삼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남들 가르칠려고 하지 마시고
조금 수가 낮으면 진지하게 듣고 질문도하고 대답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소리는 전혀 듣지 않고서 자기 소리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주님도 학을 띠겠지요.
죄송합니다.
열린공간에서 여러가지를 설명하고자 해도 이해의 전달이나 개인적 이해가 짧아서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마도 주님 역시 "들을 귀 있는자는 들을 찌어다"라고 말씀을 하셨나 봅니다.
모두에게 귀가 있습니다. 귀먹어리가 아니고서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겠지요.
청력으로서의 들음이 아닌 한두마디 하면 좀 알아 먹으라는 말씀이겠지요.
참 뚝심들도 좋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