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9)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14:64)


위 구절은 기독교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일종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운명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에 의해서 예수님은 신성을 모독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유대 사회에서 그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자는 죽어야만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신성 모독자로 본 근거는 62절이 말하는 그 내용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고 메시아를 참칭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라는 사실이 명백한 사실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신성 모독자로 단죄한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태의 실체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마가복음이 계속해서 짚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메시아 성은 기본적으로 비밀이었습니다. 물론 대제사장의 표현을 그대로 따른다면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아로 드러낸 것처럼 보입니다. 이 두 진술에는 어떤 긴장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예수님이 자신의 메시아 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제사장 집단에 의해서 그렇게 인식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제사장의 진술은 한편으로는 옳고, 다른 한편으로 틀렸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사실에 대한 진술이라는 점에서 옳지만, 예수님이 그것을 참칭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는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한 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그렇게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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