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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 517
마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갈리리 바닷가에서 고기잡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가 다가가서 나늘 따르라고 하신것으로 나와 있잖아요?(마태 4:18-22) 마가복음도 비슷하고요.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 동생 안드레가 원래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예수를 따라갔고,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소개한것으로 나오잖아요.(요한 1:35-42)
이걸 그냥 이 내용이 구전되다가 나중에 글로 적어질때 약간씩 사실과 다르게 적혀지는 오류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성경 전체의 권위가 좀 상실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단순한 만남에 대한 서술에서 조차 차이가 난나면 성경이라는것 자체가 과연 그 역사적 사실성을 강하게 주장할수 있을까하는 그런 의문이 들어서요.
누구 명쾌한 답변좀 해주세요.
그리고... 저의 무지를 아량넓게 이해해 주세요.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 동생 안드레가 원래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예수를 따라갔고,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소개한것으로 나오잖아요.(요한 1:35-42)
이걸 그냥 이 내용이 구전되다가 나중에 글로 적어질때 약간씩 사실과 다르게 적혀지는 오류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성경 전체의 권위가 좀 상실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단순한 만남에 대한 서술에서 조차 차이가 난나면 성경이라는것 자체가 과연 그 역사적 사실성을 강하게 주장할수 있을까하는 그런 의문이 들어서요.
누구 명쾌한 답변좀 해주세요.
그리고... 저의 무지를 아량넓게 이해해 주세요.
2008.07.29 09:53:12
전승이 문자로 기록되는 과정에서의 약간의 오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지니님이 지적하신 그 부분외에도 찾아보면 여러가지 소소한 문제들이 신약은 물론 구약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시키지는 못합니다. 이런것들 때문에 성경의 권위가 의심스럽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축자영감설" 만이 옳다고 교육받아온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불러주는 문장을 사람이 듣고 받아적은 그런 문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여러가지 치열한 삶의 현장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내용들이 축적되고 압축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신앙고백이 중심입니다. 그 고백들속에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목소리가 임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가로막힌 담벼락 너머를 들여다보는 조그마한 구멍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구멍이 깨끗하게 뚫렸냐, 테두리가 비뚤하냐 라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지요. 여기 다비아 게시판들 중에서 "신학마당" 이라는 게시판에 가셔서 온라인 강의실에 들어가시면 "기독교해석학" 이라는 서브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거기에 정용섭 목사님이 올려두신 강좌들을 한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일단 1장부터 한번 읽어보세요.
2008.07.29 10:34:50
많은 잘못된 설교 때문에 정말 순수해야할 신앙이 오히려 방해를 받는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것. 기쁜 일입니다.
케이님 말씀 맘에 팍 와 닿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것. 기쁜 일입니다.
케이님 말씀 맘에 팍 와 닿습니다.
2008.07.29 14:34:22
지니 님,
이제야 이 질문을 읽었어요.
위에서 닥터케이 님이 적절하게 설명해 주었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겠군요.
그냥 사족처럼 한 마디 더 하지요.
성서 언어는 역사적 사실인 fact가 아니라
해석된 사실인 event에요.
영어로는 그 뜻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데요,
영어 이벤트는 독일어 Ereignis의 번역이랍니다.
에어아이그니스는 죽은 사실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인 生氣에요.
내 딸에서 한달 전에 내가 말하기를
"네 생일에 컴퓨터 사줄께" 했다가
다시 보름 전에
"네 생일에 자전거 사줄께" 했다고 합시다.
서로 말이 다르지요.
아버지의 변덕이 심하지요?
그렇지 않답니다.
이런 서로 다른 두 문장에서
우리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면 되는 거에요.
좋은 하루.
이제야 이 질문을 읽었어요.
위에서 닥터케이 님이 적절하게 설명해 주었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겠군요.
그냥 사족처럼 한 마디 더 하지요.
성서 언어는 역사적 사실인 fact가 아니라
해석된 사실인 event에요.
영어로는 그 뜻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데요,
영어 이벤트는 독일어 Ereignis의 번역이랍니다.
에어아이그니스는 죽은 사실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인 生氣에요.
내 딸에서 한달 전에 내가 말하기를
"네 생일에 컴퓨터 사줄께" 했다가
다시 보름 전에
"네 생일에 자전거 사줄께" 했다고 합시다.
서로 말이 다르지요.
아버지의 변덕이 심하지요?
그렇지 않답니다.
이런 서로 다른 두 문장에서
우리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면 되는 거에요.
좋은 하루.
2008.07.30 10:25:15
자전거란 얘기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제 처에게 최근 사준 자전거이기도 합니다.
목사님 영애께서 사용하기에도 좋을듯 합니다.
아래 링크된 사진 중 아랫사진, 티티카카 망고 입니다.
거의 자전거폐인된 저 자신입니다. 그럼 무더운여름 건강유의하세요.
http://cafe.naver.com/minivelobik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0784
제 처에게 최근 사준 자전거이기도 합니다.
목사님 영애께서 사용하기에도 좋을듯 합니다.
아래 링크된 사진 중 아랫사진, 티티카카 망고 입니다.
거의 자전거폐인된 저 자신입니다. 그럼 무더운여름 건강유의하세요.
http://cafe.naver.com/minivelobik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0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