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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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년 전 이 맘 때 이민국에다 영주권 신청을 하였습니다. 이미 시작한 한인교회도 생각했고, 아이들의 미래도 생각했으며 영국교회 목사님과 신자들 그리고 영국 URC 교단 몇몇 관계자들과의 교분도 고려하였습니다. 물론 런던에서 다비아 모임도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년 간 이 문제로 정신적으로 제법 힘들었습니다. 영국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의 성원에 힘입어 신청을 한 것이나 계속 거부당했기 때문입니다. 지방법원, 고등법원을 거쳐 현재 대법원까지 항소를 한 상태인데 발급받을 가능성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약 한 달 후에 대법원 판결이 날 텐데 저희 식구들은 이제 마음을 비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기적이라는 것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부터 슬슬 짐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인근 자선 단체 가게에 가서 신학 및 신앙 서적 수 십 권을 기증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식구들과 더불어 이삿짐을 최소화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이 제 생애에서 29번째 맞는 이사인 셈입니다. 10살 때 이후 36년 간 29번 이사를 하게 된 것이지요. 올 해 20세인 큰 녀석도 벌써 10번 째 맞는 이사입니다. 다음 달 중순 안으로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거절을 당하면 그로부터 한 달 안으로 귀국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예정대로라면 제 런던 생활이 지금부터 최대 두 달 정도 남은 셈이네요.
지난달부터 마음속으로 런던 이후의 삶을 그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손에 잡힌 것은 없습니다만 여기 교인들과는 거의 이야기가 마친 상태이고 영국 교회 목사님께도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이제 제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요.
저는 처음 여러 가능성을 두었으면 했는데 아내는 귀국을 원하고 있습니다. 타국 생활에서 조금 지친 것 같습니다. 아내 친정어머니이신 제 장모께서도 그걸 원하시는군요. 연세가 73세이시니 앞으로 얼마나 더 보겠냐고 하신답니다. 올해 76세인 제 노모님께서도 ‘야야, 내 죽기 전에 얼굴 좀 봐야지.’ 하시는군요.
여기 사랑채에 제일 먼저 제 근황을 올리면서 여러분들께 기도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이후 손과 발이 닿는 대로 두루 기도요청을 드릴 계획입니다.
앞으로 한 달 혹은 두 달 안으로 적당한 목회지를 만나지 못하면 임시 거처를 제공해 주시겠다는 제 선배 목사님이 계셔서 참 안심이 됩니다. 귀국 일자는 경기도 부평에 소재한 그 분 소속 교회 측과 거처문제를 조율하는 동안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귀국 후에는 ‘신완식의 런던이야기’는 타이틀과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런던 이야기를 별로 해 드리지 못해서 많이 송구스럽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런던에서 글을 썼다는 것 때문에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귀국 후에 과연 계속 글을 써도 될지 모르겠군요. 저는 버리시지만 않는다면 계속할 용기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이 계시면 신목사님 가정이 여기에 거주하실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뒤집어 보니 속이 후련합니다.
지난 1년 간 영국 교회 교인들이 제 영주권 신청을 위해서
참 많이 기도해 주시고 또 신경을 써 주셨어요.
멸 달 전 지방법원 재판장과 변호사 두 분이 다 그러더군요.
"지금까지 이 법정에서 일하면서 신목사님 만큼 많은 자료와
추천서를 갖춘 케이스를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요.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음에도
안 되는 것을 보면 주님의 뜻이 아닌가 봅니다.
이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차분히 나아가겠습니다.
목사님의 따스한 격려 늘 기억하면서 남은 생활 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안 만났기에 친근하게 느껴지지 직접 만나시면...ㅋㅋㅋ
저 9공수 출신이예요. 귀성부대요.
제가 공수훈련 받기 전에는 4백 몇 차니 하는 기수가 있었다는데
제가 들어간 때는 연도에다 몇 차 하는 식이었어요.
저는 95-18차예요. 1995년도 마지막 기수지요.
11월 말부터 12월 사이였는데 훈련 받았는데 추워 죽는 줄 알았어요.
특히 어느 여군 중사 교관 때문에 더욱...
긴 생머리에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미모의 그녀는
훈련장에서는 완전히 저승 사자더군요.
여자 입에서 터져 나오는 '동작 봐라~~~!' 이거 완죤히 죽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부대원들 하계 해상훈련과 동계 훈련 들어가면
수박, 돼지고기 이런 거 사들고 심방간 사람이예요...
707 대테러 훈련장에도 아이스크림 사들고 ㅎㅎㅎ.
그래서 베레모 쓴 게 가끔씩 미안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강릉 무장공비 침투 때는 부대원들이 저를 많이 의지하더군요.
작전지역에 십자가 몇 백 개 가져갔더니 금방 두 세개씩 다 가져 가데요.
마음이 불안하고 죽음이 지척에 있을 때는 의지할 게 신앙 밖에 없었나 봐요.
저도 이젠 군기가 다 빠졌습니다.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그래도 여태 공수기본 휘장증과 전역증은 여태 지갑속에 넣고 다닙니다.
여기 온 뒤로도 한 동안은 인식표를 목에 걸고 다녔지요.
지금은 둘째가 빌려달라고 해서...
군생활이 제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됐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이거 잊으면 안 되잖아요...
가면 뵐 날이 오겠지요?
고맙습니다~~~
주일 아침 준비한 설교 원고를 다시 읽기 위해 컴퓨터를 켜 놓고
다비아에 습관적으로 들렸다가 목사님 근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전 이런 너무 평범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대로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렇게 많이 성도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부지런이 욕심도 내고, 부지런히 비전도 갖고 했었지요.
그런데 그 분은 내가 기대했던 일들을 접게 하시고,
조금씩 당신의 뜻, 당신의 계획에 나의 마음을 두게 하시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거칠었던 마음도,
젊디 젊었을 때의 열정도 가다듬고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물어 갑니다.
목사님께도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라고
이제는 목사님의 기대와 바램을 내려 놓기를 바라시고 계시나 봅니다.
저희 교회 부목사님 한 분을 청빙하게 되었는데
그 분 역시 미국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을 하시다가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저희 교회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면
바르게 목양할 목회지를 준비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신 목사님을 알아 보고 모시게 될 교회는
그야말로 보배를 건지는 건강한 교회일 것입니다.
힘 내세요!
당신을 이끄시는 분 신실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분이시잖아요.
격려를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너무 힘이 됩니다.
어제 영국교회 오전 예배 전 광고 담당자가
교우들에게 부탁하시더군요.
"신목사님 가정 비자 진행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하고요.
영국 교회 교우들은 여전히 저희 식구들을 만나면 "위에 계신 주께서 함께 하실 겁니다."라며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시고 계십니다.
제 두 아이들, 특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짝퉁 영국 학생인
둘째는 아직 여기 생활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남은 시간 계속 제 자신을 채찍질하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끄시는 대로 조용히 순응하겠습니다.
목사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늘 평안하시고 건강하셔요~~~~
제눈에는 목사님의 가볍게 남기신 말에서 제가 아는 그분의 처절함이 느껴지네요.제가 좀 오버했나요?
신 목사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거기서 계속 계시거나 미국으로 가셔서 우물밖 세상을 보여주시기를 바라지만 그 어디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계속 쓰이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본가가 부평근처라 왠지 반갑습니다. 오랫돌아 신목사님 글 보아 왔지만 처음으로 댓글 답니다.
군대 용어로 건승하시길~~
귀국을 환영합니다^^
목사님의 글은 제 개인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한 인도 하심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