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아에의 온라인 강의실에서 신학입문, 조직신학, 기독교해석학, 신학과 철학 등
개인적으로 틈나는대로 새롭게 공부함을 늘 정목사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용 소화에 어려운 부분은 어려운대로 넘어가고
새롭게 배우는 기쁨이 있습니다. 질문은
신학과 철학 제6장 '스토아철학과 기독교사상' 4쪽의 아래 내용 중
----------------
6) 양심
자연신학은 인간의 ‘양심’과 연결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은 경고하거나 호소하는 양심의 소리로부터 모든 경험에 대한 의식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런 의식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에 대한 도덕적 태도를 제시해준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흔히 양심적으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양심에 대한 스토아 철학의 생각은 로마서 2:15, 13:5, 또는 고후 4:2, 딤전 1:5, 19, 3:9 등과 연결되어서 해명되었다. 과연 양심이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준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흑인 노예를 소유물로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양심이라는 게 그 시대정신에 의해서 지배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이 부분이 좀 걸립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흑인 노예를 소유물로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양심이라는 게 그 시대정신에 의해서 지배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영국 국교의 핍박을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 8월 14일 잉글랜드를 떠나
미국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항에 도착하였지만 다음해까지 살아남은 인구는 102명 중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적은 수가 생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부분의 '양심' 문제는 제생각에는 핍박을 피해 온 청교도가 아니라
청교도 신앙과는 상관없는 흑인을 사고 팔며, 또 금을 캐러온 탐욕의 종이 된
장사꾼의 소행이 아니겠는지요.
이들, 즉 청교도들이 흑인을 노예로 삼거나 인디언을 죽이며 북아메리카를 탈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확실히 알고 싶어서 한 번 여쭤봅니다.

다비아와 정목사님께 감사드리며.
광야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