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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 517
다비아에의 온라인 강의실에서 신학입문, 조직신학, 기독교해석학, 신학과 철학 등
개인적으로 틈나는대로 새롭게 공부함을 늘 정목사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용 소화에 어려운 부분은 어려운대로 넘어가고
새롭게 배우는 기쁨이 있습니다. 질문은
신학과 철학 제6장 '스토아철학과 기독교사상' 4쪽의 아래 내용 중
----------------
6) 양심
자연신학은 인간의 ‘양심’과 연결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은 경고하거나 호소하는 양심의 소리로부터 모든 경험에 대한 의식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런 의식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에 대한 도덕적 태도를 제시해준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흔히 양심적으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양심에 대한 스토아 철학의 생각은 로마서 2:15, 13:5, 또는 고후 4:2, 딤전 1:5, 19, 3:9 등과 연결되어서 해명되었다. 과연 양심이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준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흑인 노예를 소유물로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양심이라는 게 그 시대정신에 의해서 지배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이 부분이 좀 걸립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흑인 노예를 소유물로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양심이라는 게 그 시대정신에 의해서 지배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영국 국교의 핍박을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 8월 14일 잉글랜드를 떠나
미국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항에 도착하였지만 다음해까지 살아남은 인구는 102명 중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적은 수가 생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부분의 '양심' 문제는 제생각에는 핍박을 피해 온 청교도가 아니라
청교도 신앙과는 상관없는 흑인을 사고 팔며, 또 금을 캐러온 탐욕의 종이 된
장사꾼의 소행이 아니겠는지요.
이들, 즉 청교도들이 흑인을 노예로 삼거나 인디언을 죽이며 북아메리카를 탈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확실히 알고 싶어서 한 번 여쭤봅니다.
다비아와 정목사님께 감사드리며.
광야올림
개인적으로 틈나는대로 새롭게 공부함을 늘 정목사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용 소화에 어려운 부분은 어려운대로 넘어가고
새롭게 배우는 기쁨이 있습니다. 질문은
신학과 철학 제6장 '스토아철학과 기독교사상' 4쪽의 아래 내용 중
----------------
6) 양심
자연신학은 인간의 ‘양심’과 연결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은 경고하거나 호소하는 양심의 소리로부터 모든 경험에 대한 의식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런 의식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에 대한 도덕적 태도를 제시해준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흔히 양심적으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양심에 대한 스토아 철학의 생각은 로마서 2:15, 13:5, 또는 고후 4:2, 딤전 1:5, 19, 3:9 등과 연결되어서 해명되었다. 과연 양심이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준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흑인 노예를 소유물로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양심이라는 게 그 시대정신에 의해서 지배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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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좀 걸립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흑인 노예를 소유물로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양심이라는 게 그 시대정신에 의해서 지배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영국 국교의 핍박을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 8월 14일 잉글랜드를 떠나
미국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항에 도착하였지만 다음해까지 살아남은 인구는 102명 중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적은 수가 생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부분의 '양심' 문제는 제생각에는 핍박을 피해 온 청교도가 아니라
청교도 신앙과는 상관없는 흑인을 사고 팔며, 또 금을 캐러온 탐욕의 종이 된
장사꾼의 소행이 아니겠는지요.
이들, 즉 청교도들이 흑인을 노예로 삼거나 인디언을 죽이며 북아메리카를 탈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확실히 알고 싶어서 한 번 여쭤봅니다.
다비아와 정목사님께 감사드리며.
광야올림
2008.09.05 11:09:51
정목사님,
질문에 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딴지는 아니고요, 이 부분의 확실한 준거가 있으면
더 이해가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제 욕심이겠지요.
강의실이라 생각하고 몇 자 더 씁니다.
아나뱁티스도 그랬겠지만
당시 청교도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고요.
목숨을 걸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청교도들과
영국 및 유럽인들이 식민정책에 따라
아메리카에 와서 흑인노예와 원주민 학살을 일삼은 행위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청교도들은 정교일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의 칼을 피해
신앙의 자유를 얻고자 했음이죠. 그런데
양심문제의 예(例)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라고 하셨고요.
그리고 이후 아메리카로 건너온 유럽인들 중 청교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제국주의 깃발을 달고 장사 이속을 챙기거나 자신들의 유익을 따라
왔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서 기독교인들을 예외적으로 볼수 없다고 하셨지만
2006년도 문광부 통계에 의하면 기독인구를 867만명 정도라고 하는데
여기서 참과 허는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통계수치는 교회 출석인구라는 생각이 들고요.
어떤 목사님의 책을 읽었는데 교회 출석 인구 중 5% 정도가 진실한 신자라고
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실한 신자는 분명 별개로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청교도 문제가 교회사에 해당된다고 하니 기회가 닿으면
교회사를 전공하는 분이나 청교도학을 전공하신 분에게
더 알아보는 열심을 갖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에 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딴지는 아니고요, 이 부분의 확실한 준거가 있으면
더 이해가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제 욕심이겠지요.
강의실이라 생각하고 몇 자 더 씁니다.
아나뱁티스도 그랬겠지만
당시 청교도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고요.
목숨을 걸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청교도들과
영국 및 유럽인들이 식민정책에 따라
아메리카에 와서 흑인노예와 원주민 학살을 일삼은 행위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청교도들은 정교일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의 칼을 피해
신앙의 자유를 얻고자 했음이죠. 그런데
양심문제의 예(例)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라고 하셨고요.
그리고 이후 아메리카로 건너온 유럽인들 중 청교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제국주의 깃발을 달고 장사 이속을 챙기거나 자신들의 유익을 따라
왔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서 기독교인들을 예외적으로 볼수 없다고 하셨지만
2006년도 문광부 통계에 의하면 기독인구를 867만명 정도라고 하는데
여기서 참과 허는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통계수치는 교회 출석인구라는 생각이 들고요.
어떤 목사님의 책을 읽었는데 교회 출석 인구 중 5% 정도가 진실한 신자라고
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실한 신자는 분명 별개로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청교도 문제가 교회사에 해당된다고 하니 기회가 닿으면
교회사를 전공하는 분이나 청교도학을 전공하신 분에게
더 알아보는 열심을 갖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질문이군요.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 같은데,
간단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세요.
일단 양심(Gewissen )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일단 접어 놓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간 청교도들의 신앙과 역사의식만 검토해야겠네요.
광야 님은 순수한 신앙인이었던 청교도들과
미국 원주민들을 약탈하고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삼은 식민주의자들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군요.
이건 아주 명증한 교회사적인 연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간접적으로만 말씀드릴께요.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온 미국 선교사들이 순수한 선교열정으로 오긴 했지만
일본 식민 정부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답니다.
그들 선교사 모두를 싸잡아 말할 수는 없겠지요.
여러 종류로 구분이 될 겁니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가 한기총을 중심으로 패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요즘 벌어지는 종교편향 문제를 잘 아시지요?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런 거는 아니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00년 후의 우리 후손들이 오늘 이 시대의 기독교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21세기 초 대한민국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처럼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만은 예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적당한 예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메리카에 건너간 유럽 사람들 중에서
청교도들만은 원주민 박해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힘들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식민정책이라는 게
정교일치로 진행된 거니까요.
요즘 '한겨레' 신문에 서울대 역사학 아무개 교수가
이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더군요.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끔찍한 사실들이 많아요.
질문하신 것은 교회사에 해당되는 거라서
제가 더 이상 확실하게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