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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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범룡이라는 환자 분 이야깁니다. 평범한 가장으로 가정을 꾸리고 계시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수십 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나서 현재는 그렇게 하시는 일 없이 집에서 소일하시면서 계시던 분입니다. 그 이후에 사고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계시는 분입니다...
잦은 설사와 복통으로 한의원을 계속 내원하시다가 어느 정도 효험을 보셨는지 저랑 많이 잘 통하게 되었습니다. 일 주일에 2,3번 오셔서 침도 맞으시고 복부에 뜸도 하시고, 그리고 약도 드시면서 꾸준하게 치료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치료하러 오시면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늘어놓으십니다. 별로 하는 일이 없이 집에 있으니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 그래도 우리 가족들은 나 없으면 못산다고 한다느니... 듣고 있으면 좀 유치하기도 한 이야기지만 나도 같은 가장의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저절로 귀가 기울여지기도 했습니다... 참 안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운전 조심해야겠구나...
한의원에 오면 그래도 귀빈 대접을 해주니 치료도 받고 좋았나 봅니다. 어떤 날은 많이 좋아졌다가, 어떤 날은 경과가 좋지 않다가... 그렇게 그렇게 반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침 시술을 다 하고, 내 방에 돌아와서 차트 정리를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간호사가 달려왔습니다...
“원장님... 임범룡 님이 좀 이상하신데요... 빨리 한 번 와보세요”
워낙에 새가슴인 저는 가슴이 쿵덕 쿵덕 거렸습니다... 겉으로 표시는 많이 안났지만요... 임범룡 님은 눈은 실눈을 뜨고, 손 발에는 약한 경련이 일어나면서, 입에서는 살짝 거품이 나왔습니다... 발작인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간질발작에 비해서는 약한 소발작 같기도 했습니다... 거품이나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옆으로 살짝 누이고 흘러나오도록 두었습니다...
저는 조금 당황이 되었습니다... '아... 정말... 퇴근시간 다 되어서 이게 뭐야... 그 것도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침 맞다가 경련이 일어날게 뭐냐고... 미치겠네..'
댁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가 차트 전화번호대로 전화를 했더니 아무도 안 받았습니다. 아... 휴대폰... 혹시나 해서 환자분의 주머니를 뒤지니 휴대폰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잠금장치가 안되어 있더군요... 다짜고짜로 1번 단축 번호를 눌러보았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
이름이 이렇게 딱 뜨더군요... 가슴 속에 뭔가 찡한게 하나 올라왔습니다...
통화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아, 사모님... 임범룡님께서 침 맞으러 오셨는데, 경련성 발작이 일어났네요... 인근 병원으로 119 불러서 갈까 하는데, 사모님도 그리로 오실래요... 아니면 가까이 계시면 여기 오셔도 되구요.”
그랬더니 의외로 아주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네... 제가 바로 근처인데 한의원으로 가겠습니다... 몇 분 안걸려요”
그러고는 정말 이내 사모님이 올라오셨습니다...
역시나 너무나 평온하고 침착한 모습이었습니다... 퇴근하시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우리 신랑은 사고 후유증 때문에 자주 그래요... 원장님 죄송하지만 좀 업어서 내려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 후에는 제가 다 하면 되요.”
저는 긴장으로 땀이 약간 흐르고 있었습니다... 병원 생활할 때 멀찌감치에서 본 적은 있어도 직접 이런 경우를 당한 적은 첨이라...
환자분을 업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제 작은 체구로 그 분을 업기가 좀 버거울 정도더군요... 그리고는 입구에 앉혀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퇴근 준비하느라 한의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머지 차트 정리하고, 주섬 주섬 가방 챙기고, 웃옷 갈아입고 내려오니 환자분은 이제 많이 풀렸는지 말씀하고 계시고, 사모님이 어깨하고 이리 저리 주무르면서 다독이고 계시더군요... 다정한 친구처럼...
저는 조심해서 가시라고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버스를 타러 내려왔습니다... 그 때만해도 운전이 안 되던 때라...
내려가다가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축을 받으며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러고는 버스를 놓칠세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휴대폰도 단축키를 누르면 마눌 대신에 한동안 “내가 사랑하는 아내”로 표시해주더군요...
때론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사로잡는 힘이 있으시네요.
칼럼방을 맡으시면 안될까요? 두고두고 좋은 글들을 볼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