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을 이용하시기 전에 먼저 <검색>을 이용해 보세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검색>을 통해서도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면 이곳을 이용해 보세요.
Articles 517
다비아에서 정목사님의 글을 많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성령에 대해서 정목사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불교가 자기 수행과, 자기 성찰의 종교라고 할수 있다면
기독교는 타 종교와는 달리 성령이라는 하나님의 영이 그 뿌리를 받쳐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는 성령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성령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기독교를 올바로 알수 없을 것이며
성령 없는 믿음이 과연 참다운 믿음 이라고 할수 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셰례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것이라고 하였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줄 아느니라]고 하였고, 바울 선생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성경에서는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영으로 자주 묘사 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성령이 무엇인지 정 목사님께 좀 배우고 싶습니다.
정목사님은 동영상 강의에서도 성령을 이제껏 제가 알아왔던 방식과는 다소
색다르게 설명 했습니다.
정 목사님은 성령은 온 우주에 충만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물론 무소부재한 하나님의 영이 온 우주에 편재한 것은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성령은 마치 바람과 같아, 온 우주의 안이라는 큰 틀속에서만
표현 될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제가 성경을 예로 들었듯이 성령은 예수님과,사도들의 표현처럼
성도의 심령속에 내주하고, 하나님과 서로 교통하게 하는 인격적인 존재가 확실히
맞는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자주 성령은 바람처럼 흘러 다니는 것이라서 우리가 잡을수 없다는 말을 하셔서
이 말씀이 이해가 잘 가질 않습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성령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이 질문울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목사님께 여쭙자면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로써 신자의 심령속에 찾아 와서,
내주하며 가르치며, 깨닫게 하는 존재가 맞는 것인지 아닌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성도의 심령속에 내주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바른 믿음이 생기는 것인지
또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 있고 하나님과
교통할수 있는것은 아닌지 여기에 대해서도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좀 자세하게 저의 궁금한 것을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늘 저는 성령에 대해서 정목사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불교가 자기 수행과, 자기 성찰의 종교라고 할수 있다면
기독교는 타 종교와는 달리 성령이라는 하나님의 영이 그 뿌리를 받쳐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는 성령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성령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기독교를 올바로 알수 없을 것이며
성령 없는 믿음이 과연 참다운 믿음 이라고 할수 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셰례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것이라고 하였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줄 아느니라]고 하였고, 바울 선생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성경에서는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영으로 자주 묘사 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성령이 무엇인지 정 목사님께 좀 배우고 싶습니다.
정목사님은 동영상 강의에서도 성령을 이제껏 제가 알아왔던 방식과는 다소
색다르게 설명 했습니다.
정 목사님은 성령은 온 우주에 충만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물론 무소부재한 하나님의 영이 온 우주에 편재한 것은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성령은 마치 바람과 같아, 온 우주의 안이라는 큰 틀속에서만
표현 될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제가 성경을 예로 들었듯이 성령은 예수님과,사도들의 표현처럼
성도의 심령속에 내주하고, 하나님과 서로 교통하게 하는 인격적인 존재가 확실히
맞는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자주 성령은 바람처럼 흘러 다니는 것이라서 우리가 잡을수 없다는 말을 하셔서
이 말씀이 이해가 잘 가질 않습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성령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이 질문울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목사님께 여쭙자면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로써 신자의 심령속에 찾아 와서,
내주하며 가르치며, 깨닫게 하는 존재가 맞는 것인지 아닌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성도의 심령속에 내주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바른 믿음이 생기는 것인지
또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 있고 하나님과
교통할수 있는것은 아닌지 여기에 대해서도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좀 자세하게 저의 궁금한 것을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08.10.05 23:47:47
목사님, 주일밤에 조금 피곤 하실텐데 답글 감사 합니다!
우둔한 저의 질문의 요지를 목사님은 정확하게 짚어 주시는군요..
목사님이 말씀 하시는 세계 전체의 생명을 이끌어 가는 영과,
신자에게 개인적으로 관계하는 하나님의 영이 현상적으로 다르지만은
실질적으로 같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저는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인 베드로, 요한, 아울러 바울 선생,
또한 예수님의 여러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 하시고 난후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에 각종 은사를 행하고, 제사장과, 율법사들이 득세하던 유대땅과, 복음을 전혀 모르는
이방땅에 까지 궁극적으로는 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고,
예수의 참 제자들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사도들이 각자 받은 이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오늘날 세계 만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오늘날의 기독교가 수천년 역사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 합니다.
목사님 저의 생각이 무리한 견해라면 다시 좀 가르쳐 주십시요!
그리구 목사님이 써 놓으신 성령에 관한 글들도 다시 찾아서 공부 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리구 저에게 성령을 경험 하였냐고 질문 하셨네요..ㅎㅎ
개인적인 성령경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아닌가요?
선물이란 내가 원한다고 항상 받는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받을수 있는것이고
또 이 선물은 선물을 주는자의 마음에 달렸겠죠..
참 요즘 교회근처 가덕도에 낚시하러 자주 가는데요
낚시대에 고기가 다양하게 걸려 오더군요..
개중에 제법 큰놈이 걸리면 손끝에 와닿는 느낌이 장난이 아닙니다.
작은것이 걸려도 느낌은 좋습니다.
이걸 낚시꾼들은 손맛이라고 하는데요..
이건 옆에 같이 있어도 구경하는 사람은 직접 느낄수가 없는, 특히 낚시를 모르는 사람은
낚시에서 오는 이 손맛을 도저히 알수가 없습니다.
또 한번은 낚시를 하고 있는데 자주 만나는 가덕도 주민인 75세의 할아버지가
저에게 낚시대 한번줘봐라 오늘 고기는 내가 좀 잡아줄께 해서 엉겹결에 낚시대를
드렸는데 이분이 그날 고기 한 열 마리 정도 낚아 주더군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빈손은 아니었는데 제가 직접 잡은 고기가 아니라서
그날 낚시가 영 뭔가 허전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게 원인이 제가 직접 낚시의 손맛을 느끼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받아온 고기라서 그렇더군요
목사님 제가 비유를 하다 보니 저의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새는군요..
오늘도 밤이 깊어 가는군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목사님, 그럼 편히 쉬십시요!
우둔한 저의 질문의 요지를 목사님은 정확하게 짚어 주시는군요..
목사님이 말씀 하시는 세계 전체의 생명을 이끌어 가는 영과,
신자에게 개인적으로 관계하는 하나님의 영이 현상적으로 다르지만은
실질적으로 같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저는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인 베드로, 요한, 아울러 바울 선생,
또한 예수님의 여러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 하시고 난후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에 각종 은사를 행하고, 제사장과, 율법사들이 득세하던 유대땅과, 복음을 전혀 모르는
이방땅에 까지 궁극적으로는 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고,
예수의 참 제자들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사도들이 각자 받은 이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오늘날 세계 만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오늘날의 기독교가 수천년 역사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 합니다.
목사님 저의 생각이 무리한 견해라면 다시 좀 가르쳐 주십시요!
그리구 목사님이 써 놓으신 성령에 관한 글들도 다시 찾아서 공부 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리구 저에게 성령을 경험 하였냐고 질문 하셨네요..ㅎㅎ
개인적인 성령경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아닌가요?
선물이란 내가 원한다고 항상 받는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받을수 있는것이고
또 이 선물은 선물을 주는자의 마음에 달렸겠죠..
참 요즘 교회근처 가덕도에 낚시하러 자주 가는데요
낚시대에 고기가 다양하게 걸려 오더군요..
개중에 제법 큰놈이 걸리면 손끝에 와닿는 느낌이 장난이 아닙니다.
작은것이 걸려도 느낌은 좋습니다.
이걸 낚시꾼들은 손맛이라고 하는데요..
이건 옆에 같이 있어도 구경하는 사람은 직접 느낄수가 없는, 특히 낚시를 모르는 사람은
낚시에서 오는 이 손맛을 도저히 알수가 없습니다.
또 한번은 낚시를 하고 있는데 자주 만나는 가덕도 주민인 75세의 할아버지가
저에게 낚시대 한번줘봐라 오늘 고기는 내가 좀 잡아줄께 해서 엉겹결에 낚시대를
드렸는데 이분이 그날 고기 한 열 마리 정도 낚아 주더군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빈손은 아니었는데 제가 직접 잡은 고기가 아니라서
그날 낚시가 영 뭔가 허전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게 원인이 제가 직접 낚시의 손맛을 느끼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받아온 고기라서 그렇더군요
목사님 제가 비유를 하다 보니 저의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새는군요..
오늘도 밤이 깊어 가는군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목사님, 그럼 편히 쉬십시요!
2008.10.07 17:39:06
제가 보기에는 <저 별과 달님>의 질문이나 정목사님의 답변이나 모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여겨집니다.
다른 점은 성령님을 바라보는 인간적인 관점과 인식의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인간적인 영역으로 넘어왔을 때는 공학을 전공하는 저 같은 평신도의 평가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저의 의견을 밝힙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라면 기본적으로 두 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주권과 책임이 하나님께 중심을 두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 즉, 인간 편에 중점을 두는 것이지요. 양극단의 사례로서 하나님 주권을 강조하면 인간 편에서는 성령님을 전혀 감지하거나 인식할 수 없을 것이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 성령님을 인간의 영역에 가두어서 극단적으로는 무당과 비슷하게 마음대로 조종하고 다루는 경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때 양측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요. 인간 편을 중요 시하면 힘있는 역동성과 영향력의 확대가 장점인 반면 부작용이 우려되는 단점이 있고, 하나님 관점으로 보면 장단점이 바뀔 것이고요.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 양 극단 사이의 어디엔가 위치하여 분포하고 있겠지요. 제 생각에는 정목사님은 하나님의 주권 편에 가까우신 것 같고, <저 별과 달님>은 인간의 자유의지 편에 중점을 두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라는 것도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현 한국기독교 현실에서는 <저 별과 달님>이 주류이고 정목사님이 비주류에 속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주류 측에서 비주류 측을 용납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이 두 관점 사이에서 분포하는 크리스천들의 평균치 또는 밸런스의 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해왔을 것이고 어느 정도가 바람직한 축인가도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요. 지금 현 한국의 상황에서 저의 판단으로는 밸런스의 축이 상당히 많이 인간중심 편으로 쉬프트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이 판단은 저의 경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 객관적 이지는 않겠지요. 그럼에도 저 자신 매우 다양한 크리스천 문화를 경험하면서도 어느 중심권으로 매몰되지 못하고 변두리 영역에만 머물러왔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한 판단이라고 자부합니다. 변두리의 저 자신은 역동적이고 확신에 찬 중심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고, 그에 상당하는 폐해를 느끼고 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분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다른 점은 성령님을 바라보는 인간적인 관점과 인식의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인간적인 영역으로 넘어왔을 때는 공학을 전공하는 저 같은 평신도의 평가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저의 의견을 밝힙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라면 기본적으로 두 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주권과 책임이 하나님께 중심을 두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 즉, 인간 편에 중점을 두는 것이지요. 양극단의 사례로서 하나님 주권을 강조하면 인간 편에서는 성령님을 전혀 감지하거나 인식할 수 없을 것이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 성령님을 인간의 영역에 가두어서 극단적으로는 무당과 비슷하게 마음대로 조종하고 다루는 경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때 양측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요. 인간 편을 중요 시하면 힘있는 역동성과 영향력의 확대가 장점인 반면 부작용이 우려되는 단점이 있고, 하나님 관점으로 보면 장단점이 바뀔 것이고요.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 양 극단 사이의 어디엔가 위치하여 분포하고 있겠지요. 제 생각에는 정목사님은 하나님의 주권 편에 가까우신 것 같고, <저 별과 달님>은 인간의 자유의지 편에 중점을 두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라는 것도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현 한국기독교 현실에서는 <저 별과 달님>이 주류이고 정목사님이 비주류에 속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주류 측에서 비주류 측을 용납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이 두 관점 사이에서 분포하는 크리스천들의 평균치 또는 밸런스의 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해왔을 것이고 어느 정도가 바람직한 축인가도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요. 지금 현 한국의 상황에서 저의 판단으로는 밸런스의 축이 상당히 많이 인간중심 편으로 쉬프트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이 판단은 저의 경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 객관적 이지는 않겠지요. 그럼에도 저 자신 매우 다양한 크리스천 문화를 경험하면서도 어느 중심권으로 매몰되지 못하고 변두리 영역에만 머물러왔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한 판단이라고 자부합니다. 변두리의 저 자신은 역동적이고 확신에 찬 중심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고, 그에 상당하는 폐해를 느끼고 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분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2008.10.09 14:53:51
저별과 달님. 저별과 달님의 심정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저 역시 성령이 무엇인지 엄청 궁금해 했었고, 엄청 고민했고 또한 엄청 정목사님을 귀찮게 해드렸답니다. 이제 어렴풋이 나마 성령이 무엇인지 알것 같지만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교회에서 "나는 성령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는데 그럼 기독교인이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모두들 의아해 하더군요. 그리고 "어떻게 성령을 느끼는건데" 하고 거꾸로 질문을 하더군요. 그리고 성령충만하다 또는 성령으로 세래를 받다라는 말이 다소 비성경적으로 오해를 많이 불러 온다구요 -- 저 역시 어느날 집사람이 성령으로 세래를 받았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라 했었습니다.
성령은 히브리어 또는 그리스어로 바람 하나님의 숨결이라고 하고 이는 창조, 제어, 드러냄, 변화 또는 권능을 능동적으로 행하는 주님의 권능이라고 하면서 이미 하나님을 안 믿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믿고 또 성령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주관이라고요.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 말씀을 따르는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저역시 성령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말씀 구절을 묵상하다가 "아 하나님께서는 이런 뜻으로 말씀하시는 거구나"하고 깨달았을 ㄸㅒ 결코 제가 저의 아둔한 머리로 깨달은게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거구나 하고요.
그러면 정목사님 말씀대로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인가요? 안니면 우연인가요? 아님 악령의 인도인가요?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그 열매를 보라고 하더군요. 즉 바울이 말한 기쁨, ... (굳이 안써도 아시겠죠) 등에 비추어 제 자신의 욕심이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행위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요.
저 역시 아직 성령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겠고 누구처럼 성령이 충만하다고 느낀적도 없고 방언이나 기적을 행한 적은 더더욱 없어서 제가 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정목사님 제가 잘못 이해했으면 바로 잡아 주세요.
저별과 달님 그리고 저도 성령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별과 달님께서 -- 그리고 저도 -- 성령을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독드리겠습니다.
교회에서 "나는 성령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는데 그럼 기독교인이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모두들 의아해 하더군요. 그리고 "어떻게 성령을 느끼는건데" 하고 거꾸로 질문을 하더군요. 그리고 성령충만하다 또는 성령으로 세래를 받다라는 말이 다소 비성경적으로 오해를 많이 불러 온다구요 -- 저 역시 어느날 집사람이 성령으로 세래를 받았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라 했었습니다.
성령은 히브리어 또는 그리스어로 바람 하나님의 숨결이라고 하고 이는 창조, 제어, 드러냄, 변화 또는 권능을 능동적으로 행하는 주님의 권능이라고 하면서 이미 하나님을 안 믿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믿고 또 성령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주관이라고요.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 말씀을 따르는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저역시 성령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말씀 구절을 묵상하다가 "아 하나님께서는 이런 뜻으로 말씀하시는 거구나"하고 깨달았을 ㄸㅒ 결코 제가 저의 아둔한 머리로 깨달은게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거구나 하고요.
그러면 정목사님 말씀대로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인가요? 안니면 우연인가요? 아님 악령의 인도인가요?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그 열매를 보라고 하더군요. 즉 바울이 말한 기쁨, ... (굳이 안써도 아시겠죠) 등에 비추어 제 자신의 욕심이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행위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요.
저 역시 아직 성령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겠고 누구처럼 성령이 충만하다고 느낀적도 없고 방언이나 기적을 행한 적은 더더욱 없어서 제가 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정목사님 제가 잘못 이해했으면 바로 잡아 주세요.
저별과 달님 그리고 저도 성령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별과 달님께서 -- 그리고 저도 -- 성령을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독드리겠습니다.
"좀 자세하게...." 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도 양해를 바래요.
온라인 강의실에 가서 조직신학의 "성령론" 부분을 참고하시고,
그 이외에 특강 메뉴에 가시어 영성과 설교에 관한 부분을 보세요.
그 밖에도 성령에 관한 설교와 신학단상, 성서연구가 많을 겁니다.
지금 이 자기에서 전체적인 성령론을 강의하기는 힘들겠지요?
주신 질문의 핵심은 분명하군요.
성령을 보편적인 생명의 영으로만 보는지,
아니면 개인 신자들과 개인적으로 관계하는 인격적 영으로 보는지, 하는 질문이에요.
그거 양쪽 모두에 해당된답니다.
성령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적 관계라고 할 수 있겠군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면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기독론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토대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창조인 이 세계 전체의 생명을 끌어가는 깊이이기도 합니다.
이 둘을 다른 것으로 보면 곤란해요.
현상적으로는 다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독교적인 믿음을,
즉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교회 공동체 밖에서도 그분의 뜻대로
생명 활동을 하시는 영이시랍니다.
그건 그렇고,
별달 님은
성령을 경험하셨나요?
그 경험이 바로 성령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나요?
인간에게는 악령 경험도 가능하답니다.
성령과 악령은 표면적으로 별 차이가 없답니다.
이 말은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마세요.
우리가 믿는 성령을 너무 개인의 경험에 근거해서 보면
곤란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뿐이에요.
행복한 주일 밤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