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먼저 간략히 목사님의 설교를 발췌 요약하겠습니다.(로마서 9장 19-29)

" 1.  마치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따질 수 없듯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공평이나 공의가 아니고 은혜로 선택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선택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에 대해 피조물인 사람은 감히 항의 할 수 없다.

2.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선택된 그릇을 진노의 그릇(악의 도구)과 긍휼의 그릇을 만드셨다.
바로는 진노의 그릇, 즉 악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 선택된 자이다.
사울도 그렇다.
가룟 유다도 그렇다.
이에 반해 다윗, 바울은 긍휼의 그릇으로 쓰임을 받았다.

3. 멸하기로 준비한 진노의 그릇이라 할지라도 오래 참으시고 용서를 할 수 있으면 해주시려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진노의 그릇도 이럴진대 긍휼의 그릇으로 선택된 우리가 설령 잘못을 할지라도 얼마나 기다려주시며 관용해주시겠는가.
하나님께서 바로왕에게 10번의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바로는 결국 모든 부하를 홍해바다에 몰살시키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가룟유다도 예수님께서 이미 어떻게 쓰임 받을 것임을 이미 알고 그러기때문에 불렀는지도 모른다. 이런 유다에게 재정을 맡기고 믿어주셨다. 이것은 선용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고
그 후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는 예수님의 말을 들었을때라도 회개 했어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화가 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 결국 예수님을 팔았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입맞춤으로 회개할 수 있는 또한번의 기회를 주셨으나
결국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나중에 목매달아 죽고 말았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실수를 한 베드로는 세번 부인한후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주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울었다.
선택 되고 선택되지 않았다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 죽기 전까지 회개한 사람은 선택된 사람이다.
성경은 선택한 자를 위해 씌여졌다.
  즉 가인, 이스마엘, 에서 때문에 씌여진 것이 아니라 아벨, 이삭, 야곱 때문에 씌여졌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보면 에서보다 훨씬 더 못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야곱을 기다려주고
  그를 만들어가셨다.
  에서는 끝까지 하나님께 반항하지만 야곱은 울며 회개하였다. "



이와 관련하여 다비아에 써있는 여러 글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제자보다 비범했던 가룟 유다는 유다는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실현되기를 갈망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의 모든 질서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질서로 변화되는 나라였다. 유다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그런 조짐을 보았을 것이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내어쫓는 예수에게서 어떤 혁명의 불길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광야에서 수천 명이 빵과 생선을 나누어 먹는 광경을 보면서 이만한 세력과 이만한 카리스마라면 로마의 식민통치를 당장에 끝장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런데 유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는 군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혼자 있기를 잘하며, 낮은 자리와 사랑에 대해서 설교하셨다.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 결국 유다는 마지막 수단으로 예수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국면으로 몰고 갔다. 예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것이다. 죽음 앞이라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혁명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수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런 점에서 유다는 분명히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하게 실패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실패는 어떤 인격적이거나 지성적인 차원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예수에게서 전혀 다른 희망을 품었다는 데에 있다. " 라는 정목사님의 글도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의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신은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위의 설교 내용에 전혀 반감을 갖지 않고
아멘하며 감사하며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선택받은 자라 믿고 은혜에 감사하기만 했었습니다.

저의 의문은 이미 많이 논의 되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의문은
1. 하나님은 이미 선택할 자를 예정해 놓으셨는가 라는 선택예정론에 대한 견해는 많이 들었습니다.
  온간 믿음의 선지자들의 선택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았기 때문에 그냥 흘려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가룟 유다 더 나아가 현대에 있어 가룟 유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적용되어지는 가라는 것에 대해서 잘모르겠습니다.
  진노의 그릇으로 선택 받은 자 입장에서 생각해보건데 너무 억울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역을 감당할 사람을 이미 선택해 놓으셨느냐는 것에 대한 의문입니다.
  저희 교회 목사님을 상당히 신뢰하다 보니 잘 정리 되었던 것이 의문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2. 회개할 기회를 주었다고 하셨는데
  만약 이미 그렇게 선택되어졌다면 회개할 근본적인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회개 한다고 하여 이미 맡겨진 역할을 거둘 수도 없었을 것이고
  회개하더라도 이미 진노의 그릇으로 선택되어진 자가 긍휼의 그릇으로 바뀔 수도 없을 터인데
  회개하지 않은 바로나 에서나 유다에 대해 질책을 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3. 정말로 성경이 선택된 자만을 위하여 씌여졌는가 라는 궁극적인 의문도 생겼습니다.
   물론 이것도 선택예정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갖을 수 있는 의문이겠습니다만...
   전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 멸망할 자를 미리 결정해 놓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제 근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 분들에게 설명하고 더 나아가
  설득할 지식이 필요합니다. 좋은 책 소개를 해주셔도 좋습니다.

검색 창에 온갖 단어를 다 넣어서 찾아 보았으나 찾는데에 한계를 느끼고 정리가 제대로 안되어
이곳을 어지럽히며 질문을 드리오니 고견 부탁 드립니다.
(사실 너무 기초적인 의문 같아 쑥쓰럽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