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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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목사님이나, 신앙 고수 다비안님들에게 제 신앙 감정을 좀 받고자 하는 이유에서 입니다.
( 가끔 와서, 글들을 보며 다비안님들에게 신뢰가 드는 차에 ... )
제 신앙은 이글을 쓸 당시의 상태에서, 많이 발전해 있지 못합니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신앙은 코람데오' 정신이 기본이라는 생각정도 ....
교제하는 모든 사람은 사랑을 주어야 할 대상이지, 사랑을 기대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 ...
내 눈에 있는 들보'가 더 크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 어떤 분의 가르침 정도'가 플러스 되어있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좀 많이 변해 있는거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좋은 신앙의 조언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라, 다소 거친 표현이 있고, 자유롭게 손가는데로 쓴 글이라는
점 염두에 두시고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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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름 방학 때 , 공부에는 재능도 없고, 흥미도 없었던 관계로, 한참 락커의 꿈을 품고 있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음악을 하고 싶다고, 음악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아버지께 고백했다 ..
그리고, 곧바로 날라오는 잿더리 ....
나의 날카로운 운동신경으로 0.05mm 의 차이로 간신히 잿더리를 피하고, 곧장 독서실로 가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제임스 헷필드의 걸쭉한 목소리와 라술리에 파워풀한 타마드럼을 들으며,
너바나의 절규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
이내 아쉬운 마음을 기어이 음악으로 위로하고 말았었다.
락은 당시 내 억눌린 학창시절의 해방구였고, 자유였다.
물론, 비겁한 도피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문화 사대주의에 빠져 있었던 듯 하다.
국내 락은 단순히 따라가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고,
당연히 모든 락은 영-미권의 락을 최고로 생각했었고, 그것도 팝락은 또 쓰레기라고
무시했었던 듯 하다.
군대도 다녀오고, 왠지 삶에 유연함이 생긴 20대 초중반 ..
한국 락계에서 보석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전인권'이다.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오지 오스본'도 떠오르고,
그만의 독특한 창법, 그의 인생이 녹아있는, 그의 영혼이 녹아 있는 음악 같았다.
정말 딱 음악처럼 살 것 같은 사람 .. 음악이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곧 그의 음악자체인 ..
27살 쯤이었던 거 같다.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유난히도 눈에 띄는 자매(?ㅋ)가 있었다.
앞자리에서 양손을 들고, 어찌나 은혜스럽게 찬양을 하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은 그 순간 God을 만난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얼마나 신실해 보이던지 ..
그 허상은 얼마 가지 못해, 그녀 스스로 부숴버렸다.
'남자가 연봉 5천 이상은 받아야 대지 않나??' 20대 중반에 5천이라? 초봉일텐데 .. 머 어쩌라거?? ㅋ
그 은혜롭게 찬양하며, 세상즐거움 다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겠다던 .. 그녀 입에서 ...
또 내 신실한 친구는 나에게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믿음으로도 성공하자' 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냥 아무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구역질을 참느라 ...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참 .. 연봉 5천을 외치는 그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활력 강하며 지혜로운 여성일 것이다.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믿음으로도 성공하자'는 말은 굉장히 좋은 말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구역질이 앞선다.
다만 아무말을 말아줬으면 좋겠다.
전인권은 구설수에 참 많이도 오른 사람이다.
나이 값못하는 할아버지 같고, 철모르는 어린이 같고, 방탕한 약쟁이 같고,
세상을 알지 못하는 멍청이 같기만 하다 ..
왠지 독특한 캐릭터의 모습 또한 세상에 이용당하는 것만 같은 멍청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
그의 삶의 태도에서 나는 숭고함을 느낀다. ( 초큼 오바해서 .. )
세상을 모른다던 그의 가삿말 처럼, 멍청이처럼 음악만을 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자신의 감정과 욕망앞에 솔직하고, 또 세상에 비난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채
할말 다 하고 .... 마약을 해보니 여러 괴로움도 잊게되고, 그러다보니 중독자도 되보고,
그렇게 또 음악으로 이야기하고 .....
그가 하는 말과 행동과 노래 부르는 스타일은 그의 삶과 일치한다.
오해일지도 모르나, 그는 그의 말과 그의 모습이 일치한다.
그의 노랫말과 그의 음악과 그의 삶은 일치한다.
그것이 어떤 비난의 모습이라도,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삶의 깊은 허무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 가식없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돈 밝히는 크리스챤을 대할 때 만큼, 역겨운 일은 없다.
돈을 벌고 싶으면 입다물고 열심히 돈이나 벌어서 잘먹고 잘 살아줬으면 ...
그 주제에 나를 가르치려 교훈이나, 훈계 따위를 늘어놓지 말아줬으면 ...
감화감동한 얼굴로,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정신병자처럼 성경말씀을
늘어놓는 짓거리를 그만했으면 ...
섹스의 반복되는 피스톤 운동처럼 격렬한 행위를 표현하는 의미에서 'Rock'이든,
낡은 관념과 주체를 억압하는 가치에 저항하고 흔든다는 의미에서의 'Rock'이든,
내가 볼 때 락은 솔직하고, 의미있다.
오히려, 락을 욕하며, 사탄의 음악이라고 비난하는 크리스챤보다 오히려 예수님에게 가깝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내려오신다면, 청년실업에 힘들어 하고 기득권의 배때지 부른 삶을
비난하고 무정부주의를 외쳤던 '섹스피스톨즈'와
배고픔과 아픔을 잊기위해 마약을 해야만 했던 너바나의 '커트코베인'과 함께 했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를 어루 만져줬을것이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주었을것이다.
말세가 다가온다며 협박하고, 나환자마저 신의 은총으로 둔갑하며 감금했던 중세와
'믿음의 크기'는 곧 '금의 크기'로 환원되는 현대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세속화된 교회의 탐욕과 가식은 여전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짧은 내 신앙의 사유는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여전히 신앙은 개인의 몫이고, 스스로 양을 먹이는 '목자'라 자청하는 목사에게도 아니고
두손 들고 찬양하던 신학대학원생에게도 아니며, 교회라는 형식에도 있지 않다.
삶에서 실천하며 깨닫고 수정해가며 기도하고 말씀으로 묵상하는 삶이 진정한 예배다.
진정한 신앙인으로 나의 부족한 사유와 부족한 인격, 그 모습 그대로 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 ...
이게 바로 신앙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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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목사님이나, 신앙 고수 다비안님들에게 제 신앙 감정을 좀 받고자 하는 이유에서 입니다.
( 가끔 와서, 글들을 보며 다비안님들에게 신뢰가 드는 차에 ... )
제 신앙은 이글을 쓸 당시의 상태에서, 많이 발전해 있지 못합니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신앙은 코람데오' 정신이 기본이라는 생각정도 ....
교제하는 모든 사람은 사랑을 주어야 할 대상이지, 사랑을 기대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 ...
내 눈에 있는 들보'가 더 크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 어떤 분의 가르침 정도'가 플러스 되어있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좀 많이 변해 있는거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좋은 신앙의 조언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라, 다소 거친 표현이 있고, 자유롭게 손가는데로 쓴 글이라는
점 염두에 두시고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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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름 방학 때 , 공부에는 재능도 없고, 흥미도 없었던 관계로, 한참 락커의 꿈을 품고 있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음악을 하고 싶다고, 음악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아버지께 고백했다 ..
그리고, 곧바로 날라오는 잿더리 ....
나의 날카로운 운동신경으로 0.05mm 의 차이로 간신히 잿더리를 피하고, 곧장 독서실로 가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제임스 헷필드의 걸쭉한 목소리와 라술리에 파워풀한 타마드럼을 들으며,
너바나의 절규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
이내 아쉬운 마음을 기어이 음악으로 위로하고 말았었다.
락은 당시 내 억눌린 학창시절의 해방구였고, 자유였다.
물론, 비겁한 도피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문화 사대주의에 빠져 있었던 듯 하다.
국내 락은 단순히 따라가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고,
당연히 모든 락은 영-미권의 락을 최고로 생각했었고, 그것도 팝락은 또 쓰레기라고
무시했었던 듯 하다.
군대도 다녀오고, 왠지 삶에 유연함이 생긴 20대 초중반 ..
한국 락계에서 보석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전인권'이다.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오지 오스본'도 떠오르고,
그만의 독특한 창법, 그의 인생이 녹아있는, 그의 영혼이 녹아 있는 음악 같았다.
정말 딱 음악처럼 살 것 같은 사람 .. 음악이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곧 그의 음악자체인 ..
27살 쯤이었던 거 같다.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유난히도 눈에 띄는 자매(?ㅋ)가 있었다.
앞자리에서 양손을 들고, 어찌나 은혜스럽게 찬양을 하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은 그 순간 God을 만난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얼마나 신실해 보이던지 ..
그 허상은 얼마 가지 못해, 그녀 스스로 부숴버렸다.
'남자가 연봉 5천 이상은 받아야 대지 않나??' 20대 중반에 5천이라? 초봉일텐데 .. 머 어쩌라거?? ㅋ
그 은혜롭게 찬양하며, 세상즐거움 다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겠다던 .. 그녀 입에서 ...
또 내 신실한 친구는 나에게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믿음으로도 성공하자' 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냥 아무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구역질을 참느라 ...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참 .. 연봉 5천을 외치는 그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활력 강하며 지혜로운 여성일 것이다.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믿음으로도 성공하자'는 말은 굉장히 좋은 말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구역질이 앞선다.
다만 아무말을 말아줬으면 좋겠다.
전인권은 구설수에 참 많이도 오른 사람이다.
나이 값못하는 할아버지 같고, 철모르는 어린이 같고, 방탕한 약쟁이 같고,
세상을 알지 못하는 멍청이 같기만 하다 ..
왠지 독특한 캐릭터의 모습 또한 세상에 이용당하는 것만 같은 멍청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
그의 삶의 태도에서 나는 숭고함을 느낀다. ( 초큼 오바해서 .. )
세상을 모른다던 그의 가삿말 처럼, 멍청이처럼 음악만을 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자신의 감정과 욕망앞에 솔직하고, 또 세상에 비난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채
할말 다 하고 .... 마약을 해보니 여러 괴로움도 잊게되고, 그러다보니 중독자도 되보고,
그렇게 또 음악으로 이야기하고 .....
그가 하는 말과 행동과 노래 부르는 스타일은 그의 삶과 일치한다.
오해일지도 모르나, 그는 그의 말과 그의 모습이 일치한다.
그의 노랫말과 그의 음악과 그의 삶은 일치한다.
그것이 어떤 비난의 모습이라도,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삶의 깊은 허무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 가식없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돈 밝히는 크리스챤을 대할 때 만큼, 역겨운 일은 없다.
돈을 벌고 싶으면 입다물고 열심히 돈이나 벌어서 잘먹고 잘 살아줬으면 ...
그 주제에 나를 가르치려 교훈이나, 훈계 따위를 늘어놓지 말아줬으면 ...
감화감동한 얼굴로,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정신병자처럼 성경말씀을
늘어놓는 짓거리를 그만했으면 ...
섹스의 반복되는 피스톤 운동처럼 격렬한 행위를 표현하는 의미에서 'Rock'이든,
낡은 관념과 주체를 억압하는 가치에 저항하고 흔든다는 의미에서의 'Rock'이든,
내가 볼 때 락은 솔직하고, 의미있다.
오히려, 락을 욕하며, 사탄의 음악이라고 비난하는 크리스챤보다 오히려 예수님에게 가깝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내려오신다면, 청년실업에 힘들어 하고 기득권의 배때지 부른 삶을
비난하고 무정부주의를 외쳤던 '섹스피스톨즈'와
배고픔과 아픔을 잊기위해 마약을 해야만 했던 너바나의 '커트코베인'과 함께 했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를 어루 만져줬을것이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주었을것이다.
말세가 다가온다며 협박하고, 나환자마저 신의 은총으로 둔갑하며 감금했던 중세와
'믿음의 크기'는 곧 '금의 크기'로 환원되는 현대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세속화된 교회의 탐욕과 가식은 여전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짧은 내 신앙의 사유는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여전히 신앙은 개인의 몫이고, 스스로 양을 먹이는 '목자'라 자청하는 목사에게도 아니고
두손 들고 찬양하던 신학대학원생에게도 아니며, 교회라는 형식에도 있지 않다.
삶에서 실천하며 깨닫고 수정해가며 기도하고 말씀으로 묵상하는 삶이 진정한 예배다.
진정한 신앙인으로 나의 부족한 사유와 부족한 인격, 그 모습 그대로 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 ...
이게 바로 신앙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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