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26일

빌라도의 재판(7)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15:4)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아무 대답도 없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어 음해하고 무고하는데도 자기를 방어하지 않는 예수님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의 이 질문은 예수님을 두둔하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이 뒤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별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로마의 총독이 이런 정도로 관용적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빌라도를 가능한 대로 호의적으로 봅니다. 산헤드린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책임이 실제로 빌라도보다 산헤드린에게 더 있었을까요? 복음서와 달리 사도신경은 산헤드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빌라도에게 모든 책임을 묻습니다. 물론 사도신경이 말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도 빌라도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처형에 대한 강조이긴 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빌라도 총독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이유는 복음서가 기록될 때의 교회가 로마 제국에 대해서 취한 태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로마 제국이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음서와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바울의 로마서는 권세에게 복종하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서보다 약간 후대에 기록된 사도행전도 로마 관료들을 최소한 중립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신적인 권위를 내세우던 로마 제국 자체를 인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로마가 지역 치안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정치(국가)와 기독교의 관계는 지금도 한 두 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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