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29일

빌라도의 재판(10)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15:5)


예수님의 침묵 앞에서 빌라도는 놀라워했습니다. 이 놀람은 단순히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적인 경험입니다. 복음서에서 놀람은 늘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비상한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상대한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겠지요.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엘리트입니다. 유대 총독을 끝내면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고위직을 맡거나 아니면 더 큰 지역의 총독으로 승진하겠지요. 그는 내로라하는 많은 학자, 정치인, 군인, 귀족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유대의 귀족들과도 친분을 맺었겠지요. 그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경험한 사람들의 범주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귀한 경험입니다. 

그런데 앞서 빌라도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법정에 세웠던 대제사장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화가 났을 뿐입니다. 이게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가장 종교적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가장 세속적인 반응을 보이고, 가장 세속적인 집단에 속한 사람이 가장 종교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게 말입니다.

종교 전문가들의 위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종교적인 매너리즘에 빠져서 결국 종교 체험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산헤드린 의원들에게서 보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형식을 절대규범으로 고집한 탓에 예수님에게서 그 어떤 신적 현실성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불행입니다.    

종교적인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영적 거울에 비쳐보는 일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정확하게 아는 신학공부와 경건훈련이 이런 성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두 기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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