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5일
바라바 이야기(6)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15:11)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자 대제사장들이 다시 총독과 무리 중간에 끼어들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그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바라바를 선택하게 했다고 말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어떻게 충동했는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들이 직접 무리 틈에 들어가서 선동하지는 못했겠지요. 그들도 체면은 있었을 테니까요. 하인들을 무리 틈에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유언비어를 퍼뜨렸을지도 모릅니다. 바라바가 석방되면 유대 민족 해방에 어떤 서광이 비칠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앞에서 한번 언급했겠지만, 대제사장들을 무조건 비인격적인 사람들이라고 보면 곤란합니다. 그들은 당대에 인정받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의 종교 전통을 충분히 학습하고, 그 사회가 인정하는 권위를 확보한 사람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인격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깡그리 나쁜 놈들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개 거기서 거기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묘사하듯이 그들이 몰염치한 사람들로 행동한 이유는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전과 제사전통을 고수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예수를 용납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의 입장에서 세계를 판단하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들을 비호하려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자는 것뿐입니다.
어쨌든지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로 정치인들이 하는 방식대로 군중을 선동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오늘 종교 지도자들 중에서도 이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없지 않겠지요.
잘아는 지식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무섭다는 느낍니다.
흡사 마녀사냥식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와 존엄을 모두 벗어 던지고, 한사람을 처형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치 않는 진실을 가린 행위에 절망을 느낍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처형하고 나서 민중들 앞에 당당히 하나님께 부여 받은 권위을 앞세우겠죠.
이분들 중에 양심없는 지식인과 종교지도자들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 당시의 지도자들에게 절망하게 되네요.
아니면 직접 나서지 못한채 좀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소수의 지도자들도 과연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시대의 목회,
예배와 설교와 교육과 심방과 행사를 통해 교인들을 선동해서는 안 되는데, 우리가 그러고 있으니...
여기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더군요!
저부터 회개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