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29일

십자가 아래서(3)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15:24)


십자가 아래서 제비뽑기를 하고 있던 로마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원죄론의 타당성을 언급한 어제의 묵상을 오늘 보충해야겠습니다. 자칫하면 그 묵상이 원죄론의 오용과 왜곡을 옹호하는 것처럼 전달될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원죄론은 크게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우선 그 가르침은 신자들을 심리적으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거의 질병 현상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불행한 일을 만나면 모든 것을 죄의 탓으로 돌립니다. 심지어는 기도를 게을리 했다거나, 헌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죄책감이 사회적인 차원으로 발전하면 개혁과 변화의 장애로 작용합니다.

원죄론이 일으키는 또 하나의 왜곡은 죄에 대한 책임의식의 실종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죄가 유전된다면 구체적인 죄에 대한 책임을 각자에게 물을 수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죄를 아담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그런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빠져 있는 신자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원죄론이 말하려는 핵심은 죄 숙명주의도 아니고 죄 낭만주의도 아니라, 죄 현실주의입니다. 죄에 묶여서 꼼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아니고, 또한 계몽과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죄가 인간과 사회를 구성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엄정하게 보자는 생각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제비뽑는 이 현실을 우리는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지만, 동시에 거기에 절망할 수도 없습니다. 일단 그 현실적인 인간과 그 삶의 실체를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야합니다. 여기에는 신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적인 접근도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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