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3일

십자가에 달린 자(2)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15:29)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쩔레쩔레 흔들며 모욕하고 있는 대상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인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다니, 이걸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존재자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린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자가 아니든지 십자가에 달리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모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답은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다는 교리입니다. 성육신(incarnation) 교리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었다면 이제 인간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의인을 십자가에 못 박은 운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겁니다.

이런 기독교의 교리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교리의 현실로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겁니다. 이는 마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를 경험하는 건 어렵다는 사실과 비슷합니다. 그냥 피아노 소리를 내는 것과 음악 경험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이니까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교리의 현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음악 경험을 위해서 통합적인 음악 훈련이 필요하듯이 통합적인 신학 훈련이 필요하겠지요.

그런 훈련 중의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심층적 이해입니다. 예를 들어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변증법적 긴장의 구도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경륜(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 행위는 곧 하나님의 존재방식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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