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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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1남 3녀이다.
예전엔 낳은 후에 원인 불명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만약 모두가 잘 자랐다면 2남 5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도 장남의 굴레(?)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고...
나와 바로 위 누나의 나이 차이는 11살이다.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난 이유는 사연이 너무 길기에 쓸 수는 없고,
그 누나 위로 형과 누나가 있었는데 둘 다 너무 어릴 때 하늘로 갔다.
내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었는데 어느날 또 한명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얼마나 이쁘던지.
정말 천사가 이 땅에 내려왔다면 바로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천사가 땅이 싫었는지 걸어보지도 않고 하늘로 가버렸다.
죽음이 정확히 뭔지도 모를 7살의 나는 움직이지 않는 유선이를 보며 엉엉 울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젖을 물리고 있다가 손님이 오면(시장에서 장사를 했었기에) 바로 빼고 뉘여 놓아도 울지도 않고
다시 젖을 줄때까지 기다렸던 천사.
하루 종일 나의 장난감이 되어 주고 방긋 방긋 웃으며 기어 다니던 아이가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고 까꿍을 수없이 해도 웃지 않았다.
그 아이를 작은 이불에 싸서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산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버지는 할머니 산소 옆에 땅을 파고 그곳에 유선이를 묻었다.
다시는 유선이를 볼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떼를 쓰며 울었다.
유선이 묻지 말라고, 제발 유선이를 계속 보게 해달라고..
그날따라 하루 종일 굵은 비가 내렸다.
할머니 산소가 걸어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오고 가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만약 살아있다면 38.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있을터인데.
유선이를 보고 싶어도 보러 갈 곳이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머니 묘를 이장하면서 유선이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관도 짜지 않고 그냥 이불에 싸서 묻어버려 형체도 찾을 수가 없다.
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이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밖에 없다.
“ 하나님 !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하나님께서 유선이를 구원해주시고
재림의 날에 함께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광기 씨의 아들 석규의 모습을 보며 난 유선이가 떠올랐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많은 아이들의 명복을 빌며...
저와는 5살 정도 차이가 날겁니다.
헌데 본적도 없어요..
단지 이름만 알고있을 뿐이죠,,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집안의 장자로 태어난 형님은
갓 돌지난 나이로 그만 불귀의 객이 되었다 합니다.
여전히 50년이 지난 이야기를 할라치면
팔순이 낼 모래이신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가에 눈물을 만들어 내십니다.
그나마 당신은 나은 편이라며..
24년 키운 장자를 군대 보내어 총기사고(?)로 한 줌 재로 맞이한
당신 올케에 비하면 당신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눌러앉히시는 내 어머니의 멍든 가슴을
전 아직도 저만치서 느껴보려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해보면 죽음이란 거
참으로 우리 옆에 가까이 있는 거더군요.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벗이라는 거
사람들은 매번 겪어대면서도 쉬이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매번...
방금 환자가 와서 급당황....ㅠㅠ
오늘은 마음이 아픈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