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22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2)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15:35)


십자가 곁에 있던 자 중의 어떤 이가 예수님께서 ‘엘리야’를 부르는 거 아니냐,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엘리’는 엘리야와 비슷한 발음으로 들리긴 합니다. 엘리는 원래 ‘엘로이’라고 발음합니다. 엘로이를 엘리야로 혼동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이 그걸 혼동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려고 일부러 혼동한 척 하는 건 아닐까요?

약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긴 합니다. 엘리야는 메시아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막 9:12 참조) 예수님이 바로 그 엘리야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는 겁니다. 어찌되었든지 엘리야를 부른다는 말에는 예수님을 향한 조롱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자가 이제는 다른 이에게 구원을 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뜻이겠지요.

 예수님이 처한 십자가의 상황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버림받음입니다. 예수님이 추구하던 모든 것이 무화(無化)된 자리입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군중들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가 행한 큰 능력도 기억해주는 이들이 없습니다. 가장 큰 능력을 행하던 이가 가장 무능력한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그 자리를 고독의 끝이라고 말하더군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그 막장까지 내려간 하나님이십니다. 역설입니다. 구원자가 구원받아야 할 자리로 떨어졌다는 게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성육신 신앙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체로 오셨다는 캐노시스 신앙이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엘리 엘리....” 절규하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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