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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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안님들 안녕하십니까? 오랜 만에 인사드립니다.
사실은 매일 짬짬이 심방 왔으나 눈팅 밖에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토요일)에는 모처럼 시간이 나서 이렇게 자판을 두들깁니다. 내일은 한인교회 예배가 없는 날이라 따로 설교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요.
실직자들이 수 백 만 명이나 되는 영국 하늘 아래에서 저는 최근 들어 하루 3~4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답니다. 남들 새벽 기도할 시간에 신문과 잡지를 여러 가정과 인근 종합 병원에 배달하고, 오전과 오후에는 수 천 장의 전단지를 가가호호 걸어 다니면서 3시간~5시간 정도 뿌리고, 저녁 직전엔 장애인 복지 시설에 가서 청소부 노릇하고, 밤에는 수 주 전에 새로 잡은 중국식당에서 일주일에 약 30시간 남짓 음식 배달을하고 있답니다. 밤 아르바이트 빼고는 지난달에 드디어 만 20세가 된 큰 애랑 늘 함께 일을 합니다. 대충 헤아려보니 하루에 적게는 9~10시간에서 많게는 13시간을 이른바 노가다 뛰고 있는 셈이네요.
처음엔 일가족이 귀국할 비행기 값 마련하려고 더 많은 일을 시작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11월 중순에 혹은 늦어도 이맘때면 영구 귀국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대법원(High Court) 재판 이전까지는 약간씩은 변동이 있었으나 비교적 일이 예정된 대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경 대법원에서 날아온 통지서에 따르면 10월 중순에는 심사 발표가 날 것이고, 그에 따라 저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심사 결과 발표 예정일로부터 거의 두 달이 지나가는데도 함흥차사네요. 나중에 받은 변호사 이메일에 따르면 재판관들 여름휴가 기간을 감안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그런 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데요.
본의 아니게 소란을 일으키고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치게 된 것 같아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전에 기도를 부탁드릴 때는 정말 절박하고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산다고 했지만 살인적인 런던 물가 때문에 두 달 전에는 정말 귀국할 비행기 값도 마땅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님은 기간 이사 비용과 비행기 값만은 스스로 마련해야겠다고 작심을 한 뒤 다시 천리행군 한다는 각오로 걷고 또 걸었더니 몸이 많이 피곤해지더군요. 누우면 5분 내로 수면 상태! 주일 예배 시간 제가 설교하는 동안에도 잠이 오고요 ㅎㅎㅎ.
일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다음 주에 날지 내년으로 넘어갈지도 모르겠고요. 처음 일을 맡아준 변호사는 참 자상했는데 도중에 바뀐 독일계 여성 변호사는 목소리는 참 예쁜데 머니(money) 프렌들리인 것 같습니다. 어지간하면 이메일 답장도 잘 안 주네요. 전화 한 통 이메일 하나 확인한 것도 변호사 활동비용으로 계산을 하니 그 업종이 그런 줄은 알았지만…….
기왕 일이 이리 된 거 내년 7월경까지 여기서 버텨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제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니까요. 사실은 작년에 졸업했어야 하는 건데 과목 하나가 잘 맞질 않아서 2년 대학입시 과정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철학과 윤리 과목에 조금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 지금까지 모아놓은 귀국 비용은 가능한 한 변호사 및 법정 비용으로 전환하여 시간을 벌어볼까 궁리중입니다. 물론 제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천지개벽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성탄절은 여기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새로 시작한 중국식당 주인은 조선족 부부이신데 부인께서 조선족 교회를 다니십니다. 제가 목사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 못 차리게 하고 있어요. 거기서는 제가 종업원으로 있는 것이지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조선족 부부를 통해서 연변과 중국생활 그리고 그분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모습을 느끼고 있답니다. 나중 기회가 되면 글로 표현하겠습니다. 몸이 피곤하니 글이 안 나오는군요. 생각은 늘 머리를 맴도는데요.
지난 9월 정말 많은 분들께서 제게 격려와 염려를 해 주셨는데 너무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젠 나이 값을 해야 하는데 영국이라는 나라가 좀 웃긴 데가 많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다니!
여러 회원님들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호의, 제겐 언제나 큰 힘과 버팀목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제가 과연 여기서 단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까요?
여기는 이제 서서히 성탄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밤마다 산타크로스와 눈썰매 그리고 사슴 장식을 하는 집들이 늘어나는군요. <Santa! Stop here!>라고 쓴 푯말을 보면 늘 웃음이 나옵니다.
그럼, 모든 분들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옛날 사도들도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호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