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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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흔히 기득권층이라고 부르는 중산층 이상의 기독교인들에 뿌리를 둔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의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정확무오하며 반드시 다 이루어질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사회문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들은 외면한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종교적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성서의 다양한 가르침들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외면하는 성서의 다양한 성격은 무엇인가?

1. 기존질서에 저항하는 책 성서
김일성에 의해 미국 간첩으로 몰려 숙청당하기는 했지만, 열정적이고 지성적인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박헌영은 1925년 개벽잡지에서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비난하였다.
종 교는 과학과 생산기술이 낙후한 조건에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기독교는 봉건 사회에서는 제후의 이익을,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는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야만 미개의 나라에 파견되어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선교사는 몸에 촌철의무기도갖지 않은 정예 병사로서, 제국주의 영토 확장의 첨병 구실을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독교는 지배계급을 옹호함으로써 기존질서를 유지시키는 보수적인 종교라는 이야기이다.
실 제로 중세 가톨릭,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공산혁명이전의 러시아 정교회는 봉건사회에서 지배계급의 대다수의 민중을억압하고착취하는 신분제도는 하느님의 뜻이라느니, 모든 권위에 복종하라느니 하면서 제후의 이익을 옹호했으며, 지금은 기독교계직장에서도 도입된 노동자 복지제도인 주5일제 근무제를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주일성수를 하지 않게 된다면서 반대함으로써 자본가들의이익을 옹호했다. 남아공의 기독교계도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님의 명저 <용서없이미래없다.>(홍성사)에서신랄하게 비난되는 것처럼 인종차별을 성서를 인용해가면서 옹호했다. 미국의 기독교인들도 노예제도라는기존질서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내용의 성서구절들만 찾아가면서 옹호했다.
그런데 성서저자가 기독교적인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기존질서에 저항하는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신약성서학자 정승우는 본문에서 소개하는 책인 <인류의 영원한 고전, 신약성서>(대한교과서)에서 첫번째 신약성서 저자인 바울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한다.
본 격적인 여성해방운동이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시작된 것을 보면 2,000년전의 고대인 바울이 벌서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여성의권리를 주장한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한때 보수적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진보적 통창력을 얻게 된 것은 다메섹에서만난그리스도를 인류의 해방자라고 깨달은데서 연유한 것은 아니었을까?(신약성서 최초의 저자 바울의 생애와 사상,p.136-137)
정승우에 의하면 바울은 루디아라는 여성과 협동하여 빌립보 교회를 세웠으며, 천막짓기가 직업인 브리스길라는 바울의 선교활동을도운인물이었는데 그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장차 로마선교의 교두보를 제공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여성인 브리스길라교우의이름을 남자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함으로써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었다. 바울이 로마서 16장에서 언급하는 뵈뵈라는여성은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었는데 여기서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목회자나 후원자를 뜻한다. 즉, 바울은 뵈뵈를목회자로서존중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 성공회에서는 디아코노스를 사제, 주교와 더불어 교회의 성직인 부제의 말뿌리로 이해한다.비록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의 이하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문장이 추가되고, 바울의 이름을 빌린서신들(디모데전서,에베소서)에 여성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내용들이 나오면서 가려지고 말았지만, 여성의 교회에서의 권리를 존중한바울의 진보적 사상은 우리기독교인들이 기존질서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항하고 논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를 옹호하는 책 성서
성 공회 사제인 이경호(베드로)신부님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체제에 의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가 많아질것이다.교회는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선교위주의사고방식과 성서를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면서 정작 사회참여에 대한 성서말씀들은 외면하는 선택적 성서읽기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들에대해 관심을갖지 않고 있다.그런데 누가복음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제왕과 부한 자들 곧 로마제국과 이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과헤롯왕실을단죄하시며, 주린 사람들과 비천한 사람들 곧 민중에게 영원한 자비를 보이실 것이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성공회에서 마리아 찬가라고 부르는 누가복음서 1:46-53에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잉태를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전해들은 뒤 부른 노래가 나온다.
 
46.  마리아가 노래하였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48.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주께서 자비를 기억하셔서,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탄생설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누가복음서 2:7)
정승우에 의하면 윗 문장은 예수를 소외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속에서 태어난 분으로 이해한 누가의 그리스도론이 담긴 문장이라고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들이 단죄받을때에 한 유대인이 나치의 범죄를 고발할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그는 체코의 유대인공동묘지에숨어서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이었는데, 난민중에 어떤 부인이 아기를 낳았다. 이를 본 묘지를 관리하던 80세 노인이이렇게말했단다.
"크심이여, 마침내 하느님께선 우리에게 메시아를 보내주시는 것입니까? 메시아가 아니라면 어떻게 묘지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맞 는 말이다. 예수는 미국제 복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주장처럼 사회적 성공을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급으로태어났다면하느님의 영광이나 가능성으로 선전되었을텐데도, 여관에서도 머물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로 태어난 분이다. 실제로 마태는지식인들인동방의 박사들 곧 점성술사들이 예수를 알현했다고 묘사함으로써 왕으로서의 예수를 생각했지만, 누가는 고 안병무 선생의말을 빌리면율법에 의해 유대사회의 지배계급인 종교인들로부터 멸시받던 목자들이 예수를 만났다고 묘사함으로써 지배계급들에게멸시받는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를 생각하였다.
또한 누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불행한 일 또는 불행한 일들을겪은이웃에 대한 자비와 관심은 이론으로 떠들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승우는 누가가 토론을 즐기는 지식인인 율법학자와유대인들의 배타적 정서에 의해 멸시받는 사마리아 사람의 즉각적 실천을 비교함으로써 이웃에 대한 사랑을 논하는 사람보다실천하는사람이 그 사람이 멸시받는 밑바닥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지식인 계급보다 나을 수 있다고 논박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3. 자본주의적인 상식을 깨는 책, 성서
마태복음서 20장을 보면 일꾼들의 비유가 나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 그는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3. 또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장터에서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4.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5.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이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 나가서 그렇게 하였다.
   6.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하고 물었다.
   7.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이 되어,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9.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러니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1.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12. 말하기를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군요' 하였다.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그대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그대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대 눈에 거슬리오?'
  16.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정 승우에 의하면 예수가 살던 시대인 1세기 지중해세계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몹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도 도서관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기전까지는 맨몸으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를 전전했었는데,하루종일이나 주말내내 힘들게 일해도 10만원에서 15만원(사업주가 좋은 분인 경우..)을 버는게 전부였다. 하루 벌어서 하루사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처지이니 버는대로 저금하는데도 돈이 모아지지 않았고, 당연히 아껴써야했다.
그래서 저임금이기는 해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지금도 책을 사서 보고, 정신장애(틱장애,강박장애)가 있어서저임금 단순노동외에는 할 수있는 일이 없는-지금 도서관에서 하는 일도 책정리하고 다른 도서관에 보낼 책을 찾는 것이다.-나를생각해서 엄마가 들어주신 우체국보험료를 내는 것 외에 나를 위해 돈을 쓰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마태복음서에 나오는노동자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을지를짐작할 수 있다. 장터에 혹시 일을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나왔지만 일이 없어서빈둥거려야 했던 노동자들의 마음이 얼마나답답하고 비참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포도원 주인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은아닐까? 그래서 일을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사람 모두 이 농장, 저 농장을 전전하며 일당을 벌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처지의 밑바닥 인생들임을 생각하고 같은 일당을 주는자비를 보인 것은 아닐까?
그런데 사업주의 이러한 자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의한 일꾼들이그랬던 것처럼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생각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이윤을남기기 위한 도구이다. 이윤을 많이 내는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내는 사람은 적게 받는 그러니까 노동력의 가치에 따라 받는 임금이 다르다. 그런데 예수는 모든노동자들이 노동력의 가치에 상관없이 같은 일당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상식을 뒤집는다.그가 보기에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자본주의적인 상식을 깰뿐만 아니라 극복하는 나라인 것이다.

진상광

2009.12.21 00:06:39
*.203.204.168

  제가 얼마 전에도 언급한바 있지만, 성서 정신과 현대 자본주의는 절대로 서로 맞지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기본정신은 한편 생각해보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물질본위적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지요. 한 만큼, 혹은 능력만큼 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건 한마디로 어불성설입니다. 태어나다가 그만 죽은 아이에게 "너는 죄가 많아서 일찍 죽었다. 그러니 그게 모두 인과응보의 결과인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러한 어불성설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현대 자본주의 이론이라는 것이 그러한 사고적 메카니즘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본주의에는 승자 독식의 정글의 법칙만 있을 뿐, 성서정신인 "회복"과 "돌봄" 혹은 "약한 곳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이지요.
한가지 예로, 자본주의 이론의 큰 맥의 하나인 노동조합 이론을 놓고 봅시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서로 실력 투쟁을 해서 평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 같지만, 약한 상대방에 대한 자발적, 사전적 배려를 가르치기보다는 한마디로 서로간에 실력투쟁 혹은 전쟁을 치뤄서라도 그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평형을 이루면 된다는 것이지요. 
기업경영 이론의 소위 "적대적 M&A" 라는 것도 그런 것이고요. 이러한 정복의 이론이 어떻게 성서적일 수 있겠습니까? 구약에서 말하는 "고아와 과부에 대한 배려" 그리고 예수님 가르치신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베푸는 인애와 돌봄" 같은 것이 자본주의 이론에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없는 것입니다.
우리 깨어있는 (혹은 깨어 있어야 하는) 기독교인들은 참으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껏 자본주의 사상이라는 신기루 혹은 그러한 집단 최면에 우리의 고결해야 할 신앙정서와 신앙 인격이 모두 매몰당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러한 현대 기독교계의 사고체계적인 오류로 인해서 지금 서구에서 교회가 완전히 몰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로, 영국에서는 20세기 초 영적 부흥운동으로 발흥하던 곳곳의 석조 예배당 건물들이 이미 문짝이 뜯겨져 사라지고 내부는 건초 보관 창고로 개조돼 쓰이고 있다고 하더만요.
이러한 맥락으로 사고할 때, 현대 서구 기독교정신은 실패한 것이거나 혹은 완전히 망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세상을 정복한 이후 이 세상에 다른 대안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것이지요.

  사회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론에 능통하지 않은 우리가 섣불리 그걸 논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만약에 이스라엘의 키프츠가 일종의 본래적인 사회주의 공동체라면 그게 성서정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사회적 유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자유방임을 좋아하는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 같은 나라는 벌 수 있는 사람한테 엄청난 세금을 부과해서 그 재원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벌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주는 일종의 준 사회주의국가?도 있는 게 현실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의 불합리성과 폐해를 간파하고서는 일찍부터 수정자본주의로 간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들을 논하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만, 현대 기독교 지성들이 이런 사안을 접어두고 있다라는 게 이상한 일이고, 범 지구적인 신앙계의 문제인 것이지요.

진상광

2009.12.21 10:33:23
*.203.204.78

한가지 첨언하면, 저는 앞의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을 놓고 사고할 때마다 요한계시록 13장.14장에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 자꾸만 뇌리에 떠오르게 된답니다.

ldg

2009.12.26 13:34:52
*.199.85.155

Back to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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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로

2009.12.26 14:02:21
*.62.26.5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서로 돌아가는게 종교개혁의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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