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14일

 

그는 살아나셨다(28)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부활 문제를 자꾸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무조건 믿으면’ 될 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은 정말 안이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인식론에서 믿음이 중요하지만, 믿음이 능사일 수는 없습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바울의 경구를 빌려올 필요도 없이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을만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설명은 먼저 믿음의 세계에 들어온 우리의 책임입니다.

예수 부활에 대해서 좀더 명시적으로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정통 기독교는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유보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전제에서만 기독교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그것을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나 귀신을 쫓아낸 사건처럼 어떤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한 게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계속해서 논의하려면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겠지요. 사실 역사가 무엇인지 완전히 드러난 게 아닙니다. 세계 역사책이나 한국 역사책에 기록된 사건들을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거기에 기록되지 않는 사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의 중심인지, 어떤 사건이 어떻게 영향을 끼쳐서 지금의 역사가 형성되었는지를 확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세상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때 핵심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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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10.01.14 01:23:28

저는...

"예수 부활의 역사적 사건의 핵심은 무엇인가..."에서 이 "핵심"이야말로

예수, 부활, 생명, 역사, 사건, 사실 '비밀 문'을 열어주는 key 같은데요,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History)에 현현,계시,출현, 도래,개입 하신 것이 혹은 하실때에야,

진정한 의미의 History가 된다는 말씀같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 부활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며, 분명한 사실(fact)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엠마오 도상의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도 같습니다.(저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어요)

그때 거기서, 그들은 구약에서 예언하셨던 '하나님의 현현'을 발견한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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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이

2010.01.14 03:31:02

믿으면 알게될 거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지금까지 가져온 세속적인

비판과 논리의 방법으로는 이해의 한계가 있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이와 반대로 제대로 알고 나서야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잘못 알음으로 인한 맹신 혹은 잘못된 신앙관을 벗어나려면 제대로 알아야된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마치 말장난 같기도 하고 딜레마 같기도 합니다.

믿어야 제대로 이해된다면, 도대체 그 믿음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가 이해되지 않구요,

(신비한 경험? 성령 체험?....)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믿음이 생긴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알아야된다는 이야기인지

모호하게 생각됩니다. 조금 덜 알면, 믿음도 조금 덜 완전한 건가요..? 모두가 신학자와 같이

되어야 하는 건가요..?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부활이 아마도 대표적인 예가 되는 것 같습니다.

믿고 나서야 이해되는건지, 제대로 이해해야 믿어지는건지...? 아님 어느 중간 지점인지...?

 

 

눈꽃

2010.01.14 13:09:47

"그는 살아 나셨다"
이 한문장이 주는 울림은 대단하다
이 제목으로 오늘까지 장장 28회에 걸쳐 큐티가 이어진다
부활 이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 기독교에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있을 것이요"

 

십수년을 기독교인으로 행세하며 살아왔지만 부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한 건 몇년전 일이다
어느날 '예수님의 부활' 그 단어가 내게로 왔다 내가 정말 부활을 믿나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내 전 존재의 심층을 꿰뚤어 보니 내가 부활을 믿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동안 믿는다고 한건 입술의 소리일 뿐이였다 아~~절망이다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거다 그날 이후 부활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쭉~~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열심히 공부한다 믿기 위해서.......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너희는 믿음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그리스도 께서 너희 안에 계신줄을 알지 못하는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라고 말했다

 

줄탁동기ㅡ( 어미 닭이 일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되는데 이것을 '즐'이라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그런데 이 '줄탁'은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병아리가 세상에 온전히 하나의 생명체로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이 비유를 ,불가에서는 참다운 사제지간의 관계를 말할때 곧잘 인용하곤 한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믿음은 명사지만 믿어진다 믿어간다 라는 동사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훨씬 믿음에 대해서 쉽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그리스도의 말씀(계시)은  우리들에게 와있다 이제 우리가 그 말씀에 반응(응답)해야한다 그 반응이 회개며 믿음이다 그 말씀에 반응(응답)을 하기위해 말씀을 읽어야하고 들어야한다 말씀의 해석이 신학이다

믿음은 중층이다 하여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길이다 일생 우리가 가야할 좁은길이다 하지만 그 길에 자유가있고 행복이있다 좁은길 은총이 함께하는 길~~~

 

'신학' 글자대로라면 신에 대한 학문이지만 그래서 신학을 한다 하면 신학교에가서 수업을 듣는 것 만으로 신학한다 라고 하지만 신학의 정보와 산학적 사유를 구분해야한다 나는 삶 속에서 신학함을 말하고 싶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신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신학을 할 것이다. 저 시골의 촌부도 신학 할 수있다
남의 애기하지 말고 과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하나님나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가?
먹고살기 바쁜데......무슨 신학이냐고? 신학은 신학하는  삶이다
아이들 좋은 학교보내느라 부모들 허리가 휜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말씀을 그렇게 찾고자 하는가?
왜 사람들은 인류학교에 목을 매는가 거기에 인생이 걸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예수님께서도 외쳐 말씀 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목마르지않는자 생수가 앞에 놓여 있어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목말라 죽겠는데 그순간에 금이 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목마른자에게 그순간 필요한건 오직 생수다

아~나는 오늘도 목마르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자여 복이있나니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자로 나온다 가난한자 목마른자다
나는 절대가난에 속한 자는 아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을 보라 더 잘먹고 더 잘입고 더 잘자고, 더 더 하면서 세상을 산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화장실 수 늘리다가 일생을 마친다고......

아 ~난 화장실 수 늘리다가 인생을 마치고 싶진 않다

그러면 왜? 그것보다 더욱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있는자는 받아 넉넉하게되고 없는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으로 말씀하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찿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것이니" 여기서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는지는 말안해도 다 알 것이다
나는 이 약속의 말씀을 철석 같이 믿는다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때 핵심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래서 ....
난 또 내일의 큐티가 기다려진다

김용남형제

2010.01.14 17:52:39

집사님, 신학자로서의 실존적인 고백,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모르는 것을 무턱대고 믿을 순 없기에,

교회는 신앙공동체이기 이전에 신학공동체이고,

그리스도인은 신앙인이기 이전에 신학함(theologieren)의 인생이라는 것!

어찌 보면 신앙이란 치열한 신학함의 세월이 깨어져 나오는 기름과 같은 고도의 경지가 아닐까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정(信情) 혹은 신감(信感)을 신앙으로 착각하며 헤매고 있는 걸 보면,

참 슬프고 답답하면서도, 분명히 내 과거의 모습이었기에 뭐라 비판하기도 그렇습니다.

한참 어린 사람으로서 집사님의 오랜 신학적인 여정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다 공감하진 못하지만,

"아! 나는 오늘도 목마르다"

저를 둘러싼 상황 속에서 저두 크게 외치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꼬릿말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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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0.01.14 15:33:43

말라비틀어진 '부활'에 이 묵상을 따라가면서

생기가 공급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현기증이 좀 나는군요.

영화 '쥐라기 공원'처럼 화석에서 요동치는 생명으로 변할 때의

그 충격이 기다려지고 격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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