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이 질문은 사람이 사유(思惟)하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된 것이오. 너무 진부한 질문처럼 들릴지 모르겠소. 아니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에게는 없소이다. 이런 질문을 그치는 날,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요.
그런 질문은 배부른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요. 그런 사람과는 뭐,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소. 사람이 배불리 먹으려고 사는 거는 아니지 않소. 조금 덜 먹을 생각만하면 먹는 문제로 우리 삶이 소진되지 않아도 좋을 거요. 더구나 배고플 때부터 이런 질문을 할 줄 알아야 어느 정도 배고픔을 해결한 뒤에도 이런 질문을 계속할 수 있는 법이라오.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대학공부하고, 자식들 키우고 취미생활하고 교회에 다니느라, 세상살이에 너무 바빠서 이런 질문을 할 겨를이 없다고 말하지는 마시오.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결국은 곧 끝장나고 말거요. 그것이 해결되든 않든 상관없이 어떤 형태로든지 끝나고 말거요. 내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봐도 그건 너무나 분명하오. 내 열정, 좌절, 연민으로 뒤범벅이 된 모든 것들이, 또는 사랑, 희망, 연대로 탄탄하게 묶인 삶의 알맹이들도 다 지나가버렸소. 그런 것들만 끝까지 붙들고 살 수는 없는 거요.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거요? 잠시 멈춰서 간단하게나마 내게 설명해주시오. 그런 건 아무리 물어도 알 수 없으니 그런 문제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는 마시오. 그런 질문이 귀찮게 느껴질수록 우리의 삶은 허무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만다오.
그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요? 너무나 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보오.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정답을 말하려는가 보오. 그 하나님이 누구요? 그 하나님이 무(無)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시오? 하나님은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오. 무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근원이오. 물론 우리도 무로부터 창조되었소. 무로부터 온 거요.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무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것은 아니오. 창조 이전은 무였으나 종말 이후는 무가 아니라오. 무가 아닌 것까지는 말할 수 있으나, 그 다음은 말할 수 없구료. 가 봐야, 더 정확하게는 무 아닌 궁극적인 세계가 와봐야 알 수 있을 거요. 아, 그런데 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는 곳도 모른 채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살다니, 참으로 우리는 무심한 사람들인가 보오.
어느 시인의 어투로 말을 걸겠소. 그대, 어느 별에서 오셨소? 잠시 지구에서 만났으니 함께 지내는 동안 친하게 지내봅시다. 혹시 다시 다른 별에서 만나면 아는 척이라도 하시오. (2010년 2월11일)
모래알님, 역시 감각이...
이곳도 밤새 눈이 내려서 출근 길에 산들이 하얗더라구요.
대구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지요.
저렇게 까만 나무에 하얀 눈이 샌드로 있으니 오레오 쿠키 생각납니다...^^
ㅋㅋㅋ
모래알님, 즐거운 명절 되셔요~~
별달 님,
위의 글은 논리보다는 직관에 중심을 두어서
질문을 받을 수가 없답니다.
에세이거든요.
에세이는 그냥 읽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는대로
읽으면 충분한 거에요.
그래도 뭐 굳이 질문하셨으니,
한 마디를 드려야겠지요.
이건 먼전 생각하세요.
언어는 어떤 실체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쓰임에 따라서 그 개념이 좀 달라진답니다.
내가 말하는 무도 역시 나의 사유에서 운동하고 있는 것이기에
모두에게 딱 떨어지는 대답을 드리지는 못하는 거에요. 음.
내가 말하는 무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과 비슷하다고 보면 좋아요.
공즉색, 색증공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내 대답이 또 다시 어렵게 됐군요.
한 마디 더 드리면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존재한다 아니다,
유신론이다 무신론이다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무를 통해서 창조의 능력을 행사하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좋은 설을 맞으세요.
정 목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는 인사 대신에 질문 있습니다. ^^
네 번 째 단락 네 번 째 문장.
"그런 것은 아무리 물어도 알 수 있으니"가 아니고 "알 수 없으니" 가 아닌지요?
뉴욕엔 어제 눈이 30 cm 정도 왔습니다.
눈보라를 무릅쓰고 겨울 공원에 가보았습니다.
새들의 숨소리도 들릴만큼 고요한 숲.
살아있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