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다비아에 대한 친구와의 토론

Views 2999 Votes 6 2010.02.12 09: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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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에서 흰구름 님이 올리신 두 글에 대한 뜨거운 댓글 러쉬를 잘 보았습니다. 사실 지난주에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친구와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댓글 러쉬에 동참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이렇게 글꼭지를 새로 열어봅니다.


그 친구는 다비아의 정신에 많은 면에서 공감하지만 다비아가 너무 학문적
, 따라서 엘리트 지향적으로 보인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그리고 신학적 앎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지적인 만족에 안주하기 쉬운 것 아니냐며 제자도의 강조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토론의 내용을 서술식으로 소개하는 것보다 대화를 요약해 재구성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네요.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 약간의 각색을 곁들였습니다.

 

친구: “다비아는 너무 학문적이고 엘리트지향적이지 않나?”

자유: “인문학과 신학이란 도구를 통해 이 세계의 현실성(본질)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학문적이라고 볼 수는 있지.”

친구: “세계의 현실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인문학과 신학이란 도구가 필요한 걸까?”

자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직시하지 못하면 세계 현실성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다비안들이 모두 학적인 건 아니야. 학적이라기보다는 좀 직관적인 방법으로 세계 현실성에 접근하는 영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 다비아의 두 날개는 신학과 영성이라고 생각해.”

친구: “그런 학문적 소양과 예술가적 영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역시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유: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깨닫는 게 쉽지 않은 이유가 소수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가능한 고도의 논리성이나 영적 감수성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인간성에 대해 피상적 이해를 넘어서는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봐.”

친구: “학문을 통한 이 세계와 인간 이해가 중요하긴 하지만, 앎을 통해 오히려 지적인 만족에 안주하게 되기가 쉽지 않을까?”

자유: “지적 깨달음이 주는 희열을 무시할 수 없으니 거기에 안주할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해. 그렇다면 어떤 게 필요하다는 거지?”

친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제자도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유: “... 문득 박영선 목사가 기독교신앙의 본질이란 책에서 신학은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면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한 대목이 떠오르네. 어쨌든, 제자도를 강조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 인간이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진리를 좇는데 더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해.”

친구: “난 네가 인간을 비관적으로 보는 게 오히려 너무 낙관적이 되거나 안이하게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다 하실 거라고 손 놓고 있기 쉬우니까 말야.”

자유: “물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알지만, 기본적으로 진리와 세계 현실성을 피상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직면하게 된다면, 진리가 우리를 몰아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자유로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게 되겠지.”

친구: “기본적으로는 네 말에 동의해.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계관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잖아. 진리를 깨달음을 통해 실제로 네 삶이 어떻게 바뀌었지? 진리에 직면함을 통해 그 길을 간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고 쉽지 않은 방법이 아닐까?”

자유: “네 말대로 회심은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고, 야고보의 말처럼 행함이 믿음을 보여주는 잣대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바울의 말처럼 행함이 믿음(사랑)을 보장해주지도 못하기 때문에 삶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중심적인 자기 의에 떨어지기 쉽지 않을까?”

친구: “진정한 제자도는 행위에 집중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세계관이 바뀌었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바라보고 그 가르침과 발자취를 뒤따라가는 거라고 생각해.”

자유: “결국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가실 거라고 보는 것은 동일한데, 나는 진리(세계 현실성)에 철저히 직면함을 통해서, 너는 예수(의 구원)와 그 가르침을 묵상하고 뒤따라가려는 결심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는 거구나.”

친구: “난 네 방법이 너무 이상적이고 낙관적이라서 앎 자체에 안주할 수 있는 위험을 보는 거고, 넌 내 접근이 인간중심적이 되거나 자기 의에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크게 보이는 거겠지.”

자유: “하지만 하나님이 진짜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뭘까? 정말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걸 원하시는 걸까? 아니면 하나님과 이 창조 세계의 신비를 이해하고 그 분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걸 원하시는 걸까? 물론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순 없겠지만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걸까?”

친구: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로서 살아가라고 명령하신 것 같은데~.”

자유: “하하. 결국 이 문제는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로 귀결될 수 있는 문제구나. 내가 정용섭 목사님이나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의 틀을 가지고 있다면, 넌 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하워드 요더나 톰 라이트 같은 신학자의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겠지. 이거 쉽게 결론이 나지 않겠는데?”
 

제가 마치 화기애애한 대화처럼 묘사했지만 거의 네 시간 동안 날카로운 설전도 오고갔던 토론이었습니다. 결국 더 깊고 의미있는 토론을 위해서는 서로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여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여 먼저 판넨베르크의 그리스도인영성을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다음엔 하워드 요더의 책을 읽어봐야겠죠?

친구와 만남 후에 며칠 동안 토론 내용이 떠올라서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더군요
. 여기에 올린 대화 내용은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편들기 보다는 객관적으로 양쪽의 입장을 거품빼고 정리해서 좀 더 핵심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써 본 것입니다. 토론이나 생각이 좀 더 발전하게 되면 지금처럼 대화형식을 빌어 올려볼까 합니다. 재미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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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0.02.12 10:02:36
*.120.170.243

ㅎㅎ,
재미있게 잘 있었습니다.
자유의꿈님.
공학도가 문학적인 소양도 풍부하시군요.
죽마고우가 목사이니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기대가 됩니다.
설, 대전에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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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3:20:39
*.31.139.28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학적 글쓰기도 쉽지 않지만
인문적(?) 글쓰기는 정말 제 표현과 능력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어쨌든 좀더 나가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도 설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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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2010.02.12 10:10:51
*.182.6.47

자유의 꿈님
너무 재밌는데요...^^ㅋ

흰구름님 밑의 댓글들은...사실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한국어를 읽고 있는데도 한국어가 아닌 것 처럼 느껴지고 있던 터였는데요..
이런 대화 형식으로 이야기 하시니..
무슨 내용인지 한번에 파악이 쫙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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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3:24:47
*.31.139.28

제가 처음에 다비아에 와서 그랬답니다.
물론 정교한 의미의 전달을 위해선 철학적 전문용어가 필요하겠지만
조금 엄밀성은 떨어지더라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도 필요할 것 같아
가급적 그렇게 쓰려고 합니다. 물론 철학적 용어를 정확히 쓸 자신도 없구요~^^

안희철

2010.02.12 17:24:10
*.1.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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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 소위 고유명사들은
사실 엄밀한 학문 논쟁에서 필수불가결일지 모르나
여기 다비아에서 그런 학문논쟁이 있었던가요? ㅎ
(전 실질 종이로 인쇄된 학문논쟁이 아니고서야,
각주도 없고 인용도 없는 댓글 논쟁은 큰 의미는 없고
그저 큰 틀에서 생각을 교류하는 선에서만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바)
저도 그런 글쓰기를 지양해야 하는데
공부도 하는 겸 학생 입장에서 쓰고 있습니다만,
뱅기 타고 돌아가는 그 때는, 다 버리고 갈 참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런 고유명사를 되도록 버리고
스스로가 관여하고 이해하고 경험한 한도 내에서
쉬운 글로 표현해보고 싶네요.

이거 어째
반성문 되는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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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9:37:01
*.15.13.154

안목사님이 와주셨네요~. 저도 목사님의 생각에 동의해요.
단어의 의미도 서로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논의는 언감생심이겠죠.
짧은 글에 생각을 정확히 제대로 담기도 어렵구요.
그래도 또 구경하는 분이 계실 거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 봤어요.
목사님께 판넨베르크 신학의 정수를 듣고 싶은데 언제 오시나요?

안희철

2010.02.12 20:48:13
*.206.196.183

언제 오냐고요?
정수를 깨달으면 가겠습니다 ㅎㅎㅎ
다 알고 계시면서 뭘요~

퀄리아

2010.02.13 20:33:58
*.111.173.44


이거시  진리의   맆흘   같슴돠 ^^ ㅊㅊ

첫날처럼

2010.02.12 12:34:31
*.147.42.18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가 많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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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3:27:43
*.31.139.28

저도 첫날처럼님 글 항상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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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

2010.02.12 12:40:53
*.151.204.37

재밌습니다. 추천 꾹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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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3:28:26
*.31.139.28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설 보내세요~.

눈꽃

2010.02.12 13:51:26
*.187.19.193

네~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ㅡ  "결국 더 깊고 의미있는 토론을 위해서는 서로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여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여 먼저 판넨베르크의 그리스도인영성을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다음엔 하워드 요더의 책을 읽어봐야겠죠? " ㅡ
토론을 발전적으로 마무리 하신 두분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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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5:46:19
*.15.13.154

발전적으로 마무리된 토론이 실제로 잘 발전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남형제

2010.02.12 15:30:56
*.152.239.187

제가 보기엔 두 분 다 결과적으로는 맞지만 본질적으로 두 분 다 틀린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매력에 '사로잡힌' 자로서 제자도를 실천하게 될 뿐이지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을 동원해서 행함을 산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거든요. 여기서도 관건은 예수님의 주되심(Lordship)입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인 것이죠. 따라서 인간이 행위를 산출할 순 있지만 행위의 주체로 나설 수는 없으며, 이는 예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사회과학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겁니다. 얼마전에 모든 세계와 생명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진술하셨던 정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설교처럼 말이지요.

 다시 말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유와꿈님의 의견과 "하나님을 (실천론적으로)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친구분의 의견은 모두 하나님을 주객도식적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 하나님의 '주체적 존재성(목적어가 아닌 주어로서의 하나님 본성)'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두 분 모두 인간학적 인식론을 전개하고 계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래 있었던 논의에서 끝까지 소모적으로 논쟁만 무성했을 뿐 상호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기이한 현상도 이러한 인식과 존재의 차원 차이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보기엔 그 주제로 친구분과 계속 맞붙으시기보다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물음하에 서로의 경험과 인식을 나누고 각각의 예술성을 여유롭게 찬미하는 쪽이 더 발전적으로 보이는데요,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네요. 불쑥 꺼내드린 말씀에 분위기 흐렸다면 죄송합니다. 지엽적인 논쟁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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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0.02.12 16:25:08
*.136.37.76

지엽적인 논쟁 사절이라 했기에 논쟁은 안할랍니다.
단지,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두 분 다 틀린 것으로 보입니다" 라는 말은 사용하지 마세요.
누구에게 틀렸다고 하려면 정확히 맞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내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틀렸다고 할 수 없다는 거지요.
물론 용남형제님은 성경에 비추어, 혹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틀렸다고 했다고 할것입니다
하지만 그 성경에 비추는 것이나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의 생각이지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린 온전히 알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틀리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면 곤란합니다.
토론은 상대의 의견과 다르다면 그 의견을 피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은 각자가 하는 것이지요.
또한 용남형제님의 글을 읽다보면 너무 반대하는 글이 많다는 겁니다
물론 자신의 생각에 다른 사람의 말들이 도무지 맞지 않아서 그렇게 쓸 수 밖에 없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도 됩니다.
이 말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네요. 그래도 한번은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자칫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이며
이 관계는 사랑하는 관계여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라는 주장을 너무 자주 하다보면
서로 관계가 소원해지기 쉽답니다.

논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을 했네요.^^
그냥 요즘에 다비아의 토론을 보며 느낀 점을 썼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말 안하고 용남형제님께만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용남형제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주길 바래요.
(앗. 이렇게 되면 다른 분들이 좀 서운해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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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6:46:34
*.15.13.154

김용남형제님이 첫번째 문단에서 하신 얘기와 위 토론에서의 제 입장과 같다고 생가되는데요. 만약 다르게 보였다면 제 글이 미숙한 탓이겠죠.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계의 주체라는 것은 저나 제 친구나 기본적으로 인정한다는 기초 위에서 논의를 했다고 봅니다. 진리에 사로잡힌 자로서 제자도를 실천하게 되는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체적으로 이끌어가신다고 보는 거죠. 다만 저는 진리에 사로잡히는 쪽에 방점을 찍고 그 친구는 제자도를 실천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인식론에 기초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체적 존재성을 부각한다는 것이 하나님이 누구신가라는 물음 앞에서 신비롭게 깨달아지는 경험을 나누고 경탄하라는 것을 말하는 거죠? 당연히 이런 신비주의 영성도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성과 신학이라는 도구로 (인식론도 포함해서) 하나님(진리)을 알아가는 것, 진리 앞에 서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고 다비아가 추구하는 게 아닌가요? 신학과 영성, 두 날개로 비상하는 다비아~^^;

김용남형제

2010.02.12 17:06:20
*.152.239.187

예, 그래서 제가 "결과적으로는 맞지만 본질적으로 틀렸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체이시라는 사실이 "인정"되는 '명제'의 차원에서만 머물되 논의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꼭지글을 다시 읽어본 결과 자유의꿈님께서는 "진리를 '좇는' 데 더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해"라는 말에 드러난 것처럼 제가 말씀드린 "진리에 '의한' 사로잡힘"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체적으로 이끌어가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배타적인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행위(계시에 의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의 응답이 아니라)를 균형론적으로 하나님의 행위와 동등한 선상에 세우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자유와꿈님께서 강조하신 '앎'도 그런 행위의 차원입니다. 다만 친구분의 의견에 비해 존재의 본질에 더 가까운 행위라는 상대적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만약에 신학과 영성이 신앙생활의 두 날개라고 한다면 날개가 짝짝이인 셈이 됩니다. '왼' 날개와 '오른' 날개라는 위치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말이죠.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날개를 인간이 형성하려고 애써야 하는 셈이 되는 부분이겠고요. 새의 날개는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배타적인 생명 창조 사건으로 주어지지 않습니까? 그처럼 제가 보기에 인간의 영적인 두 날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아예 날 수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의 주도적 의지에 일방적으로 사로잡힘을 당함으로, 그 종속적 반응으로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의 주체적 존재성의 부각이라는 말은 단순히 에크하르트 같은 신비주의 혹은 감상주의 영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논리를 전개하되 그 논리의 주어(主語)가 하나님 되심을 의미합니다. 인식론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식론을 다스리시는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논리가 바로 계시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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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0.02.12 17:22:01
*.120.170.243

앗, 여기에 용남 군이 또 나타났네. ㅎㅎ
눈사람 님 지적대로
당신들 둘 다 틀렸어, 하는 표현은
자칫 독단에 빠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텐데...
모든 논의는 각각 지평이 있으니
나름으로 의미가 있는 거야.
위의 대화는 하나님에 대한 존재와 행위의 차원을 말하는 거잖아.
그걸 오직 하나님의 주체성 문제로 몰아가면
풍성한 사유와 대화는 나오기 힘들지도 모르지.
바르트 신학의 칼로 모든 신학을 재단할 수도 없는 거고.
물 한잔 마시고,
숨 다시 쉬고,
천천히 가보시게나.

 

김용남형제

2010.02.12 17:33:13
*.152.239.187

제가 보기에 위의 대화는 하나님에 대한 '존재와 행위'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인식과 행위'의 차원이라고 해석됩니다. 존재는 목사님께서 여러 글에서 시사하셨듯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건이고, 자유와꿈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한 앎을 강조하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제가 지향하는 바가 하나님의 주체성을 기초로 한 '계시적' 사유와 '계시적' 대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패러다임 기저가 작동하는 것 같네요. 풍성한 대화보다는 올바른 대화의 문제를 짚고 있다고 할까요?

 제가 독단적으로 보이시더라도 그 독단의 내용 또한 하나의 예술적 지평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틀린 것으로 보인다"(인식론)고 말했지 "틀렸다"(존재론적 규정)고 말하지도 않았으니까요. 따지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눈사람님께서 제게 틀렸다고 말하지 "마세요."라고 감히 명령(당위론)할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입니까? (눈사람님께서 스스로 주장하시듯이 제 '인생선배'라서요? 생명에 선후배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까? 제겐 인생선배 운운부터가 생명의 본질에 무지하기 짝이 없는 세속주의적 교만으로밖에 안 받아들여집니다만. 따뜻한 권고의 말씀에 이렇게 맞받아쳐드려 죄송합니다만, 창피한 줄 아시기 바랍니다.) 바르트 신학도 하나님의 타자되심이 세계를 향한 권능 있는 주되심으로 승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싫어합니다. 목사님, 한 말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되도록 조만간 그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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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0.02.19 09:33:29
*.136.37.76

"눈사람님께서 제게 틀렸다고 말하지 "마세요."라고 감히 명령(당위론)할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입니까? (눈사람님께서 스스로 주장하시듯이 제 '인생선배'라서요? 생명에 선후배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까? 제겐 인생선배 운운부터가 생명의 본질에 무지하기 짝이 없는 세속주의적 교만으로밖에 안 받아들여집니다만. 따뜻한 권고의 말씀에 이렇게 맞받아쳐드려 죄송합니다만, 창피한 줄 아시기 바랍니다.) "

=> 휴가 다녀와서 보니 이런 글이 써있네요.
난 지금껏 김용남형제님에 대해 학문을 열심히 하는 훌륭한 청년으로
판넨베르크 이상가는 신학자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글을 읽었었는데...
젊은 날의 치기라 생각하면 왠만한 실례의 말은 그냥 웃으며 넘겼었는데..
이 글을 보니.... 음....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지네요.
명령을 한 것이 아니라 용남형제님이 더욱 더 좋은 토론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권면을 한 것인데..
본인의 글을 남이 잘 이해를 못한다고만 할게 아니라
본인도 남의 글을 잘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네요.

바울이 지식이 없어서 지식으로 가르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잘 상고해보시지요.
이런 저런 신학책의 지식만을 보지 말고.

누가 교만한지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겠지요.
그리고 전 하나님 앞에서 항상 창피한 줄 알고 살고 있습니다.
난 원래 소양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참으로 안타깝네요.
김용남 형제님의 소양은 나보다도 훨씬 더 부족하게 보이니...
지식이 결코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겁니다.

리옹~

2010.02.12 16:38:00
*.201.17.104

많은 부분에 동감을 합니다. 다음글도 기대가 됩니다.
어려운 글 다음에 쉬운 말로 쓴 글이라 더 반갑기도 하구요.

profile

자유의꿈

2010.02.12 19:28:38
*.15.13.154

고맙습니다. 다음엔 다른 친우들과 나눈 얘기를 대화식을 먼저 올려볼까해요.

차성훈

2010.02.12 16:57:01
*.44.109.251

전 자유의꿈님보다는 친구분 쪽에 더 기우는 입장인데, 특히 구약의 창조 신학이 지향하는 바가 '백성으로서의 삶-왕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지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예수의 하나님 나라-말쿠트 야웨 사상이 구약의 창조 신학과 연결되어지는 지점이...
뱀다리) 저도 요더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예수의 정치학>은 필독입니다. 누가 그러던데,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와 버금갈만한 역작이라고 하더군요. 강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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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꿈

2010.02.12 19:40:46
*.15.13.154

사실 제 친구는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으로 학위논문을 썼어요.
그 친구가 소개해주어서 저도 책을 사긴했는데 제대로 읽지 못했네요.
그 친구가 제자로 살려고 애쓰는(좋은 의미에서) 친구라서
저도 관심이 있는데 이참에 진지하게 읽어봐야 겠네요~. 고맙습니다.

차성훈

2010.02.12 20:26:41
*.44.109.251

헛;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격이 됬군요^^;;;;
요더나 하우어워스 등이 요즘 한국에서도 점차 주목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저도 그때문에 접하게 됬지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보다 '치열하게' 믿어나가게 되었다는 생각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요더의 문제 의식이 '오늘, 여기서도' 유의미하게 되어버리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뭐, '여기'가 이모양 이꼴이라 그 반작용으로 더욱 요더를 찾게 되는지도 모르지요. 원래 주목은 필요에 종속(?)된 것이니까요. 자유의꿈님과 친구님의 대화 ver 2를 기대합니다^^

라크리매

2010.02.12 17:54:28
*.41.16.153

두분의 대화가 많은 분들께 유익한 토론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의 생각은 이미 두분의 지향점이 갖아 보여서
이토론은 계속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며 같은 곳을 향하게 될것 같아 보이네요
흰구름님 꼭지글에 대한 토론은..
위댓글에 보이는 것처럼 다른 방향성을 갖게하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린 것이 아닌가합니다
하나님의 주체성에 관계하는 인간의 상대적 추제성마져 부인되야 한다는
주장 같은데요?(자신의 주장은 하나님의 계시를 바탕으로하고 회퍼 ,바르트외에 다비안다수가
인간 인식론적인 주장을 한다고 말하고 있네요)

profile

자유의꿈

2010.02.12 19:43:45
*.15.13.154

라크리매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저도 평행선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더 가보려고 합니다.
저나 그 친구나 아직은 열려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고맙습니다~.

라크리매

2010.02.12 20:59:18
*.41.16.153

네~ 오랜만에 뵈어요 자유의 꿈님
한국엔 들어오셨죠?
"그리스도인의 영성 " 기대가 됩니다
설연휴 잘 보내세요..^^

김용남형제

2010.02.12 20:03:33
*.11.167.102

라크리매님, 구제불능이십니다. 왜 말씀하신 "인간의 상대적 주체성"이 '주체성' 개념으로 채택될 수 없는지, 그게 왜 단순히 구원론 교리응답의 차원이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 영성의 심화를 위해 필수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신앙의식이며 그 뿐 아니라 보편적 본질 술어로 작용할 수 있는지, 인간이 왜 하나님의 계시에 종속적으로 응답하는 존재인지,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수용성 안에서만 인간의 존재근거가 확보될 수 있는지 장황하게 설명드릴 에너지도 더 이상 없고, 설령 다 해명한다 해도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손발이 자기들을 자아(自我)로 착각하는 것이야 자유겠지만, 그 착각으로 인해 이끌림 사건 안에서의 생명 경험을 다 놓치면서 평생 당위론적 강박관념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언젠가 제가 깨우치든 라크리매님께서 깨우치시든 누군가 크게 깨우치고 상대방을 이해할 때가 오겠지요. 저도 느닷없이 삶 속에 찾아온 논쟁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억지로 그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멎게 될 것 같군요. 부디 본의 아니게 논쟁 중에 마음 상하게 해드린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구합니다. 이만.

라크리매

2010.02.12 20:56:07
*.41.16.153

라크리매님 구제불능이십니다..로 시작해서 진심으로 사죄를 구합니다..로 끝나는군요
어느 것이 진심인가요? 부디 시간이 지난뒤 이번토론의 댓글들을 잘 읽어보시길 바랄뿐입니다

아우

2010.02.12 23:32:45
*.39.221.155

누구를 꼭 찝어서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토론에 예의를 좀 갖췄으면 좋겠군요.
관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좀 민망스럽네요.
진리논쟁에서 진리성이 드러나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게도 어떤 사람은 책 몇 권읽고 나서
자신의 얄팍한 지식만 자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예수와 바울의 영성 운운하지만
정작 자신의 글과 논리 안에는
그런 영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군요.
남들이 잘 쓰지 않는 신학적 용어를 현란하게 구사할 줄 알면서
타자에 대한 예의와 사랑과 존경심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군요.
바울은 그런 걸 두고 "울리는 꽹과리"로 묘사했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개소리"하지 마라.




 

김용남형제

2010.02.13 08:06:12
*.11.167.102

저도 진짜로 마지막 말씀으로서 누구를 꼭 찝어서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핵심도 모르는 피상적인 비난은 좀 속에서 삭(썩)혔으면 좋겠군요.
안 그래도 논의하는 상대방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려 들지도 않는 무례함에 질려버릴 것 같은데
설상가상으로 개나 소나 끼어드는 "댓글 러쉬"를 보자니 구역질이 나오려고 합니다.
쓰는 용어가 어렵다느니, 말투가 거칠다느니, 예의를 갖추라느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느니,
직설적입니다만 "뭐 이런 게 다 있나"하는 생각이 심하게 들구요.
이런 논쟁의 흐름을 따라간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영성을 죽어라고 행위윤리적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게 적어도 제 눈에는 매우 신기하게 보입니다.
원래 시장바닥 같은 논쟁을 지향하고 있는 분들이시라면
애초에 진지한 말씀을 꺼내드려 분위기를 휘저은 제가 밥팅이긴 하겠지요.
예수님께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하고 바리새인들에게 외치셨다는 사실을 안다면
(도그마티스트들이 주장하듯이 꼭 예수님이 욕쟁이라는 말은 아니구요)
제게서도 그렇게 본인들의 입맛을 신경써줄 가식적 영성을 기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까지 예의를 팽개치자는 건 아니구요,
"개소리"가 어디서 새어나오고 있는지만 분명하게 짚자는 것이지요.
뭔 말을 하든 개같은 멘탈리티로 해석하니까 개소리로 들리는 게 당연하겠지요.
제가 보기에 이번에 있었던 논쟁에서
제가 말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론을 편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럼 니 말만 맞다는 거냐"라는 투의 광기부림은 삼가주시구요.
없는데 저더러 어쩌라는 건지.
키리에 엘레이송.

빈이

2010.02.13 15:54:32
*.174.157.34

흠.. 소위 키보드 배틀로 들어가는 전형적인(?) 수순같은데요...
돌고도는 글이지만, 그냥 퍼왔습니다.


☆게시판에서 싸움나는 이유☆

A:"어제 중국집 가서 짜장면 시켜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군요."( 평범한 문제 제기)


B:"짜장면이 뭐가 맛있어요? 우동이 훨 맛있지"(평범한 반론)


C:"우동이요? 에이, 우동보다는 짜장면이죠. 돼지고기도 들어가고." (재반론, A의 의견에 합류)


D:"짜장면에 돼지고기라면 우동에는 해물이죠.. . 맛을 안다면 역시 우동!


A:"님, 그럼 우동 안먹는 사람은 맛을 모른단 말인가요?"(말꼬리 잡기 시작)


B:"그만큼 우동이 낫다는 거죠. 에이, 짜장은 느끼해서.."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깍아내림)


C:"님께서 짜장면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군요.

제가 설명해드리죠." ( 잘 모르시는군요.. 나왔음. 지식과 데이터,증거,등등 늘어놓기 시작)

<짜장면의 유래> 짜장면의 출생지는 인천이다. 1883년에 생겨났다. ....<<중략>> 소스가 남았지만 향토 짜장면은 채를 썰기 떼문에 젓가락 질이 쉬워 그릇이 꺠끗하다.

<우리가 몰랐던 짜장면의 차이> 간짜장-- 춘장에 물과 전분을 넣지 않고 그냥 기름에 볶기만 하면 간짜장이 된다.

옛날짜장보다 조금 더 기름지고 짜장과 면이 따로 나온다. 삼선짜장--새우, 갑오징어...<<중략>> 아시겠죠?

짜장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D:"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만 토를 달자면, 손덕춘씨 아닌가요?" (옥의티 찾기, 흠집내기)

 

A:"손덕춘씨 맞습니다. 그리고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본질을 아셔야죠." (본질 애기 나왔음, 깔보기 시작)


B:"님들 애기 잘 들었습니다. 근데 말투가 좀 기분 나쁘군요."(말투 물고 늘어짐)


C:"기분 나쁘다뇨? 시비 걸은건 그쪽 아닌가요?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책임 전가. 상대무시)

 

D:"시비? 말이 너무 지나친거 아냐? 사사건건 가르치려구 들자나!" (반말 나왔음)

 

C:"어쭈? 어따 대고 반말이야? 너 몇 살이야?" (나이 애기 나옴)

 

A:"C님,참으셈, 잘 되봤자 고딩이에요." (동조.중고딩 비하발언)

 

D:"고딩? 당신은 몇 살인데? 내 참.. 군에 갔다와서 직장 다니다 별꼴을 다 보네 에이 십알..(욕설 출현)


A:"십알~? 왜 욕을 하고 그래? 진짜 기분 JOT같이.." (더 심한 욕설 출현)


B:"그쪽에서 욕 나오게 하자나! 택도 아닌 짜장 같고 사람 우습게 봐?"(책임 전가. 한번 더 깎아 내림)


C:"택도 아닌 짜장면? 십알~ 당신 좋아하는 우동보다는 100 배 1000배 나아!"(욕설,말꼬리잡기,비교발언)


E:"님들 싸우지 마셈, 둘다 맛있는 음식이자나요" (말리는 사람 등장)


D:"님들도 아시겠지만 우동이 훨 낫잖아요? 근데 저 맛도 모르는 @#$% 들은..." (의견 동조 호소)


F:"난 짬뽕이 맛있던데..."(엉뚱한 논제 제기, 이런 사람 꼭 있음)


A:"F님, 지금 짜장면 우동 애기 중이니 짬뽕은 끼어들지 마시길..."(말 막음)


C:"맞아요, 껴들 떄 껴 들어야지... 주제도 모르고.."(그 사람마저 비하,무시)


F:"뭐라고? 아...십알.. 싸우지 마라고 좀 웃겨볼라고 그랬더니 짬뽕을 무시하는거야?"(발끈)


E:" 님들 싸우려면 밖에 나가서 싸우세요!" (나가란 말 나옴)

군종감

2010.02.15 17:01:55
*.143.53.171

글은 거의 안남기지만 다비아의 글을 꼬박 정독하는 사람으로 한 마디 하자면....

누구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이제 막가자는 겁니까?" ㅎㅎ

"제가 말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론을 편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 당연한거에요.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식마음 다 이해 못하는데, 또한 본인 생각을 글에 다 담고 표현할 수 없는게 당연한데, 하물며 온라인에서 끼적거린걸로 본인의 진심이 다 납득되길 원해요??

예를 들자면....
연예인들 몸만들자면 옆에 트레이너 붙고 식이요법 조절해서 바싹 땅기면 1년 채 안되어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치만 정말 운동 사랑하고 평생 해온 분들은 그저 시큰둥하죠.
운동이란 모름지기 발전 - 전성기 - 유지 - 슬럼프 - 회복 - 부상 - 재활 등등을 겪으며 몸을 추스릴 때에 진정 운동과 몸에 대해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부양할 가족을 스스로 책임지고, 사회 나가서 본인보다 한참 덜떨어진 인간에게 모멸 당하며 분을 삭히는 연습을 수십 수백번 한 후에야 글 남기세요.
성경 어디에도 탁상공론을 통해 진리를 체득하고 하나님을 알아간 사람 없습니다.

이 곳 다비아를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개념, 익숙한 표현 몇 가지 능숙하게 쓴다고 신학 꽤나 논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자위하지 말란거에요.
본인도 소화못하고 내뱉는 말을 하는 당사자도 문제지만, 그걸 마냥 오냐오냐 받아주는 정목사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남군이 칼빈이나 바르트를 넘는 신학자가 될지 어떨지 몰겠습니다.
그치만 10대인 본인이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말과 고백을 내뱉길 바랍니다.
제가 볼 땐 그저 장근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거 같으니....

유진

2010.02.16 01:56:20
*.119.17.63

이건 뭐 거의 인신공격 수준이네요...
군종감님!  10대라는 사실이 이 논쟁에서그렇게 크게 중요한 사항입니까?  만일 40~50 대가 그러면 문제가 안되는거구요?( 물론 저도 김용남 군의 어투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내용을 잘 몰라서 댓글을  여러본 정독하였지만 군종감님 말씀처럼 김용남 군이 본인도 소화못하고 내뱉을 수 있는 글은 아니라고 봅니다.  군종감님은 정말 김용남군의 댓글을 제대로읽기나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군종감님!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지 모르지만 돈이 없어서 며칠 굶어 보신 적 있으세요? 우유 값이 없어서 아기 동냥젖 먹여 본 적 있으세요?  돈 때문에 자살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고국이 그리워도 못가고 부모가 죽어가는데도 못가는 심정을 아세요? 뭐 이런 인생경험 없으면 여기서 댓글 달 자격 없다고 제가 군종감님께 말하면 너무 황당하지 않으세요?

제가 알기로 몰트만 같이 위대한 신학자도 20대에 "희망의 신학"을 썼습니다.  저는 김용남 군이 바르트, 몰트만, 판넨베르크를 극복하는(혹은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신학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건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 따는 것보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설레는 일이 될 것입니다. 10대에 그런 생각과 말을 할 수있음에 저는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대견합니다. 저는 누가 옳고 그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10대에 저렇게 선배들과 논쟁할 수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논쟁의 주제와 상관없는 댓글은 안다는 것이 예의인데 하도 말이 안되는 것 같아 몇자 적었습니다.

머리를비우고

2010.02.24 10:00:14
*.64.162.98

많이 늦은 뒷맛이지만... 글 보다가 그냥 끄적이고 가요. 유진님 그냥 그런가 보다 하셔도 될 듯 싶은데... 인신공격 운운 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게 사용하셨으면 해요. 우유값 없어서 동냔젖 먹이고 돈 때문에 자살 생각하고 고국이 그리워도 못가는 분들은 이런데 와서 한가하게(?) 글쓰고 읽은 시간도 없답니다. 용남군은 용남군의 위치에서 군종감님은 군종감님의 위치에서 그리고 유진님은 유진님의 위치에서 각자의 관점을 말하는 것일 뿐... 결국 결론은 명확한 이야기는 없는 것이지요.... 뭐... 저의 글 보고 양비론이니 뭐니 비판 할 수도 있지만.... 나이 들수록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는 상황이 참 많습니다. 용남이 형제처럼 찔러라도 봤으면 하는 부러움이 있긴 하지만... 군종감님도 아무 개념 없이 그러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그냥 참으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제가 괜한 짓거리 한 것 같지만...

군종감

2010.03.04 12:29:33
*.143.53.171

일단, 김용남 군의 댓글을 읽어봤냐구요??
최소한 10번씩은 읽어봤을겁니다.
글구 나름 의미심장한 것들은 스무번도 더 읽었을거구요.
동냥젖은 못먹여봤어요. 저는 남자니까요....
글구 제가 인생경험이 없으니 댓글 달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거 같은가요??
그건 유진님이 제 댓글을 제대로 정독하시면 그런 의도가 아님을 아실겁니다.

10대가 저런 수준으로 어른들과 논쟁하는 것에서 유진님은 대단한 천재의 싹을 발견한 양 흥분하시는군요 ㅎㅎ
일단 저는 유진님의 그러한 전제를 그닥 염두에 두진 않지만 설령 그런다 한들, 그 어느 누구도 시간과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초월적 인간이란 없습니다.
아무리 혜성같이 등장했다 해도 공/통시적 검증을 통해 본인의 주장을 교정하거나 심화시키는 겁니다.
용남군이 설령 바르트의 미니미라 해도 저의 보편적 이야기엔 별 오류가 없을 것이구요.

이 곳에서 다뤄지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잡다구니한 논설이 아닌 신앙 전체에 관한 것들이라면, 더더욱이 이 분야에선 송유근 같은 화끈한 천재 한 명보다는 사도 바울과 같이 수치와 모욕과 생사를 그리스도께 일임하며 매일 본인을 죄인이라 고백할 수 있는 의인 한 명이 더 절실해지는 것이죠.

저는 한 사람 신앙인의 입장에서 글을 쓴 것 뿐입니다.
제가 이 나이에 고등학생 물고 뜯고 인신공격해서 얻을게 뭐가 있으려고 ㅎㅎ
용남군의 재능이 탐나시면 유진님도 날 잡아 몇날 며칠이고 다비아에 올라와 있는 설교, 강의, 댓글, 토론글 등을 달달 외워질 때까지 읽어보세요. 그럼 비슷하게 얘기할 수 있을겁니다.

뭐.... 이전 댓글에 할 말 다 써서 더 쓸 말도 없는데 그냥 지지부진하게 각주만 더 달았군요.

푸른솔

2010.02.13 10:22:59
*.33.117.72

용남형제~~
안녕~~
훌륭해요.
19살의 젊은 청년의 날카로움...

용남형제...다비아에는 오랜시간이 흘러가면서 형성된 관계가 있지
오히려 그 너그러움때문에 용남군이 지금 다비아 안에서 좌충우돌을 해도 기다려주는 것이요.
모두가 다비아를 사랑하기에 용남형제가 조금 그 날카로움을 스스로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말이요.
주변의 관계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으나 그 움직임이 별로 건강해보이지 않아요.

용남형제가 등장하기 전에 몇몇 선수들이 있었지...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가면서 오랜 시간을 나누었던 다비안들이구...

19살이기에 너무많은 배려를 받고 있은 듯하여서...
정목사님의 많은 응원을 받고 있는듯해보이기두하고...
옛날같으면 용남군은 벌써 옐로우카드를 넘어서 퇴장을 몇번 당했을텐데...

나이도 더 먹어야 하구
인격적 성인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그런 진지함이 있기를 바람...

위에서 말씀들을 하시는 여러분들은 먼저 다비아에 와서 땀흘려 가족이 된 사람들이니까...
용남형제 역시 관계를 중요시하며 자기의 주장을 여유롭게 펼쳐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용남군...
본인의 인격역시 글로 오랜시간 남아서 용남군이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삶에서 발목을 잡게 될거야.
결국 다비아에서 견디어 내기란 쉽지도 않구...
그 결과로 떠나게 된다면 다비아의 형편없음을 자기 변명과 같이 사용하면서 삶을 살게 되지...
그런 상황을 머리로 그려보면 오늘 이런 논쟁들에서 서로 별루 도움이 되는 현상은 아니요.

정목사님이나 어른들이 사랑의 충고를 할때 들어야 합니다.
경계를 무시하고 넘나들다가 혼나니까...

그럼...명절 잘 보내요.

훈쓰

2010.02.13 11:30:10
*.223.154.153

이거 이거,,, 오랫동안 내가 고민한 문제 이면서, 동시에 모든 성도들의 문제,

나의 흥미를 완전 자극 시키는 글이구만요.

톰 라이트 하워드 요더, 한번 연구 들어가 줘야 겠네요

차성훈

2010.02.13 13:27:20
*.44.109.251

요더도 그렇고, 톰 라이트도 그렇고 요즘 한국 신학계-출판계의 블루칩이죠. 제 생각으로는 이젠 다소 지루하기 까지한 '논'에 새 물길을 퍼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profile

자유의꿈

2010.02.15 14:34:54
*.177.148.243

어설픈 글인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안하세요~.

정병선

2010.02.14 20:02:53
*.80.66.78

자유의 꿈님,
재미있고 적절한 글 매우 잘 읽었습니다.
다비아에서 최근에 댓글 논쟁이 뜨거웠던 만큼
친구와의 토론 내용이
범 다비아의 토론으로 승화되어
큰 줄기를 잡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논쟁이고
결론이 날 수 없는 문제일거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러기에 더더욱 
범 다비아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

필요하고도 적절한 이야기 재미나게 해주신 것 감사드려요.
설날 저녁인데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 보내고 계시겠지요?
제 2탄을 기대하며
주님의 평화를 ...... 

profile

자유의꿈

2010.02.15 14:32:58
*.177.148.243

목사님, 어줍잖은 글에 과분한 말씀이시네요.
저야말로 목사님의 깊이있고 감동적인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건하시고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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