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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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께 죽음은 무엇인가요? 라는 류시화의 물음에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법정스님의 책 두어권 봤는데요..
그 분의 글에서는 묘한 매력이 묻어 나오는것 같더군요..
불가에서는 禪僧, 學僧,등 여러 종류의 스님이 있는데
법정 스님은 큰 도를 깨우친 분 같지는 않고 아마 학승으로 보면 무방 할듯 싶습니다..
법정 스님의 죽음에 대한 답변을 보면 이 분이 선승이 아니라 학승에 가깝다는 것이 묻어 나는군요..
그리고 죽음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보니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는 그 영성이 몇단계? 틀린것 만은 확실 한것 같습니다.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던 예수는 확실히 이런 분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 선각자 임이 분명 한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이 보지 못했던 세계를 예수는 보았던것 같지요?
불가에서는 선승들이 견성 성불 하면 예수가 보았던 경지의 비슷한 세계를 볼수 있습니다.
뭐 예수님과 기독교가 가르치는 영성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것들도 있지만은요..
불가에서는 견성 성불 이라고 하지요..
즉 자기의 본성이 머무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인데요
이것을 깨달으면 불가에서는 견성 성불 했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의 유언이나 글에서는 선승의 기풍 보다는 학승의 기풍이 더 묻어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은 내면적으로는 비슷한 메세지가 많기도 한것 같은데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현세의 삶에 대한 메세지도 많이 있지만은 내세의 구원, 영생,등이 많이 강조 됩니다.
부처의 가르침의 핵심은 無로 귀결 된다는 것이 다른것 같기도 하네요..
법정 曰 : 죽음은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일이다"
예수 曰 "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로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않으리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 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 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확실히 깨달은 경지가 틀린 것은 맞는것 같지요...
글쎄요... 정신을 차리고 잘 생각해 봅시다.
교회사 책을 읽어보면, 중세때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살던 귀족들 중 그 많은 재산을
일거에 모두 처분해서 세상에 돌리고 자신은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거기서 수행하며
산 사람들이 꽤 있지요. 그 사람들은 지금 교회사 기록에 겨우 이름만 남아있을뿐 어느
누구로부터의 과분한 찬사(우리 시대 몇몇 한국의 도사들처럼)도 듣지 못했어요. 물론
그 이들이 애초에 그런 걸 염두에 두고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요. 우리는 수도
원의 삶이 얼마나 엄격하며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되지 않았던 고행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 그 자체이었는지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그사람들은 그렇게 살다가 숨을 거두
면 개별 무덤도 없이 수도원 한켠에 마련된 납골 공간에 넣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수많은 구성원 중 다소간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있게 마
련이지만, 문제는 우리의 숭상할 대상이 과연 어느 쪽인가는 상당히 조심해서 사고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를 흉내낼 수도, 그리고 아무도 그와 비교될 수도 없습니다 (밤에 전등불이
아무리 휘황찬란한 것처럼 비쳐져도 그것이 햇빛과 비교될 수는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50을 넘기기 전에 이미 벌써 예수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20대초 육군 졸병시절 군에서 외웠던 '보초의 근무수칙' 이 생각납니다.
"한곳에 집착하지 말고(적에게 헛점 노출), 마음대로 상상하지 말라(오판 유발)."
동서양의 성인, 종교적 위인과 비교하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은 비교의 수준 스펙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차별 자체를 벗어나신 그 너머의 너머에 계신 분들입니다.
폴 틸리히는, 우리 하나님을, 신 너머의 신, 신 위의 신으로 가리키죠.
비교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왜 이러한 비교의 자리에 호출하십니까.
법정스님은 그러한 성인들의 반열에 있어 존경스러운게 아니라
워낙 이나라에 존경받을 위인들이 너무도 없어서,
그런분들이 이제는 모두 돌아가시고 없어서
이제는 존경할 사표도, 지도자도, 종교인도 너무너무 없어서
그 허전한 마음들이 이토록 가신 분에 대한 추모로 모아지는게 아닐까 싶군요.
그분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그분의 무소유, 검소, 강직,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
그리고 생각과 말과 행동의 일치입니다.
터놓고 말해봅시다. 나도 소위 예수쟁이지만,
죽을때까지 도달할수 없을것만 같은 거창한 종교적 학식과 깨우침 말구요,
세상사람의 윤리도덕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말과 행동의 일치> 가
이나라에, 이사회에, 우리들 교회 사이에 강처럼 흘러 넘치고 있나요?
더우기 우리 종교지도자들 가운데서 말이죠. 믿는 자들 가운데서 말이죠.
고 김수환 추기경님에 이어 법정스님이 가실 때까지
최소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다 가셨기에 존경받는 것입니다.
그무슨 천둥벼락같은 침묵으로 돌아가셔서가 아니구요.
그러니 저를 포함한 기독료인들은 쓸데없는 주둥아리 닥치고
허튼 과욕과 말쌈으로 욕이나 안먹고 조용히 말씀 묵상하며 삽시다.
그점에서, 불교과 천주교에 비하여 하늘아래 커다란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비교가 아닐까요?
법정스님을 이런데 끌고와서 굳이 동서의 성인들과 비교하여 내려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 기독교계의 지도자가 내일당장 죽는다면, 이처럼 전국민이 슬퍼해줄 분이 있을까요?
쓰신글의 의미는 알겠는데,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보라는 말이 생각나고
사람들의 뒷담화에 쓸쓸히 웃고만 계시는 예수님 면전에서
우리들이 취할 최소한의 염치라고 사료되는군요.
나는 불교도가 아니라 기독교인 입니다.
나는 우리 부친께서 돌아가셨을때도 그렇게 슬퍼 하거나 슬프게 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님이 하나님 품인 영원한 천국으로 가신걸 믿기에 찬송하며 기도 했습니다.
그런 내가 법정 스님이 죽었다고 굳이 애도 하거나 경건한 마음을 가질 가치를 크게 두질 않습니다.
법정 스님이나 저나 우린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고 불완전한 존재이지요..
다만 예수님은 그 격이 틀린 것만은 확실 하지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 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삼위일체 성부,성자,성령, 하나님 중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도저히 비교 할수 없는 세상의 죄인들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실수를 저질렀네요..
그런데 조이님은 말을 참 싸가지 밥 말아 먹게 하시네요..
주둥아리 닥치라고 애둘러서 하는 표현 참 싸가지 없습니다.
댓글 안 달려다가 주일 아침에 다비아에 들어와 보니 내가 뭔 큰 잘못을 했다고
기독교 사이트인 이곳에서 예수님과 법정 스님 비교좀 했다고 주둥아리 닥치라는 욕까지
들어야 하는지 기분이 상당히 불쾌 해서 댓글 답니다..
그 분들만 존경 받을 언행일치는 아니지요...
그저 이름 없는 아무개 목사라도 아니 일반 신자라도 존경받을 만한 분들은 많습니다.
차이점요? 전에 정목사님께서 묵상글에 올리셨지 않습니까?
김연아가 하면 트리플 러츠가 되고 광대가 하면 그냥 공중 3회전이지요!
대한민국의 굽어진 자기 희생과 낮아짐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추기경과 스님을 이 시대의 큰 스승으로 만든 것일지 모릅니다.
그 분들의 힘겨운 삶, 독신의 과정, 수행의 과정도 물론 있지만
주변의 凡夫나 언론이 만들어낸 어른들이지요.
전 그분들은 자기 신앙에 충실했던 종교인이라 봅니다.
전 성실하게 청소 하시는 환경 미화원, 신문이나 우유 배달하시는 분들 역시
존경 받아 마땅한 분들이라 봅니다.(억지 스러운가요?...)
공교롭게도 작년과 올해 노무현, 김대중, 김수환, 법정 스님등이 차례로 떠나니
백성들은 혼란스러울 거라고 언론에서 호들갑 떠는 것도 있겠지요.
닥칠 주둥아리는 그런 것들이겠지요.
자기 부모나 주변 사람 존경 할 줄 모르고 학교 선생님 같은 분들
무시하는 법만 배웠으니 인터넷에 악플이나 달 줄알고...
어디 먼데서 훌륭한 사람 찾는것 같은데... 물어 보세요.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처럼 살 수 있겠냐고요?
알고, 믿는 것과 실제로 따르는 것은 차이가 있는 법이지요.
백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김연아나 박지성 선수가 더 큰 어른이겠네요...
불교와 천주교에 비교해 하늘아래 뭐가 부끄럽습니까?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더 부끄러운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