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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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석한 대예배에서 들은 말씀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설교자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오늘 설교자인 Lee 0 0 목사님은 필자가 2월 28일자 게시한바 있는 "오늘 들은 말씀(2)"의
설교자와 같은 분으로, 연세는 약 65세 정도일 것으로 보이며, 대강의 프로필은 미국에서
수학한바 있고 현재는 장로회신학교의 객원교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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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마가복음 15장 33절 ~ 41절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었도다.'
하더라. (이하 생략)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예수를 사형 집행한 당시 로마 군인의 지휘관(형 집행 책임자) 으로, 그
는 예수가 심문받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빠짐없이 지켜봤던 사람이다. 그가 '예수를 향하여 섰다'
라고 기록된 것은 십자가 바로 정면에서 똑똑히 목격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가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둔 예수를 향해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는 예수
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첫 인물이 된 격이다(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
들이라고 알아보지 못했으며, 지금까지 오직 귀신들린 사람들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봤었
다). 아마도 그 백부장이 아리마데 요셉에게 예수의 시신을 내어주도록 도왔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예수께서 운명하시던 그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밑으로 찢어짐으로써 지금까지 하나님
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영원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들은 죽음을 즐거워해야 맞다. 생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 본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임종은 (팔 다리가 휘어져 관에 넣기가 어려울 정도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고,
또한 질병의 때와 숨을 거두는 당시가 무서운 고독의 시간이지만, 그와 반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
의 임종이 얼마나 편안한지를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임종 이후가 오히려 더 편안하고 고운 얼굴
모습으로 변하더라.
삶에서 무서운 고통이 올 때,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묵상하면서 그저 아무 말
없이 묵상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그분의 피의 생명력이 우리의 세포들을 소성시키
고 우리에게서 고통을 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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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백부장을 생각하면서 이와 비교할 사람(혹은 그러한 사례의 하나)으로 안중근을 형 집행한
당시 뤄순 감옥의 일본인 형무소장을 떠올리게 됐음. 그 둘의 공통점은 첫째, 똑같이 지배국의 형집
행 책임자였다는 점. 둘째는 그 둘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무상 형집행을 이행해야만 했던
인물들로서, 자신의 피형자를 숭상했다는 점.
* 얼마전 매스컴을 통해 들었던 얘기로, 당시 뤄순 감옥의 일인 형무소장 0 0 0 은 안중근의 형
집행 당일, 그의 가족들과 아침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오늘 아까운 놈 하나 떠나보낸다 ' 라고 가족
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우리가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쉬운 복음서에 기록된 말씀들이 이렇게 곱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우러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한 일이라는 것을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복음서의 메시지들은 매우 현실(실재)적이고도 직접적이라는 그러한 느낌으로 와
닿기도 하지요.
전에도 어떤 댓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얘기지만, 복음서가 얼마나 어려운 책인지를
저의 경우는 나이가 들고 나서야 결국 알게 됐습니다. 도대체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를
알기 위해 한글자 한글자 샅샅이 몇번이고 계속 파나가다 보니, 이건(복음서 말씀은)
하나의 흐름을 가진 어떤 이야기라기 보다는, 매우 깊은 영적인 메시지가 담뿍 담긴 기
록이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혼자서 모든 말씀들을 다 깨달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복음서를 소재로
하여 전해지는 좋은 말씀들을 듣다보면 그야말로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어떤 "간증"입니다. 마치 높은 산을 등산할 때 갈급함을 느끼다가 골짜
기의 생수를 만나는 그런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갈급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에게는 아무리 좋은 샘물을 만나더라도 그것의 필요성이 느껴질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복음서들을 그저 예수에 관한 대강의 행적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그리
고 주로는 예수께서 행한 이적들에 관해서 배워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복음서에 관한 영
적인 이해의 한계성에 부닥치고 있는 중대한 문제성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시 예수께서도 이러한 일을 지적하셨지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이적을
보기 위함이다." 라고 말입니다. 교회들이, 그리고 이 시대의 우리 신도들이 그러한 오류
를 지금도 계속 범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이 얼마나 피상적이고도 도
식적인 수준의 것인지를 우리 모두가 되짚어 반성해 봐야 할 문제라고 느껴집니다.
곧 다가올 얼마 남지 않은 부활절이, 우리 모두에게 참된 의미의 ' 넉넉한 환희의 절기'
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중간에 크리스찬의 임종에 대한 예화는 좀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다가 좋은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에서 자주 엿볼 수 있는(어쩌면 복음서의 핵심일 수도 있는) '아이러니'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필'이면, 예수에게 사형을 떠안겼던 '로마의 백부장'이,
'하필'이면, 예수에게 떠안겨진 사형의 이유였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하필'이면, 예수와 함께 다니던 제자들조차 하지 못했던 신앙의 고백을 했다는 아이러니가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의 핵심이겠지요. 고통과 고독, 죽음이 기쁨과 연대, 생명으로 전환되는 아이러니한 복음...
사순절 기간 동안 이런 아이러니를 상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가 오늘의 현실 속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