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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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천국이 이 땅에 실현된 그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다름아닌 성도들
이 모여 찬송하는 바로 그때의 모습일 것이다. 그 순간은 '통일된 모습' 뿐만 이 아니라, 통일
된 언어 - 음악으로 표현되는 - 가 있다. 그 "통일"은 '남북통일' 같은 이 땅 차원의 것이 아니
며 이미 천국적인 것이다.
언어는 같은 말을 가지고도 듣는 사람마다 각기 달리 해석하며 다른 뜻으로 이해하면서 들
을 수 있는 것이지만, 찬송곡은 그 언어적 찬송시에다 곡조를 부가하여 정확한 개념(이미지)
을 부여하여 만인의 감정을 하나로 통일시킨 것이다. 이때의 것보다 더 온전한 "통일"의 개
념은, 천국이 아닌 이 세상에서는 더이상은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같은 경험(영험)을 간혹 하곤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그 순간은 내가 천국적인
체험을 앞서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착각이 아니고 실제적인 일일 수도 있으리라)
1.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각할 때에...
2. 빌라도의 뜰에선 주를 생각할 때에...
3. 갈보리산 올라선 주를 생각할 때에...
4. 무덤에서 부활한 주를 생각할 때에...
오늘 출석한 부활절 대예배에서 찬송가 <겟세마네 동산의> 를 불렀다. 나는
또다시 영적 / 감성적으로 한없이 고양되어 충만되는 정서를 역시 체험했다.
[T. Hastings, 1830] 곡으로 소개 기록된 이 찬송곡이 여타의 우수한 찬송곡들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훌륨한 것인지를, 그간 클래식 대곡들을 거의 수도없이 섭렵
한 내가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니, 이런게 바로 "천상의 노래" 이다.
찬송곡 없이는 개신교신앙은 정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음악사적, 교회사적으로 볼 때 현생
인류 최대의 영적 / 감성적 "간증록"에 해당하는 찬송곡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그게
무슨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아예 찬송가 곡들을 예배에서 폐기처분한 교회들이 많다는 지금의
교계 현실이 한없이 안타깝고 또한 적잖이 우려스럽까지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