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6)

Views 2577 Votes 2 2010.07.12 23:55:22

 

     근본주의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과학에 대한 철저한 불신이오. 자연과학을 모조리 불신하는 건 아니오. 그들의 불신은 주로 진화론에 집중되고 있소. 자연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대표하는 이론은 지동설과 진화론이오. 아직도 지동설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기독교 섹트가 미국 어딘가에 있긴 하오만 온건한 근본주의자들은 지동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소. 진화론은 부정하면서 지동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이중적 태도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지동설은 사실로 확인이 되었지만 진화론은 그렇지 못한 탓에, 또는 지동설은 신앙 문제에서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지만 진화론은 결정적으로 지장을 주는 탓에 그들이 이 두 가지 사실을 다르게 대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지동설이나 진화론이나 모두 똑같은 과학적 사실이오. 전자는 물리학적 사실이고 후자는 생물학적 사실이오. 둘 다 기독교의 창조론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소. 하나님이 물리적 차원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게 만드셨고, 모든 생명체가 진화의 과정을 지나게 하셨다는 말이오. 이 두 가지 사실을 따로 대하는 근본주의자들의 태도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와 사람을 직접 창조했다는 성경구절을 제시할 것이오. 진화론에 따르면 결국 이런 성경의 진술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오. 이런 주장은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구술한 것을 성경기자가 받아쓰기를 한 게 아니오. 성경은 그것을 기록한 사람의 역사경험이오. 그 역사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이기도 하고, 과학의 역사이기도 하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이기도 하오. 창세기의 창조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경험이오. 거기에 나오는 창조의 순서나 방식은 중요하지 않소. 이 세상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핵심이오. 말하자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하지 않는다는 거요. 오늘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창조 신앙에 가깝소. 지금 최소한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신학자들 중에서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소.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은 지동설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극소수의 근본주의자들 외에는 없소. 그런 이들이 한국에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모르겠소.

     근본주의자들이 진화론만이 아니라 지동설을 비롯해서 현대의 자연과학과 담을 쌓고 순수한 복음에만 마음을 둔다면 차라리 칭찬을 받을만하오. 수도원 영성은 기독교 영성의 원천이니 말이오. 그런데 자연과학의 열매만은 고스란히 받아먹고 있소.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온갖 문명이기(利器)를 다 누리고 있소. 재테크에도 열성이오. 세상사람 못지않게 영악하오. 그러면서 진화론만은 적그리스도인 것처럼 적대시하고 있소. 이런 것은 정신 분열적인 현상이 아니겠소.

     진화론이 절대 진리인가, 하고 묻지 마시오. 진화론에서 여러 갈래가 있으니 그것을 뭉뚱그려서 말할 수는 없소. 다만 생명이 진화된다는 사실은 근현대 생물학이 실증으로 밝힌 것이오. 물론 이 세상의 그 어떤 학문이나 이론 중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소. 교회의 가르침마저 잠정적이오. 진화론도 잠정적인 이론이오. 그러나 지동설을 전제하지 않고 물리학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진화론을 전제하지 않고 생물학과 유전공학을 말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오. 그런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소. 상식적이지도 않고, 성서적이지도 않소. 이런 세계관을 계속 고집한다면 결국 기독교는 보편적 진리 논쟁에서 완전히 왕따를 당하고 말거요. 지금 한국교회는 그런 수렁으로 깊이 빠져드는 중이오.(2010년 7월12일, 월,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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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2010.07.13 08:49:58

보편적인 이치도 통하지 않는 우리 나라의 대다수 교회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정목사님의 지적하신 것처럼 그렇게 근본주의를 외치면서 교회안의 이득권 싸움, 부동산 투기,

과욕으로 불거지는 교세 확장 등이 근본주의에 대해 실망만 합니다.

점점 세상의 보편적인 사실과 멀어질수록 교회와 사회는 결별할 수밖에 없겠지요.

 

아!

이제는 이런저런 것에 함몰되지 않고,  순수하게 기독교 영성으로 깊게 들어 가고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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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0.07.13 10:50:29

목사님 넘버링이 잘못 되었어요....ㅡㅡ;

(5)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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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0.07.13 13:11:35

요즘 정신이 없네요.

두 주 안에

글을 다섯 편을 써야 하거든요.

번호 잘못 된 거 잡아주셨으니

어떤 잡지에 실을 글인지 팁으로 알려드리죠, 음.

복음과 상황, 강단과 목회, 기독교사상, 월간 목회,

그리고 마산재건교회 특강 강의안.

그동안 할말은 다 했고,

더 퍼낸만한 내용도 없어서

이제 글은 그만 써야 되는데,

막상 원고 청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번호 고쳤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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