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간다

Views 2918 Votes 3 2010.09.08 23:23:31

 

    그대는 삶의 알맹이에 밀착하기가 쉽지 않을 거요.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그대가 삶에 미숙하거나 영성이 부족해서만 그런 게 아니오. 삶의 알맹이가 그 본성을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오. 그게 확 드러난다면 누가 그걸 따르지 않겠소. 그것은 볼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잠시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에 휙 하고 사라지는 천사와 같소. 혹시 그대는 그림 감상을 좋아하시오? 여기 명작 명화가 있소. 거기에 어떤 세계가 숨어 있소. 그걸 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못 보는 사람도 있소. 그걸 보는 사람은 그 명화에 밀착하게 될 거요.

     그걸 못 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묻고 싶소? 명화의 세계를 보려면 그림 공부가 필요하듯이 삶의 알맹이를 보려면 삶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오. 그것이 인문학이오. 신학도 크게 보면 인문학이오. 이 세계가 얼마나 심층적인지를, 생명 현상이 얼마나 신묘한지를, 역사가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알아야 하오. 공부하라는 잔소리로 들리겠구료. 공부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오. 그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결정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하오. 그래도 일단 출발은 공부밖에 없으니 공부는 일단 하고 봐야 하오.

     오늘은 내가 아는 쪼그만 답을 직접 주겠소. 공부는 원래 답을 아는 것보다는 답에 이르는 과정을 배워야 하는 건데, 여기서 자꾸 뜸만 들일 수가 없으니 직접 답을 말해보겠소. 삶의 알맹이에 밀착하려면 삶을 ‘길’로 이해해야 하오. 삶은 길이오. 길은 광장과 다르오. 길은 가야만 하오. 우리는 결코 멈춰 설 수가 없소. 모든 게 지나가오. 우리의 행운도, 불행도 지나가오. 사랑도 미움도 지나가오. 성공도 실패도 지나가오. 지나가는 걸 붙들고 서 있으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소. 길을 가듯이 살아보시오. 그 어떤 것도 그대를 가두지 못할 거요. 그럴 때 우리는 삶에 밀착할 수 있소. 숨도 실제로 쉬고, 물도 실제로 마시고, 밥도 실제로 먹을 수 있소.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황홀한 사건으로 다가올 거요.

     여기까지만 말해도 되지만, 내가 목사이니 어쩔 수 없이 신앙적인 대목을 말하지 않을 수 없소. 삶은 그냥 자유롭게 길을 가는 것만이 아니라 방향이 있어야 하오. 그것이 없으면 외로운 자유만 남소. 부활 생명이라는 방향이 그대를 행복한 자유로 이끌어줄 것이오. 이 말도 상투적으로 듣지 마시오.(2010년 9월8일, 수, 높은 구름과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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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10.09.09 05:10:18

목사님!

박완서 님의 새 책을 읽고 있는데 제목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요.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데 요 제목은 영 마음에 닿지 않는군요. ㅎㅎ

 

그보다는 목사님의 요즘 삶 시리즈가 정말 좋습니다. 

어렵고 힘든 신학용어들 없이 가까이서 조근조근 말씀하시는 듯... ^^

 

하늘이 많이 높아지고 바람도 제법 시원해졌는데 

따가운 햇살들이 열매들을 풍성하게 익혀가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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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2010.09.09 19:47:40

끊임 없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나 자신을 멈추고 그저 길을 가고 싶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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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0.09.11 20:21:18

상황과 공간이 변함이 없다고해서 

그래서 공간을 벗어나서 많은 장소와 길을 걸어가지만

그렇게 하지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목사님, 이렇게 생각을 하니 '상태'가 동적인 순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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