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Views 2699 Votes 0 2010.12.28 23:17:38

     오랜만에 박완서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고 있소이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소. 자투리 시간은 주로 밥 먹을 때요. 이게 밥에게는 미안한 일이오. 밥의 고마움을 생각해야하고, 밥맛을 음미해야 하는 순간에 책을 읽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소. 산문집 이름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요. ‘내 생애의 밑줄’이라는 꼭지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오.

 

지금 나는 보통 노인과 다름없이 내 건강이나 우선적으로 챙기며, 내 속으로 낳은 자식들과 그들이 짝을 만나 새롭게 만든 가족들의 기쁜 일을 반기고 어려움을 나누며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소리 없이 나를 스쳐 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 <중략>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박완서 선생님은 벌써 80세가 넘으셨소이다. 로마가톨릭 신자요. 1988년도에 참척의 고통을 겪으셨소. 그 전에 남편을 잃었소. 아주 오래 전 그분이 가톨릭 서울교구 주보에 연재한 성서묵상 글 모음집을 읽었을 때 성서를 보는 평신도의 시각이 목사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소. 위 글도 곰곰이 새겨보시오. 시간이 자신을 치유해줬다고 고백하오. 시간이 신이 아닐까 말하고 있소. 고통만이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지우는 능력이 바로 시간이라는 거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하오. 솔직한 고백이오.

     한 해가 다 가고 있소. 2010년 한 해, 어떻게 사셨소? 뭐가 남아 있소? 뭐를 놓치고, 뭐를 잊었소?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버리는 시간이 두려울 때가 있을 거요. 한 걸음 더 나가보시오.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그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시간은 결국 사랑이고, 은총이 아니겠소?(2010년 12월2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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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아빠

2010.12.29 00:40:04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라는 고백에 마음 아픕니다.

 

목사님, 얼마 전, 하나님의 사랑, 긍휼, 정의가, 오히려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 아니냐는, 도전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하나님의 개입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말에, '맞아,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1년은, 하나님께 더욱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sg-

까마귀

2010.12.29 06:42:05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그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시간은 결국 사랑이고, 은총이 아니겠소?"

 

아멘. 2011년 다이어리를 구입할 계획을 하던 차에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정의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정의의 과정 또한 인간에게는 버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나약한 인간이 "엄살"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생각중에 있구요.

목사님, 한 해동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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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0.12.29 11:28:24

지나간 시간에는 아쉬움이라는 것이 감겨있습니다.

생각하면 가슴과 복부가 만나는 곳 어딘가에서 찌르르함이 옵니다.

아쉬움이 없는 인생이 있는가...

그냥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있지만,

 한번 보면 아름답지않아도 우리가 좀 더 유미(唯美)해지면

 아름다움과 연이은 것이라는 걸 느리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Nigel Kennedy 가 바흐의 느린 아름다움을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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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1.01.22 16:21:47

박완서 선생님이

오늘 새벽 6시에 영면하셨다고 합니다.

40살 늦깍이로 문단에 등단한 뒤

40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소설만이 아니라 성서묵상과 산문집도 좋았습니다.

몇년 사이에 좋으신 선생님들이

왜 이리 많이 세상을 뜨시는지.

선생님이 없는 시대가 오려는가 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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