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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맞습니까?

Views 1538 Votes 0 2011.01.10 2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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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설교를 하러 갑니다.  그런데 그 가끔 하는 설교가 왜 그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설교비평을 읽을 때는  설교가 쉬워 보였는데   직접 할려고 하니 설교가 참 힘드네요

 

가끔 하는 설교도 이렇게 힘든데 일주일에 열번씩 설교를 하는 분들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제 설교가 제대로 된 설교인지 아닌지 조차 솔직히 모르겠고요  그래서  설교 아주 잘하는 목사님께

 

보여드렸는데  좋다고 하시는데  그분은 모든 게 다 좋은 분이라 ....   부족한 원고를 읽어 주심 감사할 것 같습니다.

 

 

 

 

 

 

메시아 맞습니까?

                                              임원

 

마태 복음 11:2-9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매일 식사를 할 때 마치 통과의례처럼 때로는 주문을 외우듯이 종종 기도를 드릴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위급하거나 절박한 상황에 놓일 때는 제법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래서 기도 제목을 나누거나 합심하여

 

기도드리기를 제안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나면 전 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

 

다. 물론 기도에 응답 받으면 좋겠지만 거절당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때 보다 거

 

절당함으로 인해서 감사할 때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고 험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기

 

도가 다 이뤄진다면 나는 얼마나 큰 죄책감에 휩싸일까요? 그런 기도도 다 들어주시는 하나님이라면 너무 비윤리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때는 no 도 yes도 아닌 wait이라는 응답이 오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힘들고 또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 왜 힘들고 지루할까요? 그것은 바로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연인 라헬을 만나기 위해 칠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영악한 외삼촌께서는 칠년을 더

 

일해야만 딸을 시집보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삼촌 집에서 중노동을 하며 보냈던 칠년이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마는

 

겁니다. 만약 저였더라면 당장에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겁니다. 그래서 재판관을 찾아가 악덕 고용주 외삼촌을 고발했을 겁

 

니다. 그런데 외삼촌은 한술 더 떠서 칠년을 또 죽기 살기로 일하라고 말씀하시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믿음

 

이 있어서 칠년을 더 기다려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야곱은 십 사년 이라는 긴 시간을 아내를 위해 바칩니

 

다. 야곱은 대단합니다. 칠 년 동안 헌신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던 자신을 배신한 삼촌의 말을 믿었던 것이 신기합니다. 내

 

가 칠 년 동안 죽기 살기로 노동 현장에서 버텨왔는데 삼촌은 약속대로 라헬을 아내로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삼촌을

 

믿고 또 칠 년을 중노동을 하며 살아간단 말인가? 왜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기다림이란 정말 힘든 것 같습

 

니다. 그런데 모든 기독교인은 똑같은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말을 기다리며 재림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

 

다. 그런데 오늘 날만 이런 기다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

 

은 메시아의 탄생입니다. 예수를 메시아라고 말한 최초의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유대인의 역사 가운데 중간기 역사라는

 

것이 있는데 구약과 신약의 그 중간 시기입니다. 이때 예언자가 안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암흑시대라고 불렀습니

 

다. 하늘의 소리가 들려와야 살 수 있는 백성들이 하늘의 소리가 끊어지니까 답답해하면서 살았는

 

데 약 300년 만에 광야에 외치는 소리, 세례 요한이 나타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사람

 

들은 “와!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타났다.”라고 해서 그 소리 나는 곳으로 모두 달려갔습니다. 정말

 

믿을만한 예언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우선 그의 모습이 야인으로 나타난 것이 믿음이 갔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회개하라.” 경고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지금까

 

 

지 그들이 행하지 아니하였던 물로 세례 주는 일을 하니까 “이는 틀림없이 메시아다.” 그래서 요

 

단강에 나가서 모든 사람이 다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메시아입니까?” “아니

 

다.” “그러면 누구입니까?” “나는 메시아의 길을 평탄케 하려고 보내심을 받은 자다. 세상 죄를 지

 

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내 뒤에 오시나니 보라! 이가 메시아다.” 그리고 예수를 소개하지 않

 

았습니까? 세례 요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은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나타납니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예수와 자신을 비유로

 

설명하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 기쁨이 있으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더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예수를 메시아로 소개하면서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불로 너

 

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

 

 

그렇게 예수의 메시아성을 완벽하게 증거한 세례 요한이 오늘 말씀에는 큰 갈등을 가지고 예수의

 

메시아성을 의심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2절에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

 

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

 

러면 이 세상에서 예수를 메시아라고 제일 먼저 그렇게 철저하게 증거한 요한이 왜 이렇게 갈등을

 

하였을까? 믿음이 없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요한의 형편을 살펴보

 

면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상태입니다. 왜 감옥에 갇혔는가? 그는 마지막 예언자로 메시아

 

와 동시대 활동자입니다. 지금 자신의 옆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굳게 믿고 예수의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무서울

 

것이 없는 정의감에 불타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절대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설교가 무시무시합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은 세례요한이 한 말입니다. “옷 두벌

 

입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세리들에

 

게는 “정당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군인들에게는 “강포하지 말고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

 

한 줄로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설교를 아주 강하게 외쳤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3장 15절에 보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

 

중에 의논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메시아다.”라고 사람들이 확증이 간 겁니다. 그의 정의로운

 

설교는 마침내 그 나라의 왕가로 쳐들어갑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는 헤롯이 왕이었습니다. 그는‘안

 

티파스’라고 하는 사람으로 매우 부도덕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이복동생 빌립이 로마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동안 헤롯은 동생을 못 오게 하고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데려가다 살았습니다. 그

 

러나 누구도 헤롯 왕가를 건들이지 못합니다. 건드렸다가는 즉시로 가문이 모두 목이 잘려나갔습

 

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왕가를 쳐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결

 

국 그는 나중에 헤로디아의 요청으로 목이 잘려 죽고 맙니다. 그 자리에 지금 요한이 있습니다. 그

 

러면 요한이 이때 어떻게 그렇게 담대한 용기로 헤롯 왕가를 공격할 수 있었는가? 누구도 못하는

 

일을 왜 했는가? 그의 용기도 컸지만 메시아가 자기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도 인간입니다.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에는 하나님의 아

 

들 메시아가 계시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이 헤롯 같은 불의한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 당장 처벌하

 

셔야 되지 않는가? 나도 했는데 왜 안하고 계시는가? 그런 불의한 자는 지금 왕 노릇을 하고 나 같

 

은 정의의 선지자는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린다니 옛날에는 그렇다 하여도 지금은 메시아의 세상

 

이 시작되지 않았나? 당장이라도 그 메시아가 천재지변을 일으켜서 저 불의한 헤롯을 처벌하시고

 

이 옥문을 열어 내가 예언자의 품위로 나가야 되는 것이 아닌가?’ 당연한 생각입니다. ‘내가 누구

 

인가?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일 먼저 증거한 사람이 나 아닌가? 도대체 이러한

 

때에 메시아께서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냐?’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셨는데 왜

 

세상이 이 모양인가? 메시아라면 가만히 계실 리가 없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가서 봐라!’ 바로

 

이 문제가 지금도 우리들 마음에 갈등을 주는 부분이 됩니다. ‘아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찌

 

세상이 저리 악한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온갖 것을 다 누리고 살고 정말 피나게 눈물의

 

 

의로운 길을 걷는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고난스럽게 살아야 되는가? 이것은 메시아가 다스리는

 

 

세상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정말 의로운 하나님이신가? 다른 이를 내가 믿어야 할 것인가? 당신이

 

정말 메시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합니까? 대답해 보세요.” 요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5절에 답변을 이렇게 하십니다. “가서 말해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

 

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두 가지 의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메시아의 일을 지금 하고 있다고 지금 말해

 

라. 복음을 전파하여 영원구원을 이루고 고난의 백성들에게 관심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구원의 사

 

역을 메시아는 하고 있다고 가서 말해라.”, 또 하나는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인데

 

내가 메시아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소경이 보게 되는 일, 앉은뱅이가 말씀으로 걷는 일, 문둥이

 

와 귀머거리가 의학적 치료 없이 현장구원을 받는 일, 기적 창출 사건으로 메시아만의 고유 권한

 

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라. 누가 이런 일을 했느냐?” 그런데 세례 요한에게는 이것이 더

 

욱 고통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메시아의 기적창출은 내가 있는 이 감옥에도 이루어져야지

 

어찌 그들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인가? 오히려 세상이 그렇게 많은 숫자에 달하는 환자들 가운데

 

몇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일보다 이 마귀 같은 헤롯 왕을 빨리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정의의 나라

 

를 건설해야 메시아 사역의 효과 열매가 클 것인데 왜 시골구석에 앉아서 몇 사람을 데리고 그런

 

일을 하고 계시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연한 생각이지 않습니까? ‘내가 요단강에서 회개를 외치

 

고 세례를 줄 때 온 나라 백성이 몰려와서 나보고 당신은 메시아인가? 할 만큼 국민적 분위기가

 

이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정말 당신이라면 지금 이곳에 메시아 왕국 건설을 해야지 어

 

찌 시골구석의 환자 몇 사람을 데리고 그 모양으로 계신 것이냐? 당신이 정말 메시아요?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은 다시 6절로 대답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

 

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메시아를 보느냐? 메시아로 보라! 메시아는 지금 메시

 

아의 길을 갈 뿐이다. 무엇을 보려고 너희가 광야에 나갔더냐?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세례요한도, 제자들도 예수님에게 기대한 것은 예수님의 생각과 차이가 납니다. “내가 지금

 

해야 되는 일은 헤롯 정부를 때려 부수고 요한을 보기 좋게 끌어내어서 예수는 저렇게 강력한 헤

 

롯 정부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고 보여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힘 있

 

는 자들은 모두 내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헤롯 정부보다 더 강한 정부를 만들어서 로마 정부를 또

 

다시 때려 부수려고 할 것이며, 나는 헤롯 대신 왕이 되고 너희들은 정부 수립의 일등 공신이 되어

 

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렇게 고난당하는 귀머거리, 앉은뱅이, 소경된 자들은

 

메시아를 만나볼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요한은 감옥에서 나오지 말고 거기서 죽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제 때가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더 창피하게, 더 참

 

혹하게, 요한보다 더 비참한 자리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요한에게 가서 그렇게 말하라. 그리고 실

 

족하지 말아라.”

 

 

우리는 무엇인가는 매일 기다리고 삽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를 믿으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십니까?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는데 이미 다

 

얻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벌써 내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

 

시고자 하는 것은 우린 모두가 이미 다 가졌습니다. 이미 내 소유가 된 영적 기쁨을 누리지 못할

 

때 신앙생활은 갈등만 생깁니다. 오늘 보세요. 예수님이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무엇을 얻으려고 했기에 그렇게 원망이 많고 갈등

 

이 큰 것이냐? 얻고자 하는 것은 다 얻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20대 처녀로 간호사가 되어 각기 뉴욕과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을 찾아와 소록

 

도 문둥병 환자의 수용소에서 형제들을 위해 20대에서 70세가 넘을 때까지 43년 동안 오직 소록도

 

에서 동정녀로 봉사하다가 이제 70이 넘어 더 이상 봉사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가지고 왔던

 

낡은 가방 하나만을 챙겨 송별 인사 없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본국으로 떠

 

난 두 수녀님이 있습니다. 마리안나와 마가렛트 수녀 이야기인데 10년 전에 그분들은 세분이었습

 

니다. 마리아라고 또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돌아가셔서 두 분입니다. 그분들을 사람 같지가 않

 

고 천사 같았습니다. 뉴욕과 오스트리아에서 43년 전 대한민국을 오셨을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못

 

살았는지, 그것도 문둥병 환자 고름 짜는 일을 평생 하면서 “이제는 기운이 없어 더 이상 할 수가

 

없어 돌아가겠습니다. 그동안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해주십시오.”라는 편지만을 남겼습니다. 그분

 

들은 불행한 인생을 산 인생인가?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그 자리를 주신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세례 요한한테 가서 말해라. 나는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이런 일을 지금 하고 있다고 말해라. 이것

 

이 내가 할 일이다.” 세례 요한에게 대답해 주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대답하고 계십니

 

 

다. “나는 지금도 메시아 사역을 하고 있노라. 무엇을 얻으려고 교회 왔느냐? 나는 이미 다 주었노

 

라.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이미 죽지 아니했느냐? 더 이상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

 

냐? 헤롯 정부를 때려 부수고 새 왕국을 건설해서 너희가 왕이 되고 너희가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 사역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십시오. 다른 것을 기다리면 세례 요한의 갈등이 내게

 

도 찾아옵니다. 주님 여자 보다 나은 자 중에서 요한 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러나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도 요한 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거처는 정치로서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가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하여 주소서.

 

 

 

 

 


첫날처럼

2011.01.10 21:02:13
*.67.83.36

우리 나라의 현재 모습 속에서 정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또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긴 하는 걸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설교를 읽으면서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의 통치" 에 대한 어떤 느낌이랄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삼송

2011.01.11 07:39:43
*.119.241.67

정말 좋은 설교입니다. 우리 삶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고민이 세례요한의 눈을 통해서 제 자신도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일 그당시 세례요한 이었더라면  죽기까지 예수님을 인정했을까요?아마  힘들었을 겁니다. 죽기까지 인정할수 있는 자세 뭐라고 할수 없는 감정이 올라옵니다. 저는 여지껏 당연히 성경의 사실을 의심없이 봤는데요 지금은 그당시 사람들의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감사히 잘 읽고 출근합니다.

profile

눈사람

2011.01.11 10:23:12
*.23.36.2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결코 제가 감히 지적질(?)을 할려는 건 아니구요. 도와드리려구요. 옥에 티가 하나 있어서요^^

 

요한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 라고 했다고 쓰셨는데

 

성경에 보면 불이 아니라 성령으로(요한복음, 마가복음) 혹은 성령과 불로(마태복음,누가복음) 

 

세례를 주신다고 씌여 있습니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가 큰 것 같아서요^^

 

그리고 글 중앙쯤에 ' 내가 요단강에서 회개를 외치

 

고 세례를 줄 때 온 나라 백성이 몰려와서 나보고 당신은 메시아인가? 할 만큼 국민적 분위기가

 

이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                          글이 좀 이상합니다.^^

 

"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린 모두가 이미 다 가졌습니다. 이미 내 소유가 된 영적 기쁨을 누리지 못할 때 신앙생활은 갈등만 생깁니다." 

 

아멘.

광토

2011.01.11 11:47:42
*.244.221.1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몇마디 적었다가 제가 무슨말 하는건지 저도 잘 몰라서 걍 지웠습니다.

다만, 제가 경험한 설교 시간의 대부분이 "좋은 설교","감동주는 설교"에 집중되어

감정적으로 어려웠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profile

도도아빠

2011.01.11 13:52:02
*.121.215.165

요즘 생각하는 주제와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이까요? '세상'의 정의는, 무시되고 짓밟히고,  강자의 정의가 돼도 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신학적 지식이나 신앙의 깊이가 얕아서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가, 세상의 정의를 뛰어넘는 다른 것이란 점은 어느 정도 알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정의를 외면하는 것이 돼선 안되지 않을까요?

 

좀 심란하네요.     -sg-

profile

아델포스

2011.01.11 16:33:27
*.201.77.210

쓰신 설교에 대한 평가를 위해

억지로라도 끄집어 낸다 생각해 주십시요.

 

먼저 전개 과정에 대해 의견을 드리자면...

도입부에서  전개하신 기다림이

이후 기다림과는 깔끔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전체적으로 제목 '메시아 맞습니까'에 맞춰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도 응답의 wait, 야곱의 기다림은 힘들고 지루한 것으로

세례요한의 기다림은 이미 도래했음에도 깨닫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데요

양자간에 갑작스런 도약으로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경건주의 '에세네' 파로 추정되고 있는데

헤롯왕을 쳐부수고 하나님 나라 건설 부분은 비약이 좀 심한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은 일부 젤롯의 제자들과는 달리 그저 '깨어 하나님 나라 도래를 맞으라' 한 것 같은데요..

 

감히 설교말씀에 평을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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