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설거지를 종종 하시오? 나는 종종 하오. 집사람이 두 번 하면, 나는 한 번 정도 하오. 몇 년 전에는 세척기로 할 때가 많았소. 싱크대에 붙박이로 달려 있는 세척기였소. 그릇이 많을 때는 그게 편리하지만 그릇이 적을 때는 오히려 불편하오. 주로 접시를 사용하는 서양은 모르지만 국그릇과 밥그릇이 많은 우리에게는 식기세척기가 한계가 있는 것 같소. 지금은 순전히 손으로 하고 있소.
1983년에 처음 독일로 유학을 갔을 때의 기억이 나오. 그쪽 친구들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소. 그들은 싱크대 안에 물을 채우고 세제를 조금 따라서 혼합시킨 다음에 그릇을 넣소. 그릇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솔로 털어내오. 수세미보다 솔을 많이 사용하오. 그렇게 대충 정리되면 물을 버리고 다시 새물을 채워 넣소. 새 물에서 접시를 건져내는 것으로 설거지는 끝이오. 우리는 주로 흐르는 물에 그릇을 헹구지 않소? 그들은 그냥 싱크대 통에 담긴 물에서 그냥 건져내고 마오. 그런 접시로 다시 음식을 담아 먹는다는 게 처음에는 좀 찝찝하게 느껴졌소. 왜 흐르는 물에 깨끗이 헹구지 않느냐고 묻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였소. 더 자세하게 물었는지, 그 대답을 내가 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소. 아마 물을 아끼기도 하고, 세제가 별로 독하지 않은 탓이기도 한 것 같소. 그들은 물에서 헹궈낸 접시를 반드시 마른 수건으로 뽀송뽀송하게 닦았소. 아마 독일 수돗물에 석회가 많기 때문일 거요.
설거지 할 때 기분이 어떻소? 여러 종류의 그릇을 손으로 직접 만지는 행위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이오. 이런 점에서는 맨 손으로 설거지를 하는 게 실감이 더 나기는 할 거요. 설거지에서 중요한 것은 물의 느낌을 아는 거요. 물은 내 손이나 그릇과는 전혀 다른 물질이오. 그 부드러움은, 또는 그 강렬함은 그 무엇도 따라가지 못하오. 정확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정밀하게 철판을 자르거나 구멍을 낼 때 물을 사용한다고 하오. 물이 철을 절단하다니, 놀랍지 않소? 물은 그야말로 만능이오. 설거지를 하면서 우리는 그 물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소. 죽으면 그것도 못하니 살아 있을 때 설거지 실컷 해보시오. 그나저나 천국에도 설거지가 있을라나? (2011년 1월14일, 금)
복잡한 마음 들 때 도움되는 게, 제 경우엔 설거지와 빨래 접기입니다.
설거지는, 반드시 맨 손으로 합니다. 고무장갑 끼고 하면, 제대로 안 됩니다. 가능한 세제는 안 쓰려고 합니다. 밥그릇, 기름기 없는 접시 같은 것들은 물로 씻습니다. 설거지하면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손으로 씻을 때, 뽀드득 하고 나는 소리와 그 느낌입니다. 제대로 세례를 받으면 이런 느낌이 아닐런지.
빨래 접기는, 차분한 마음과 우울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어렸을 때, 대체로 하루 일과를 마치신 엄마가 저녁 밥 앉치시고 난 뒤, 아니면 저녁 먹이신 다음에 하곤 하셨던 게 바로 빨래 접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보면, 어린 마음에도 뭔가 편안하고 평화로운 느낌에 빠지곤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엄마와 함께 빨래를 접게 됐고. 이런 기억 때문인지, 빨래 접으면 엄마 생각이 자주 나고, 때론 청승맞게 웁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계시겠지요, 그리고, 어떤 형태로건 뵐 수 있겠지요. 죽음이 공포스럽지 않은 이유는, 엄마를 뵐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주일입니다. -sg-
목사님,
드디어 설거지의 미학이 탄생했군요.
대부분의 여성에게 위로가 될듯합니다.*^^*
저는 어릴 때 동생들이 태어나는 바람에
일찍이 설거지의 세계에 몸을 담았답니다. ㅎㅎ
부뚜막에 앉아(키가 작아서) 큰 솥을 씻는데 누룽지는 왜 그리도 달라붙어 애를 먹이는지요.
이 대목에서 오 남매를 키우신 어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중학교부터 자취생이라 ...
아이고, 설거지 경력이 제 나이랑 거의 같습니다.
오늘은 그릇을 담가두고
한껏 게으름을 피워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설거지를
즐기면서 해 볼까 합니다.
물을 가지고 놀면서요.
저의 설거지는 천국 가야 끝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