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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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여러개의 종교가 있다.
크게 나누어 보면 기독교21억명,이슬람교 13억명, 흰두교9억명, 불교3,76억명,
불교/도교 등의 중국 전통종교 3.94억 명, 기타 등등이 있다.
이 가운데 흰두교만이 특정한 교주가 없을뿐, 종교마다 창시자가 있다.
이슬람교에는 마호메트, 불교에는 석가모니, 유교에는 공자가 있다.
그 가운데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삼위일체적하나님)가 있다.
어떤 종교라도 그 궁극의 목적은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을 구원하는데 있다 할 수 있다.
즉 종교의 존재성은 진리추구와 인간구원에 있다 할 수 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그 진리를 추구하는데 앞장서서 선구자 역할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 각 종교의 교주가 된다.
진리는 하나이다. 그렇다면 진리와 구원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성서에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 외에 어떤 교주가 이렇게 말했으며, 이렇게 말 할 수 있는가?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 그 자체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길' 이며,
인간을 살릴 수 있는 '생명' 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와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모든 종교는 예수그리스도에게로 귀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은 예수그리스도 라는 진리와 구원에로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길을 앞서서 걸어간 모범적인 훌륭한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과 같은 창조의 신은 아닌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길' 이며 '진리'이며 '생명'인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종교들은 그들의 교주들이 추구하는 것이 진리와 구원이다.
그 진리와 구원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는 훌륭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 교주들은 사탄이나 우리가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만방에 '진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 '진리'가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르친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하지 않았을뿐, 그들이 깨달음을 얻고
가르친 것은 '진리' 자체인 예수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르침인 '진리'를 따르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지만,
그 가르침을 뒤로 하고 마치 교주(기독교제외)가 인간의 진리인 것처럼
구원을 주는자인 것처럼 그들을 따르는 것은 우상 숭배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종교들의 교주들은 창조물, 즉 피조물인 것이다.
그들은 창조자가 아니기때문에 그들 자체가 진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교회에서도 목사를 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들 또한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종교인이 되는 것은 그 교주들처럼 나 자신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아닌 것같은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2011.01.23
에덴나라님! 안녕하시지요?
지난번에 제가 죄에 대해서 글을 써주십사 했는데, 다른글이 올라왔네요?
경계선상에 서 있는 신학자라 불리우는 폴 틸리히나, 우리나라의 김경제교수님이나 변선화교수님. 김은규교수님...
잠시 생각해봅니다.
김은규교수님은 "하느님 새로보기"에서
한 점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주변에 거대한 제국 국가인 이집트와 바빌론 제국들 속에서 그들의 종교와 신들이 당연히 들어와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우상숭배 금지' 선언은 이스라엘 종교의 주권을 회복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이것은 제국주의에 맞서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 정체성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고백한 신구약의 신앙고백을 현실에서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김은규교수님의 저서아래에 연필로 "이스라엘 주변의 약소국들은 왜 다신론을 의지하며 우상숭배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것일까?" 라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김경재교수님의 이름 없는 하느님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유일신신앙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유일신에 대해서 또다른 해설을 내 놓습니다.
불교에서는 대천사중 하나인 범천이 자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하면서 범천이 기독교의 여호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힌두교에서도 삼위일체적 신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삼위일체적 개념이 있습니다.
윌리암 제임스도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비종교인도 거듭난다는것을 설명도 하면서 우리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경험이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미리체아 엘리아데도 종교형태론에서 거의 모든 종교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특히 강하기 때문에 비교를 해도 불교와 많이 합니다.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불교적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 대화의 물고를 트는데 힘이 듭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는 무시무종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창조주같은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불교가 창조론이 없다는것을 단점으로 생각하며 공격합니다.
폴 F. 니터는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고 합니다.
종교간의 대화를 저술한 R. 파타카는 호교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종교간의 대화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에덴나라님의 말씀은 타종교도 결국 예수님을 찾아가는 길이므로 그들의 교주를 믿는 방법이 아닌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신앙하면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수 있다라는 의미이지요?
결국 이 설명도 타종교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에덴나라님의 주관적 설명이며, 특별한 근거도 없는 자기종교방어적이며, 자신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것 같습니다.
혹 에덴나라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것을 다 감안해서 글을 쓴다면 너무 많이 길어질것 같네요.. 이해해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다른 별다른 뜻은 없으니까요..^^
웃음님 안녕하세요
제가 올린 글을 좀 더 자세히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님이 다른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말하고 있지만 저의 글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네요.
그리고 지금까지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경향이 있었으나
윗글에서는 타종교를 끌어 안을 수 있는 단초를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적고 있습니다. 웃음님은 성서의 기록을 근거로 예수그리스도가 '진리' 그 자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글을 특별한 근거도 없는 자기종교적방어적이며, 인지부조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지극히 자기 주관적 폄하를 하고 있네요.
어느 학자의 말이라도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기록만큼 확실한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들의 견해 또한 개인의 주관적 견해이니까요
우리가 어떤 신학자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고를 받아들여서 성서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학자의 견해만을 주장한다면 그 학자의 이야기만 할 뿐
자칫 그 학자의 이야기 때문에 성서해석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 쉽상이지요.
내친김에 한마듸 더 덧붙여 가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큰 문제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우상이 되어 있어요.
성서를 해석한 글에 다른 신학자의 견해를 들이대며 재단하는 웃지못할 풍경이 벌어지곤 하지요.
이러한 신학자들의 견해가 성서를 보는 눈을 가리게 할 때가 많이 있지요.
오늘날까지 성서를 잘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종교와도 화해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라 봅니다.
저의 글을 읽고 윗글에 대하여 말하려면 윗글이 제시하는 성서를 찾아들어가 읽어보고
그와 관련된 성서구절을 찾아보고 왜? 그럴까~? 를 고민하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거기에 덧붙여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윗글은 우리가 가장 우선적 근거로 삼아야할 성서를 근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학자들의 견해로 재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학자들 또한 개인의 견해입니다.
다른학자들의 견해는 님의 지식으로 비축하고 그 지식을 성서를 보는 눈을 기르는데
사용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님도 성서를 근거로 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테니까요
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올리게 될 때가 오겠지요...^^
제가 감히 기어들 자리가 아니구나 싶지만, 짧은 생각으로나마 여쭤봅니다.
'신학자들이 우상이 되어 있'고, '신학자들의 견해가 성서를 보는 눈을 가리게 할 때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고, 실제로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서를 해석한 글'의 폐단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위에서 언급하신 내용들 역시 에덴나라님의 개인적 생각과 해석 아닐런지요? 정통적이라고 하건 교리적이라고 하건, 그 어떤 권위있는 것에 기대 말한 것이다라고 하신다고 해도, 역시 해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가요?
아주 극단적으로 말씀드려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전세계 언론 매체가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신구약 모든 복음서를 한 구절 한 구절 짚어가면서 설명해 주시지 않는 한, 아니 설령 그런 일이 있다해도, 우리는 저마다 받아들이며 해석할 것입니다.
그럼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서로의 해석을 존중하며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종교에 구원이 있는가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독교의 배타성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냐, 성서가 그렇게 보이는 내용을 전했다면, 그 신학적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를 숙고해야겠지요. 또 더욱 중요하게는,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인간이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느냐, 나의 태도로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개종시키려 하는 것이 적절한가, 저는 이것을 가슴에 담아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모든 글 역시 해석일 뿐(이라기엔 조잡하고 충분치 않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보잘 것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나의 견해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독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살아계신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길 기도할 따름입니다. 궂은 날씨, 건강 하십시오. -sg-
도도아빠님 안녕하세요?
윗글은 성서를 근거로 씌여진 글입니다. 누구의 배경이 중요하냐가 아니라
그 해석의 말이 쉽게 이해 되느냐 안되느냐 입니다.
제가 올린 글은 타종교를 배타성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종교의 행위가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타종교도 결국은 하나님께로 귀일 하고 있는 기독교안의 커다란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타종교를 폄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궁극에 가서는
타종교도 하나님(예수그리스도)에게 귀일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타종교가 싫어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를 제외한 어느종교의 교주가 자신이 스스로 '진리' 라고 말할 수 있나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이 '진리' 라도 말해 놓았다는 말입니다
이만큼 확실한 자기주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인간이 감놔라 배놔라 할 수있느냐고 하시는네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사업을 성서를 읽고 말하지 않으면 누가 말합니까?
즉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속죄사건도 2세기의 이레니우스가 정리해 놓은 것을
10세기에 안셀무스가 체계화 한 것으로 루터도 칼빈도 이 영향을 받고 있고
오늘날의 보편적 기독교 속죄사건이 되어 있지 않나요? 그 사람들은 신(神)이었나요?
저 또한 21세기인 오늘, 하나님의 구원 사업을
좀 더 구체스럽게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구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타종교의 추구하는 진리가 결국은 예수그리스도 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자가자신이 '진리' 라고 했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타종교를 폄하하는 이야기가 아니자나요?
타종교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네^^
점심 드셨어요? 전 배고파요...ㅠㅠ 밥 묵어야겠네요..
제가 인용한 학자들과 에덴나라님의 주장은 큰차이가 있습니다.
절대 비슷하지 않아요.. 에덴나라님의 주장은 종교간의 대화에 전혀 진전을 보일수 없을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서 불교의 누군가가.. 에덴나라님께 기독교의 예수는 어릴때 인도에 와서 불교를 배웠고, 성서의 가르침도 예수의 예화도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간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도 결국 불교에 귀의하는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하겠습니까?
저는 가끔 성서를 강으로 비유합니다. 큰 강이 흐르고 있고, 성서는 그 강줄기의 일부를 담고 있지요, 하지만 전체를 파악할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자나 철학자도 성서의 직접적표현을 뛰어넘어 성서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주장을 할수 있으며, 이는 성서의 기록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되는 것이지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성서에서는 무속인을 죽이라고 되어 있지만, 성서를 해석하시는분들은 지금은 죽이지 않는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지요.. 이는 성서의 기록보다 성서를 해석한 경우가 더 우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성서의 문자를 절대시한다면 지금도 안식일을 지키고 도피성도 만들어 놓고 우상도 파괴해야겠지요. 하지만 성서에는 직접적 언급이 없는 해설을 더 중요시 여겨서 문자적 성서를 지키는 행위는 하지 않지요..
성서에 천착하는것도 좋지만 성서에만 머무르는것은 좋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학자를 우상시하는것이 아니고 신학자를 울상시하는것이지요...
위대한 신학들은 고전과 같지요... 검증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랜시간동안 수많은 논쟁들을 통해서 검증된 신학을 간단하게 무용하다고 할수 없지요..
에덴나라님께서 성서에 대한 믿음이 저랑은 좀 다른것 같네요..
다비안의 주장과 제 주장을 혼용해서 설명하자면..(전부다 다비안의 주장은 아닙니다.)
1. 신학은 성서와 하나님의 뜻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학무용론을 주장하지 말라.
2. 성서는 그냥 읽어서 알아지는것(도통하듯이 돈오돈수)이 아니므로 역사비평과 조직신학, 인문학등의 도움을 받아라
3. 성서만능주의를 경계하고 성서문자주의를 폐기하라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교부들중 마르키온은 구약의 잔인한 하나님을 인정할수 없었습니다.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과 구약의 전쟁의 하나님사이이 갈등을 해결하려고 구약을 폐기하고 신약의 일부를 성서로 인정했지요.. 이것이 그리스도교정경의 효시라 할수 있었습니다. 에덴나라님도 마르키온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 기독교외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구원하지 아니한다는 성경의 해설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고자 단순하게 사색에서 비롯된 개인의 생각을 주장하는것으로 보여집니다.
에덴나라님의 성경을 사랑하는 열심이 보여집니다. 고민하시고 해결하시려는 큰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진리라고 믿기에 기독교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식 해설로 타종교를 평가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글에도 말씀드렸듯이 세계관이 다릅니다. 창조도 없고, 구원도 없고, 종말도 없는 그런 교리를 갖고 있는 종교를 기독교식으로 구원을 설명하려 든다면 고차원적배타성을 갈고 닦아서 논쟁하자고 하는것으로 보여집니다.
좀더 쓰려다 밥 묵으러 갑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배고프셨을까요? ㅠㅠ
도(진리)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있고,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근원은 같은 것.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스러운 것.
신비 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입니다.
제가 요즘은 노자의 도덕경에 심취해 있네요.
노자의 '도'란 무엇인가? 를 적어 봅니다.
사색의 아침이 되시길 바랍니다.
에덴나라님의 말씀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신학자든, 어떤 교수든 모두 자기 생각의 범주 안에서 이런 저런 말을 할 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겠지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노력이
진정한 신학이요, 그러한 신학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신학자가 되어가야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신학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하겠지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야할 사명을 주셨으니까요.
제가 믿음도 견실하지 못하고 신학적 지식도 별로 없고, 인문학적으로 아는 것도 많치 않아서 조심스럽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불교도도, 이슬람교도도, 힌두교도도, 한 명도 남김없이 다 구원하시겠다면 구원하시는 것 아닐까요?
불편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교회에 잘 나가고 믿음 좋다는 평을 듣는 사람도, 당신께서 구원하지 않으시겠다면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 아닐런지요?
주인이 종에게 품삯으로 얼마를 주시건, 감히 종이 뭐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나약한 피조물이, 종교라는 틀로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조용히 기도할 뿐입니다. -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