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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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예배전후로 도도아빠님과 역사적예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예전에 읽었던 한 책을 꺼내봤습니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자는 루돌프 슈낙켄부르크입니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신학텍스트총서의 1.3인 이책은 오늘날 우리가 나사렛 예수에 대해 무엇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수 생애 연구'의 역사에 관하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끝맺으면서 이런 소회를 남겼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기초는 주지주의적.자유주의적.현대주의적 신학이 주장하는 대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교가 역사적 기반을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 우리 시대에도 예수는 큰 의미를 지닌 실체다.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어떤 강력한 영적 힘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는 이러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강화시킬 수도 없다" (Page27)
...
그 이후의 연구 활동, 곧 예수 생애 연구의 폐허 위에서 시도된 역사적 예수 연구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한 발자국도 헤어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학계에는 복음서 연구의 말씀 대부분이 초대교회의 신앙에 의해 형성.변형되었음을 발견했다. 그에 의해 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불트만은 예수 행적에 관한 이야기 자료들이 전설적으로 형성되었고,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유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 불트만의 이 실존적 해석이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즉, 예수를 그분의 유다적 배경에서 볼 때, 특히 유다교 율법에 대한 그분의 관점에서 볼 때, 더군다나 하느님 나라에 관한 해석을 놓고 그분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Page28-29)
실제로 역사에 나타나신 예수는 우리 시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셨고, 우리는 그분을 역사비평적 연구 방법으로도 알아볼 길이 없다. 대대적 연구 계획을 세워 온갖 방법론을 다 동원하여 얻은 결과라 할지라도,, 그것은 역사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연구 과정을 통해 얻어 낸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자렛 예수처럼 인간세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분, 오로지 믿음으로만 이해되는 분을 이런 방법으로 규명하겠다는 것 자체가 아주 부적절하다. ....(예수는) 전혀 다른 지평에서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모든 인간의 문제, 곧 인간 실존의 의미와 인생의 과제에 해답을 주시려는 분이다. 그분은 인간 존재가 하느님 안에 근거한다는 깊은 시각에서, 그리고 하느님 안에 기초를 둔 진리(요한 18,37)로서 그 해답을 주신다. 원시 그리스도교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현존 문헌은 이러한 종교적 이해의 지평에 뿌리박고 있다. 모든 복음서와 서간 성경들도 이러한 교류의 차원을 전제로 한다. 이 점은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의 등장을 서술하는 데 사용한서술 양식, 곧 문학 유형 속에 잘 나타난다.(Page33)
복음서 저자들의 서술에는 과장도 더러 있고 개연성이 희박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치유이야기가 이토록 많이 전해지고 또 그것이 시대 상황과 부합한다는 사실은 예수의 치유 기적에 대한 근본 확신을 흔들리지 않게 지탱하는 요소다.(Page 506)
강일상의 "마가복음의 기적 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
는 복음서의 예수치유이야기를 다른식으로 해석합니다. 이에 김기석청파교회목사는 기독교사상 2008.1월호에서 츠베탕 토도로프의 말을 인용해서 "해석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다. 오로지 풍부한 해석이냐 빈곤한 해석이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는 해석이냐 불모의 해석이냐, 새로운 지적 해석을 주는 해석이냐 단조롭고 지루한 해석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 하면서 이책을 추천하고 있지만 강일상은 기적을 부인합니다. 기적은 제유법을 활용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형상화한것뿐이라고 말합니다.
김기석목사도 의문이 있다고 하고, 과잉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김기석목사는 강일상의 "마가복음의 기적 이야기"에서 많은 의미론적 공감을 했다고 하고 의미가 사실을 넘어선다는 것도 일깨워줬다고 합니다.
이 두책은 도도아빠님과 나누었던 이야기와는 관계가 있어서 올려봅니다.
복음서의 기적이야기를 역사비평적으로 봤을때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다른뜻을 지닌것으로 해석한다면 부활도 그렇게 볼수 있는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저야 부활도 믿고 기적도 그대로 믿는편입니다. 다만 과장도 있고,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습니다. 성서를 읽다보면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믿기 힘든 내용이 있습니다.
웃음님!!!신학적인 글을 적으실때는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많이 가져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틀린부분도 있지만 처음부터 쓰신 글들을 보면 대단한 분이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반 목회자보다도 신학적 지식이 많으신것 같아요
도대체 얼마만큼의 신학책을 보시고 고민을 하신지요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웃음님의 글을 보면서 현재 웃음님처럼 신학적 사유가 되지 못하지만 열심히 공부해볼려는 자극이 되기도 합니다.
설명절 건강하게 잘보내시구요 항상 좋은 글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웃음님의 의미는 이삭의 웃음이 아닙니까? 세상을 관조하고 초월하는 웃음 말입니다.
제가 다비아에서 적은 글들을 보시면서 웃지 마십시요 ㅋㅋ 잘 가르쳐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종교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인지 몰라도(저는 기독교를 여타의 다른 종교와 기본적으로
동질선상에 놓고 비슷하게 보려고 하는 이를테면 종교학적인 발상에 관해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예수(:역사적 예수)라는 그분은 참으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가르침들은, 그게 이미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그런 차원(
고차원적 사고나, 철학이나, 성찰의 차원)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전하고 있는 성서
기록을 믿기에 부족함 없이 충분하다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방식의 믿음이 바로 (역사적 예수 후 한참이 흐른)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의 근간이 되어야 맞을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게 바로 소위 말하는 은혜요,
은총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학술적/이성적/실증적) 분석이 믿음의 상위에 위치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적인 정의는, 적어도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특히 그럴 것입니다.
양파 속이 궁금하여 한 꺼플 한 꺼플 계속 벗겨 봤더니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파 속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어도 양파는 그대로 충분히
유용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양파에게서 더 이상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마치 양파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렇듯이, 묘한 이 세상은 궁금하고 밝혀
내기 어려운 것들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한 건
의 사건.사고와 관련해서도 우리가 진실/사실을 알아 낼 수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유한성 때문입니다.
예수 말씀의 분석은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성서 기록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통상적인
인식이상, 과연 우리에게 더 이상 '역사적 예수에 관한 분석'이 필요할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 신앙이 너무도 깊이가 없고, 아마도 한국의 전형적(?)인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들면서, 뒤늦게 여러 책을 보고, 여러 말씀을 여쭙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내용들을 모르고, 요런조런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때가 더 속편했다.'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정통적인 신앙과 신학적 진술, 예수님 당대의 역사적 조건, 유대(교) 등등 전반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고, 조심조심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종말)이 기독교의 핵심이며, 그것을 믿습니다. 거기에 바탕을 두고, 여러 내용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쉽게 풀리는 질문들이 아니기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의 제목에 제가 들어가니까, 좀 이상하네요. 계면쩍기도 하고, 뭔가 불편하기도 하고.^^ -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