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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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청교도신앙...청교도신앙...하며 청교도신앙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분은 자주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건너간 위대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도 그건 그 역사를 잘 알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닌듯 했습니다. 그분이 유식한 분은 아니었고, 또 이야기의 내용이 역사적이었다기 보다는 주로 목회자들 사이에 별 근거없이 퍼져있는 예화정도의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날 나는 그분께 물었습니다. 그 위대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왜 아메리카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설마 청교도들이 사람을 죽였겠느냐고 반문했고, 나는 그들이 사람을 죽인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말하였더니, 그분은 "그럼 인디언들이 죽을짓을 했겠지.."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내가 청교도신앙(특히 필그림)에 대해서 반신반의 하다가 싹 정리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너새니얼 필브릭이 쓴 <메이플라워>라는 책 때문이었습니다. 바다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필그림의 역사를 잘 이야기해주고 있고, 이것은 미국 건국의 신화가 갖고 있는 많은 허구를 벗겨내기에 충분했습니다.
2002년 현재 미국 내 메이플라워 호 승객의 후손은 약 3500만 명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 인구의 10%에 해당됩니다. 메이플라워호의 전체승객이 102명이었고, 그중 반이 죽고 절반정도만 도착했으니 인구증가에 대한것만 보면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그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해서 처음 저지른 일중 하나가 바로 인디언들의 옥수수를 훔친일입니다. 물론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더 큰 불행이 앞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러한 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청교도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플리머스 록에 상륙하고 그곳의 인디언 왐파노아그족과 친구가 되고,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트의 도움으로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보낸 필그림들이 마사소이트의 아들 필립왕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뉴잉글랜드의 원주민의 75%가 사망했습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떠나온 필그림들이 남긴 글에는 인디언들을 종종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자신의 종교에 대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정당화 할수 있는것일까요?
"필그림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의 터전을 재건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질병과 빈곤에 허덕이면서 인디언이 완전히 사라질 날만을 고대하며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호시탐탐 노렸다. 결국 영국인과 인디언 양쪽 모두 서로가 없는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역사의 좋은 교훈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았으나 결국은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모순의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린글 "④ 독생자(1) + 율법(23) = 예수님(24)" 에서 발췌했습니다
율법의 하나님이 파괴와 노략의 신이어야 하는 이유는 "질서의 법"이시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중.남미 지역에서 잉카.마야.아즈텍문명 등 가장 조직적이고 수준 높은
(전문가들의 평이 그렇습니다) 문명을 이루며 살던 황색인종들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세기에
서방 기독교도들에게 무자비하게 몰상당한 이유는, 종교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생각해내기
어려운 우리에게 고통스럽기만 한 인류 역사의 한 장입니다. 그러한 참혹한 역사가 지구상에
기독교가 거의 뿌리내린 이후의 인류사 중에 이뤄진 일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혼란케 만듭니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의 예를 들자면, 조용한 말투에 서로 인간적으로 통하는 맑은 눈빛을 지니고
협동하며 살던 인디언들은 겨루기 좋아하고 서로 싸우는 듯하는 시끄러운 말투를 가진 서양인들에게
계속해서 속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은 거의 몰살당했습니다.
공의의 차원에서, 그래야만 했던 그들의 죄목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우리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계 카톨릭교도들이 저지른 비인간적이고 최소한의 양심도 속인 속임수를
이용한 무자비했던 만행의 역사를 알고 나면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 더욱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는 고작 세상이 가르쳐주는 '힘의 논리' 말고는 그사람들이 그렇게 당해야만 했던
이유에 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도 모르고
카톨릭 교황, 사제도 모르고 절간의 중들도 모르고, 철학자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의 내 신앙 사유에 있어서 다소 거침돌로 작용되기도 합니다.
(나는 언젠가는 이 문제를 여기서 말하려고 생각해 왔습니다) 잘못하면 모든 인류사.인간사가
단지 우연적 혹은 무개입적인 필연적 사건의 연속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일찌기 아메리카를 개척했던 그 황색인종들이 이런 식으로 멸종당하다시피 했어야만
했을까요. 그들이 공룡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일을 두고 우리 중 누군가는 '하나님의 섶리' 혹은 '성서 관점적 해석'을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훗날 주님께 여쭤봐야 할 문제일까요...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출애굽한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였다.그래서 구약성서의 전쟁기사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빼앗기 위해 가나안 원주민들을 학살한 것마냥 미국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다. 하지만 구약성서의 전쟁기사는 가나안 민중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의 지배계급을 상대로 투쟁했다는 이야기이지 청교도들의 인종학살을 정당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다.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폭력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현재 미국의 국제정세를 보았을때에 이라크를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예수와 제국/리처드 호슬리 지음/김준우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의 이야기를 기억나는대로 적어보았음.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미래형으로 나오는 것은 이라크 전쟁 이전에 나온 책이기 때문임.)
더 큰 문제는 웃음님이 지적하셨듯이,미국과 한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 성서와 폭력의 신화를 근거로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성서비평을 마귀비평으로 여길만큼 성서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면서,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과 폭력의 신화를 성서의 평화주의 사상으로써 극복할 생각이 없는 모순을 보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