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울지마 톤즈>, '가난한 사람들'

Views 2498 Votes 1 2011.02.12 12: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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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도희의 병과 아이와의 관계가 계속해서 제 마음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제가 돌아가신 엄마를 닮아 흰머리가 별로 없었는데, 지난해 6월, 제대혈 이식하고 부쩍 늘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설 명절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와 목사님의 지난 주일 설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채 정리를 못하겠는데, 그냥 두서없이 몇 자 올려봅니다.

 

<울지마 톤즈>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가,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이 이 다큐를 두 번 보시고 자성하셨다는 기사를 읽고 궁금증이 일어 보게 됐습니다(영화 관련 정보는,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id=29068'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이 다큐를 보면서 눈시울을 조금씩 붉히게 됐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더군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왜 그리도 빨리 데려가셨는지,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을 당신께서 잘 거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톤즈'에서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을 보게 됐습니다. 2000여년 전, 억압과 고통으로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이스라엘이요, 열방의 모습이 바로 21세기의 '톤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톤즈의 주민들와 아이들은, 인간의 숙명이랄까요, 복불복이랄까요, 시대와 장소의 다름 속에서도 변함없는 정치적 제적 사회적 종교적 억압과 고통 속에 신음하며 울부짖는 '보편적 실존'이었습니다. 그저 먹고살만하다고 해서, 나는 국외자요 방관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울지마 톤즈>가 제게 준 가장 강렬한 시사점은, 고 이태석 신부님의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센병으로 손과 발이 뭉퉁뭉퉁 잘려나간 제대로된 모습을 처음으로 보면서, TV 화면인데도 섬뜩함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전염의 우려가 없으며, 현대 의학에 힘입어 치료와 조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저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마음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아니, 아주 솔직히 말씀드려, 마음 한 구석을 찌푸렸습니다. 기독교인으로 가져야 할 긍휼, 연민의 감정은, 그 뒤에 의지를 발동시키고서야 나왔습니다.

 

성경이 전해주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렇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제가 성경에 통달하지도 못하고 배경지식도, 신학도 미약해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는 예수님은, 그들을 서슴없이 잡아주셨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먹여주셨고, 그들의 고통을 온마음과 온몸으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들이 무식해서, 자기의 생존밖에 몰라서,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앞세워서, 나중에는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배신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나무라시기보다는 감싸주시며 용서하셨습니다.

 

영화를 보면, 미사 등 종교적인 장면은 많지 않습니다. 아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가 크겠죠.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톤즈'에서, 고 이태석 신부님이 선교에 열을 올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의 아픈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료하는 대신,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으니 회개하라고 했다면? 내전으로 얼룩지고 국가, 사회 조직이 무너진 그곳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실 속에서 무너져내리는 한 명 한 명의 벗이 돼,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도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대신, 미래의 소망을 내세우며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면?

 

신앙의 깊이를 잘 모릅니다. 아마 깊이라고 말할 수준도 안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대충 신앙, 믿는 척 아는 척 하는 신앙 생활을 해왔다는 것, 뼈저리게 인정합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며 '하나님 나라'가 빨리 와서 '당신의 뜻'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종말론적 신앙'과 '기다림의 영성'을 크게 깨닫지는 못해 조심스럽지만, 온전히 받아들이며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믿으며,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참 힘든 설교였습니다. 두 번 귀기울여 듣고, 한 번 정독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나라입니다.' 예, 받아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은 이 미래의 차원에서 타당합니다.' 예, 그렇지만 '지금'은 어떻게 견뎌야 합니까? 여전히 가진 것 없어 배고프고 잘 곳 없는 사람들에게, '미래'가 있으니 '지금'은 알아서 견뎌라, 이렇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극빈한 사람들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가진 것은 좀 있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물질이 있으니 '지금'은 그럭저럭 살다가 '미래'에 좋은 것을 받아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잖습니까? '이 기다림이 우리의 영혼을 불처럼 사로잡는다면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는 말씀이 옳'다는 말씀이 전해주시는 바를 알겠고, 받아들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현재'에 대해 말씀을 적극적으로 하지않으신다면, 참 힘듭니다(개인적으론 많이 놀랐는데, 목사님은 설교 말씀에서, '이런 미래의 차원을 무시하는 방식으로만 세상을 본다면 여러분은 아직 그리스도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이라며, 은근한 두려움도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궁극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역동적인 사건'이며, 하나님 나라는 이미 바로 여기에 은폐의 방식으로 개입되어 있'고, '종말의 힘은 현재의 힘'이라고 전해주셨습니다. 아마 어떤 신학적 지식, 배경이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릅니다. 그래도 목사님 말씀이니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요리가 어떤 건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금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불행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이미 지금 프랑스 식당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다른 게 없'다는 말씀에는, 여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짜 식당이라면, 음식 주문하고 식탁 위에 올라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별로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미래'의 식당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복'이라는 음식이 주어져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지, 사람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그것은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다림의 영성'이 필요하다고요?

 

'하나님 나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이 자유를 확보한 사람은 이미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선포에, 제 마음도 기쁩니다. 저도 그런 자유롭고 복있는 사람이고 싶고, 그래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말씀 듣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목사님, 외람되지만, 목사님은 그렇게 자유롭고 복있으신가요? 아마도 목사님은 이미 그런 상태시거나, 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유롭고 복있는 상태에 가까우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사님, 그런 자유롭고 복있는 사람이 된다는 게, 어렵지 않나요? 이 세상, 이 지구에서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자유롭고 복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인도 같이 종교적 전통으로 가난에 크게 개의치 않는 나라들도 있다곤 하지만, 그곳의 비참한 실태는 어느 정도 알려있지 않습니까?

 

저는, 다시 한 번 고백하지만, 목사님의 설교 말씀과 성경 해석이 기쁘고 다 받아들입니다. 저에게 신앙적 지평을 열어주십니다. 아직도 보잘 것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복된 소식임을 고백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앞부분에, 기독교(종교)가 '가난이라는 정치 경제적인 문제를 종교적인 문제로 해체시켜서 인간 해방의 투쟁을 방해'하는 비판이 있었음을 밝히시고, 그러나 결코 그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십니다.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톤즈'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결코 나와, 너와, 그와, 우리와 동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분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목사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목사님은 어떤 특정 신학적 경향(들)이 때로는 기독교 신앙의 고갱이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킨다는 점을 걱정하시는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런 경계와 우려는 타당하고, 저도 그런 신학 앞에서는 주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말씀은, 제 가슴 깊숙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염려가 지나쳐 '삶의 자리', '실존의 현장'에 대한 말씀이 균형을 잃거나 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합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잡문이 혹시라도 목사님께 누가되지 않기를 강력히 바랍니다. 댓글은 감사하지만, 예의있고 근거가 분명한 글이기를 또한 강하게 희망합니다. 특히 이 글을 저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활용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일, 근무하느라 에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몹시도 기다려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sg-


진 예수만

2011.02.12 21:48:14
*.118.18.237

쓰신 장문의 글에 어떤 이의를 달거나 달리 의견을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생각이 없는건 그럴만한 정도의 식견이 없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의적 차원에서 다음의 이런 한 가지 의견만은 제시하고 싶습니다.

 

위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나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은 이 미래의 차원에서 타당합니다.' 라고 말씀하셨구만요.

 

그냥 우리들은 맨처음부터 미래 어느날인가에 우리에게 올 그 천국을 지향하면서,

일종의 미래지향적인 신앙 사유를 해왔습니다. 우리 대다수가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근래에 들어서 성서 기록된 '천국'에 관한 말씀이 반드시 미지의 미래 시재에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그 계기는 신학대에서 가르치던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던 일일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해석(천국의 현세화)이 상당히 당혹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청빈하게 살아서 그래서

그 반대급부적 보상으로 복을 받게 되는 그게 아니고, 이미 복을 받아서 그래서 결과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더 복잡한 말씀 안드려도 그 크나큰 차이를 능히 간파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천국은 이미 이 땅에서 그걸 열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훗날 그걸 받아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무슨 '공자왈 맹자왈' 식으로 어떤 신학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단지 어렵고 어렵기만한 신앙 사유에, 괜찮으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함에서 입니다.

profile

도도아빠

2011.02.13 00:51:09
*.121.215.165

예, 감사합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강하게 열망하며, 가능하다면 이 세상에 이뤄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학적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논쟁할 수준도 못 됩니다. 그냥 소박하게 믿고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 글이 혹시라도 이상하지 않아 창피당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sg-

진 예수만

2011.02.13 05:21:01
*.118.18.237

이상하다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솔직한 말씀이십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그런 의문들을 떨치기가 사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렇게 하면 좋다고 얘기합니다.

즉 나 자신이 (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신약의 복음서들만을 수십 회고 읽어보는게 아주 효과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고 그분의 하고 계신 말씀이 들리더군요.

 

이 역시 그냥 제 경헙담입니다.

어떻든 좋은 조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rofile

정용섭

2011.02.12 23:40:33
*.120.170.250

도도 님,

이 글에 지난 내 설교가 다루어졌네요.

본인이 질문하고, 대답하셨으니, ㅎㅎ

내가 굳이 또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도도 님의 생각은

신정론에 고착되어 있습니다.

위 글도 그거잖아요.

무죄한 이들의 고난,

무의미한 고통과 죽음들,

하나님이 창조하고 섭리하는 이 세상의

이 모순덩어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거 중요한 주제에요.

늘 가슴에 품고 살아야지요.

답이 없답니다.

아니 우리가 아직 모른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만 매달릴 수는 없겠지요.

진도를 나가야지요.  

하나님의 은총을 향해서

우리의 영적인 촉수를 예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나의 대답은 잠정적으로나마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휴머니즘으로도 나타나야 하지만

휴머니즘 자체가 신앙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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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아빠

2011.02.13 00:43:50
*.121.215.165

목사님을 통해, '휴머니즘 자체가 신앙은 아니'라는 말씀이 뭔지 알게됐고, 받아들입니다. 휴머니즘이 기독교 신앙에 앞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신정론이 뭔지도 아직 잘 모릅니다. (신학을 포함해) 공부를 더 해야겠지요. 제게도 언제쯤 깊은 영성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지만,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인간 세상의 모순덩어리를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힘들지만, 때로는 화나지만, 하나님의 뜻이 어딘가 있을 것으로 받아들일 따름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복지사회(혹은 그 어떤 인간적 진보적 가치, 목표)가 절대로, 결코 기독교 신앙의 완성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자의 영성이 복지사회(혹은 그 어떤 인간적 진보적 가치, 목표)를 위한 노력을 무시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당연히, 그 어떤 인간적 가치의 추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과 부활, 재림을 핵심으로 하는 기독교 신앙보다 앞설 수도 없고, 훼손해서도 안된다는 점은 저 역시 분명히 받아들입니다.

 

도식적인 얘기겠지만, 결코 하나님에 앞서 인간을 최고의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론 신앙을 이유로 인간을 도구적으로 취급하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영성이 더 커지면 바뀔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저는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에 두고 영성을 키우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고민하는 것이 좀 더 화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참 좋습니다. 신학적인 경향, 이런 것은 잘 모르지만, 목사님의 설교, 책, 다비아에서의 글들을 (거의)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신학적 신앙적인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런 가운데 저 역시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바라며 (나름대로) 공부하며 기도합니다.

 

혹시라도 제 글이 목사님을 조금이라도 언짢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목사님처럼 평신도의 의견에 귀기울여주는 분이 많지 않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다만 좀 답답했던 사정이 있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올렸습니다. 목사님의 넓은 아량에 기댑니다. 늘 고맙습니다.     -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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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11.02.13 10:57:47
*.255.183.133

도도아빠님, 저도 엊저녁 저 다큐를 봤네요. 감동 그 자체이군요.

언제 저 다큐 가지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봤음 싶어요. 

아, 글구..

목사님 말씀처럼 집사님의 고민은 우리가 죽을때까지 품고 살아야 할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집사님은 그 고민의 중심에 서 계시다고 생각되어요.

그런데,

어떤 분은 그 고민은 말이 안되니 접어두라고 하는군요.

참, 어이없는 참견입니다. 아마 도도아빠님이 정목사님의 말씀에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쪼매만 있음,이런 설교는 어떻신지요? 이거야 말로 진짜 설교입니다. 이러실 것 같네요. 이미 그러고 계시니까요.

대체.. 이런 소모전을 언제까지 하시려는지 원..

성경구절이 번개같이 스쳐지나가네요.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나니..."

(신천지인가 하는데서는 기존교회에 일부러 잠입해서 성도들을 꼬드긴다고 들었어요. 

이건, 윤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죠, 진리를 사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할 짓은 더더욱 아니고요.)

 

집사님, 오늘 우리 기쁜 예배 드리고, 또 기쁜 대화 깊게 나누어요!!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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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1.02.16 22:45:26
*.144.233.29

저도 어제 봤습니다. 도도아빠님도 추천해주시고, 또 제가 아는 다른분도 다른 곳에서 추천도 해주셔서 봤답니다.

열남매를 키우신 그 부모님과 또 형제자매들중 일부가 종교인으로 출가해서 사는 삶..  톤즈의 물, 톤즈의 한센인들, 톤즈의 내전,   지금  톤즈 또  뭘 하고 있을까?  이걸 보면서 계속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라는 책이 맴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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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아빠

2011.02.16 23:51:52
*.121.215.165

웃음님, 잘 지내시죠?^^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 그 사진집은 처음에는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너무 가슴 아파서요.

 

요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늘 마음에 담고, 때때로 살펴보고 영성을 키우며,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제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 그곳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 것을 다짐합니다. 웃음님, 이번 주일엔 뵐 수 있을까요?     -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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