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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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페어 게임|작성자 현무의검
원문: http://blog.naver.com/skene97/122394624
* 영화 리뷰 아닙니다.
Q.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알았을까, 아니면 믿었을까?
당연히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렇게 전제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예수님인데! 그렇게 중요한 걸 모르셨을 리가. 그리고 그분에게 아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었을까? 어차피 예수님의 믿음은 만렙인데. 우리가 만렙이 아닌 것 만큼이나 그분이 만렙이란 건 당연하지 않을까? 믿음은 보는 것들의 실상이니 믿음으로 '보셨을' 거야.
이 질문을 좀 더 밀어붙이면 이렇게 된다. 땅에 사실 때, 그분은 다음 날 벌어질 일을 알고 계셨을까? 다시 말해... 그분은 시간 안에 갇혀 있었을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조건은 같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에 매인 인간의 조건 안에 스스로를 제한했고 그것이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말씀의 의미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분과 우리의 조건이 너무 달라진다.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 등, 그분이 가졌던 미래에 대한 지식은 선지자들의 그것과 같이 계시로 받은 것일 뿐, 전지한 하나님의 시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령이 주시면 보고, 아니면 놀라고 실망하고 화내고...
'그분은 모르시는 게 없다'는 오래된 전제를 간단히 깨뜨리기엔 좀 불편하다. 그러나 초림시 그리스도의 육체적, 공간적 제한이 명백함을 고려해본다면 시간적, 인식적 제한 역시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부활 전에 그분은 공간적 제약을 깨뜨리고 동시에 여러 장소에 나타나신 적이 없다. 직접 보지 않으신 일은 남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신다. 나사로의 무덤 위치를 물어보신 것이 설마 마리아의 원망을 피하기 위한 수사적인 질문이었을까. 희한한 일이다. 죽은 사람을 살릴 작정이었으면서 막상 그 사람이 어디 묻혔는지는 모른다. ... 이 이중성. 죽은 자를 산 자처럼 불러내시는 하나님과 동네 공동묘지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는 이 사람. 한 몸 안에 있다.
시간적 제약은 지식의 제약을 의미한다. 사마리아 여인을 미리 아시고 그녀 때문에 사마리아를 들를 때도 있지만 '그 때는 아들(자신)도 모른다'고 하시는 게 일반적인 태도이다. 혹자는 성자의 겸양이라고 설명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분은 그런 동아시아 스타일의 겸손떨기와는 상관이 없다. 그분이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니다. 그분이 모른다고 했으면 정말 몰랐던 것이다. '한 날 근심은 그날에 족하다'는 말씀은 스스로에게도 적용하신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분은 자기자신이 지키지 않는 말씀은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먹고 입는 것, 다음날에 있을 일들을 근심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인도에 자신을 맡기셨을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지만 고침을 받은 것은 극히 일부다. 애써 풍랑을 헤치고 호수를 건너가서 달랑 군대 귀신 케이스 하나 해결하고 다시 호수를 건너오는 일도 있었다. 성격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이스라엘 하나 정도는 싹 다 해결하실 법도 한데 복음서가 전하는 사건들은 극히 제한적이고 개인적인 양상을 띤다.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하신 이야기와 몇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지상에서, 즉 인간으로서의 그분의 삶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그 자신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순종 하나로 한 순간 한 순간을 지나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으리라. 지금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과 똑같이.
추론의 수위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직감대로 조금만 더 가보면... 죽음도... 아마 모르지 않았을까... 제명에 곱게 죽을 입장이 아니라는 정도는 예감했을지 몰라도. 수난 예고는 사역이 분수령을 이루는 지점에 등장하며 그 이전에는 그런 암시를 발견할 수 없다. (내가 못본 걸지도) 어쩌면 그분 자신도 구체적인 것은 얼마 전에 알았을지 모른다. 물론 이런 부분은 전적으로 추측임을 밝힌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역사적 예수니, 만들어진 그리스도니, 그리스도의 자의식이니 하는 한물간 유행하고는 좀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페어 게임이다. 전지해서 아는 것 말고, 하나님이라서 하는 것 말고, 정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에 던져진 채, 자기를 그 어둠에 던져 넣으신 바로 그분을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해 봐서 아시는가. 그분의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 목숨을 건 시험을 통과했는가. 내 믿음의 주 되신 이는.
... 이 질문은 답변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일에 동일한 시험을 통과했으며,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엘룰의 지적대로 '예수가 겪었던 시험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결론은 다음과 같다.
A1. 그분은 지금 자기를 죽음에 내어주시는 그 하나님이 자기를 살리실 것으로 믿었다.
A2. 망했다...
A2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이 필요할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까. 여러모로 구차하다.
그분이 시간 안에 갇혀 있었다는 전제 하에 장면을 하나 만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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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 어느새 서른을 넘긴 노총각이 되었다. 들릴듯말듯, 세미한 목소리가 나를 강으로 불러내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과 함께 성령이 오셨다.
성령에 이끌려 와 보니 광야. 그리고 긴 금식.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20일 정도가 지난 뒤로는 모르겠다. 의식이 없는 동안 며칠이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을 온통 막노동으로 다진 몸이라도 사람인 이상 버틸 수 있는 한계는 훌쩍 지나갔다. 낮의 태양과 밤의 추위. 그리고 침묵. 설마 여기서 굶어죽는 게 내 사명은 아니겠지. 언제 끝날까,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뭘까. 몰라도 좋으니 이제 제발 그만.
또 해가 기운다. 드디어 오늘밤에 얼어죽는 걸까. ...빵? ... 설마. 광야 가득히 널린 돌 너머 남은 햇빛이 그림자를 지우고... 꼭 빵처럼 보인다. 저 많은 돌들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이젠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나 자신. 굶어죽어가는 내 몸이 내게 말을 건넸다.
시험하는 자가 왔다.
현기증이 난다. 땅에서 머리를 한 치도 들 수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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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험의 쟁점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은 '십자가를 피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내 식으로 하면 '정말 맨몸으로 맞짱뜰 작정이냐'가 된다. 인간의 한계에 몰린 상황에서 아무 특권도 사용하지 않고,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순수한 의지만으로 하나님의 선을 택할 수 있인가. 자기 한 몸 추스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빵보다 말씀.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너무 불리한 싸움 아닌가. 온 세상 대 한 사람. 인간적으로 유리한 조건도 없고 생존을 위해 가진 능력을 쓰는 것조차 거절하는 한 사람. 가진 것이라고는 맨몸에 마음 하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러주신 음성. 내게 오신 성령.
그분은 당신이 이길 것을 아셨을까, 믿으셨을까.
자신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얼마나? 공평한 싸움이라고 생각했을까? 해볼만하다고? 아니면 넉넉히 이긴다고?
이제 똑같은 싸움을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기대한다. 양을 이리떼 사이로 보내겠다고 공언하신 분이 누구던가. 스스로 하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기대할 성격은 아니다. 스스로 이리 가운데 던져졌고 개들이 양을 물어뜯었다.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양을 개들에게 내어주신 이를 신뢰하고 그분께 복종하면 이기는 게임. 나의 경애하는 그대는 만렙이다. 말 그대로 마스터.
파티할까? 라고 물으셨다.
팀킬인데요.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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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년 전에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철딱서니 없었어도 결과가 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청년실업과 장기불황을 예측한 건 아니었지만, 남들이 다 먹고 살만 해도 나만은 그렇지 못하리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조국처럼 문화적으로 형편없는 나라가 아니라도, 어느 나라에 살건 이 선택에 '장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중학생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중학시절에는 꽤 똑똑한 축에 들었다) 누구도 지지하거나 찬성하지 않는, 심지어 나 자신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 결정을 밀어붙인 근거는 '하나님이 어떻게든 해 주시겠지'라는 믿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정말로 믿음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명확한 부르심이 있었고 일련의 과정이 있었고 자꾸만 아래로 이끌려갔고, 이제 와서 정신차려보니 딱 굶어죽게 생겼다. 머리에 생각이 있다면 '속았다'고 여기는 게 정상이다. 속은 게 아니라면 다른 옵션이 하나 더 있다...
'나와 같은 조건으로 뛰었으면 하는데'
...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보다 들리지 않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기엔 일관성이 끝내준다. 20년 동안 초지일관. 그러니 망한 게 맞다.
그동안 줄기차게 나 자신을 속였던 것이다. 어떻게든 해줄 거라고, 하늘에서 뭔가 뚝 떨어질 거라고. 없는 길을 만들어 줄 거라고... 이제서야 시험하는 자의 얼굴을 알아본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정도는 해 주실 거야'
오해가 없길 바란다. 이 기대 자체는 정상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빵보다 말씀'이라고 말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분은 40일, 나는 20년. 이렇게 계산하면 신성모독이 될까? 어쨌거나 나는 여태 이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있다.
막막하다.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성령의 능력이 주어지지만 타인을 위해서밖에는 쓸 수 없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은 사랑한다는 말씀 하나. 나를 죽음으로 내모는 순간에도 사랑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먼저 불러 맺은 언약 하나. 이제는 이삭의 목을 베어야 한다. 이삭의 부활을 아는가, 아니면 믿는가. 언약하신 분을 믿고 내 손으로 언약을 부술 것인가.
그분은 나의 순종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 만렙 : 주로 RPG(롤플레잉)게임에서 캐릭터의 레벨 혹은 능력치가 최대치에 도달한 상태를 말함.
※ 파티 : 온라인 게임에서 협동 플레이를 위해 팀을 구성하는 행위
※ 팀킬 : 같은 팀원이 동료 팀원을 아웃 시키는 행위(게임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