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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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다음 아고라에 올렸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김인혜 서울대 교수의 제자 폭행사건이 많은 여파를 가져오며 서울대에서는 징계 전 직위해제에 착수하였습니다.
폭행에 대한 김인혜 교수의 여러 변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건은 김인혜 교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서울대 당국에서는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여러 증거를 수집한 상태인 듯 하며 사건에 대한 수습의 방침을 세운 듯 합니다.
한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이미지가 실추된 부분에 대하여 당사자에 대한 배려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동문들에 의하여 부정되기는 하였지만 김인혜 교수 자신이 동일한 과정을 통하여 교육받았다는 것을 변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나만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변명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것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술계라 하더라도 사회가 이룩해 놓고 있는 가치들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이룩된 가치체계를 뒤로 돌리는 경우와 이 가치를 뛰어 넘어 앞으로 나가는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현행법상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동정을 받거나 후대에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들 입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그것은 '반동'에 해당하는 행위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것은 평가받지 못할 것들 입니다.
사람에 대한 폭행은 이 사회가 용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특히 힘의 관계에서 약자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과한 텃치'가 정당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스티킹에 나오는 이들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TV에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마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이와같이 바로 '그럴 수 없음'이 사회가 이룩해 놓은 통념입니다.
이러한 것은 방송국의 스튜디오나 학교의 교습실이거나 모두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들 입니다.
'까칠함'과 '반인권적임'은 분명 분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인혜 교수가 스타킹에 출현할 때 부터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다른 교수들의 레슨비에 비하여 두배 이상을 받으면서 수험생들에 대해 현행법을 어겨가면서 까지 레슨을 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대학 교수들의 레슨비가 시간당 20~30만원 정도 하는데 김인혜 교수의 경우 "알아서 달라"는 말에 주위에 알아보면 50만원 정도를 줬다고 하여 그렇게 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그런 레슨을 받으면 서울대에 입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조금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미끼로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비싼 비용을 들이고 레슨을 받겠습니까?
한국 최고의 소프라노인 한예종의 김영미 교수님도 그런 정도로 까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렴(?)한 편입니다.
'알아서 달라'는 말의 애매함이 대학입시와 만나며 부패와 무서움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가식'이 '가증'으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가 스타깅에 나오는 이들에 대하여 호들갑을 떨면서 무료로 레슨을 해준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TV프로그램의 진실성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중매체와 속물적인 주인공이 만나 만들어 내는 욕지거리 나는 행위들은 이제 드러나고 지양 되어야 할 것입니다.
스타킹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파바로티'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이에 대한 내용은 대구지역에서 음악을 하는 학생들 이라면 실제와 TV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TV드라마의 악역을 보는 듯 합니다.
그를 TV프로그램에서는 주인공으로 만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진실된 삶에서는 악역을 맡았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출연자들에 대한 진실정 마져 의심됩니다.
젊고 창창한 그의 앞날이 있기에 여기 까지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다 드라마틱하지 않기에 프로그램의 제작을 그렇게 몰고가고 각색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버라이어티쇼의 작가나 제작진에 사람들의 내면에 담긴 것들을 찾아내고 그러한 진실의 드라마적 요소를 끌어 올리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삶의 표면만을 가지고 거기에서 저렴한 감동을 이끌어낼 수 밖에 없는 아마도 당연한 귀결이 될 것입니다.
김인혜 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당신에게도 변명의 권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권리가 당신이 저지른 것들을 덮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들 역시 다양한 잘못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뻔뻔하게 버티거나 지적에 대하여 대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제'라는 명분하에 무자비하게 휘두르던 당신의 권력을 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민주화되고 자유로워 지는 세상의 궤적에 당신의 삶도 놓여야 할 것입니다.
피해를 당한 이들도 예술계의 폐쇄적이고 인맥 중심의 흐름 때문에 겁내하고 용기를 내지 못함을 반성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에 발 맞추지 못함이 아니 앞서지 못함이 지금의 침체를 있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유로움과 탈주를 향한 희망찬 발걸음이 예술을 영원하게 할 것입니다.
비추천하신 분의 정체와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김교수 독실한 크리스찬이라더니, 여기까지 기웃거리나?